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탈북 아들딸들의 아버지… "南北에 여명(黎明·희망의 빛) 기다린다"
여명학교의 '영원한 교장선생님'
우기섭
[Why] [강훈의 와일드 터치]/조선일보 : 2012.03.10.
◀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를 초대 교장으로 8년간 재임했던 우기섭씨가 지난달 10일 퇴임했다. 그는 “이제는 교정 밖에서 여명학교의 졸업생들을 챙겨주고 싶다”며 “탈북 청소년들이 통일 한국의 주역으로 성장해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우기섭(65)씨는 탈북 청소년이 다니는 여명학교의 '영원한' 교장선생님이다. 2004년 이 학교 설립 발기인이었고 초대 교장을 맡았다. 학생들은 그를 '아버지' 혹은 '아빠'라고 부른다. 'please'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탈북자 북송 반대 콘서트에 출연했고, 서울 주재 중국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던 그들이 바로 여명학교에 다니는 우씨의 '아들'이고 '딸'이다. 그런 그가 지난달 10일 8년간 근무했던 교장직을 퇴임하고 교정을 떠났다. 몸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란다. 두 차례 암수술로 간의 절반을 떼어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여명학교에 머물고 있었다. 이 학교 졸업생 취업 등을 돕기 위해 퇴임 후 그는 더욱 분주해졌다는 것이다. "탈북 청소년들이 남한 사회에 빨리 적응해 통일 주역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우씨를 지난 7일 만났다.
―탈북자 북송 반대에 대한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왜 이제인가. 진작부터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북송 반대운동에 도움 준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중국 정부에서 좋은 반응이 나올까?
"티베트를 봐라. 중국이 쉽게 움직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더 크게 '북송 반대'를 외쳐야 한다. 탈북자들이 중국에 정착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게 만 해달라는 것 아니냐. 탈북자들로부터 최소한 교통비와 식비는 챙기는 중국이 손해 볼 게 뭐가 있냐."
―이제 여명학교를 떠나게 되었는데.
"교장은 재학생을 먼저 보살펴야 한다. 졸업생까진 신경 쓰지 못한다. 졸업생이 대한민국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누군가는 일자리 알아봐 주고 진학 자문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졸업생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요즘 여명학교를 후원했던 기업인들과 지인들을 만나고 있다. 한 법무법인에서도 졸업생과 1대1 '멘토·멘티'를 맺어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로 했다. 북한 사정에 가장 정통한 청년들이 바로 여명학교 졸업생과 같은 탈북자들이다. 이들을 훌륭히 키워내 사회의 낙오자가 아니라 통일 이후 한반도 주역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탈북자 북송 반대, 진작 그랬어야… 중국이란 나라, 쉽게 움직이진 않겠지만 더 크게 '북송 반대' 외쳐야 바뀝니다 졸업생의 여동생이 이번에 북송됐다는데 그 오빠의 심정이 얼마나 타들어갈지…
―여명학교에는 어떤 학생들이 다니나.
"탈북 청소년이면 누구든 환영하는 곳이다. 대부분 16~25세로 탈북 과정에서 학업이 중단된 학생들이다. 단, 기독교 학교이다 보니 믿음까지 강요하진 않지만 예배와 성경 수업엔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등록금은?
"고등학교 과정은 전액 무료다. 2010년 국내 처음으로 학력을 인정받은 탈북자 대안학교다. 검정고시 치르지 않고 곧바로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 다만 초·중등 과정 학생에겐 학기에 10만원을 받고 있다. 해마다 최소 12억원의 운영 경비가 필요한데, 학교를 설립한 교회 측에서 4억원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후원을 받고 있다. 빠듯하다."
―학생들 가정환경이 일반 학교와 다를 텐데.
"열명 중 세 명꼴로 가족 없이 혼자 생활한다. 편모 편부 가정 학생도 30% 정도 된다. 부모와 함께 정상적인 가정에서 다니는 학생은 10%가 채 안 된다."
