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양의 기도 (시편 119:169-176)
성경은 인간을 양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과 같아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뱃새다 들판에서 많은 무리를 보시고 목자없는 양과 같이 방황하고 있다 하시고 마음 아파 하셨습니다.
시편 119편, 이 긴 시편의 마지막에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의 기도가 나옵니다. 방황하는 양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양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는 짐승의 밥이 될 뿐입니다.
양은 목자의 보호를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길잃은 다시 목자를 찾아야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황하는 양의 기도는 절박한 기도입니다. 나를 도와 주소서... 나를 살려 주소서 하는 양의 기도는 나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과 같은 아가씨기 있었습니다. 대학에 떨어지고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봐야겠다, 그 예배에서 은혜받고 회개하고 믿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1년이 지난 뒤 집에서 좀 더 가까운 동네의 작은 감리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전도를 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담임목사를 찾아갔습니다.
목사님께 큰 북을 하나만 빌려달라고 했죠. 목사님은 그 북을 어디에 쓰려고 빌려달라느냐고 물었죠. ‘전도하는데 쓴다’고 대답했어요. 전도는 일단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 초신자와 다름없던 아가씨는 전도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북을 받은 그는 온 동네를 돌면서 ‘진짜 사나이’를 큰 소리로 부르며 북을 둥둥둥...쳤습니다.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어린 처녀가 군가를 부르고 다니니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밖에 없었습니다.
풀빵 장수 아저씨, 세탁소 아주머니 등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 진기한 구경거리라도 만난 것처럼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자 100여 명의 아이들이 아가씨 뒤를 따라 왔고, 아가씨는 교회로 데려 왔습니다.
그 아가씨가 한참 전도를 하러 다니던 때, 다방에 들어갔는데 마음의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이런 마음의 감동을 거부한다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 다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중에서 청년 한 사람이 걸렸습니다. 방황하던 양이 제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그들은 결혼을 했습니다. 유명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176절에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불쌍한 양과 같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나를 깨닫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169절)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119:169) 길을 잃어버린 양이 어디가 길인지 모르니 바른 길을 깨닫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이 길을 알게 해 달라고 깨우쳐 주소서 하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길을 잃은 양은 방황하고 두려워하고 떨고 있습니다.
길을 잃으면 먼저 내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오는 목사님이 종종 길을 모르고 헤맬 때가 있습니다. 전화를 걸어오면 내가 거기 무슨 건물이 보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읍사무소가 보인다고 하면....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아담을 불렀습니다.
이 말씀은 아담의 영혼이 어디 있느냐? 아담의 영혼의 자리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영혼의 제 자리를 벗어나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죄를 깨달으면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바른 길로 갈 수가 있습니다. 죄는 길을 벗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죄를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4:13-35에 보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나옵니다. 그들은 낙심하고 슬퍼하며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동행하시면서 선지자들의 글을 자세히 풀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제서야 말씀을 깨닫게 되었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아 그렇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슬퍼하지 않고 낙심이 사라졌습니다. .
또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구리에서 과수원을 하는 장로님이 한 40여년 전에 많은 배를 수확을 했습니다. 공판장에 팔면 쉽지만 수입이 적다고 합니다. 그래서 길가에 배를 쌓아놓고 팔았습니다.
배를 수확한 수 많은 배 과수원 사람들이 길가에 배를 쌓아놓고 팔았습니다. 하루에 3-4만원 밖에 팔리지를 않았습니다. 팔아야 돈이 되는데....
장로님이 그때 머리에 번쩍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모시고 100만원 헌금을 드리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린 그날 오후부터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날개돋힌 듯이 팔리기 시작하는데 하루에 70만원 100만원 팔렸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바로 옆에 있는 노점들은 배가 팔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웃 노점들이 모두 구경을 했습니다. 장로님네 배를 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 가는지 몰랐습니다. 장로님은 알고 있었죠. 하나님이 사람들을 보내준 것을.. 장로님이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교회 안장로님이 저에게 들려준 간증입니다.
둘째, 길을 잃은 양은 건져 주소서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170절)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119:170)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는 기도입입니다. 우리가 처한 인생의 궁지에서 구원해 주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구원이란 물에 빠진 나를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라는 이름이 물에서 건졌다는 뜻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4:22-33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 하시고, 예수님은 혼자 따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바다 한가운데 있었는데 역풍이 불기 시작하고 물결이 크게 일어나고 제자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밤 사경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로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제자들이 유령이라 하면서 놀라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향하여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예수님이 ‘오라’ 하셨고 베드로는 물위로 걸어갔습니다.
