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0년 10월 12일 오전 6시 봉정암 순례길에 오르다.
#.순례 - 첫째 날(10월 12일) 가을의 서늘한 새벽녘. 뽀얀 안개를 가로질러 언제나 그렇듯이 설레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기에 5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우리절 마당에 도착하였다. 우리절·영남불교대학大관음사에서는 연중에 두 차례에 걸쳐서 봉정암 순례가 있지만 올 여름은 장마로 인해 가지 못했다. 안개가 자욱해서 차 창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순례길에 나서는 가슴을 두근두근 치닫게 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13.jpg) - 봉정암 적멸보궁 5층사리석탑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1.jpg) - 청안스님(좌) , 공산스님(우) -
두 분의 공산스님, 청안스님을 모시고 아침예불 드리고 관음정근... 금강경을 독송하였다.
김종철 팀장님의 간단한 당부말씀이 있었다. “오곡 풍성한 가을에 여러분들의 모습을 뵈니 행복해 보입니다. 다른 사찰에 가서도 모범적이고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영남불교대학·大관음사 불자님이 되셔야 합니다. 산을 오를 때도 너무 속력을 내지 마시고 두루 구경을 하시면서 천천히 마음을 급하게 먹지 마시고 산행을 하셔야 합니다. 백담사에서는 인원점검이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안전에 조심하시고 집합 時에는 협조 바랍니다.”
뒤이어 포교사이신 여여광님의 주보 설명이 있었고 이근선 보살님의 행선축원 발원문을 비롯해서 빵을 보시 해 주시는 분도 계셨다. 안동휴계소에 잠시 쉬고 단양터널 ~ 제천을 지나 원주에 9시 10분 정도에 다다르니 안개가 걷히고 전형적인 청명한 가을임을 보여 주었다. 12시 30분에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당도해서 점심공양을 하였다.
백담사의 매표소로 가는 길에 오세암, 봉정암에 공양물로 올리기도 하고 필요 할 때 먹을 오이를 나누어 주었다. 약 10여분을 걸어서 매표소가 있는데 그 곳에서 6·0km를 가야만 백담사가 있다. 가는 길은 험하고 편도인데 불안감이 감돌기도 잠시 뿐 경치에 매료되어 잊어 버리고 말았다. 곳곳마다 약속을 한 듯 기다려서 길을 비키며 버스가 40분간 곡예를 하더니만 백담사에 도착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26.jpg) - 구곡담계곡에서 백담사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25.jpg) - 백담사 극락보전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300-23.jpg) - 백담사 금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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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300-26.jpg)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300-21.jpg) - 만해 한용운 기념관 -
백담사(百潭寺)는 내설악에 있는 대표적인 절로 가야동 계곡과 구곡담을 흘러온 맑은 물이 합쳐지는 백담계곡 위에 있어 내설악을 오르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6·25동란 이 후 1957년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는 동안 역사적 곡절이 많은 절이다.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세웠는데 처음은 한계사라 불렸으나 그 후, 계속되는 소실로 절터를 새로 옮겨 중건하고 주지스님이 새 이름을 찾으시느라 몰두하고 있는 어느 날 꿈속에서 선인이 이르기를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숫자(潭數)를 세어보라는 것에 백 개 인지라 이름을 ‘백담사’라 붙였다.
자장율사의 유물 소동일좌와 인조때 설정대사에게 하양한 칠층소형옥탑 등이 있으며, 암자로는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이 있다. 그 밖에 백담사는 만해(卍海) 한용운(1879~1944년)이 일제시대에 머리를 깎고 수도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 유명한 ‘님의 침묵’과 ‘불교유신론’을 썼으며 조선시대의 혹독한 억불정책에 탄압을 받으면서 불교 중흥에 많은 공을 남겼다.
백담사에 머무르는 시간을 1시간 예정인데 갈 길이 까마득하니 바쁘게 참배를 하고 개울을 건너는데 강(江)인줄 만 알았던 구곡담계곡의 옥빛의 개울물은 너무 맑아 쉬어 가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백담사에서 3·3km를 가면 영시암이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단풍터널이 어르러진 숲길을 따라 영시암으로 향했다. 평평한 길이라 험하지 않았고 법우들과 도란도란 재미나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다지 힘들지 않게 도착 했다.