―북한 국경을 넘거나 중국에 체류하면서 정신적 충격을 받은 학생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부분이 마음의 상처를 품고 살아간다고 보면 된다. 학교 적응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전문 상담 교사를 두고 있고, 후원해주는 정신과 전문의들이 일주일에 2~3번씩 방문해 아이들을 봐주고 있다. 일반학교에 다니는 탈북 청소년의 경우엔 이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석하는 학생들도 있을 텐데.
"왜 없겠나. 잘 다니던 학생이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북한이나 중국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고 돈을 벌러 나간 것이다. 음식점이나 편의점, 중국집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돈을 마련하고 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아이도 있다."
―그래도 진학률은 좋더라.
"올해 21명 졸업했는데, 18명이 대학에 진학하고 1명은 재수, 2명은 취업 예정이다. 간호학과, 피부미용과, 치위생학과 등 취업률 높은 학과를 많이 찾는다. 수년 전에는 서울대 공대에 들어간 학생도 있다. 특례 전형으로 들어갔지만 기본적인 수학(修學) 능력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지난 3월 4일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탈북자 북송에 반대하는 콘서트가 열렸다. 연예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른 탈북 청소년들이 바로 여명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여명학교는 선생님들도 남다를 것 같다.
"기본적으로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할 각오를 해야 한다. 오전 8시에 출근해 보충수업까지 하고 나면 저녁 8~9시쯤 된다. 사명감과 체력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급여를 많이 주는가.
"하하하. 2004년 개교할 때 교사 월급이 100만원이었다. 그리고 해마다 연봉 100만원씩 올려줬다. 급여가 일반 학교의 절반 수준이다. 그나마 재작년부터 학력인정 학교가 되면서 사학연금 기준에 맞춰 교사들에게 연봉 2500만원 정도를 주고 있다. 그래도 일반학교의 80%에 불과하다. 신념과 보람을 갖고 일하는 것이지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학교 이름을 '여명'으로 지었는데.
"60년간 단절된 남북관계와 탈북자들의 남한 생활에 희망의 빛이 되라는 의미에서 지은 것이다."
―기억나는 학생들이 많겠다.
"지금은 졸업해서 사립대학 수의학과에 다니는 학생이 있다. 혼자 탈북해 중국에 7년간 있었는데 막노동, 룸살롱 '삐끼' 등 안 해본 게 없는 아이다. 북한 주민을 선교하러 온 미국인 선교사와 한방에서 지내게 했는데 이 선교사가 겨울에도 방에 불을 때지 않고 매우 춥게 지내더라는 것이다. 학생이 이유를 물었더니 선교사로부터 '북한 주민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말이 돌아왔다. 학생이 그 말에 감명받아 자기도 남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고 공부에 열중했다. 선교사와는 영어로만 대화해 영어에 능통해졌고 중국어는 기본으로 잘한다. 대학 가서도 수의학 공부는 물론 탈북자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젊은이를 육성하는 게 우리 학교가 만들어진 이유 아니겠냐."
탈북 아이들의 눈빛엔 희망이 있다 연평도 포격같은 일 벌어질 때마다 남아있는 가족 걱정에 잠못 이루더군요 목숨 걸고 넘어와 이 악물고 사는 아이들 잘 자라서 장차 통일주역 되기를…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침몰사건처럼 대북 관련 이슈가 불거질 때 여명학교 학생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말도 마라. 그런 일 벌어질 때마다 전쟁에 대한 공포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학교 전체가 술렁거린다. 요즘 한국 청소년들 6·25전쟁의 아픔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하지만 탈북 학생들은 전쟁보다 더한 아픔을 경험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목숨 걸고 국경을 넘었고, 살아남기 위해 중국에서 수년을 이 악물고 버텨온 아이들이다."
―최근 중국에서 북송된 30여명 탈북자 중에는 여명학교 졸업생의 가족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여동생이 국경을 넘는 데 성공했으나 안타깝게도 최근 북송되었다. 한국에 먼저 와서 동생을 구하려 했던 오빠의 심정이 어떻겠나. 이 졸업생은 처음에 북한에 가족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행여 북한에 남은 가족들이 피해 볼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일을 진행해 동생을 국경 밖으로 탈출시키는 데는 성공했는데…."
