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사, 木魚의 기억
박 진 성 시인
2000년 늦가을. 마음이 제 자리엘 있지 못하고 공중을 부유할 때, 나는 무작정 버스를 타거나 바람 센 거리를 걸었다. 사랑을 잃었고, 일자리를 구해야했고, 무엇보다도 시를 써야했고…… 내가 다니던 학교 정문에서 28번 버스를 타면 화계사 앞에까지 간다. 아버님이 독실한 불교 신자여서, 금강경이나 불교의 향냄새 같은 것에 익숙해있던 내게 사찰은 늘, 정신의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이었다. 위독했던 하숙방의 시간들, 1998년이었던가, 학교 근처에 있는 개운사에서 나는 순결한 햇살이 석고불상의 이마에 부딪는 걸 보았다.
늘 가까이 있으면서도 쉬이 발걸음이 닿지 못하는 곳, 그곳이 내겐 사찰이 아니었나 싶다. 2000년 늦가을. 나는 스물 셋이었고 사랑을 잃었고, 아, 삼천배를 하던 화계사의 밤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내 몸뚱어리를 받아주던 그 넉넉한 극락전의 바닥을, 마침내 밝아오던 새벽빛을, 새벽빛 뒤에 환하게 제 몸을 가볍게 떨궈내는 은행나무의 홀가분한 몸가짐을, 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물고기는 울지 않는다, 했던가. 풍경을 오래 보고 있으면, 그 여린 물고기가 수면을 차고 올라 공중에 매달리기까지 얼마나 험한 물결에 시달렸는지, 나는 물고기의 한 생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제 속을 우려내어 사찰 경내를 둥 둥, 고요한 음악으로 충만하게 하는 목어의 단아한 음성을 듣게 된다. 사찰은 내게 물고기의 상징으로 자주 기억되는데, 저녁이 물빛의 포만감으로 밀려오던 서울 화계사나 구례 화엄사, 그곳에서 나는 一波萬波 세간의 일들을 몸에 새긴 물고기였으니, 이제는 버릇처럼 마음이 진창으로 내달릴 때, 사찰을 찾게 된다.
삶이 고통이라면 그 고통의 겹주름을 보듬어주는 곳이 사찰이 아닐까. 그 겹주름의 고단함을 바라보느라 물고기, 눈 감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따뜻한 의문부호라고 해야 하나, 어느 사찰이든 경내를 걷다보면 삶의 내력을 잔잔한 고요로 훑게 해주는 힘이 있다. 나는 그걸, 영혼이라고 부르고 싶다.
박진성 | 시인. 1978년 출생.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2001년 <현대시> 등단. 시집 <목숨>
첫댓글 과연 박진성시인과 그 동료 마론 이사화시인이세요..!!
편지함을 정리하다가, 못보신 분들을 위하여 까페에 올려둡니다. 고마운분들의 마음에 따뜻한 오후.. 그리고 내년에는 까페에, 각 부서별(방)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회보가 나가고 나서 까페에도 좋은글 주신 법우님들의 글을 못실은게 참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