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 잊다 있다 ⑤ 인영극장과 인형극장

[조창환 (1)]

  동인천, 잊다 있다 ⑤

  인영극장과 인형극장

  ‘시청(현 중구청)의 동쪽에 있다’해서 그 이름을 얻은 동인천(東仁川). 그 영역은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 좁게는 기차역과 그 관련 시설이 있는 중구 인현동 일부 정도, 넓게는 용동 마루턱을 넘어 신포동과 자유공원 그리고 반대편의 중앙시장과 배다리까지 본다. 이곳은 ‘한때’ 인천 최고의 중심지였다.

  그 한때는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를 말한다. 역사(歷史)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이 땅에 처음 기찻길이 놓인 1899년부터 2016년 오늘까지 동인천이 만들어 낸 갖가지 서사(敍事)가 있다. 2015년에 발행한 <동인천, 잊다 있다> (유동현 著)에서 happylong7님이 발췌한 이야기를 옮겨 본다.

  예나 지금이나 극장이 있는 곳이 한 도시의 가장 번화한 곳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 동인천역 주변에는 많은 극장이 있었다. 별제과 건너편에는 인영극장이 있었고 좀 떨어진 곳에 애관극장(경동)이 있었다. 역 뒤쪽 양키시장 근방에는 미림극장과 오성극장이 있었고 좀 떨어진 곳에 문화극장(배다리), 인천극장(화평동)이 있었다.

  인영(仁映)극장은 1941년 11월 기공식을 한 인천문화영화극장의 후신이다. 이 극장을 지은 사람은 동산고등학교를 설립한 이흥선 씨이다. 현재의 하나은행 자리에 당시 최신식 단층 건물을 짓고 은막을 펼치고 영사기를 돌렸다.

  광복 후 인영극장에서는 좌익 단체의 집회가 자주 열렸다. 이는 주요 좌익 인사들이 지금의 동인천 청과물시장에서 미곡상들을 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 극장을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945년 8월 25일 인영극장에서 건국준비위원회 제물포지부 결성대회가 개최되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인천지역 미곡상들이 대다수였고 회장 조봉암, 부회장 이승엽이 선출되었다. 또한, 그해 10월 16일 인영극장에서는 제물포인민위원회(위원장 김용규)가 결성되기도 했다.

  1953년 11월 24일 오전 10시 인영극장에서 상이용사 18쌍의 합동결혼식이 치러지는 등 당시 극장은 중요한 문화공간이자 공회당 역할을 했다.

  인영극장은 1952년 경매 입찰로 김 모 씨에게 불하되었다. 인천시장은 1962년 위험 건물이라는 이유로 극장 개축 명령을 내렸다. 김 씨는 6.25 전쟁 때 포격으로 벽에 금이 간 단층 건물을 헐어버리고 2층 건물을 신축해 재개관했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인천에는 19개 극장이 성업 중이었다. 안방극장 TV와 레저 붐을 타고 서서히 극장들은 불황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3년 11월 26일 인영극장도 다른 업종으로 변경하기 위해 기존 2층 건물을 헐고 6층으로 새로 올렸다. 당시 동인천에서는 가장 큰 ‘빌딩’이었지만 엘리베이터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볼링장(3, 4층)과 탁구장(6층) 등이 들어섰고 늘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다. 그런데 볼링장은 국제 규격에 못 미쳐 레인이 짧아 공식 경기를 치르지 못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탁구장은 후에 허니문 커피숍으로 신장개업했다가 다시 롤러스케이트장이 되었다. 허니문 커피숍은 인천 최초로 유니폼을 입은 레지들이 서빙을 했다. 지하에는 허니문 고고장이 들어섰다.