영시암(永矢庵) - 조선조의 당쟁은 때로는 나라의 위기를 가져오기도 했다. 많은 선비들이 사화(士禍)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어갔고, 화를 피하기 위해 첩첩산중으로 피했다. 숙종16년(1689)에 있었던 기사환국(己巳換局)은 왕비 인현왕후 민씨가 폐출되고 장희빈이 중전으로 승격되면서 정권이 노론에서 남인으로 넘어가는 엄청난 사건이다.
숙종의 비 민씨는 아기를 낳지 못해 늘 근심과 걱정으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임금의 총애를 받은 후궁 장희빈은 아들을 낳았고, 그 아이가 원자(原子)로 책봉 되었다. 장희빈을 사랑하던 숙종은 그녀를 왕비로 승격시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노론이 반대하였고, 그래서 숙종은 이들을 숙청하고 남인을 등용했다. 희빈이 낳은 아이의 세자 책봉문제가 나오자 노론의 총수 송시열은, "임금의 보령이 이제 겨우 29세시고 중전은 23세로 아직 젊으신데, 후궁의 아들로 세자를 책봉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다." 라고 극구 반대했다. 숙종은 송시열의 말을 묵살하고 그에게 사약을 내렸으며 정권을 남인에게 넘긴 것이다.
숙청된 노론 중 김수항(金壽恒)이 있었다. 그의 아들 김창흡은 어지러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수도를 하겠다고 암자를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문수도량 영시암(永矢庵)이다. 그런데 이 암자를 세우지 6년이 지난 어느 날 그의 하녀가 호랑이한테 물려죽고 만다. 이후 김창흡은 암자를 떠나 어디론가 떠났다고 한다. 혼란한 시대의 뒷면에 존재하는 슬픈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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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시암 가는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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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암에서 약수로 목을 적시고 찐 감자와 따뜻한 차 한 잔을 하고서 드디어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오세암으로 향했다. 2·5km 이고 소요시간이 1시간 20분이라고 했는데 험한 산길이고, 몸은 지칠 데로 지쳐서 도무지 발걸음이 떼 지질 않았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배낭과 손에 든 공양물이 무거워만 갔다. 예전에 가끔씩 팔공산에 갔을 때 노(老)할머니께서 공양물을 한 짐 지고 가시는데 누군가 들어 준데도 사양하시고 힘들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던 일들, 부모님, 형제자매들, 식구들이 생각이 났다. 그 회상(回想)속엔 참회하는 마음도 안타까운 일들도 보고 싶은 마음도 일어났지만 허공 속에 날려 보냈다. 결국엔 휘청거리다가 앞으로 꼬부라졌다. 힘이 센 사람하고 같이 왔으면 좋을 텐데... 대단히 미안하지만 짐을 들어 주는 이유 밖에 없었다.
단풍은 눈이 시리도록 빨갛고 초록으로 옷을 입어 곱게 단장하고 오래된 아름드리 주목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커다란 아름드리 참나무도 많은데 도토리가 길쭉하게 생겨서 모양이 색다르다. 쉬는 시간이 길어만 가고 퍼질게 앉아 버렸다. 자비의 화신이신 오세암의 관세음보살님께서 미소를 짓고 기다리실 것만 같은데...... 체력이 한계가 온 건지 조금 가다가 쉬고 물마시고 하다가... 드디어 산봉우리에 다다랐다.
