작년에 작성한 글인데 마지막 부분을 능력주의와 관련해서 조금 고쳐보았어요. 근데 또 너무 억지로 연결시키려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더 과제글이 많이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올려보겠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음..마지막 부분을 좀더 수정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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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이 근무하는 희영(가명)은 수학과 기간제 교사이다. 그녀는 대학에 수학과로 입학했다가 수학교육과로 편입을 했다. 2004년에 졸업을 하고 충청도와 대전, 경기도로 임용고사를 보았지만 높은 경쟁률의 벽을 넘지 못했다. 초반에는 시험점수가 점점 올라 금방 합격할 거라는 기대를 했으나 마지막 해에는 점수도 오르지 않고 공부할수록 수학적 능력이 없다는 걸 느끼며 좌절했다. 게다가 부모님께 학원비를 받고 언니, 동생에게 생활비를 받으며 지내는 것도 미안했다. 결국 희영은 시험을 그만보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2009년도부터 수학강사로 교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경력이 없어서 기간제로 임용이 되지 않아 시간강사 및 방과후학교 강사로 보냈다. 그러다 2011년, N중학교에서 10개월을 근무하면서 기간제 교사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희영의 교직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해는 2013년으로 H학교에서 근무를 했던 때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첫 담임을 하며 재밌고 즐겁고 보람차게 지냈다. 중 3담이고, 업무도 많았지만 잘 하고 싶은 의욕과 열정이 넘친 그 때는 힘들지가 않았다.
“아이들이랑 그 때 정말 즐겁게 지냈어요. 아직도 그때 아이들 과 연락을 하며 가끔 만나기도 해요.”
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보람과 즐거움을 주었던 그 해가 저문 다음해 2월 졸업식. 그녀는 학교에 출근을 했다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2년을 이 학교에서 근무하기로 하고 들어왔는데 (보통 기간제는 1년씩 계약서를 쓰고 다시 재계약을 한다.) 졸업식이 끝나고 희영이 근무를 못할 거라는 말이 들렸다. 희영은 뭔가 확실하게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무도 공식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재계약서를 쓰라는 말을 하지 않자 그냥 퇴근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수학과 대표교사가 전화해서 재계약을 못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보통 기간제 교사의 계약여부는 교감 업무이고, 때에 따라 교무부에서 교무부장이 먼저 안내를 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희영과 다른 영어과 기간제 교사에게 이 학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재연장이든, 아니든 미리 무슨 언질을 주었어야 했는데 학교는 침묵했다.(누구에게 찍혔다는 소문만 돌았다 한다.)
“제가 제일 힘들었던 게 아무도 저에게 무슨 말을 하지 않은 거예요. 그때는 어리기도 하고 경험이 없어서 저도 먼저 말을 못 꺼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도 이유를 설명해 주지도 않고, 그냥 전화로 재계약 안 될 것 같다고 말하니까 속상했죠. 그때의 어떤 상실감은 내가 기간제 교사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많이 안겨주었어요. 다른 학교를 알아볼 시간도 촉박했고, 당시 경력도 짧은 나를 어디서 불러주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도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게 되어서 그녀는 더 속상했다고 말한다. 졸업 후 아이들이 희영을 만나러 왔다는 전화에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 잠시 집에서 쉬는 중이라고 했다.(결국 그녀는 그 해 6개월은 다른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쉬게 되었다.)
“지금도 고민이 돼요. 아이들에게 기간제 교사라고 말할 용기가 없어요. 그때의 아이들은 다 성인이 되었으니 말해 볼까 싶다가도 막상 만나면 말을 못하겠어요. 어른들에게는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왜 그게 어려운지....”
그녀의 이야기 속에 아이들과 함께 지냈던 시간 속 담아두었던 고민의 무게가 느껴졌다.
“기간제 교사에게 12월, 겨울은 힘든 계절이에요. 계약이 1년이면 12월부터는 다른 학교를 찾아야 하는데 서류 낸 학교에서 과연 연락이 올까 하는 불안감이 있구요. 근무하기로 한 기간이 1년 이상이면 재연장해야 하는데 왜 아무 말이 없지? 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좀 지치기도 해요. 그래도 지금은 제가 먼저 물어볼 수 있어 다행이에요.”
희영은 그래도 지금은 경력도 쌓이고 나이도 먹으면서 12월이 되면 재연장을 하는지, 계약이 끝나는지 먼저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동안 궁금해도 말하지 못하고, 그냥 기다리며 보냈던 불안한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 때 희영에게 상처와 어려움을 주었던 학교는 인근 학교에서 전교조 교사들이 가장 많이 모여 혁신교육을 도모하기 시작한 학교였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내 동료의 사정은 눈감고 그냥 무시하다니. 나는 거기서 그때 근무하던 많은 교사들을 알고 있다. 입으로 그렇게 외치던 교육철학은 실생활에서 왜 그리 실천되기 어려웠던 것일까.
