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연지성과 기질지성
성리학(性理學)이란 무엇인가? 성(性)이 곧 이(理)라는 학문이다.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하늘이 인간에게 명령하여 성을 내렸다. 성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고 하여 천리(天理)라고 한다. 우리 마음에 들어온 이 천리를 ‘성(性)’이라고 한다. 이 성을 천리의 천(天)을 빼고 리(理)라 하였다. 그러니 성은 원래 이(理)다. 그래서 성리학이다.
이 이(理)가 인간에게만 있지 않고 천지 만물에 다 있다는 것이다. 하늘이 이들 모두에게 이를 주었다는 것이다. 소에도 이가 있고 나무에도 이가 있고 돌에도 이가 있다고 한다. 소의 이, 나무의 이, 돌의 이라 한다. 하늘의 이치가 개개 사물에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들어온 이를 이라고 부르지 않고 ‘성’이라 한다. 성이 곧 이다. 그래서 이를 성즉리(性卽理)라 부른다. 이 성즉리 설은 일찍이 정호·정이 형제가 주장한 것인데 주희가 이를 이어받았다.
그 당시에 유행하고 있던 불교는 연기설을 내세워 우주를 말하고, 도교는 도를 우주 만물의 원리라고 하면서 우주론을 폈다. 그러나 유교에는 이러한 우주론이 없었다. 그래서 이에 천리를 가져와 불교와 도교에 대항하는 우주론을 폈다.
성리학의 우주론은 이(理)와 기(氣)의 두 가지 요소로 설명한다. ‘이’는 원리, 법칙이란 뜻이다. 곧 우주 자연의 법칙이다. ‘기’는 원리에 의해 현실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나 에너지다. 책상은 나름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물질이니 ‘기’가 된다.
이러한 우주론에 바탕하여 인간의 인성론이 나오게 된다. 인간의 본성을 ‘성’이라 하는데, 이 본성을 다른 말로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 한다. 이 본연지성의 내용은 사덕(四德) 곧 인의예지(仁義禮智)다. 이 사덕은 순선무악(純善無惡)하다는 것이다. 온전히 착하고 악이라곤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온전히 착하다는 것이다. 맹자의 성선설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이 성에 붙은 기질지성(氣質之性)이란 것이 있다. 기질지성이란 만물의 현실적 성격을 말한다. 기질은 각 사물마다 서로 다르다. 따라서 기질지성의 품격 또한 우주 만물이 각기 다르다. 다시 말하면, 기질지성은 육체에 둘러싸인 본성이다. 본질은 본연지성 하나이고, 그걸 둘러싼 육체적 기질을 포함한 것이 기질지성이니 인간의 성은 결국 하나이다. 그러니 눈으로 볼 수 없는 상상의 본성이 본연지성이고, 실질적으로 보이는 것이 기질지성이다. 그러니 성이 두 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은 하나인데 기질지성은 기질에 둘러싸인 본연지성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육체적 성질에 둘러싸인 본연지성이 기질지성인데 이 기질지성은 선할까 악할까? 원래의 성은 착하지만 육체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악할 가능성이 많다. 육체는 본능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질지성은 온전히 착하지만은 않기 때문에 가선가악(可善可惡)하다고 한다. 곧 선할 때도 있고 악할 때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본성은 순선무악한데 실제로 보이는 우리의 본성은 가선가악하다고 할 수 있다.
착한 본연지성이 있는데, 실제로는 착한 마음이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본연지성이 오염된 기질지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사실 같은 것을 두 개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본연지성은 선천적 본성이라고 할 수 있고, 기질지성은 현실적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본연지성은 순선하고, 기질지성은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기질지성(氣質之性)은 기(氣)와 결합된 이(理)를 의미하며, 사람이나 동물에 따라 서로 다른 성(性)을 가진다는 뜻이다. 사람은 가장 바른 기질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물은 치우친 기질을 가지고 있다. 사람 중에서도 기질이 맑거나 흐림, 순수하거나 섞임 등의 요소들로 인해 성인(聖人)에 가까울 수도 있고 소인(小人)에 가까울 수도 있다.
우주 만물이 저마다 다른 기질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주 만물은 도덕적 위계질서 속에 있게 된다. 우주 만물들은 인간, 동물, 식물, 무생물로 범주화된다. 인간의 기질지성이 가장 본연지성과 가까우며 그 다음 동물, 식물, 무생물 순으로 기질지성이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설명한다.
이황의 ‘천명신도(天命新圖)’를 보면 이런 위계적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은 머리가 하늘을 향해 있으므로 가장 기질지성이 맑고 깨끗하다. 동물은 머리가 하늘과 땅의 중간에 수평으로 걸쳐 있다. 개와 호랑이가 네 다리로 걷는 모습을 통해 이런 기질지성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동물은 인간보다 기질지성이 탁하고 지저분하다. 반면 식물은 머리, 즉 뿌리를 땅에 처박고 있다. 하늘에 거스르고 있는 형상이다. 당연히 기질지성의 품격이 가장 뒤쳐진다. 무생물은 두말할 것도 없이 본연지성이 거의 드러나 있지 않은 채, 탁하고 더러운 기질지성 뒤범벅이다. 도덕적으로 가장 열등하다.
그런데 이런 신화적 발상은 현실에서 대단히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만물의 도덕적 품성, 즉 기질지성이 다르다는 확고한 신념은 신분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순식간에 변질된 것이다. 인간과 동식물 사이에 도덕적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처럼, 인간들 사이에서도 사농공상의 신분에는 그런 벽이 존재한다고 그들은 보았다.
첫댓글 많이 어렵지만 알아들으려고 애를 쓰겠습니다. 진화론을 믿는다면 기질지성도 점차 변화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급한 기질지성이 점차 진화하여 본연지성이 되었다면 그 경계선을 긋는 일도 지난해 보입니다. 미숙하지만 살아가면서 계속 진리를 추구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