오세암으로 넘어가는 산등성이에서 오른쪽으로 망경대가 있는데 가 보지 않으면 후회 할까 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축 쳐진 몸은 잊어버리고 엉금엉금 기어서 망경대에 올랐다. 그러니까 세상사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음을 느끼게 해 줌을 알 수 있게 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그 동안의 모든 피로를 다 씻어주었고, 아! 이제는 이루었구나! 하는 자신감과 안도감을 한꺼번에 안겨다 주었다. 해가 저물어도 어둑어둑해도 무섭지도 않다. 정말이지 엄마 품처럼 안온함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16.jpg) - 오세암 천진관음보전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15.jpg) - 관음보전 관세음보살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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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14.jpg) - 오세암 동자전 -
오세암(五歲庵)은 신라 선덕대왕 12년(643년)에 자장율사가 ‘관음암’ 이라는 이름으로 창건 하였다. 1643년(인조 21) 설정(雪淨)대사가 중건하고 ‘오세암’이라고 불렀다. 김시습이 한때 머물렀으며 조선중기에 불교의 부흥을 꾀했던 보우도 오세암에 기거 했었다. 고종 25년에 중건 되었으나 6·25동란 중 소실되었고, 그 후 1990년대 들어 중창 불사가 진행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꾼 데 따른 전설이 전하고 있다. 설정스님이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암자에서 키웠는데, 어느 날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혼자 양양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 동안 혼자 있을 4세 된 어린 조카를 위하여 며칠 동안 먹을 밥을 지어놓고, 조카에게 밥을 먹이고 난 뒤 법당의 관세음보살상에게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면 잘 보살펴줄 거라고 일러주고 암자를 떠났다.
그러나 설정스님은 밤새 내린 폭설로 이듬해 눈이 녹을 때까지 암자로 갈 수 없게 되었다. 눈이녹자마자 암자로 달려간 설정스님은 법당에서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조카를 보게 되었다. 어찌된 연유인지 까닭을 물으니 조카는 관세음보살이 때마다 찾아와 밥도 주고 재워 주고 같이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그때 흰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관음봉에서 내려와 조카의 머리를 만지며 성불(成佛)의 기별을 주고는 새로 변하여 날아갔다.
이에 감동한 설정스님은 조카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암자를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오세암의 어머니 방향에 보면 전술한 한없이 자애롭고 인자한 모습이 있는데 마치 오세동자를 업고서 재우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바, 이 천진관음성상의 자비의 氣가 천진무구한 오세동자의 자비의 마음에 감응하여 化現된 동기감응(同氣感應)의 현상이라고 한다.
그 후 이곳은 오세동자가 成佛했다고 해서 오세암(五歲庵)이라고 불렸으며 오세동자의 그 맑음의 기운이 그대로 투영되어 기도도량이자 참선도량으로써 특히 화개봉(華蓋峯)의 화개의 빼어난 기운은 여자들이 많이 받는다고 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18.jpg) - 망경대에서 바라본 오세암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21.jpg) - 오세암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300-16.jpg) - 망경대에서 -
오세암에 들어서자마자 어둡기 전에 얼른 사진을 몇 장 찍고 숙소에 여정을 풀어 놓고 저녁공양을 하고 저녁예불에 간절한 염원을 담아 참예(參詣) 하였고, 영시암에 모셔져 있는 [관세음보살님]의 상호가 얼마나 예쁘고 감동스러웠던지 보살들은 눈물을 흘렸다.
예불을 마치고 오세암 총무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 오시느라 힘이 안 드셨지요? (대중웃음)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불자님들의 모습을 보니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고 누님, 형님, 법우님 되시는데 신심과 원력으로 오신 것 같습니다. 다리도 후들후들 거리고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얼굴은 행복한 모습이라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행~복~합니다. (박수 ㅉㅉㅉ)
기도는 원력으로 시작해서 회향으로 끝내는 기도로 잘 해야 복덕이 공덕으로 바뀝니다. 밭이나 씨앗이나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정성이 들어가는가에 따라 양과 질이 달라집니다. 그렇지요? (네...)
밥 많이 잡수시는 것 같더니만... 왜 그리도 대답에 힘이 없습니까? 불자들은 점잖고 얌전해서 그렇습니다. 요즈음은 오세암에도 시대가 좋아져서 TV가 한 대 있습니다. 위성안테나를 달아서 채널이 여러개 있습니다. 저는 드라마는 안 좋아 하는데 가끔씩 TV를 봅니다. 삼사의 종교방송이 나옵니다.
