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 발표
2038년까지 대형 3기+SMR 1기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도 늘려
9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에 나선 가운데 원전 총 4기를 새로 짓는 청사진이 나왔다.
이와 함께 신재생에너지(신에너지+제생에너지)도 확대하기로 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위원회는 31일 11차 수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 초안을 발표했다.
전기본은 전력사업법에 따라 안정적인 중장기 전력 수급을 위해 정부가 2년마다 수립하는 행정계획이다.
이날 대학교수 등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기구가 초안을 내놓은 것이고 앞으로 산업통상자원부가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수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후 공청회 등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한다.
이번 전기본 초안엔 2038년까지 원전 4기를 짓는 안이 담겼다.
대형 원전 3, 소형모듈원전(SMR) 1기다.
2015년 7차 전기본에 원전 2기(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이 반영된 이래 9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SMR은 원전보다 안전성 등이 높아 차세대 원전으로 평가 받는다.
SMR 도입 계획이 전기본에 포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원전을 새로 짓자는 제안이 나온 이유는 급증하고 있는 전력 수요를 현재 발전 설비로는 감당하기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전기본에서는 2038년 최대 전력 수요가 129.3GW로, 지난해 최대치인 98.3GW보다 30% 넘게 증가할 것으로 관측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고,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라 데이타센터 수가 많이 늘어날 것을 보이는데 근거한 판단이다.
여러 발전원 가운데 원전을 선택한 건 세계적인 탄소 저감 흐름에 맞게 친환경적이고, 값이 싼 데다 전력 공급이 안정적이어서다.
위원회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도 2038년까지 115.5GW로 확대한다.
10차 전기본 최종안 99.8GW보다 확대한 것이다.
2030년 기준으로 태양광은 44.8GW에서 53.8GW로 풍력은 16.4GW에서 18.3GW로 늘어난다.
이에 따라 지난해 40%에 못 미쳤던 무탄소 에너지 비중은 2030년 52.9%, 2038년에는 70.2%에 달할 전망이다.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측정 에너지원을 무리하게 배제하는 대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같이 늘리겠다고
한 전 경제 주체들의 예측 가능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확정땐 가동원전 26기(현재)-34기(2038년)로...부지 확보, 주민 설득 과제
2년 단위 행정게획, 국회 거쳐 최종안
소형모듈원전 첫 도입, 안전성 높아
원전 35.6% 신재생 32.9%까지 늘어
일각 '값싼 원전 비중 더 늘렸어야'
문재인 정부는 원전의 안전성을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원전을 배제하고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해 탄소배출량을
줄이면서 전력 수요를 커버하려 했다.
그러나 4계절이 뚜렷해 기후 변화가 심한 국내에선 신재생에너지(신에너지+재생에너지)만으로 안정적인 존력을 공급하는 건
불가능하고, 발전 비용이 원전보다 3~5배 가량 비싸다는 등의 단점이 컸다.
이런 이유로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뒤집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두루 확대하는
'친원전' 기조를 2022년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부터 반영하기 시작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위원회가 31일 내놓은 11차 전기본 초안은 이 같은 윤 정부의 기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전기본 총괄위는 2038년까지 추가로 필요한 발전설비 10.6gw 중 4.4gw를 신규 원전을 지어 충당하겠다는 계획이다.
1개당 1.4GW인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을 건설한다고 가정했을 때 3기를 지어야 한다는것이다.
여기에 소형모듈 원전(SMR) 1기를 추가하면 추가로 필요한 발전설비를 확충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초안이 최종안까지 이어진다면 2038년 까지 국내 가동 우너전은 SMR포함총 34기로 늘어나게 된다.
현재 가동 원전은 26기다.
새율3.4호기(옛 신고리 5.6호기)와 신한울 3.4호기는 햔재 공사가 한창이다.
신규 원전 확보의 관건은 부지 확보와 주민 설득이다.
대형 원전의 경우 부지 확보 등에 시간이 걸려 최종 준공까지 평균 13년 11개월(167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부터 바로 준비해야 2038년께 신규 원전을 가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초안은 그러나 직전 전기본과 비교하면 원전의 힘을 조금 빼 신재생에너지로 넘겨줬다.
2030년 원전 비중을 32.4%에서 31.8%로 낮추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1.6%로 유지하게 하자는 제안이다.
지난해 말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재생에너지를 3배 확대하자'고 합의한 것을 이행하기 위해서다.
그 이후인 2030년부터 2038년까지 원전 비중은 31.8%에서 35.6%로 높아지고,
신재생에너지는 21.6%에서 32.9%로 올리자는 게 전기본 초안에 포함됐다.
이런 안이 실현되면 한국의 무탄소 에너지 70%의 시대를 열게 된다.
지난 해 수치는 39%에 그쳤다.
