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이웃의 어느 불교대학 10주년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나는 거기서
그 불교대학이 10년의 역사를 가지고도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너무 스님 위주의 경영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님들은 사정이 있어서 그 절을 떠나갈 수 있지만 동문.신도는 영원할 수밖에
없는 데도 스님들이 모든 행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특히 마이크까지 스님이 쥘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동문.신도회는 자생력을 잃고 늘 스님들의 지시만을 기다릴 뿐이다.
축구경기로 예를 들면, 스님들은 감독의 위치에만 있으면 된다.
감독이 운동장에 뛰어 들어가서 선수로 뛴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스님들은 경영마인드만 있으면 될 일이지 사고한 일까지 일일이 챙길 이유가 없다.
우리 영남불교대학 관음사는 지난 동지때만 하더라도 굵직굵직한 행사가 다섯개나
겹쳐있었다.동지기도,10년 삼장법사수여식,예수 탄생 트리 점등법회,여중생 사망사건에
관계된 민족자주권사수결의대회,송년봉사자의 밤이 그것이었는데 동지기도를
제외하고는 스님들은 별 할 일이 없었다.
동문.신도회가 모두 주관하고 진행하였다.그럼에도 천명단위가 넘는 그 각각의
행사들이 아무 탈 없이 잘 진행되었다.
영남불교대학.관음사의 원동력은 이런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동문.신도회에 금전적 부담까지 지우지는 않는다.
그냥 열심히 봉사만 하면 재정지원은 종무소에서 한다.
동문.신도회장을 선출할 때도 여느 사찰에서 처럼 돈이나 세속적 위치로 저울질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사찰 또는 불교대학의 운영이 신도회장 한 사람의 특별한 힘에 운영되다 보면
그 단체는 딱 망하기 마련이다.
이런 폐단을 보완하기 위하여 본 영남불교대학.관음사에서는 봉사정신이 있는
회장단이 구성되면 회장단에 그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임원진이라 하여 금전적 부담은 절대 없다.
심지어는 스님들이 가져할 상당부분의 명예직도 신도회에 넘기는 수가 많다.
예를 들면 학장의 직함도 총동문신도회의 회장이 가진다.
즉,대한불교조계종에서 인가한 교육기관으로서 영남불교대학의 정식 학장은 본 필자가
아니다.본인은 설립자의 이름만 띄고 있을 뿐이다.
불교대학의 종단과의 곤계설정이나 포교원의 지시 이행문제,서류 장만,학사관리,
성적관리는 동문.신도회에서 다 알아서 한다.최근에 운영하게 된 사찰 부속기관인
사회복지법인 좋은인연의 이사장직도 동문회의 한 임원으로 되어있다.
복지법인의 인허가 및 복지관 시설의 개보수 등 많은 일들을 사찰의 주지인 본인은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다 해결이 되고 있다.
이처럼 사찰의 모든 대소사가 다 그렇게 이루어진다.
한 달에 두 번 행해지는 108사찰 기도순례단 역시 한 달에 버스 30대 이상씩을 움직이면서도
일체 사내 스님들이 관여 하지 않는다.특별한 팀이 구성되어 있어서 기도 순례 및 사찰의
사전 답사는 물론 음식물 준비,사진 찍기,차안에서 염불기도하기,당 사찰의 기념도장
받기등 모든일을 책임 신도님들이 알아서 한다.
이 사정을 잘 모르는 주위의 스님들은 '어떻게 그 일을 혼자서 다 할 수 있느냐'고 필자에게
묻지만,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다.
요즘 세상에 똑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맡겨 놓으면 다 잘할 수 있다.
사찰의 스님들이 된장,김치 담그는 일부터 법당 청소하는 일까지 일일이 다 간섭하고
잔소리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기독교의 경우,설교이외의 웬만한 일은 그들 신도회가 다 알아서 하는 줄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불교라고해서 그렇게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는가?
사찰의 안정적 발전과 신도회의 활동력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불교대학의 동문회든 사찰의
신도회든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
사찰의 주지가 신도회의 왕성한 활동에 위축되어 겁을 먹는 경우가 있다면 그는 참으로
주지자격이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