타종교 방송에서는 반응이 뚜렷해서 활기 찬 모습인데 우리 불교 방송을 보면 조용하니 참선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돌려 버리고... 앞으로 여러분들은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불교가 불자들이 센스 있게 바뀌어야 됩니다. 법문을 들을 때에 ‘관세음보살’ 하고 ‘부처님’ 하며 박수도 치고 호응을 하면 법사도 신이 나고 같이 호흡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어느 스님인들 박수 치는데 싫어하실 분 아무도 없습니다.
다른 사찰에는 교통이 좋아서 절 마당까지 차가 가지만 오세암은 힘이 들기에 여러분들은 원력이 큰 불자이고 정성이, 씨앗이 틀리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오세암은 수승합니다. 유루의 복은 계속 지어줘야 됩니다. 예금으로 말하자면 원금에 해당합니다. 복도 이와 같이 열심히 한 만큼 지었는가? 하는 것은 불변의 진리 입니다. 박복한 생각을 행(行)을 했기 때문에 박복해지고 받을 복이 없기에 무너지고 죄앙이 있습니다.
기도 끝에는 모든 중생들에게 이 복을 나누어 주겠다는 회향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복덕이 공덕으로 승화됩니다. 불자님들이 원을 지었으면 모든 스트레스, 번뇌 망상, 응어리는 버리도록 하시고 편안하게 행~복~하게 촉촉한 가슴으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마시고 기도 하십시오. 기도는 자신감 인만큼 퇴굴심 의구심 생기지 않게 항상 자신감 있게 열심히 하십시오.
진리는 하나지만 방편으로는 여러 가지를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진리의 발견자는 부처님이십니다. 중생의 근기에 맞게 방편을 설하시지만 부처님은 등대지기와 같이 길을 밝혀 줄 뿐 강제로 길을 이끌지는 않습니다. 항상 자율에 맡기지만 스스로가 택한 결과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인과법, 윤회법에 따라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오세암에서 '공덕통장'을 하나씩 드렸습니다. 찾지는 말고 저금만 하셔야 필경에는 보살도를 행하여 성불 하실 것입니다. 가끔씩 살다가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통장에서 자동으로 인출됩니다. 공덕의 통장에 저금을 많이 하십시오.
상·중·하근기를 걱정말고 관세음보살님이 무제한으로 주셨으니 영시암 삼거리에서 오세암으로 오시면 좋을 일이 일어납니다. (오세암으로 갈까요?...차라리...[개사곡]을 불러 주셨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회향을 하시겠다면 진심어린 박수를 쳐 보세요.( 모두들 크게 박수치다) 속이 후련하시면 공덕을 지은 사람입니다. 정말 진심어린 마음으로 환희심이 가슴에 불덩이가 되어 일어나면 공덕이 됩니다. 불자들이 필요 할 때 언제든지 찾아 쓰는 것이 뭐지요? (공덕통장입니다).
모두들 합장 하시고 따라 하십시오. 복을 모든 중생들에게 골고루 나눠 행복하여지리다. 모든 중생들이 세세생생 보살도를 행하게 하여 지이다. 모든 이들이 소원성취 하여 지이다. 모든 이가 필경엔 성불하여지리다. (대중들 따라함)
봉정암에 갖고 가신다고 넣어 둔 것을 내려놓고 가십시오. 내 오이 안 좋아합니다. (모두들 한바탕 웃는다) 관세음보살님도 공양물을 원하지 않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중생들이 싫어하는 것만을 좋아 하십니다. 그 모두가 여러분들을 위한 식(食)재료로 쓰입니다.
이곳, 먼 곳, 높은 곳에 오신 이러한 숙생의 인연으로 소중한 인연으로 감사한 인연으로 인연에 감사하고 소중하고 힘듦을 격려하는 가피로 선물을 받아서 몸도 가방도 마음도 가볍게 하십시오. (오세암은 오지인지라 헬기수송비가 많이 드니 [십시일반]十匙一飯 쌀, 잡곡, 참기름, 깨소금, 김, 고춧가루, 오이, 감자등 미역~ 당분간은 재고가 있음) 모든 불자님들 무사귀환 하시고 맑고 아름답고 행~복~한 불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세암 총무스님의 노래를 한 곡 더 들었고 불자들은 그 보답으로 불사에 동참 할 것을 합의한 약속을 지켰으며 곧바로 취침을 하는 불자, 철야 기도 정진하는 불자들도 있었다.
