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4.18, 전북 정읍시에 살고 있는 송여종 장군 후손과 함께 김제시 금산면 삼봉리에 있는 송여종 장군의 묘소와 신도비를 찾았다.다음날 온양관광호텔에서 치러지는 부산포해전 학술회의에 후손분들과 함께 참관하기 위해 답사를 시작했다.
답사일정은 다음과 같다.
08:00 예천 출발-안동도착 08:25
08:40 안동 출발-대전복합터미널 도착 10:50
11:00 대전 출발-전주터미널 도착 12:20
14:00,점심을 먹고 송여종 장군 묘소도착
15:30 정읍시 송양조 문화예술과장과 학예사인 서인석 계장 면담-충렬사-정읍현청자리
17:00 정읍교육지원청 장학사 김동욱 면담
후손분들을 만났더니 하시는 말씀이 "전에 어른들이 하시는 말을 들으니,몇십년전에 덕수이씨 문중(이충무공 문중)에서 몇분이 찾아오셨다"고 하신다.그런데...그때 무엇을 전해들었는지...왜 지금까지 아무도 송여종 장군을 현창하는 일을 안했는지...저 이날 후손들분께 회초리로 많이 때렸습니다.(이 글을 읽는 분들께 다시한번 머리조아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족보를 꺼내들고..10대조는 어떤 분인지..그 외조부는 누구이신지,외조부의 고조부는 누구신지...15대조는 누구신지..15대조의 처가와 외가를 한번 확인해보기 바랍니다.이거 안하면 고관대작이 도둑질을 해도 욕하지 말고,정치인들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욕하지 말기 바랍니다.)
송여종 장군의 자녀는 4남1녀인데,장남인 송진경(宋震慶)의 후손은 별로 활동이 없고, 4남인 송진록(宋震祿)의 후손들이 향사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그래서 문중에서 종손이라고 부르는 인물은 송진경의 주손(胄孫)이 맞는 것 같습니다.
송여종 장군은 향리인 태인의 인근고을인 고부출신인 낙안군수 신호와 함께 임진왜란 초전기부터 이충무공과 함께 해전에 참여하였으며,전해전에 참가한 분이다.4차례의 해전에 출전하여 큰 공적이 있었다.이순신 장군의 4차 출전인 부산포 해전에서 뛰어난 공적을 이루었고,그래서 이충무공이 직접 추천하여 부산파왜병장(부산포 해전 승첩을 아뢰는)장계문을 갖고 선조에게 주달하였고... 그 공으로 녹도 만호로 임명 받아서 줄곧 이순신 장군과 함께 활동하신 분이다.'절이도 해전' 의 1등공신으로 적선 100척중 50척을 격파하였고 11척은 산채로 나포하였으며 머리를 밴것은 70여급에 달한다.
임진왜란(조일전쟁)기 4대해전에 들어가는 절이도 해전의 1등공신이 바로 송여종 장군이다.필자가 객관적으로 추론해보면 '절이도 해전'(100척을 만나서 50척을 깨고 11척을 나포하였고 71급의 머리를 베다)이 4대해전(1개 연대로 1개 사단을 격파)이고 ,'부산포 해전'은 5대해전이다.3개 사단(원균의 경상우수영군,이순신의 전라좌수영군,이억기의 전라우수영군)을 동원하여 1개사단을 깬것이 부산포 해전이라면 말이다.'부산포 해전'에서는 빈배 100척을 깼지만, 적의 머리를 밴것은 하나도 없다.학술회의에서 필자가 질문했듯이 앞으로 이충무공 연구자와 전문가들이 더 연구해야할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우리가 송여종 장군에 대해서 몰라야 할 이유는 없다!!!
김제시 삼봉리 뒷산을 오르면 여산송씨 문중묘역이 있는데,그 뒤편 오른쪽에 송여종 장군 묘소가 있습니다.
드디어 송여종 장군의 묘소를 찾아서 답사를 하는 순간입니다.
좌는 송여종 장군의 4남인 송진록(宋震祿)의 주손,오른쪽은 문중 종회장님
중앙은 필자.
