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왜 점점 작아지는가.
허 열 웅
아버지 되기는 쉬워도 아버지답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과연 아버지는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부성父性의 역사와 현주소를 고찰해본다. 자식을 낳아 젖을 물리며 키우는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와 자식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멀다. 전통적으로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에 대한 자식들의 기대치는 높고 엄격했다고 볼 수 있다.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단순한 사람 이상의 것을 원하고, 아버지가 강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초인이 아니라 삶에 찌든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고대의 아버지의 역할은 집안일은 아내에게 맡긴 채 외부의 세상과 대면하는 것, 즉 사냥이나 전쟁터로 나가는 것이었다. 로마 시대에 와서 아버지는 단순한 양육자나 책임자의 역할만이 아니라 자식의 교사이기도 했다. 그 이후부터 서서히 아버지가 가정에서 자신의 영토를 빼앗기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아버지의 권력 상실시대의 정점에 와 있고 10년 쯤 후엔 남성차별금지법이 생겨 ‘남성가족부’가 정부부처에 신설되리라고 예측해본다.
세상의 모든 자리가 힘들고 어렵다지만, 아버지의 자리만큼 무겁고 고단하고 외로운 자리는 없는 것 같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고 싶어도 세상 안에서 당신의 자리는 너무나 약하며 작고, 큰소리치며 호통치고 싶어도 가진 지갑은 너무나 얇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도 돌봐야 할 식솔이 너무 많아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다. 자식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이고 싶어도 어깨는 자꾸만 내려간다. 고생하는 아내를 보면 미안해 어쩔 줄 몰라 애태우고, 어디다가 큰소리치고 싶어도 세상 속에서 알아주는 사람 없고 너무나 작아져 버린 우리들의 아버지다.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도 차마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아버지란 존재다. 영국의 블레어 총리가 술꾼들을 단속하려는 법을 만들려다가 마침 그의 아들이 술에 취해 경찰에 연행되자 ‘당신의 아들이나 잘 간수하라며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블레어는 총리일보다 아비노릇하기가 더 힘들다고 눈물을 흘렸다. 만 번이 흔들려도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 아버지란 이름의 숙명이다.
며칠 전 아들네 집에 갔다가 반주 몇 잔 하다 보니 운전을 할 수 없어 하룻밤 묵게 되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불혹을 넘긴 막내아들은 딸을 둘 두어 그 뒷바라지에 어깨가 짓눌리어 왜소해져 있었다. 사는 곳이 S그룹 반도체단지 근처라 우리나라 기업가운데 보수가 제일 많은 주변 가족들과 경쟁하느라 바이올린 교습, 미술학원, 영어 학원에 미국, 호주 등 해외연수까지 시키느라 자기를 돌볼 틈도 없이 쩔쩔매는 모습이었다. 내가 몸 관리를 위해 운동하라며 보내준 테니스 라켓과 골프채는 한 귀퉁이에 버려져 녹슬고 있었다.
어머니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딸들은 말한다. ‘나는 절대로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흐르는 세월과 함께 그 역시 어머니의 삶을 답습하게 된다. 아들에게도 똑 같은 현상이 될 것 같아 간곡하게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중간 정도로 보살피고 너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좀 투자하여 취미생활과 운동을 하라고 권유했다, 보통 할아버지들은 아들은 미워도 손자, 손녀는 예쁘다고 했지만 나는 왠지 아들이 더 안타까워 마음이 시렸다.
카프카는 소설 ‘변신變身’에서 아버지의 빚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할 ‘그레고르’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하자 그에게 환멸을 느끼고 냉대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자본주의 비인간적인 현실에 소외감과 부조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카프가가 오랜 기간 그리고자 했던 ‘부자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태초 오디프스 신화에서 부터 부자사이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사도세자와 영조의 갈등 원인의 시작은 아버지는 칭찬에 인색했고 가끔 아들이 이룬 작은 성취를 칭찬하기보다는 더 큰 성취에 이르지 못한 점을 개탄하다가 발생한 비극이었다.
아버지들은 속으론 친구처럼 정답게 굴어주자고 마음을 먹어도 막상 자식과의 대화에선 속과 다른 말이 튀어나올 때가 많다. 나도 이와 비슷했는지도 몰라도 큰 아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심한 갈등을 격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와 아들 가깝고도 너무도 먼 사이다. 요즘 딸을 낳으면 금메달이지만 아들을 낳으면 동메달도 아닌 흙메달이라는 신유행어가 될 것 같다.
우리들의 아버지! 눈가 주름 사이에, 축 처진 입꼬리에,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에 피로감이 뚝뚝 묻어난다. 이들은 고통이나 부담을 아무데도 털어놓지 않고 스스로 끌어안으며 온갖 곤욕과 모욕을 감내한다. 스스로를 ‘보호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과정을 가슴 속에 꾹꾹 묻으며 키워낸 자식도 자기 자녀들을 감당하기 위해 일 년에 몇 번 찾아오면 다행이다. 항상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으로 외로운 아버지에게 보약 같은 안부전화조차 거의 없는 것이 요즘 세태다. 아버지란 사명감 때문에 감당해야 할 운명인지 모른다. 한 참 팔팔해야 할 40대 후반의 아들이 축 처진 어깨로 따라주는 술잔만 연거푸 비워냈다.
남자여, 늙은 남자여! 울고 있나요, 며 칠전에 방영된 KBS 스페셜의 제목이다.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쏟아 붓고 은퇴 후 노후를 준비할 여력 없이 맞이한 늙은 아버지들, 아내에게 푸대접 받고, 자식에게 외면당한 늙은 남자들은 공원이나 지하철역 등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늦은 밤 많은 아버지들이 방송을 보면서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꺽꺽 가슴 깊이 삼켰을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는 공공의 붕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한 가족의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아버지들이 세상의 외면 속에 나이의 쓸쓸함을 견디며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폭증하는 고령화에 경로사상은 사라져버린 옛 덕목이 되어가고 있지만 노인이 활짝 웃는 곳이 행복한 세상임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아버지를 찾아야 하고, 아버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또한 자신이 바라는 부성상父性像을 찾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