#. 순례 - 둘째 날(10월 13일) 코 고는 소리, 뒤척이는 몸짓, 당연하게도 불편한 잠자리에 참다못해 밖으로 나와 보니 까만 밤하늘의 별이 금방이라도 쏟아 질 것만 같다. 어릴 적엔 별도 달도 다 딸 것만 같은 자신감도 야망도 희망도 조금씩 현실 속에 잠재우고 언제나 빈 것 같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새벽의 하현달(下弦)이 속도가 빠르게 움직인다. 그것은 내 마음이 급해서 만은 아니겠지. 몇 시간이 지나자 체온이 내려가서 참기가 어려웠다. 법당 안에 들어가 관세음보살님을 응시하다가 절 마당에 나와 별자리도 찾아보다가 산 공기가 너무 차가워 결국엔 숙소로 갔다.
3시 30분경에 새벽예불이 시작되어 참예를 하고 대충 씻고 아침공양(6시)을 하고 주먹밥을 하나씩 받아 들고서 오세암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오세암 뒤쪽으로 봉정암 가는 길은 그야말로 험난한 산길이었다. 아홉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데 산행이 지루함을 말해주듯 고개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다고 했다. 거리는 약 5km로 기억하는데 쉬엄쉬엄 가다보니 5시간 이상을 걸었다. (제일 산행을 못하는 편임- 後尾)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300-13.jpg) - 봉정암이 가까워져 운무가 가득함 -
1시간을 지나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어설펐지만 굽이쳐 산등성이를 넘을 때에는 먼 곳의 경치를 볼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가을에 가뭄이 들었는지 시들은 단풍나무가 많이 보인다. 활엽수는 이미 떨어져 낙엽이 쌓였고 등산객이 많은 까닭에 겁이 없는 다람쥐는 쉬이 볼 수 있었는데 사진기만 들이대면 멀어져 갔다. 마지막 고갯길에 오르니 토종소나무의 풍광과 오래된 고목나무와 기암괴석이 웅장해서 무섭도록 장엄했다. 비가오니 운무가 자욱해서 먼 곳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봉정암이 가까워짐에 반갑기만 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11.jpg) - 봉정암이 가까워져 운무속의 노목 -
드디어 봉정암에 가까워지자 불두암이 보이고 날씨가 흐리다 개이다 번갈아 가면서 얼마나 장관인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지나가고 변덕스런 일기가 설악산의 묘미를 살려 주는 것 같았다. 불뇌사리(佛腦舍利)가 봉안 된 [5층사리석탑]도 보였다.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5대 적멸보궁 사리탑에 참배를 하고 금강경을 독송 하였는데 탑신의 기단부를 바위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10.jpg) - 봉정암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7.jpg) - 불뇌사리 5층석탑 -
사리탑에서 봉정암을 내려다보니 불두암을 광배삼고 마차바위, 용아장성, 갖은모양의 기암 즐비하게 둘러져 있었고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 운무에 의해서 사라졌다 다시 펼쳐지고 할 때마다 ‘와~아 와~’ 탄성을 질렀다. 그 멀고 험한 첩첩산중이지만 이렇게 안온한 곳이 있다니 풍수지리학적으로 말했듯이 정말로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함을 연상 시킬 수 있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9.jpg) - 봉정암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8.jpg)
그 누가 말했는지는 몰라도 신심 있는 불자는 해발 1244m인 봉정암에 오를때면 관세음보살님이 발뒷굼치를 살짝 들어 주신다고 하던데 고생스럽게 오른 필자는 아직도 새까만 불자로서 더욱 더 하심(下心)하고 겸손하고 더 열심히 기도 정진하라는 무언의 법문을 하신 모양이다. 봉정암에 도착해서 청명할 때 사진 찍어야지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찍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29.jpg) - 사리탑에서 내려다 보며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300-7.jpg) -사리탑 가는길(좌) , 사리탑에서 포교사단 봉사자팀(우)-
봉정암(鳳頂庵)은 설악산의 대·소사암 중 제일 먼저 창건된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교구본사, 신흥사)의 말사인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백담사 부속암자다. 신라 선덕대왕 12년에 자장율사가 입당하여 부처님 뇌사리를 얻어 와서 [5층 석탑(불뇌사리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고 절을 창건했다.(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1호) 이름을 ‘봉정암’ 이라고 한 것은 신라 애장왕 때 조사 봉정이 이 곳에서 수도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이라는 설이 있다. 이 암자는 설악산 소청봉 서북쪽에 있는데 전국 사찰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점심공양은 오세암에서 나눠 준 주먹밥으로 때워야 된다고 해서 허전 하다는 일행도 있었다. 조금지나자 예불이 있었는데 불자들이 너무 많아 법당 밖에서 법문을 들었다.