강항(姜沆)이 쓴 송여종 비명碑銘에 상두산(정읍)에 묘가 있다고 하였는데,제 생각에 처음에 상두산에 묘를 썼다가 나중에 구성산으로 이장한 것 같습니다.비명에 상두산과 현묘역의 구성산이 다른 이유는 후손들도 잘 모르고 있다.
송여종 장군의 가계를 살펴보면 증조부인 한산(韓山, 송연손)은 3남을 낳았는데, 모두 문학(文學)과 덕행(德行)이 있었다. 그중 막내아들 세형(世珩)이 가장 현귀(顯貴)하였는데, 이조 판서(吏曹判書)가 되어 동지경연(同知經筵)을 겸하였다. 판서(判書, 송세형)가 창(昌)을 낳았다. 창이 바로 송여종 장군의 부친인데 청도김씨 부인을 맞아 송여종을 낳았다.
송여종 장군의 고향을 추적할 수 있는 근거는 이순신장군의 '부산포왜병장'자료에 '태인'으로 나오고 ,이조판서를 역임하신 조부 송세형의 고향을 고부(정읍시 고부)라고 하는데서 알수 있듯이 이웃한 면지역이다.직선 거리로 약 10여km남짓된다.송세형과 송여종은 김제시의 인물이 아니고 정읍인물인 것으로 사료된다.
묘역의 뒷편에서 바라본 서편의 반곡마을
정읍시청 바로 우측(동편)에 붙어 있는 충무공원과 충렬사)
정읍에 가서 보니 정읍에도 이순신 장군을 제향하는 충렬사가 있다.사실 정읍에 가보기 전까지 충렬사가 남해와 통영,그리고 부산,원주에만 있는 줄 알았다.원주와 부산의 충렬사는 직접 발로 답사를 한곳이고,통영과 남해 충렬사는 아직 미답처이다.
정읍을 홍보하고 전라도를 홍보하는 사람들이나 정읍의 공무원과 시민들이 이배사(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카페등에 가입하여 자료와 행사등을 홍보도 하고 임진왜란 역사공부 참좋으련만...전부 우물안 개구리처럼 꼭꼭 숨어서 무엇하는지...정읍을 가서 느낀 것이 정읍현청자리에 있는 장명동사무소를 들러서 만난 계장,장학사,향토사 연구하시는 분등을 만나보니,정읍 시민중에 '난중일기'를 읽어 본 분이 없다는 것이다.그러니 향토인물인 송여종을 모르고...안타까운 마음을 어디에 하소연하랴!
이배사에서 정읍 교육청 장학사와 학예사,향교 회원,청년회 회원 ,택시기사 한분에게 '난중일기'책을 사줘서 읽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고흥과 목포,보성,장흥,강진,해남과 진도,구례와 곡성에도...(이배사 장기 과제)
충렬사보존회에도...향교에도 전화해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 조일전쟁기간에 전해전을 함께한 송여종 장군을 종향(從響)하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전화를 해봐야겠다.
정읍 충렬사 보존회 모현비(慕賢碑)
이 사당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령을 봉안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이다. 이순신 장군은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국가와 민족이 위태로울 때, 거북선을 만들어 수많은 해전에서 왜군을 무찔러 나라를 구하는 큰 공을 세운 한국의 가장 위대한 해군 영웅이다. 정읍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구미산 중턱에 위치하며, 이순신 장군이 1589년 정읍현감으로 있다가 1591년 전라좌수사로 이임했는데, 그가 이곳 현감으로 있을 때의 덕을 추모하고 그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공의 탄신일인 4월 28일에 매년 제사를 지낸다.
이순신 장군이 정읍현감으로서 집무하시던 정읍현청 자리에서 필자.
임진왜란 1년전에 서애 류성룡 선생이 천거및 발탁한 이순신 장군은 3개월만에 승진을 거듭하여 전라좌수사로 영전한다.
정읍시 장명동 동사무소 입구에 동헌지 표지가 있다.(화살표)
전북 정읍 교육지원청 김동욱 장학사와 면담후 기념사진을 찍었다.필자가 독립군으로 임명한 김동욱 선생은 사회 담당 장학사인데 앞으로 많은 활동을 기대해본다.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상두산 전경.정면 기슭에 송여종 장군의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