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주 좋게 보았다.
지금 우리나라 영화는 영화 자체의 질뿐만 아니라 그 다양성을 넓히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기여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2) 김하늘의 연기는 좋지만 무시무시하지는 않다. 사실 그 역할은 배우라면 욕심낼 만한 역이지 않았을까?
거의 원맨쇼인데다가 눈이 먼 데서 오는 절망, 동생을 죽인 죄책감, 잘 나가던 커리어가 무너지고 장님이 되어
혼자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가두고 사는 데서 오는 좌절감, 두려움, 패배감 그리고
사이코패스살인마를 만나 쫓기는 데서 오는 공포,
사이코패스와 대결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지우고 있는 마음의 짐과 장벽을 극복하고 사회로 나오게 되는
심리의 미묘한 변화 - 이것을 다 표현해내야 하니 배우로서는 기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했을 것이다.
결과는 무난하게 잘 하는 정도이지 전율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3) 사이코패스의 연기는 더 어색하다. 블루벨벳의 데니스 호퍼연기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데,
너무 무서운 나머지 영화 흥행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명연기이다. 사실 데니스 호퍼가 서 있는 것을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의 연기인데, 얼굴표정으로부터 죄의식이라고는 없으며 극도로 잔인포악하고 끔찍한 악마라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블라인드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다.
4) 플롯은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눈에 띈다. 숱한 수,걸작들과 소설 등에서 비슷한 이야기들을
접한 관객들은 최고의 잣대를 가지고 영화를 분석할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들을 이기기란 무척 어렵다.
이 영화도 관객들의 기대에 무척 수월하게 판정패한 작품이다.
5) 이 영화의 중심은 김하늘이다. 김하늘이 자기 실수로 동생을 죽이고 자신은 장님이 된다.
동생을 죽인 죄의식에 장님이 되어 사회로부터는 격리당하고 잘 나가던 커리어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개 한 마리 데리고 자책감과 좌절에 혼자 아파트에 은둔하던 김하늘이 우연히 살인현장을 목격하고
범인에게 쫓기다가 마지막 순간에 범인과 대결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범인과의 대결에 승리함으로써
자신을 가두고 있던 마음의 장벽과 죄책감같은 것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이 영화의 주제는 김하늘이다. 김하늘의 내면적 공간이 이 영화의 무대가 된다. 사이코패스는
김하늘이 겪는 내적인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이지, 김하늘과 사이코패스가 대등한 입장에서 대결하는 것이 아니다.
김하늘은 사이코패스와 대결하는 동시에 자신 내면의 어둠과도 대결해야 한다. 사이코패스는 김하늘이 내면의 어둠을 극복하도록 촉구하는 촉매가 된다.
김하늘이 내면의 고통과 갈등을 겪을 때마다 사이코패스가 어딘가로부터 나타나 덤벼드는 것으로 하여도
좋았을 것이다. 둘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의 중심축은 산만하지 않게 김하늘의 내면을 큰 가지로 해서 꽉 붙들어잡고 외부로부터의 충격으로서 무시무시한 사이코패스를 집어넣었어야하지 않을까?
6) 유승호는 단순히 김하늘을 도와 사이코패스를 물리친다 - 하는 역할이 아닌 것같다. 김하늘이 내면의 고통을 극복하는 데는 혼자서는 안 된다. 누군가 이해해주고 보아주고 함께 공감을 느껴주는 이가 필요한데 그가 유승호이다. 따라서 이것을 더 강조해주었으면 좋았을 듯싶은데 이 점이 명확하게 부각이 되지 않은 듯하다. 유승호도 어떤 점에서는 마음의 장님이다. 불구자다. 사실 김하늘이 유승호에게 급속도로 기대게 되는 감정선을 넣었으면 좋았을 듯하다. 장님에다가 혼자 갇혀살던 사람이 자신을 공감해주는 사람을 만났는데, 당연하게 급속도로 기대게 되지 않겠는가? 이것은 애정일 수도 있겠지만, 집착일 수도 있고,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일 수도 있는 난폭하고 격렬한 것이었어야 하지 않을까? 둘 간 관계가 무척 애매하다, 이 영화에서는....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김하늘에게 있어 유승호는 그저 좋은 동생....정도였을까?
장님에다가 엄청난 좌절감, 죄책감 그리고 공포를 갖고 있던 여자가 친절하게 해주고 걱정해주는 남자를 만났을때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까?
7) 김하늘의 시각에서 카메라가 뿌옇게 이미지들을 잡는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었던 것 같다. 뿌옇게나마 어떤 형체가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두려움이 덜어지는 것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암전처리하고 대신 커다랗게 음향을 넣음으로써 관객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더 좋았을 듯싶다.
가령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여기에서 무엇인가 부딪치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커다랗게 나고 다음에는 아주 먼 저쪽에서 그런 소리가 나고 낮게 위협하는 소리가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부터 들려오고.....이것이
진짜 김하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아예 한 5분 정도 이렇게 암전에다가 무서운 음향들을 집어넣어서 관객들이 김하늘의 입장을 충분히 느끼도록 하는 것은 어땠을까?
가령 유승호가 칼에 찔려 다 죽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유승호가 죽었을까 어땠을까 궁금한 관객들에게
암전으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것을 한 7-8분 정도 하는 것이다. 궁금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관객들은 애가 탈 것이다. 그때 앞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 옆에서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 유승호의 신음소리, (관객들은
살인마가 어딘가에서 김하늘을 노리고 달려들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무척 공포스러울 것이다) - 이런 식으로 해서 엄청나게 폭주하는 장면 뒤에 이런 장면을 삽입해보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빨리 달아났으면 좋겠는데 화면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초조해하지 않을까?
8) 감독은 장님의 일상이라고 하는 것이 어땠을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그 얼마나 느릿느리하고
변화없고 평범하며 사회로 나가는 것이 두려운지.......이 영화 찍기 전에 눈을 안대로 가리고 한 일주일 정도 살아보았으면 어땠을까? 이 영화는 장님의 일상이라고 하는 것 - 그 권태와 좌절 속에 관객들을 풍덩 빠뜨리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다.
9) 수작까지는 아니지만, 이것저것 시도해보려고 노력한 것들도 많이 있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치밀하게 하려고 하였던 것 같다.
첫댓글 사건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는 과정이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도 있었고... 몇 배우들의 오버액션이 영화에 대한 집중도를 좀 방해한다는 느낌도 있었고... 좀 아타까운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