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세계화
보조금은 중국이 세계 경제의 주요 국가로 부상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중국은 자동차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타이어 산업도 성장했다. 알루미늄도 중국 기업은 타국보다 많은 보조금을 받았다. 중국은 외국 기업의 중국 진출을 유치하기 위해 보조금을 이용했다. 그리고 무역장벽으로 그들이 수입보다는 중국 내 생산을 선택하도록 하여 국내시장에 이바지하게 했다. 중국 수출의 40%는 외국 소유 기업에서, 20%는 합작 기업에서 나왔다. 점차 해외 기업은 중국 법률 시스템이 특허와 디자인에 대한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국유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중국 기업은 외국 제품이나 기술을 모방하려고만 하면, 그 행위를 두려움이 없이 해댔다. 2010년까지 도시에 사는 중국인이 전체의 절반이 되었다. 기대 수명도 75세, 전화 보급도 1978년 500가구당 1대에서 모든 사람이 휴대전화를 가졌다. 많은 사람의 실소득이 높아지면서 중국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 됐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빈곤에서 번영으로 빠르게 간 적은 없었다.
공급사슬과 가치사슬의 차이는 명칭 차이다. 공급사슬은 두 가지 종류 비즈니스 관계를 포함했다. 기업이 자산을 건설하거나 구매함으로 핵심적 요소를 통제하는 투자 관계다. 대치적으로 가치사슬은 특허 사용계약, 합작 투자, 연구 협력같이 회사 간의 복잡한 연결을 수반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제조업체가 자체 공장을 소유하거나 항공사가 자체 제트기를 소유할 필요는 없다. 기업이 가치사슬이 있는 다른 회사의 소유권 지분을 보유하거나, 보유하지 않는 것은 비즈니스의 전략일 뿐이다. 가치사슬의 경제적 이점은 ‘전문화’이다. 가치사슬이 도래하면서 무역은 국가보다 기업이 더 관심을 두는 주제다. ‘스윈던’에서 제작하여 미국으로 수출된 ‘혼다 시빅’ 자동차는 영국산 부품 20%, 일본산 20%, 북 미산 20%로 구성되고 변속기는 인도에서 제작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가 일본 자동차라 부르면 잘못된 표현이다.
진정한 다국적 기업은 매우 소수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2004년 “세계는 평평하다“라 주장했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공장 경제’는 단일한 ‘본사 경제’와 연결되어 있고 본사 경제에서 제품 개발, 생산 네트워크 구성 등 고임금을 수반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아시아 국가들이 글로벌 가치사슬에 통합되면서 해상무역은 확대되었다. 아시아와 북미로 오가는 컨테이너 수는 연평균 9% 늘어났다.
아시아 호황은 최대 컨테이너 해운사 ‘머스크라인’의 절호의 기회였다. 시속 30노트(약 55킬로)로 달리는 수송방식은, 느린 방식보다 1주일이나 빨랐다. 컨테이너선의 선복량은 20피트 등가 단위 TEU로 표시되는데 40피트는 2TEU다. ‘엠마 머스크’ 호의 선복량은 1만 1,000TEU로 트럭 5,500대 화물량이다.
‘서부 항만노조’가 파업하자 ‘태평양 해사 협회’는 직장폐쇄로 맞선다. 2002년 9월 29일이다. 노조원 1만 500명의 출입을 차단했다. 협회는 노조가 느린 속도로 하역하여 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노조는 항만 일자리를 없애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려는 고용주를 비난했다. 수출품이 부두에 갇힌 농산물 취급자는 ”어딜 가나 양파가 있다“라고 한탄한다. 국가적으로 보면 항만 폐쇄로 인한 피해는 아시아 국가나 미국에 그리 크지 않았다. 반면 기업은 큰 비용을 썼다. 모든 비즈니스는 위험에 직면해 있고, 공급망은 위험을 안고 있다. 화재는 공급업체 공장에 피해를 주고, 수로가 좁으면 선적을 차단할 수 있고, 휘발유가 부족하면 차로 출근하는 근로자가 피해를 본다.
