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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개척활동 참아버님께서는 새 식구들이 모여들자 이요한 목사에게 이름 있는 목사와 신령한 지도자들을 찾아가 만나게 하는 등 밖으로 눈을 돌리셨다. 특히 1953년 7월 20일 강현실 전도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 편에서 협조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격려 말씀을 하신 뒤 옷 한 벌만 가지고 대구 개척전도를 나서게 하셨다. 이때 비로소 처음으로 원리가 공개적으로 선포된 것이었다. 그리고 8월 중순 이요한 목사를 또다시 대구에 파송하셨다. 강 전도사가 닦은 터전 위에 교회를 세우라는 뜻이 있었다. 그래서 30~40명의 새 식구들이 모이면서 예배를 시작하는 등 기독교단의 핍박과 반대 가운데서도 교회가 일찍 자리를 잡았다. 11 초창기에는 나 혼자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몇몇 식구들을 모아 전국에 신령한 사람들을 방문하게 했습니다. 그중에 대구에 전도를 보냈던 강현실 전도사가 있습니다. 그 전도사는 범일동 천막교회를 책임지고 있던 아가씨였습니다. 범일동 산골짜기에는 절밖에 없었는데, 맨 마지막 집에 이상한 청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전도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때 말씀을 해주었는데 하나님이 역사해서 매일매일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천막교회를 버리고 통일교회를 믿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대구에 전도를 보냈습니다. 대구는 남한의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이기 때문에 그곳에 보낸 것입니다. 보낼 때 아무것도 없이 내보냈습니다. 여비도 안 주고 나가서 전도하라고 내보낼 수 밖에 없는 그때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영계에서 역사를 많이 했습니다. 대구에 갔는데 갈 곳이 없으니까 영계에서 코치를 해서 만날 사람을 만나게 했습니다. 대구교회가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12 강현실 전도사에게 ‘대구에 가서 개척전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개척전도를 나가서 울면서 다니니 하나님이 권고한 것입니다. 대구에 갔을 때 ‘너는 지금 여기에 와서 울지만 나는 천년 한을 품고 일한다.’고 권고해서 도망가려다가 보따리를 다시 풀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가만 보면 하나님은 자기편의 사정은 하나도 안 들어줍니다. 개척전도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대신 어디에 가면 어떤 때에는 차표를 사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가는 도상에 잔칫상을 해놓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13 전도할 때에는 앉아서 걱정만 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쓴다고 되느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되면 하늘이 가르쳐 줍니다. 발이 부르트게 활동을 하고 일을 만들어야 거기에서 역사가 벌어집니다. 강현실의 간증을 들어 보십시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대구 한복판으로 개척전도를 갔는데 환영하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거리를 방황하고 있자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하나님, 어디로 가야 됩니까?’하고 신세타령을 하니까 ‘너는 지금 하루 가지고 그 모양이냐? 그렇게 천년만년을 계속한 아버지의 심정에 도달하기에는 어림도 없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고생을 더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14 아버님이 대구에 있었을 때에는 한 달 동안에 열세 번씩이나 이사를 했습니다. 거기에서는 내가 나타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이 사진을 가지고 다니면서 내 얼굴만 보이면 ‘문 아무개 나타났다.’고 야단이었습니다. 어디에 나타났다 하면 교회에서 매일같이 ‘이단 괴수 아무개 추방하라.’고 야단하면서 그 도시 전체가 으르렁거리며 추방하려고 했습니다. |
大邱開拓伝道 真のお父様は、新しい食口が集まると、李耀翰牧師に有名な牧師と神霊的な指導者たちを訪ねさせるなど、伝道に目を向けられた。特に一九五三年七月二十日、姜賢實伝道師に、「生きていらっしゃる神様が、私たちの側に立って協助していらっしゃ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という激励のみ言をかけられ、服一着だけを持たせて、大邱の開拓伝道に出発させられた。この時、初めて原理が公に宣布されたのである。そして、八月中旬、李耀翰牧師を再び太邱に派遣された。姜伝道師が築いた土台の上に教会を建てる、というみ意があった。そのようにして、三、四十人の新しい食口が集まり、礼拝を始めるなど、キリスト教団の迫害と反対の中でも、教会が早々に出発できたのである。 11 草創期には、私一人でした。そのように始め、何人かの食口たちを集めて、全国にいる神霊的な人たちを訪問させました。その中に、伝道のため大邱に送った姜賢實伝道師がいました。その伝道師は、凡一洞(ポミルドン)の天幕教会に責任をもっていた女性でした。凡一洞の谷間には寺しかなかったのですが、一番端の家におかしな青年がいるといううわさを聞いて、伝道しようと訪ねてきたのです。それで、その時、み言を語ってあげたのですが、神様が役事をして、毎日毎日訪ねてくるようになりました。そうするうちに、その天幕教会を捨てて統一教会を信じる決心をしたのです。 そうして、その後、伝道のために大邱に送りました。大邱は、以南(現在の大韓民国)のエルサレムといわれる地域なので、そこに送ったのです。送る時は、何も持たせずに送り出しました。旅費も与えず、「出ていって伝道しなさい」と言って送り出すしかない、その時の事情がありました。ですから、霊界からたくさん役事しました。大邱に行ったのですが、行く所がないので、霊界がコーチして、会うべき人に会わせてくれたのです。 大邱教会は、そのようにして始まりました。 12 姜賢實伝道師に、「大邱に行って開拓伝道をしなさい!」と言いました。それで、開拓伝道に出て泣きながら歩いているので、神様が勧告したのです。大邱に行った時、「あなたは今ここに来て泣いているが、私は千年の恨を抱いて働いている」と神様から勧告されたので、逃げようとまとめていた荷物を再びほどいたそうです。よくよく見ると、神様は、こちらの事情を一つも聞いてくれません。(ただ、)開拓伝道をしなさいというのです。 ですから、「私の代わりにどこそこに行きなさい」と言われて行くと、ある時は汽車の切符を買って待つ人がいたり、行く道中に祝いのお膳の支度をして待つ人もいたりしたのです。 13 伝道をする時は、座って心配ばかりしてはいけません。お金を使ったからといってできるものではないので、精誠を尽く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うして祈ると、天が教えてくれるのです。足に豆ができるほど活動し、事を起こしてこそ、そこから役事が始まるのです。 姜賢實の証を聞いてみてください。知人が一人もいない大邱の真ん中に、開拓伝道に行ったのですから、誰か歓迎する人がいたでしょうか。通りをさまようしかないので、どれほど落胆するでしょうか。「神様、どこに行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と自分の身の上を嘆くと、「あなたは今、一日でそのような状態になるのか。千年、万年の間、そのようにし続けてきた神の心情と比べれば、話にもならないではないか」と言われたそうです。苦労をもっと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です。神様と出会い、神様のみ旨を探し求めていくのは、易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 14 お父様が大邱にいた時は、一カ月間に十三回も引っ越しをしました。そこでは、私を知らない人がいませんでした。キリスト教徒たちが写真を持って歩きながら、私の顔さえ見かければ、「文誰それが現れた」と大騒ぎでした。どこそこに現れたというと、教会で毎日のように「異端の頭である誰それを追放せよ」と大騒ぎしながら、その都市全体がうなり声を上げて追放しようとしたのです。 |