―여명학교에 운동장이 보이지 않더라.
"아직 운동장을 마련할 형편이 안된다. 나홀로 탈북한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도 절실한 상황이다. 탈북 학생들 특징이 있는데, 순발력은 뛰어난데 지구력은 약하다는 것이다. 늘 긴장 속에 숨어 살며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를 한 채 살다 보니 순발력이 발달한 것이다. 아쉽게도 다른 신체적 능력은 퇴보한 거 같았다."
―한때 북한에서 학교를 다녔던 아이들이다. 이들을 통해 본 북한 교육 실태는 어떠한가?
"북한의 교육은 정상이 아니다. 중·고등 과정을 마친 아이들이 구구단을 겨우 외우는 정도다. 일부 권력층 자녀 외에 나머지 학생들에 대한 교육은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과 얘기해보면 학교에 선생님이 안 보인다고 한다. 학생 교사 할 것 없이 당 관련 행사, 군사 노동 등에 동원되다 보니 그런 것 아니겠냐."
IT전문가의 인생 2막 반도체·컴퓨터에 빠져 바쁘게 살던 삶 은퇴 후 탈북 청소년들과 인연 맺었죠 8년간 정들었던 교정 떠나지만… 이젠 인생3막, 졸업생 취업 힘쓸 겁니다
우기섭씨는 원래 IT 전문가였다. 수도공고를 졸업한 그는 한국 반도체사업의 1세대였다.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맥스터코리아, 컴퓨터를 만들었던 인텔코리아에서 일했고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제조했던 맥스터코리아의 CEO를 지냈다.
―원래 전공 분야가 IT 분야 아닌가?
"22세 때 다국적기업인 페어차일드코리아에 입사했다. 대방동에 공장이 있었는데 직원들 자부심이 대단했다. 우리 봉급이 다른 대기업보다 두세 배 많았다. 당시 금성이나 삼성 직원들 불러 기술 지도를 많이 해주었다.(웃음)"
―인텔코리아에서도 근무했다고 들었다.
"페어차일드 나와서 모토롤라에서 근무했고 이후 3년 정도 개인사업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인텔코리아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마케팅 임원으로 일해달라는 것이다."
―9년간 외국기업 CEO를 지내는 등 바쁘게 살았다.
"인텔코리아를 그만둔 게 1994년 10월31일이었다. 바로 그 다음 날인 11월1일 맥스터코리아 지사장으로 출근했다. 반도체와 컴퓨터에 빠져 33년 간 단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여명학교와 인연을 맺었나.
"맥스터코리아 CEO를 그만둔 게 2003년 4월이었다. 나이도 56세나 됐으니 일선에서 물러날 때도 됐지 않았나. 자녀들이 유학 중이던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에서 6개월간 푹 쉬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니 다니던 교회에서 통일선교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하더라. 흔쾌히 수락했다. 당시 인생의 2막에 대한 책이 잔뜩 출간될 때였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이 교회에서 탈북 청소년 학교를 만들 테니 준비 작업을 해달라고 하더라. 학교 건물 구하러 다니고 교사들 일일이 면접해서 뽑았다. 이제 내 할 일 다했다고 보고 벤처사업 구상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교장까지 맡아달라는 게 아니냐. '그래, 내 인생 2막은 바로 여기'라고 생각하고 교장이 되었다."
―여명학교에 있는 '자녀'들 외에 본인 가족은 어떻게 되나.
"1973년 외국계 전자회사에 근무하던 아내와 결혼해 1남1녀를 두었다. 아들은 음악, 딸은 미술 분야에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나이 65에 '인생 3막'이 시작된 셈이다. 이만하면 복 받은 사람 아니냐. 우선 지난달 결성된 여명학교 동문회가 활성화되도록 도와주고 싶다. 이젠 여명학교도 졸업생(96명)이 재학생(70명)보다 많아졌다. 이들이 대학과 사회에 진출해 자립할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여유 되면 탈북자 북송 반대운동에 동참하고 싶다. 탈북 청소년들이 기댈 만한 느티나무 같은 존재가 된다면 더 바랄 게 뭐가 있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