외국인 투자는 수출입과 관련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아웃소싱’으로 최종 제품에 제 상표를 붙여 판매하는 사슬 꼭대기 회사들로서는 부품이나 완제품을 생산해줄 나라에 대규모 투자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공급망 위험의 해결은 비용이 든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은 ‘도호쿠’ 지역을 40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내륙으로 9.8킬로 떨어진 집까지 강타했다. 일본 경제는 1.2% 감소했고, 일본산 부품이 부족한 기업은 생산이 6개월 동안 감소했다. 3차 세계화는 가난한 곳에도 경제적 이득을 주었다. 방글라데시,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은 주요 무역국으로 등극했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극심한 빈곤에서 20년 후 절반으로 줄었다.” 2007년이 되자 세계는 100년 전보다 더 개방했고, 사람들은 선조들보다 무역을 통해 더 많은 이득을 얻게 됐다”라고 경제학자 ‘조반니 페데리코’가 정리했다.
2009년 일본의 수출량은 36% 감소했다, 수입량은 40% 감소하여 기업의 가치사슬의 붕괴로 인해 다른 경제 대국보다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세계화의 효율성은 이제는 적으로 다가왔다. 유럽 소비자의 책상에, 램프 구매를 줄이면 소매업 데이터 시스템은 추세를 파악하여 바로 재고를 줄이고, 중국 공장에 선적의 연기지시를 한다. 중국 공장은 부품 업체에 선적 연기를 통보한다. 수요와 공급이 긴밀하게 연결된 ‘적시 경제’에서 빨리 팔리지 않는 상품으로 창고 선반을 채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출과 수입의 침체는 짧았고 그래프는 항상 장기 추세로 되돌아갔다. 대침체가 끝날 무렵 유럽, 일본, 미국, 캐나다에 제조업의 해외 이전은 감소하고 있었다. 고임금 국가에 남아 있던 제조업은 최첨단이거나 고도로 자동화된 매우 비밀스러운 것이었다.
중국의 수출이 총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1/3에서 2019년 1/6로 감소했다. 가치사슬의 많은 단계가 중국 내에서 일어나고, 단기적은 구성 요소만이 국경을 넘어와 가고 있다는 증거다. 보조금은 중국에 함정이 됐다. 보조금을 받은 중국 산업의 성장으로 인해 많은 제품에서 글로벌 공급과잉이 발생하여 이윤이 줄었다. 중국 정부는 공장을 유지하고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해야 했다. 2017년 추산에 따르면 4,300억 위안(640억 달러)이다. 경제학자들 사이에 전해진 진리는 ‘국제무역의 패턴은 비교우위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한 나라가 효율적으로 생산할 재화와 서비스는 수출하고 나머지는 수입한다는 뜻이다. 중국 연안의 번화한 도시와 떨어진 곳에서 3차 세계화로 사회적, 경제적 영향이 심대했다. 중국에서 제조업이 아시아, 동유럽, 멕시코로 빠져나가면서 도시는 통째로 비워지고 실업과 황폐함만 뒤에 남겨졌다.
3차 세계화는 빈곤 인구가 급감했고, 기대 수명과 글을 쓰고 읽는 능력이 향상되고, 20억 명이 전기를 쓰고, 휴대전화를 쓰게 되었다. 아시아는 소득이 유럽과 북미 수준에 가까워졌다. 이는 평균 소득이 EU는 66%, 미국은 84%, 아시아는 230%, 중국은 1,237%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플레이션 퇴조 이후 금융시장의 호황 때문이다. 주식과 채권이 임금보다 더 빨리 오르고 금융시장 호황에 참여할 부를 가진 사람들이 혜택을 보았기 때문이다.
3차 세계화를 주도한 것은 물질적 생활 수준의 향상이라는 추세다. 1987년 중국 거리는 자전거로 붐볐고, 30년 후 베이징은 범람하는 교통지옥이 됐다. 미국의 신축 주택의 중간값 면적은 225㎡로 1987년보다 38% 넓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관광객은 1987년보다 2019년은 15억 명으로 4배 늘었다. 기업과 가계의 돈 쓰는 방식이 달라졌다. 서비스 지출은 43%에서 55%로 증가했다. 공산품 소비 비중이 준 것은 세상이 늙어가는 것이다. 1985년 23.3세인 중위 연령이 2019년 31세로 증가했다. 일본과 독일은 절반이 47세 이상이고 러시아, 중국, 미국의 중위 연령도 40세다.
저임금과 대량생산은 3차 세계화 기간에 산업화를 도왔지만, 제4차 세계화에서는 큰 경제적 힘의 원천은 유연한 기술을 가진 고도로 훈련된 노동력일 것이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서비스와 정부 부분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재교육하는 사회보험 제도는 사회의 안전성 보호를 위해 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라 필자는 주장한다.
2023.07.18.
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3
마크 레빈순 지음
최준영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