원전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무탄소 전원으로 분류된다.
이날 전기본 초안에는 2035년 원전.신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전원 간 경쟁입찰시장을 도입하는 안도 있었다.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최적의 반전원을 선택하도록 하고 발전원 간 기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전기본 총괄위를 이끈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전기본 실현을 위해 전력망을 적기에 확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전력망 구축 속도를 높이는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이 지난해 10월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된 점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정 교수는 '(5월 30일 개원한) 22대 국회에선 초반에 반드시 전력망 특별법 뿐만 아니라 해상풍력보급활성화에 관한 특별법,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 특별법이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상풍력 특별법은 신재생에너지의 일종인 해상풍력 발전의 법적 기반을 마련할 목적이다.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은 현재 '화장실 없는 아파트' 신세인 원전을 위해 고준위방폐물처리장을 건설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두 특별법 역시 21대 국회에서 끝내 통과에 실패했다.
SMR 도입안을 넣은 데 대한 호평도 있다.
노동석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은 '국내에 SMR이 도입되면 국내 기업의SMR 연구개발(R&D)과
수출 등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한국수력원자력.두산에너지빌리티 등이 SMR을 개발하면서 수출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범진 한국원자력학회장(경희대 교수)은 '민생을 포기한 초안 같다'고 말했다.
전기 요금 인상 압력을 낮추려면 비싼 신재생에너지보다 값싼 원전 비중을 더욱 늘려야 했다는 비판이다.
현재 전력 소매상인 한국전력공사는 장기간 '두붓값이 콩값보다 싼' 역마진 구조로 전기를 공급하다
누적적자가 약 43조원에 전기료 인상 압력은 가게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 회장은 '신구 원전을 개형 3기가 아니라 개형 10기 이상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연제 서울대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교수도 신재생에너지의 비중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새 원전을 3기 늘리는 안의 경우 부지를 어디로 하고 주민들 어떻게 설득할지를 포함한 방법론이 빠져 있어 아쉽다'고
밝혔다.
정교수는 '근본적으로 국가가 나서 전력 수급 계획을 짜는 건 세계에서 사실상 한국 밖에 없다'며
'이제는 전기본 제도를 폐지하고 시장에 맡기는 게 효율적'이라고 제안했다.
시민 사회에선 원전 반대 성향의 단체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졌다.
녹색연합은 '영국은 2022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40%였고 독일은 2023년 50%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이번 전기본의 신재생에너지 목표(2030년 21.6%)가 어떤 수준인지를 말해준다'고 비판했다.
에너지기후행동은 '전력 수요 전망이 잔뜩 부풀려졌다'며
'이는 결국 핵발전 확대와 자본의 이익을 위한 정책에 토대가 될 뿐'이라고 밝혔다.
AI경쟁에 더 커지는 전력 수요...미국.유럽.일본도 원전 살리기
미국, 내년 핵분열 투자도 세액공제
프랑스는 원전 최대 14기 건설 공연
일 다카히마원전 3.4호기 20년 연장
미국.유럽.일본이 다시 원전 정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탈탄소 목표 달성을 위한 청정에너지 수요를 맞추고, 인공지능(AI) 개발 경쟁에 따른 전력 공급 필요성이 카지면서다.
31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29일 '원자력 프로젝트 관리 및공급 워킹그룹'을 신설해 원전 공사 지연을 줄이고
그에 따른 비용 증가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다.
이 워킹그룹은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건설이 승인된 보금 원자로 3.4호가 애초 목표(2016년)보다
늦은 지난해와 올해 각각 가동되면서 신설됐다.
공사비는 당초 140억 달러에서 310억 달러로 불었다.
미국 재무부는 2025년 부터 핵분열(원자력 에너지)과 핵융합 등에 대한 투자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상의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키로 했다.
이에 앞서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 말 다이블로 개니언 원전을 2030년까지 5년 더 연장키로 했다.
백악관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원전에 대해 '픙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차세대 원자로는 깨끗하고 믿을 수
있으며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의 수요를 맞추기 위한 능력 측면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문제를 겪은 유럽의 주요 국가도 원전 확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프랑스 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40년까지 최대 14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고 공언한 상태다.
영국은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을 현재의 4배로 확대하기 위해 기존의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에 더해
대형 원전을 추가하는 구상을 담은 민간 원전 로드맵을 발표했다.
스웨덴도 지난해 향후 20년간 원전을 최소 10기를 더 짓겠다고 밝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사태를 겪은 일본도 간사이전력 다카하마원자력발전소 3.4호기 운전 기간을 20년 연장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수명을 '원칙 40년, 최장 60년'으로 유지해 왔으나
지난해 재가동 심사 등으로 정지된 기간을 원전 기간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세종=김민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