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하사는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사실 학업도 제대로 못하였다. 돈벌어 고교 보내준다던 형님의 말대로 기다렸으나 "함흥차사"
물론 중학교를 장학생으로 주경야독하면서 졸업하였지만 야간 고등학교를 잠시 휴학하며~ 그때가 '66년도 서울로 향할때였다.
당시의 서울엔 전찻줄이 얼기설기 엉키면서 '돈암동' 을 거쳐 "미아리 고개" 까지 전차가 다니던 시기였고 누님댁은 동소문동이다.
이 "삐라" 는 전쟁터에 뿌려진 일종의 찌라시였는데 간혹 야산이나 들에서라도 이용지를 갖고있으면 "투항" 으로 인정해 준다.
도로경계를 서다보면 들판에서 점심(씨 레이션)을 먹게되는데~ 앞엔 '모' 이고 뒤는 다 자란 '벼' 이며 뒤의 숲은 "쟝글" 지역이다.
우리 분대원들이며 홍하사는 그레도 앞가슴은 "V" 표시 美특수마크"(Recondo School)가 붙어있다. 야자수나무 아래에서 찍다.
중대 한가운데 놓여있는 60m & 81 m 포반원들이 사용하는 도구인데 현재는 어상훈 소대향도가 사진을 남긴 장면이다.
홍하사가 "맹호70-1작전" 을 가기전 군장검열 직전에 남긴 사진인데 배낭을 맨 뒷 병사의 짐을 보면 얼마나 힘든지 알만하다.
홍하사 중대 맞은편의 "대대 급수장"에서 찍었으며 관망대가 뒤로 보이며 물차가 하루 수 차례씩 대대와 각중대로 실어나른다.
"슝앙마을" 입구에서 찍었으며 앞가슴에 "수류탄"(베트남 말로 '리유단')과 "맹호마크" 가 보이며 방탄복을 입은 상태이다.
역시 우리 분대원과 찍은 "따이한 강" 에서 찍은 사진이다. "중대 베이스"에서 가까운데 가끔 이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곤 했다.
월남의 묘지입구이며 묘지는 보기보담 꽤 아름답게 꾸며져 있으며 소대장님과 무전병(이돌태 병장)인데 지금도 소식이 오간다.
김하웅병장이 포즈를~ 주로 "씨 레이션" 에 물넣고 끓여먹는 '무지개다리' 다. 가끔 월남 민간인들이 개를 끌고 와서 흥정(?)한다.
"땀"네 집의 우물에서 찍은 사진으로 '바나나' 가 너무 탐스럽게 열려있지만 가격이 그리 비싸지않다. 그냥 먹으면 상당히 떫다.
영혼을 노래하는 '하리 베라폰테' 의 "아 목동아!"(Oh Danny Boy)는 홍하사가 신청했던 곡인데 4개월후에 퀴논방송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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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홍하사는 "5차년도 30제대" 로 파월했는데 맨 윗사진에서 보시다시피 한겨울에 강원도 오음리에서 교육받고12월 후반기 크리스마스 뒷날 출발해 걸어서 그산을 넘었지요. 당시 눈이 너무와서 GMC가 '오음리' 고개넘다가 만약 사고라고 나면~ 그레서 "따홀 빽" 은 차에 싣고 병사들은 걸어서 넘었답니다.열차로 부산까지 가는데 각 정거장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