봉정암 큰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봉황새 봉(鳳)자에 이마 정(頂)자를 써서 '봉정암' 이라고 합니다. 봉정암에는 스님들이 여덟 분계시고 처사님들 열두 분계십니다. 이곳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불자)들입니다. 불자들이 왜! 주인노릇을 못하느냐? 반야심경의 空사상... 전도몽상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경내에서 기도에 방해가 되는 행동은 못하게 하고 도량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타 사찰과 다른 점이 있다면 봉정암에서는 예불 時에 ‘지심귀명례 해동설산......진신사리보살’ 을 두 번째로 넣어 팔정례를 합니다.
오늘날 불교는 개혁불교, 거사불교, 충성불교(부처님께) 이어야 합니다. 불교에 의지하는 까닭은 답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소원성취 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명예를 돈을 얻게 해 달라고 오는 것도 아닙니다. 진리를 배워서 삼계고해를 벗어나 양쪽 날개를 달아서 부처님 진리를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봉정암에 오신 목적은 기도하러 오셨을 겁니다. 기도는‘부처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부처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부처님과 의논해서 살면서 기도해야 됩니다. 법당 안에서는 눕지 않아야 하고 얇은 얼음을 밟듯이 조심해서 스님들의 법문은 부처님의 뜻을 대신해서 말씀하시니 존경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불자들은 누굴 원망하지 않아야 하며 희망을 줘야 합니다. 우리는 가슴이 훈훈한 인간이 그리운 만큼 그렇게 되길 발원 해야 합니다. 큰 원력을 세우는 사람의 작은 서원은 꼭 이루어집니다. 살아가면서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면 평생에 갚기 힘듭니다.
기도를 할 때에 첫째는 참회기도를 하여야만 하고, 둘째는 불자이기 이전에 인간답게 살겠다는 서원을 해야 합니다. 현대는 이기심(내 목구멍)만 가득 찼기에 사는 락(樂)이 없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인간이 왜 태어났느냐? 하면 빚 갚으려고 왔습니다. 열심히 빚 갚아 놓고 열심히 닦고 항상 진리에 의지해서 가야만 합니다.
봉정암에는 20년 전에 불자님들이 불사를 했기에 오늘날 등산객들과 불자들이 잘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일수심은 천재보요, 백년탐물은 일조진이라. 세상은 덧없고 무상한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봉정암에 꼭 와서 삼배를 해야 합니다.
봉정암에 오면 첫째는 업장이 소멸됩니다 .두 번째는 하늘사람도 땅 밑 사람도 예배합니다.- ‘ 한 생각 한 생각이 일어나서 모든 인간의 씨앗으로 알아 맑고 깨끗한 세상에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부처님!!!’ 라고. 좋은 인연 많이 짓고 좋은 생각 많이 해야 내 자손이 잘 됩니다. 마음의 평수 늘리는 사람은 편안하지만 땅 평수 늘리는 사람은 끝없이 힘들어 집니다. 진리는 그릇의 크기만큼 담아 갈 것입니다.
남이 나를 도와야 하니 일체중생에게 회향하고 살아야 합니다. 얻는 것보다는 주는 즐거움이 보살의 행(行)입니다. 불자는 가슴에 불심의 장작불을 지펴서 보살의 행위를 실천하고 가셔야 합니다. 셋째는 세상사 모든 일이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음에 춥고 배고프고 어려워서 도(道) 닦을 마음이 생깁니다. 넷째는 인연이 없으면 오지 못합니다. 다섯째는 도량안의 물은 감로수 이고 법당 안에는 향이 필요 없습니다.
