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3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요한복음 17장 20절-26절
2006년 3월 14일은 WBC 한국대 미국의 경기가 열렸던 날입니다.
이날 세계는 야구 역사상 기적이 일어났다고 난리였습니다. 축구에 비한다면 브라질과 같은 세계 야구최강국인 미국이 우리 한국에게 7대 3으로 완벽하게 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의 승리를 예견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경기 내내 홈런을 쏘아 올렸던 이승엽과 적시에 터뜨린 폭발적인 3점 홈런으로 메이저리그를 뒤흔든 최희섭의 쌍포로 야구 종주국 미국이 유린당한 것입니다. 그것도 안방에서 두들겨 맞는 참담한 패배였습니다.
미국은 야구 역사가 131년입니다. 미국의 필립질레트 선교사가 101년 전에 한국에 야구를 들여왔고, 한국의 프로야구 역사는 불과 24년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쾌거를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을까요?
저는 이번의 일본과 멕시코, 그리고 미국과의 게임에서 승리의 주역은 단연 노장 김 인식 감독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것은 최근 출간된 “김 인식 리더십”이란 책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탁월한 리더십은 여러 가지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특히 믿고 기다리는 리더십이 단연 으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재활공장장’이란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한물간 선수들을 다시 그라운드에 서게 하는 데 있어 그에게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부상, 가정불화, 모난 성격 등으로 야구를 접었던 선수들이 그의 지도 하에 다시 그라운드에 서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재활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까? 의문이 생기는데, 세간의 질문에 김 감독은 “별거 없어 지네들이 다 알아서 잘해”라고 짧게 대답하지만 사실은 ‘신뢰와 믿음’이 그만의 노하우입니다. 김 감독의 신뢰 덕에 선수들이 자신이 가진 기량을 뛰어넘는 활약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이번 미국전에서 3점 홈런을 쏘아 올린 최희섭 선수입니다.
그는 사실 미국전까지 오는 도중에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메이저리그 홈런 타자라고 하는 이름이 무색케 된 상황이었지만 김 감독은 그를 끝까지 신뢰했습니다. 3대 1로 미국을 앞서고 있었고 1회에 홈런을 친 이승엽이 나오자 고의 사구로 정면 대결을 피했습니다. 그때 최희섭을 김 감독은 지명대타로 내세운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3점 홈런을 쏘아 올린 것입니다.
2002년도 월드컵 경기 당시 이탈리아전에서 천신만고 끝에 얻었던 페널티 킥을 실축한 안정환 선수를 끝까지 교체하지 않고 뛰게 한 히딩크 감독 역시 선수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 탁월한 리더십이었던 것입니다.
2000년 전에도 신뢰의 리더십으로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신뢰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어부, 세리, 칼잡이 등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변변치 못한 사람들을 불러 제자로 삼은 예수님은 그들이 기대 이하로 무능력하고 비열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뢰하므로 세상을 떠나기 불과 얼마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 그들을 위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이 기도는 이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과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과연 무엇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입니까?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23절입니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둔 최후의 상황에서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린 중보기도의 내용입니다.
그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1절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하나님을 “아버지여!”라고 부르면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절부터 마지막 26절까지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무려 서른아홉 번이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간절하게 기도드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총 1,754페이지의 성경에서 이처럼 연속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드린 부분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서른아홉 번씩 부르면서 간절하게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그토록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기를 바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3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첫째는 ‘하나님께서 주님을 보내신 것’과 ‘하나님께서 주님을 사랑하신 것 같이 하나님께서 제자들도 사랑하심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제자들이 하나가 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듯 하나님께서 제자들도 그토록 사랑하신다는 것을 당연히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주님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우리를 향한 간절한 사랑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주님께서는 주님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상하시고 인자하신 우리 아버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제자들, 곧 주님과 우리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듯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아버지로써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주님은 마지막까지도 모두가 주님보다 우리를 위한 것에 열심이심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최후까지 열심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이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 즉 우리가 주님의 일을 대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21절과 22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9절 말씀입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다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예수를 믿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예수를 구원자로 믿는 우리는 한 형제자매 즉, 한 가족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배타적으로 자기 혼자만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일수록 건전한 신앙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면 결코 우리 신앙이 건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격은 서로 사랑해야 성숙해지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자폐아나 이기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개인은 구원받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쓸모 있는 사람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가 되어 주님께서 남겨주신 일 즉,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세상이 믿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한복음 13장 34절-35절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한 것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볼 수 있으므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세상이 인정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세상 사람들이 인정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세상에 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서로 하나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세상에 보여 주면서 주의 복음을 세상에 널리 전할 수 있기 바랍니다.
