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마라톤 F조 선수들이 힘겹게 군자교를 넘어 어린이 대공원 방향으로 꺽을 때, 그는 지하철 7호선 군자역 지하홀에 있었다. 그가 왜, 그 시간에, 거기에 있었냐면 사연은 이랬다.
마라톤을 쫌 뛰었다는 사람은 봄,가을 1년에 두번은 풀코스 뛰는 것이 의무를 넘어 사명이라도 되는 듯, 그는 어김없이 대회에 나갔다. 대회참가 경력으로는 가히 선수급이다.
아침이 밝아 오기 전까지 비가 눈처럼 공기중에 떠다녔다. 비온 후 갬이라고 예보하기에는 망설여지는 날씨였다. 출발전 워밍업을 위해, 그는 카누, 아청 선배를 따라 우리카드 빌딩 지하 아케이드로 들어갔다. 몇몇 낮익은 클럽회원들이 눈에 띄었다. 배려인지는 몰라도 그곳은 적당히 난방도 되어 있었고, 상가 사이의 통로를 따라 뛰기에 길이도 충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오늘 지하 세계와 가까이 하게 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출발을 알리는 폭죽 소리와 함께 스타트라인을 넘었다. F조 선수들이 마치 단거리 선수처럼 치고 나왔다. 여기서 지면 끝내 질 것 같아 그도 뒤질세라 따라 붙었다. 이런 속도면 E조의 카누, 아청선배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얼마안가 후배인 김난이 반갑게 인사한다. 오버 페이스 하지 말자 하면서도 속도를 늦추기가 쉽지 않았다. 난과는 5~6키로 정도를 함께했다. 철인 경력의 그녀란 걸 그는 알고 있었기에 본인 페이스에 맞춰 달려도 된다고 말하고 달렸는데 6km 이후 난이 좀 뒤처졌다.
하프가 가까워졌을 때 그의 닉네임을 부르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우리끼리 화이팅"
백호 선배가 인도에서 일마 깃발을 흔들며 응원해 주신다. 뽀빠이가 시금치 한통 삼킨 것 처럼 순간 힘이 났다. 선배의 일마사랑에 매번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그는 앞으로 치고 달렸다. 그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가 일어나지 말기를 바랐던 그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5분 후반으로 시작한 페이스가 6분30초를 넘어섰다. 신설동 오거리를 지나 답십리로 방향을 틀었을 때, 무릎 위 허벅지가 땡겨왔다. 조짐이 왔다. 신답 지하차도부터 걷뛰가 시작되었다. 종아리 근육경련이 반복되었다. 발바닥이 물집 잡힌 듯 쓰려왔고 발등도 압박감에 불편했다. 신발을 너무 조여 맺다는 생각이 들어 느슨하게 풀었다. 안왔으면 했던 그것이 너무 일찍 온 것이다. 10km 뒤에만 왔었어도 하며, 그는 안타까워했다.
그의 첫 발령지였던 장안평을 지나오면서 경남 호텔 나이트를 떠올렸다. 경남나이트는 당시에 동대문의 라스베가스로 불리는 장안동 한복판에 있었다. 강북에서 춤깨나 춘다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고, 주변 직장에서 회식의 2차 장소로도 유명했다. 그가 지금 그의 아내가 된 여자에게 부르스를 청했던 곳이기도 하다.
군자교를 막 넘어서자 백만돌이 선배님이 지친기색도 없이 화이팅을 외쳐주며 지나가신다.
그의 주머니에는 집을 나설 때부터 꼬깃꼬깃 접어 넣은 만원권 한장이 있고, 조금만 더가면 7호선 군자역이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8번 출구가 눈 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망설임없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남은 12km의 고통을 만원의 행복으로 바꿨다. 건대입구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종합운동장으로 달렸다. (그가 아니고 지하철이)
겨울외투 승객들 속에서 반바지, 반팔 차림에 배번을 달고 있자니 어색하고 민망했다. 둘러보니 주로응원 나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은 있어도 기권한 선수는 그가 유일했다. 어디선가 DNF 라는 수근거림이 들렸다. 무안했다. 그리고 가슴에 새겨진 일산호수마라톤이라는 글씨를 슬쩍 가렸다. 손이 작아 다 가려지지는 않았다. (등뒤에 그의 이름은 도저히 가릴 수 없었다)
주로 자봉이 37km 지점에서 그를 기다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땅 밑으로 그 지점을, 그는 빠르게 지나갔다.
골인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메달과 간식을 챙겼다. 지금 들어오면 sub4 겠구나 생각하던 차에 와룡산 윤호가 방금 결승선을 통과한 후 걸어오고 있었다. 그를 보고 놀란 첫번째 일마회원이었다. 그리고 캠프에 도착하니 캠프자봉(아우라지,안젤라,해피,신희, 단호박) 모두가 설마하는 눈치였고, 서브4 하랬더니 서브웨이했다는 소문을 누가 냈고, 바로 퍼졌다.
철인캠프를 지나오다 타잔선배와 인사하던 중에 같이 달렸던 김난이 보였다. 다른 사람이 그를 보고 놀랐듯이 그도 김난을 보고 놀랐다.
김난도 그랬었구나, 라고 그는 생각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는 그가 그 시간에 왜 거기에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간접요인은 오버페이스, 체력부족이고, 직접요인은 그를 유혹한 만원짜리 한장이었다고 결론을 냈다. 유혹에 약한 그로서는 당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 달리는가'의 답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누군가의 믿음을 한편으로 그가 보여줬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가 그의 마라톤인생에 더해졌다.
마지막으로 혹시 모를 오해가 있을까봐 확실히 해두는데, 나는 그가 절대로 아니다.
토북이에서 브콜선배와 다시 달리게 되어 저도 좋습니다.
전 달리기 보다 뒤풀이를 더 좋아해요.
우리끼리 고생 많았다. ㅎ 뛰면서 그렇게 모든 것을 세세히 기억을 하다니...
난 풀코스 뛸 때 아무 생각도 안나고 그냥 뛰기만 했는데. ㅋ
3시간대 주자는 아무 생각이 없지만 429 하려는 주자는 별 희안한 생각 다하고 뛰거든요. ㅎ
@우리끼리@이병희 그간 내가 너무 정신줄 놓고 혼미한 상태로 뛰었음을 반성하네 ㅋ
앗! 선배님 타신 지점에서 저도 그 버스 탔다가 다시 내려 뛰었네요!🤣 대회 끝나야 움직인다고해서요!
보름달에 (오)점 찍을 뻔 했네.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