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보인다
나는 아침저녁 출퇴근길을 걸어 다닌다. 한동안 창원터널을 넘나들다 지난해 봄 시내로 근무지를 옮겨왔다. 집에서 가까운 학교가 있음에도 일부러 제법 떨어진 학교를 희망했다. 용지호수 근처의 학교는 집에서 걸어 십분도 채 안 걸린다. 그래서 반시간 정도는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인 봉곡동에 소재한 학교를 원했다. 주택가 위치한 일반계 고등학교로 심성 고운 구성원들이다.
부임 이후 며칠 지나지 않은 주중에 시내로 나가 할인매장에서 운동화를 한 켤레 샀다. 검정색 조깅화로 구두만큼은 아니지만 값이 제법 나갔다. 그 이튿날부터 구두는 신발장 안에 모셔 놓고 운동화를 신고 출근했다. 일 년여 지나도록 구두를 신고 출근한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때 사 신었던 운동화 뒤축이 제법 닳아가고 있다. 신발이 닳아 봤자 타이어에 비할 수 있겠냐 싶다.
여름날 장맛비가 아주 세차게 내린 어느 아침을 빼고는 한결 같이 걸었다. 그날은 단 한 번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집을 나서 남산교회를 지나 퇴촌삼거리까지는 메타스퀘어 가로수가 우뚝한 보도를 따라 걷는다. 차도로 자동차를 몰아 출근하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반송공원 언덕 개나리가 피거나 오리나무에서 돋아나는 새순에 눈길이 간다. 미끈한 메타스퀘어도 마찬가지다.
퇴촌교 부근 삼각지에는 자투리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통나무기둥 원두막도 지어져 있어 인근 주민의 좋은 쉼터다. 횡단보도를 건너 사림동 주택가 이면도로를 걸어도 된다만 나는 그렇게 하질 않는다. 창원천 따라 조성된 반송공원 북사면 산책길로 걸어간다. 우레탄으로 포장된 길이라 먼지가 일지 않고 신발 바닥에 와 닿는 촉감이 보드랍니다. 자동찻길과 떨어져 매연이 없어 좋다.
나처럼 산책길을 걸어 출근하는 사람이 간혹 있긴 하다. 이른 시각이지만 주부들이 운동으로 산책길을 걷거나 반송공원 숲에 드는 경우도 있다. 겨울이면 복원사업을 끝낸 창원천 물웅덩이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여남은 마리 오리 가족 놀이터다. 내가 언젠가 남긴 글에서 그 광경을 ‘오리탕’이라 묘사한 바 있다. 선녀가 목욕하면 선녀탕이고, 오리가 목욕하고 있으니 오리탕이 맞지 싶다.
생태가 복원되어 가는 창원천에는 오리 말고도 찾아오는 새가 있다. 왜가리와 쇠백로 중백로는 겨울에도 보였다. 이들은 원래 여름철새로 가을에 남방으로 떠났다가 봄이 되어야 우리나라로 돌아와 새끼를 친다. 그런데 요즘은 일부 여름철새가 겨울에도 남녘으로 가질 않고 우리나라에 머무는 사례도 있다. 그만큼 지구가 온난화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여름철새가 겨울을 나는 정도다.
창원천변 산책로에는 산수유나무, 벚나무, 배롱나무 등 가로수도 줄지어 자란다. 봄이면 산수유꽃이나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여름 내내 배롱나무 꽃이 하늘거린다. 퇴근길이면 산책로에서 봄볕을 쬐며 몇몇 아낙들이 쑥을 캐거나 돌나물을 뜯는 모습도 보았다. 그늘도 알맞게 드리워 햇볕을 가려주어 좋다. 길 위 산언덕에는 아카시 숲이 있어 오월이면 은물결 아카시 꽃이 일렁인다.
이런 산책로에서 볼썽사나운 광경도 있긴 했다. 내 근무지 인근 전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버젓이 담배를 피워댔다. 그 가운데는 여학생도 끼어 있었다. 나는 다가가 나무라려다가 개울 건너 아파트를 가리켰다. 아파트 주민들이 지켜보지 보고 있다는 경계신호를 보냈더니 담뱃불을 끄고 슬그머니 떠났다. 반려동물과 같이 나온 산책객은 견공의 배설물을 모른 채했다.
바야흐로 봄날이 가는 오월 중순이다. 시야에 들어오는 원근의 산들은 신록으로 싱그럽다. 교외에 사는 후배로부터 안부 메일이 왔다. 아침 출근길에 찔레꽃 무더기를 보았다고 했다. 요즘 후배는 자동차를 두고 버스를 타거나 더러는 걸어서 출퇴근 한다고 했다. 아마 분명 오늘 아침은 걸어가면서 본 길섶 풍경이지 싶다. 나는 오늘 아침 창원천 징검다리를 건너다 노랑꽃창포를 보았다. 12.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