  길 건너에도 환희고고장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특이하게도 맥주병에 막걸리를 담아 팔았다. 이 고고장 사장 김 모 씨의 꿈은 인영극장 같은 영화관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인영극장이 폐관하고 그 건물에 서울신탁은행(하나은행 전신)이 들어서자 오매불망 영화관을 갖고 싶었던 고고장 사장은 동인천길병원 맞은편 지금의 수요양원 자리에 인형극장을 개관한다.

  인영에서 이름 한 글자만 바꿔 ‘인형’ 간판을 달았다. 한편 인영극장의 아들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같은 건물 3층에 ‘태양극장’이란 소극장을 개관한다. 극장 이름을 ‘동인천극장’으로 바로 개명해 8년간 운영했다. 극장 옆 건물에는 유니버설 파친코장이 들어서는 등, 이 지역은 한동안 인천의 대표적인 유흥가였다.

  인영극장이 있던 건물(현 하나은행 옆) 옆에는 현재 ‘아라베스크’라는 아랍전문 음식점이 영업 중이다. 요즘 동인천역 주변에서는 아랍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옛 송도유원지나 북항 주변에 있는 중고차 하치장을 대상으로 중고차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중고차를 사서 자신들의 고국으로 탁송하는 업무를 하는 현대판 ‘사라센 상인’들이다.

  동인천 지역이 집세가 비교적 저렴하고 교통이 편하기에 그들은 이곳 주변에서 장기투숙을 많이 한다. 잠(숙박)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데 먹는 게 문제다. 그들은 ‘할라 식품’을 먹는다. 할라는 생산, 제조 공정이 깨끗하고 이슬람 특유의 종교적인 율법을 통해 가공한 식품이다. 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대부분 한국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지 않고 스스로 해 먹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비즈니스상 식사를 함께 나눠야 할 장소가 필요했다.

  ‘아라베스크’는 바로 그들을 위한 공간이다. 레스토랑 이름 ‘아라베스크’는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기하학적 장식 무늬를 뜻한다. 이곳에는 아랍문화를 상징하는 물담배와 사진 등 이국적이며 다양한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진열돼 있다. 담백하고 짭짭한 맛의 마늘 난(일종의 빵)을 비롯해 부드러운 식감의 양고기 갈비, 볶음밥, 카레밥 등 다양한 라이스 요리 등이 메뉴에 포함돼 있다.

  이곳의 주인장은 요르단에서 온 피라스 알코파히(46) 씨이다. 그는 1999년 인천으로 건너왔다. 요르단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고 인하대학교에서 미술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원래 그가 한국에 온 것은 무역을 하기 위해서다. 가구 소품을 시작으로 중고차 부품까지 수출하다가 음식점을 차린 것이다. 16년째 이국땅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에게 한국은 이제 고향과도 같다. 2003년 이 레스토랑의 문을 열며 한국인 여인과 결혼을 해서 현재 10살 된 딸을 두고 있다.

  “인천에 국제공항도 있고 송도국제도시도 있어 외국인들이 많아졌어요. 인천에 사는 아랍 사람들은 아직도 외국식당 가려면 이태원으로 많이 가요. 맛있는 아랍 음식을 먹으러 인천으로 오게 하고 싶었어요.”

  아랍 음식 전문식당이지만 지금은 외국인 70% 한국인 30%가 고객이다. 그는 신포시장에서 매일 직접 식재료를 구입한다. 사람들이 다른 동네로 이사 가면서 동인천 지역은 점점 활력을 잃어 가고 있다. 그 빈자리를 멀리 산 넘고 물 건너온 아라비아 상인들이 채우고 있다.