희영은 매해 12월, 내년 업무-담임여부, 가르칠 학년, 시간, 배정 업무 등-를 새로 정해야 하는 시기가 되면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민주적인 절차로 모든 교사들이 업무 희망원을 내고 인사자문위원회에서 조정을 한다. 그러나 기간제 교사는 희망원을 내지 못한다.) 안 그런 학교도 있으나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는 아무도 희망하지 않는 학교폭력 업무와 같은 기피 업무를 맡게 된다. 다행히 이곳에서 희영은 같은 업무를 연속해서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내년 계약이 끝나면 어느 학교에 가서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 잘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과 답답함 등이 밀려들 때가 있다.
학교는 공무직, 행정직, 정규직 교원, 계약직 교원, 협력교사(강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학생을 위한 교육활동을 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복잡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며 여러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계약직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제대로 전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가끔 한 번씩 생각은 해요. 내가 기간제 교사가 아닌 정교사였다면 과연 내 생각과 주장을 제대로 말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기간제 교사로 살면서 자기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지 못하고 고민을 하며 지내온 시간 동안, 나는 정규직 교사들과 주로 어울리고 고민을 나누며 지냈지 기간제 교사와는 잘 소통하지 않고 지내왔다. 가끔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거나 들을 땐 기간제여서 어쩔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 안에 자리잡은 능력주의를 알아차리지도, 그것을 바라보고 제대로 비판하지도 못하고 정교사 기간제 교사를 가르며 살아왔다.
그러나 느리게 자라는 첫째를 키우면서부터 비로소 내가 가진 그 생각이 얼마나 비겁하고 폭력적이었는지 깨달았다. 세상의 잣대로는 어쩔 수 없이 능력이나 기여가 적을 수 밖에 없는 첫째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 정도의 대우만 받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그런 차별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이란게 있을까. 어쩔 수 없다며 나와 너의 다름을 구분짓고, 포기시키는 세상의 말들 속에서 내 아이를 키울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앞으로 내가 능력주의의 그물에서 얼마나 벗어날지, 같은 직장에서 위치가 다른 사람들을 온전히 바라보고 이해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지 잘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시험이라는 공정한 경쟁을 통과한 사람이라는 우월함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없이 함께 교육을 이끌어가는 주체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고, 서로의 고통과 고민을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첫댓글 희영의 사례를 통해 기간제 교사의 실상이 잘 드러난 글입니다. 기간제 교사에게 모두가 꺼려하는 학폭 업무 같은 걸 맡기는 것, 전교조 교사지만 막상 교사 간 불평등한 현실은 외면하는 것, 업무 희망원을 낼 수 없는 것 등 답답한 현실이 실감나게 그려져서 공감이 갔습니다. 마지막 단락에 필자가 능력주의 키워드로 반성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연결이 자연스러우려면 어떤 점이 불합리하고 부당한지를 자세히 써주면 좋겠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고 같은 업무를 하고 일상 업무는 아이들이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차이가 없는데 시험 여부를 통해 기간제-정교사로 나누는 일에 대해서 써주면 설득력을 가질 것 같아요. 우월함 부분도 조금 더 생생하게 사례를 넣어주면 변주만의 글이 될 것입니다. :) 애쓰셨어요.
학폭 업무를 기간제 교사가 맡는군요! 정규 교사와 다르게 조금 더 수업에 집중하는 게 기간제 교사인 줄 알았어요. 은유샘 말처럼 아이들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한 업무를 하는데, 굳이 고용 형태를 나누어야 하는 건지 궁금하네요 'ㅅ' 임금 차이 같은 것도 있나요? 다른 협력교사(강사) 와의 차이도 궁금하고요. 전부터 쭉 써주신 글과 연결 지어서 읽으니까 잘 이해가 되었어요! 마지막 문단은 항상 어렵죠.... 그래도 글을 쓰면서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항상 생각해보시는 태도가 저는 참 좋은 것 같아요~
결론이 너무 일반적인 도덕론으로 끝나서 아쉬워요. 변주님이 직접 자기안의 모순와 맞딱뜨리고 그것과 맞써거나 도망치고, 그 과정을 이야기로 보여주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을 것 같아요. 읽는 사람 입장에서 궁금한 건 화자가 어떻게 변화하겠다라는 다짐보다는 어떻게 변화하겠다는 다짐을 갖게된 계기거든요. 전자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고, 독자까지 자신의 세계로 초대하려면 후자의 부분이 생생하게 읽혀야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