또한 불자로서는 1. 봉정암의 미역국을 먹어봐서 인생의 참맛을 아십시오. 2. 남의 재물 탐내지 말고 항상 임종할 때를 생각하십시오. - 오늘 저녁에 가도 여한이 없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 3. 말 많이 하지 말고 몸을 살찌우지 마십시오. 4. 나쁜 친구 사귀지 마십시오. 5. 잠 많이 자지 마십시오.- 경내에서 눕지 마십시오. 6. 자신의 존재를 높이지 말고 남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7.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 받지 마십시오. - 내 마음공부에 방해가 됩니다. 8. 사바세계를 무대로 멋지게 살다가 가십시오.- 여한 없이... 9.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마십시오. 10.대중 가운데 머물러 마음을 평등하게 하십시오.
모든 업장은 나로 비롯되었으니 아무도 모르게 내가 짊어지고 가는 마음으로, 봉정암에서는 참회기도가 우선이 되어 ‘감사하며 겸허하게 살게 해 주십시오’ 라는 기도와 머리엔 지혜가 얼굴엔 부처님의 미소가 가슴엔 충만한 사랑이 손에는 일(事)이 있어 꽃나무 울타리를 치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생활이 되셨으면 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메모지가 뒤섞여 순서가 바뀌고 미비합니다(컴컴하고 다소는 소란스런 가운데 정리)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12.jpg) - 봉정암 -
대청봉을 가려니 걱정이 되고 망설이다 짐을 풀고 쉬었다. 늦은 오후 등산객들도 불자님들도 많이들 모여 들었다. 종무소에서는 연이어 방송을 하고 시끌벅적 해지고 야단법석이다. 해우소 가는 일도 씻는 일도 자리보전이 걱정되어 아예 움직이질 않는다. 나가면 들어오질 못 할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나면 지금 이 상황보다 몇 배가 더 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니 평생토록 경험하지 않고 지나야지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 와중에도 아무리 비좁고 발 디딜 틈이 없어도 다리 뻗고 자는 사람들은 있었다.
저녁예불은 늦게 오신 분들에게 법당의 자리를 양보하라는 방송을 했다. 앉은 자리에서 예불을 드리고 법문을 듣는데 시끄러워 잘 듣지 못해 안타까웠다. 이렇게 좋은날 소중한 시간에 청정한 곳에서 귀한 법문을 귀담아 듣지 않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시 우리 불자들은 교육을 받아야 하며 우리절·영남불교대학大관음사 불자님들이 앞장서서 他 사찰에 갔을 때 불자로서 모범을 보이고 불교를 이끌어 가는데 한 몫을 해야만 할 것이다.
찬불가를 부르는데 옆 호실에서 손뼉을 쳐서 유행가의 분위기를 내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은 험한 길을 오느라 피곤해서 신경이 예민해져 약간의 다툼도 있었다.(다른 호실의 불자들과... 모두들 자기네들끼리는 절대 잘해 주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는 듯 했다.) 비록 비좁고 불편한 자리이지만 눈앞의 큰 창이 있어 주먹만한 밤하늘의 별들도 보고 날이 저물어 해질녘까지 사리탑도 마음껏 바라다 볼 수 있는 행복한 밤을 하얗게 지냈다.