세상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25절입니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니다.”
이 세상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충분히 알게 하셨지만 세상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고, 도리어 부인합니다. 사탄의 장난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요한복음 3장 16절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보낸 구원자라고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참사람’이 되게 하시겠다는 구원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심을 보여 확실하게 주셨습니다. 그것을 로마서 5장 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이처럼’ 사랑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음에도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죄를 지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이토록’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죽이시면서까지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세상과 우리가 하나가 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이 세상이 죄를 지었다고, 썩어 문드러졌다고, 도저히 가망이 없다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들이 먼저 “포기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끝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사랑하여야 합니까?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밖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지고 죽으셨다는 것과 그분이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우리를 영원히 살도록 하기 위하여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처럼’ 사랑은 못 말리는 사랑입니다. 지독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이처럼’ 사랑을 세상이 알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우리가 분리되지 않고 세상을 향하여, 세상으로 들어가서 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그분과 하나가 되고, 우리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가 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두를 묶는 끈이요, 어떤 것도 묶은 끊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난폭해지기 쉽습니다. 반대로 진리가 없는 사랑은 위선이 되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기를 위해서 아버지 하나님께 지금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이 지구를 몇 번이나 멸망시킬 수 있는 가공할 무기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하지만 그래도 그중의 하나를 들라면 원자폭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의 위력은 지난 제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이미 정확하게 입증이 되었습니다. 죽으면서도 항복하지 않던 일본을 원자폭탄 단 2개로 항복시켰던 위력이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하늘이 내린 저주와 같았던 참혹한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무서운 원자폭탄의 원리는 원자 즉 핵분열이라는 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하나에서 여러 개로 분열될 때,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무서운 신무기로 알려진 것은 수소폭탄입니다.
이 수소폭탄은 원자폭탄의 원리와 정반대로 원자핵의 융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위력을 비교하면서 어떤 결과를 얻어낼 수 있습니까?
원자 핵분열의 원리와 원자 핵융합의 원리를 비교하여 그 파괴력을 알아본 결과 핵분열 시 얻어지는 파괴력보다 핵융합 시 얻어지는 파괴력이 무려 5배라는 것입니다. 분열보다 융합이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무기에서만 적용되는 이론이 아닙니다.
이 이론은 당연히 모든 것 즉 신앙생활에도 적용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 세상에 창조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께 의존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때,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으며, 그때 우리들이 가장 놀라운 힘과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가장 놀라운 힘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면 우리가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은 이미 내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남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맡겨주신 사명, 즉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러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주님과 우리가 하나 되지 않거나, 우리가 서로 하나 되지 않고, 또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 되지 않을 경우에는 주님 대신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탄은 분리하는 영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우리와 우리를, 그리고 우리와 세상을 분리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영입니다. 분리 시켜야 우리가 약해지고, 약해져야 우리가 세상을 사랑할 수 없고,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진보된 전략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사탄의 전략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세상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탄보다 5배, 아니 그보다 더 강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처럼 영광스런 존재가 됩시다.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게 된다는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
16장 33절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고,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고, 우리가 세상과 하나가 되게 되면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는 영광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유혹과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는 것은 물론 사탄도 능히 이기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용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용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고 한물간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은혜입니다.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신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너는 내 아들이라!”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한물간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신뢰하셔서 예수님 대신 지명 대타로 타석에 나서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을 무엇입니까?
주님과 하나가 되며,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며,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가 되어 예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신뢰하신대로 굿바이 역전 홈런을 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