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큰 딸의 나이가 3살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방 안에서 TV를 보고 있는 내 귀에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발음은 분명하지 않으나 가사는 대충 알 수 있는 노래,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수마우 ~~ ~
밖에 나가서 보니 3살짜리 내 큰 딸이 외벽에 딸린 2층 계단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 수많은... " 아이가 부른 노래는 여기까지였는데 가사의 "수많은 " 의 발음이 안 되는지
아이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수마우 ~~ 를 열창하고 있었습니다.
생애 첫 딸이라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니 예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아내와 함께 한참을 웃었는데 그 후에도 툭하면 수마우 ~~를 목청껏 불러젖혔습니다.
딸이 불렀던 "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 이란 노래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 이은하가 1976년에
발표한 노래로 곡이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가수 이은하를 정상의 반열에 올려놓은, 말하자면
가수 이은하의 출세곡이었습니다. 당시 이 노래는 TV나 라디오에서 수시로 들을 수 있다가 보니 세 살짜리
우리 딸도 귀에 익었었나 본데요 어찌 된 일인지 그 이후에는 아이가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당시 세 살짜리 아이가 지금은 4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고 서른 살 차이인 내가 칠십 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는데 며칠 전 가수 이은하 씨가 TV에 나온 모습을 보니 외모는 많이 변했으나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남아 있었습니다. 그동안 병고로 고생도 많이 했다는데 재기가 가능하다면 그 노래 다시 듣고싶습니다.
엊그제 토요일 나는 새벽 6시경에 자전거를 타고 약 3킬로 정도의 거리에 있는 노적봉공원으로 라이딩을
하였는데요 노적봉공원은 안산시에 있는 공원으로 안산 9경에 속할 정도로 꽤나 이름 있는 명소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인공폭포와 역시 규모가 큰 장미원이 유명합니다.
제 철일 때는 각양각색의 장미가 화려한 모습으로 탐방객들을 매혹시키기도 했지만 지금은 시든 장미가 많아
아쉬움은 컸지만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장미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같은 시기에 심은 장미임에도 꽃의 상태는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태가 썩 좋은 꽃송이는
많지 않았으나 아직도 아름다움을 지닌 꽃은 많았습니다. 비록 전성기의 모습은 아니지만 아직도 선명한 색깔과
단아한 자태를 지닌 꽃송이는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런 꽃들을 찍으면서 그것이 마치 사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나이는 들었어도 고아한 자태와 긍정적인 사고로 인생의 후반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어찌 노인이란 이름으로 홀대를 할 수 있을까요.
늙은 모습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없듯이 시든 모습으로 피어난 장미 역시 없었을 장미원의 수많은 꽃들은 오늘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일을 꿈꾸고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입니다.
첫댓글 얼마나 예쁘고 귀엽고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웠을지
상상만해도 기쁩니다.
제 남편의 뒷모습에서
나이 듦을 바라보며
많이 애처롭습니다.
저는 제 뒷모습을 못보니까
다행스럽구요.
이은하 노래
아직도,그대는 내사랑
더 많이 아껴주고,챙겨주고
사랑은,듬뿍 나누고,살아야지요.
기쁜시간 되십시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예뻣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쁘다고 하는 말이 실감납니다.
엇그제 장미원을 다녀오면서 생로병사의 과정을 생각해 보았고
오늘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늙지 않는 사람이 없듯이
영원히 아름다운 꽃은 세상에 없겠지요.
월드컵 번개 때에 봰 조윤정님 모습은 젊도 긍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아마 더는 늙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첫 댓글 감사합니다.
한창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장미가 한창인 계절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고,
무대에 오르는 가수도
한 때가 있지요.
화암님의 큰딸의 재롱이
얼마나 예뻤을까요.
그 때가 화암님께는 청춘이었지요.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큰따님은 화암님께는
이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겟지요.
전철 안이라, 글이 제대로
오르는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
노래가 좋습니다.
아름다운 장미도 전성기가 지나면 초라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겠지요 . 그렇게 예쁘게만 보이던 제 딸도 이제
중년을 넘어서고 있지요. 제가 문학방에 올린 글 " 그곳에 가보고 싶다 "는
이 글에서 밝힌 큰 딸을 두고 쓴 글이었습니다.