#. 순례 - 셋째 날(10월 14일) 새벽 2시경에 법당에 가니 드문드문 자리가 있어 처음엔 그냥 자리에 앉아 있다가 새벽예불에 참예를 하였다. 얼마나 뜻 깊고 감동어린 시간인지는 경험 해 보지 않고서는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2000명이나 되는 인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도 먹을 물도 귀해서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아침공양을 마치고 주먹밥을 하나씩 받아 쥐고서 소청봉를 향해 올라갔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5.jpg) - 소청봉과 천불동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봉정암 쪽으로 내려다 보며 -
6시 30분경에 출발했는데 다리가 풀리지 않아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1시간이나 걸려서 겨우 0.7km지점인 소청 대피소에 다다라서 커피 한잔으로 혼미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오른다. 오르는 양 길섶에는 빽빽한 철쭉 군락지라 봄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피곤하지만 천천히 오르다보니 좋은 경치는 목 놓아 감상하면서 가는 즐거움의 한 가지는 있었다. 가면서 사진도 찍고 이름모를 나무들도 보면서 소청봉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희운각대피소를 향해서 내려가야만 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6.jpg) - 천불동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일출 후의 모습 -
등산객들이 많아서 제자리걸음을 한다. 저 멀리에는 울산바위가 보인다. 어릴 적에는 그렇게 크게만 보이던 울산바위가 오늘은 조그맣게 보이는 것은 과연 무슨 연유일까?... 젊은 등산객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고 급하게 후다닥 후다닥 건너 뛰어가기에 위험한 행동이 거슬렸다.
오는 길에 주먹밥도 먹고 알밤도 까먹고 사탕도 먹고 피곤을 떨쳐버리고자 안간힘을 썼다. 때 마침 우리절·영남불교대학 법우님을 만나서 휴게실에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한참을 휴식하고 서로를 의지해서 푸근한 마음으로 하산을 했다. 굽이굽이 돌아 내려와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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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천불동 쪽으로는 멋있는 바위산이고 가을단풍이 절정이라 지루함은 달래주기도 했다. 폭포수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손을 담글 수 있고 맑은 물에 오이를 씻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암반 위로 200m나 이어진 와룡담(淵)을 지나고 비선대에 오르니 뒤로는 장군봉 선녀봉 형제봉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고 밑에서는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쉬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여유로운 화가 한 분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산수화를 그리고 있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28.jpg)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3.jpg) - 비선대 장군봉, 선녀봉, 형제봉 -
오는 길에는 길고 긴 철다리도 무지 많았다. 4시간 정도를 내려오니 잠을 자지 못해서일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는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지 않았다면 몇 번이나 넘어져 다칠 뻔 했다. 필자와 같이 내려온 법우님도 바위에 머리를 닿도록 넘어 졌지만 다행스럽게도 다치지 않았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바위들이 눈앞에 다가 설 때면 자연의 조화와 대자연의 위대함에 고개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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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 [통일불]앞에서 1시 30분에 집합 예정시간인데 우리 뒤에 후미가 있음을 확인 하고는 해장국을 먹고 내려 왔더니만 원성이 높다. 늦게 왔다고...... 그렇다! 한 배를 탄 우리 불자들은 어느 누구라도 오지 않으면 집으로 갈 수가 없다. 그러니까 옆 사람도 챙겨주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으면 기다려 동행하는 동반애와 잠자리에도 혼자서만 편히 쉬지 말고 번갈아 가며 옆 사람도 편히 쉬도록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모두가 한 몸 임을...... 오늘 하루는 총 11km를 7시간 30분 동안 걸음걸이 한 것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vbuddha.co.kr%2Fbbs%2Ffile2%2F061013-600-2.jpg)
- 신흥사 통일불 -
신흥사(新興寺)는 신라 진덕여왕 6년(652)에 자장율사가 노루목 동쪽에 창건하면서 석가세존의 사리를 봉안한 9층탑을 세워 향성사라 하였고 이후 조선 인조때 이르러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신흥사로 개칭하였다. 경내에는 극락보전, 보제루, 명부전, 향성사지 3층 석탑, 경판등이 보존되어 있고 계조암, 내원암, 안양암등의 부속암자를 두고 있으며 강원도 북부 일원의 40여 사암을 관할하고 있다.
신흥사 주차장에서 버스에 올라 원주에서 저녁공양을 하고 저녁예불을 드리고 수고하신 김종철 팀장님의 ‘부처님께 바칩니다’ ‘회심곡’ 을 듣고 행복한 얼굴로 무사히 원만회향 하였다. 한 명의 낙오자가 없도록 수고하신 모든 님들께 감사드리고 동행한 법우님들! 우리절·大관음사에서는 더 진한 감동으로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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