Pioneering in Daegu Once new members came flocking in, True Father turned his eyes toward the outside world, instructing Rev. Lee Yo-han to meet with well-known pastors and spiritual leaders. On July 20,1953, he gave encouraging words to Gang Hyeon-sil, saying, "Do not forget that the living God is on our side and cooperating with us." He directed her to take just one change of clothes and go to Daegu and begin pioneer witnessing there. Daegu would become the first place where the Principle was taught in public. In mid-August, he also sent Rev. Lee Yo-han to Daegu. His plan was for Rev. Lee to build a church on the foundation laid by Missionary Gang. Our Daegu church took root gradually, and started holding services that gathered 30 to 40 new members, despite persecution and opposition from Christian churches. 11 During the early days, I led a single church. From that beginning, I gathered a few members and had them visit spiritually prepared people all over the nation. Among them was Missionary Gang Hyeon-sil, whom I sent to Daegu. Before she met me, she had been the young lady responsible for the Beomil-dong Tent Church. Other than that church there were only Buddhist temples in the Beomil-dong valley. She heard a rumor that an unusual young man was living in a house at the very edge of town, so she came to witness to me. That is how I met her, and God worked through that. She came looking for me every day. After some time, she decided to leave her tent church and join the Unification Church. With that condition, I sent her to Daegu to witness. I sent her to Daegu because that region was like the Jerusalem of South Korea. I sent her out empty-handed. There was a reason that I sent her out to witness without even giving her money for a train ticket. It was because in those circumstances the spirit world was compelled to help her. When she arrived in Daegu, she had no place to go. So the spirit world guided her to meet someone who was prepared. That is how the Daegu church began. (143-173, 1986/03/18) 12 I told Missionary Gang Hyeon-sil, "Go to Daegu as a pioneer witness!" When she first went out pioneering, she cried as she witnessed. Then God confided to her, "You have just arrived here, and you are crying, but I have worked for thousands of years while harboring bitter pain." She had been about to leave, but after hearing God's voice she decided to stay and endure. When I think about it, God did not listen to anything she had to say about her situation. He just told her to pioneer and witness to people. Given those circumstances, when I sent her to a certain place on my behalf, someone was waiting for her with tickets for her transportation, and further along the way, another person was waiting with a feast. (348-293, 2001/07/10) 13 When you go witnessing, it will do you no good to just sit down and worry. It is not a mission you can fulfill with money; you have to make conditions of sincere devotion. On that foundation if you pray sincerely, God will guide you. Further, if you work hard until your feet get sore and blistered, God can work through that. Listen to Gang Hyeon-sils testimony. She went to Daegu to do pioneer missionary work without knowing anyone there. Did anyone welcome her? How hard it must have been for her when she was wandering around on the streets. She was lamenting about her hard luck and praying, "O Lord, where should I go?" And God said, "Are you complaining after just one day? You are far from reaching the heart of your Father who has suffered for thousands and thousands of years!" He meant that she had to go through more hardships. It is not easy to meet God or to find the Will of God. (235-176, 1992/08/29) 14 When I was visiting Daegu, there was one month during which the church had to move 13 times. Once I came to town, everyone knew who I was. Christians carried my picture, and whenever they saw me they made a great fuss, saying, "There is that Moon so-and-so." Everywhere I went, the churches were in an uproar, saying, "Kick out that ringleader of heresy!" The whole city would growl and try to kick me out. (163-153, 1987/0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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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