  ‘경양식’이란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 뜻 그대로라면 양식(洋食)은 양식인데 ‘가벼운(輕)’ 양식을 말한다. 흔히 복잡한 코스로 나오는 헤비한 서양식(고급 정찬)이 아니라 스프, 메인디쉬, 그리고 커피 등으로 끝나는 간단한 양식이다. 보통 돈가스, 비프스테이크, 함박스테이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한때 동인천에는 ‘뿌리’ ‘록키’ ‘이집트’ 등 유명한 경양식집들이 골목마다 있었다. 지금은 동네 김밥집 메뉴판에도 적혀 있을 만큼 흔한 게 경양식이지만 당시에는 용돈을 푼푼이 모아야 ‘칼질’ 할 수 있었던 비싼 음식이었다. 용동 큰우물 부근에 ‘혜성’이란 빌딩이 있다. 여기 2층에 ‘화백’이란 양주를 팔던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이 있었다. 돈깨나 있는 사람들만이 드나들었던 음식점이었다. 현재 바로 그 자리에 ‘잉글랜드 돈까스’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장소는 같고 이름만 바뀌었다.

  옛날식 다방과 같은 소파와 식탁, DJ박스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TV, 추억의 LP판까지. 촌스러운 듯 고풍스런 실내등, 요즘도 이런 걸 쓸까 갸웃거리게 하는 유리잔 등 소품과 실내 인테리어는 옛날 화백 시절의 모습을 오버랩 시킨다. 어쩌면 이 올드함이 이 집이 동인천 뒷골목에서 아직도 경양식을 팔며 존재할 수 있는 비결일 것이다. 손님이 모두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주인 마음대로 무엇 하나 바꾸기가 힘들다. 유리컵이 깨지면 어디서 구해야 하나 걱정이 될 정도이다.

  이 집은 1981년 처음 문을 열었다. 현재의 사장 문혜원(44) 씨는 옛날 화백경양식 사장의 막내딸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일을 곧잘 도와주던 막내딸이 결국 가게를 물려받은 것이다.

  “밥으로 드릴까요, 빵으로 드릴까요?” 지금도 이 집에서 통용되는 이 말 한마디에 30여 년 추억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요즘 동인천 주변에서 ‘인현’이란 간판을 단 가게는 거의 없다. 인현동(仁峴洞)도 내동, 경동, 용동 등 몇 개의 동과 합쳐져 동인천동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40년 넘게 ‘인현’이란 간판을 단 가게가 있다. 동인천역 맞은편 동인천길병원 가는 초입에 1972년 문을 연 ‘인현통닭’이다. 이 집은 전기구이 통닭으로 유명했다. 어린 시절 빨간 전열기 앞에서 제 몸을 맡기고 빙글빙글 기름기를 쪽 빼고 있는 통닭을 보며 목구멍으로 침을 꼴깍 넘기곤 했다.

  지금은 전화 한 통으로 ‘치킨’을 쉽게 먹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야말로 ‘아버지 월급날 먹던’ 통닭이었다. 전기구이 통닭을 담은 ‘인현통닭’이라고 쓰여 있는 누런 봉투는 버리기 아까워 두고두고 재활용했던 시절이 있었다. 인천에 동네 약국만 있던 시절 동인천에 대형약국이 등장했다. 1970년대 말 인현통닭 뒤쪽에는 방호정, 청호정 등 대형 한식당 등을 비롯해 경기은행 동인천지점이 있을 만큼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한 골목이었다.

  그곳에 깔끔한 인테리어로 장식한 ‘피보약국’이 문을 열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약사들이 약을 팔던 약국으로 일종의 ‘도매’ 약국 같은 분위기였다. 이 피보약국을 운영하는 부인의 남편 김모 씨는 약국 가까운 곳 현재의 국민은행 동인천지점 자리쯤에 제일모직 SS패션 동인천 매장을 운영했다. SS패션은 ‘런던포그’ 등 기성 양복과 점퍼 등을 파는 대형 의류 매장이었다. 당시에는 대부분 양복을 맞춰 입었는데 SS패션이 등장하면서 기성복 시대를 본격적으로 맞게 된다. 김 모씨는 나중에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고, 정부투자기관 사장도 했다.

  글 :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

[방명수(17회)]

오랫만에 들어보는 극장이름이네요...
오성극장, 미림극장, 문화극장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