이은하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오래 전 추억이 떠오르네요. 감사합니다
이쁘지요? 세살짜리가 부른는 "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
깨물어 보고싶을 정도로 이쁘지요?
저도 지금 경험하고있답니다
글 내용이 참으로 이쁘네요
"저도"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입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보였었지요.
생각하느니 추억 뿐이라 또 이렇게 뻔한 글을 올려봅니다.
시골바다님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과 같이..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
TV화면을 압도하는 기억이 아직도 내사랑 입니다.
오랜 기억을 함게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세살 따님의 내사랑이 지금도 내사랑이겠지요.
비록 나이는 들었어도 고아한 자태와 긍정적인 사고
글에서 화암님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청국 방장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시 이은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듯이 높았습니다.
오죽하면 어린 제 딸이 그의 노래를 불렀을까요 ㅎㅎ
음감방 관리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시겠지요. 도움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격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역시 장미는 꽃의 여왕이죠? . 노래를 부르는 귀여운 딸 모습 상상하며 빙긋 웃습니다
내년에는 싱싱한 장미를 찍어 오겠습니다.
어리던 딸이 벌써 50을 바라보네요. 감사합니다.
'아직도'가 여기서는 중요합니다^ ㅎㅎ
다른말로 하면 ' 여태까지~ ' 라고나 할까요?
이은하가 70년대 말쯤 태평양화학에 제가
다닐쯤 연말 크리스마스 공연을 한다고 빨간 바지를
입고 이리저리 돌아 댕기던걸 기억합니다.
당시 새파란 청춘의 이은하~ 와 지금의 나이든 이은하~
참 세월이 그렇습니다. 물론 저도 세월을 따라 여기까지
왔지만은~
장미는 9월이 되어도 10월이 되어도 이쁘게 피는 놈이
있더군요!
귀엽던 따님이 왜 노래를 계속 안 불렀을까요? ㅎㅎ
아직도와 여태까지 ㅎㅎ 늦지 않았다는, 희망이 있다는 뜻인것 같습니다.
이은하는 어린 나이에 데뷰한 천재형 가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창력이 탁월하고 호소력 짙은 노래를 많이 부른 것으로 기억합니다.
늦게 핀 장미가 있기는 합니다만 장미원의 장미는 거의 시들었더군요.
그 맗은 장미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찍은 사진입니다.
딸아이는 크면서 노래를 안 부르더군요. 음치는 아닐 것 같지만 노래에는
소질이 없습니다 ㅎㅎ. 마론님 바쁘신가 봅니다. 글이 없으니까요.
저도 서른이 넘은 두딸이 있는데 '아직도'
제 눈에는 기저귀속에 응가를 싸고 방바닥을
뿔뿔 기던 애기입니다
얼마전 출장에서 돌아온 큰애가 비행기에서
문득 아빠 나이를 생각하니 울컥하더라는
기특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때려잡자 김일성급 웬쑤 덩어리들도 철이
드는가 합니다ㅎ
두 따님을 두셨군요.
자식은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자식입니다.
똥기저귀 차고 다니던 아이들이 엄마가 되어 늙어가는
부모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니 세월이 무상하기도 합니다.
구봉 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딸이 없는 저는 손녀딸을 딸처럼
귀엽게 길렀지요.
아직도 그대는내사랑..
이은하씨 무명시절에 하사관교육
대로 위문 공연을 와서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을 열심히 불렀지만 반응이 없고...
그래서 제가 혼자서 큰소리쳐가며
박스를 쳐주었지요.
전방에 배치받고서 그노래가
대힛트를 쳤습니다.
저도 손녀가 하나 있습니다만 손자놈들보다 더 예쁩니다.
무악산닙도 같은 마음이실 겁니다.
이은하의 경우는 참 안됐습니다. 한창 활동할 나이에 병을 얻어
그 뛰어난 재능을 다 펼치지 못했으니까요.
제 군대시절에는 문주란이 막 인기를 끌 때였지요. 참 옛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