베드로는 바람과 큰 파도를 보고 무서워 할 때 물속으로 빠졌습니다. 베드로는 소리를 질러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며 건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를 건져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는 구주이십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래서 ‘나를 이 곤경에서 건져 주소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서두에 말하던 그 아가씨가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한지 얼마 후 남편이 유학을 갔는데, 남편 유학 뒷바라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공부도 못하고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아 매일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여! 학교에 보내 주시옵소서. 학교에 보내 주시면 내 평생 하나님의 일에 힘쓰겠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밤 누군가 그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조깅하던 한 백인 할아버지가 잠시 비를 피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서 허락했습니다. 기도를 하다 흘린 눈물로 눈가가 젖어 있었던 그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영어로 못해서 ‘스쿨! 스쿨! 스쿨!’ 외쳤더니 그렇게 짧은 말에 담긴 모든 뜻을 그분은 알아듣고는 ‘내일 이 학교 사무실로 오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그분은 떠났습니다.
다음 날 메모지를 들고 찾아갔습니다. 그곳을 가니 미국 서남부 신학교였습니다. 그분은 놀랍게도 그 신학교 총장 이었습니다. 총장님이 4년간 그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장학증서를 주셨습니다.
공부를 잘 하지도 못하고,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았고 유학생 비자도, 2만 달러가 넘는 학비도, 토플 점수조차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명문대학에 입학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우디에 선교사로 갔다가 지금은 수 많은 영혼을 돌보고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나를 가르쳐 주소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171절)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찬송을 발할찌니이다(시편119:171)
학교에서는 무엇이나 가르치는 곳입니다. 좋은 학생은 잘 배우는 학생입니다. 잘 배우는 학생은 배우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이 잘 이해가 안되면 교무실에 선생님을 찾아가서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이런 학생을 귀하게 여깁니다.
선생님이 제일 마음이 아픈 사람은 공부 시간에 잠을 자거나 배울 의욕이 없는 학생입니다. 이런 학생은 장래가 안개 속입니다. 잘배운 학생은 장래가 유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길을 잃고 방황하던 양이라면 목자곁을 떠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또, 양떼가 다니는 그 길을 따라가는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때로는 우리를 아프게도 하십니다. 우리가 아플때는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고 있는 때입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양은 나를 알고 내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한 양치기가 매일 아침 연한 풀을 들고 우리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매우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하루는 마을의 주민 중 한 사람이 양치기를 따라갔습니다. 양치기는 다리가 부러진 양에게 풀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어쩌다가 양의 다리가 부러졌습니까. 사나운 짐승에게 물린 것입니까’ 양치기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내가 부러뜨렸습니다’ 마을 사람이 깜짝 놀라서 다시 물었다. ‘당신처럼 양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소. 그런데 양의 다리를 부러뜨리다니…’
양치기는 양을 쓰다듬으며 설명했습니다. ‘이 양은 자꾸만 길을 잃어버립니다. 내가 가까이 가면 슬슬 도망을 가지요. 목장 주변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많아요. 그래서 다리를 부러뜨린 것입니다. 매일 음식을 먹이면서 정을 쌓기 위해서지요. 제 목자를 알아볼 때까지 꼴을 먹일 것입니다’
마태복음 27:19절에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배우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소서.. 내가 배우겠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합천 해인사에를 갔습니다. 해인사 백련암에 유명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 스님을 만나 평생 마음에 간직할 말씀 한마디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이 ‘절돈 만원을 내 놔라.’ 했습니다. 절돈은 부처에 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불상에 1만번의 절을 했습니다. 다시 갔더니 ‘속이지 말라.’ 한마디 했습니다. 성철스님이 갈라디아 6:7의 말씀을 알고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실망이 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곰곰이 씹어 보니 남을 속이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것인 줄 깨닫고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가르침을 청하는 마음이 있어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그 정도보다 더 나은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너무 쉽게 배우려고 하면 제대로 배울 수가 없습니다.
배움이라는 것은 말로 배우기보다 생활로 배우고 예배로 배우고 기도로 배웁니다. 선한 사람을 본받아 배우고 악한 사람을 보고 내가 내 안에 저런 악이 없는지 자신을 살펴 배우기도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제대로 배우면 신앙생활 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어떻게 예배하는지를 보고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4:23-24에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했습니다.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제자들이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했을 때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우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녀도 기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신앙에 깊이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기도입니다.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말씀을 잘 배우면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빛 가운데로 걸어 갈 수가 있습니다.
욥은 고난의 풀무불 속에서 신앙의 가장 깊은 진리를 배웠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 시편 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성도들은 고난을 통하여 신앙을 배우게 됩니다. 욥은 수많은 고난을 겪은 후에 인생의 깊은 진리를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