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파주
지정애 시인
멀리
너는 파주를 벗고
나는 눈빛을 숨기고
네가 좋아하는 장미와 포도주를 들고
듬성듬성한 봉분 앞에 깐 돗자리
처음처럼 눈부시고 따뜻했다
시월에 간 너는
먼 추억으로써만 오고*
정말 멀리 갔다는 서류 한 장 만지작거리다
봉투를 찢어 고물고물
남은 마음을 부장품처럼 새겨 넣었다
장미넝쿨이 뻗어 오르는 날
파주행 기차는 나를 지나가고
너는
*김춘수 「꽃의 소묘」
◇지정애= 2009년 서정시학 등단. 시집 ‘속삭이는 바나나’. ON시 동인.
<해설> 파주가 궁금하다. 가까이가 아닌 “멀리”라서 더 궁금하다. 거기 파주에 가면, 네가 좋아하는 장미와 포도주를 들고 가면, 돗자리를 깔고 앉은 한 여인이 있을 것처럼 잔디 듬성한 봉분 앞의 한 장면이 마치 눈앞에 한 폭 그림처럼 시의 언어로 그려지고 있다. 돗자리는 이미 동일화된 자신인바, 처음처럼 따듯하고 눈이 부시다니, 무덤도 곧 포도주에 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실은 시월에 간 너는 먼 추억으로써만 온다는 것, 정말 멀리 갔다는 걸 알면서도 시인은 그가 남긴 마음을 부장품처럼 챙기고 있다. 이쯤 되면 그리움의 기차는 장미 넝쿨을 타고도 파주로 마구 달리는 것이다. 언제나 기다려주는 거기가 파주이기에.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