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자식 얘기 써보지요‥
쓰려니 너무 길어서
3년전 어느카페에 쓴글인데 옮겨왔어요‥
사진도 그냥 올립니다‥
저는 지금 프놈펜에 있습니다 ‥
지난번처럼 딸의 요청으로 토요일에 왔어요‥
자식이 요청하면 거절 못하는 부모 마음입니다‥
사위는 오늘 새벽에 씨엠립으로 떠나고
여기는 한국과 시간차가 두시간이라
아침 아홉시 반 좀 지났습니다‥
2014년 옛글이라서 좀 그렇긴해도
자식교육에 도움 되시는분들 계실것같기에
오글거리지만 딸 자랑 합니다‥
저도 딸 독립한 이후 재정적 지원 없습니다^^
당근 결혼도요‥즤들이 알아서 하더군요
쿠쿠3인용 밥솥 하나와 여름용 누비이불 한 채
결혼때 사위양복 한 벌과 드레스셔츠~가 전부였어요
그것도 제가 우겨서 겨우요~
그후에 경제관련 모든건 이제 딸이 다 스폰합니다‥
처음엔 사양했는데 이젠 다 받습니다‥
그게 딸아이 기쁨이라고 해서요
그래서 편하건 편치않건 저는 받습니다 ‥
고맙기도하고 흐뭇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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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글에보면
외환위기에
남편이 주식투자로
많은돈을 날려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공대생 호텔리어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때 97년이니그때가 딸아이가 중3
사교육은 없다가 정말로 현실이 되었어요‥
당시 중계동 살때 였는데,
아무것도 안해줄 수는 없고
고1때 2년동안 수학과외를 받았어요‥
주2회에 그당시 돈으로 20만원 이었던것으로
지혜는 01학번인데, 항공대 전자공학전공
3학년 마치고 1년간 휴학을 했어요‥
휴학기간중에 삼성동 '나모'라는회사에서
사무직 알바를 주2회,하루에 4만원
그렇게 월 32만원,
그리고 저녁에는 중학생 영수 가르치면서
월 40만원
용돈 30만원 정도쓰고
과외비 받은것으로는
원어민 영어회화에 몽땅투자
하더만요‥
휴학기간을 포함 5년만에 대학졸업을하고
본격적인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
쉽지않은 취업문앞에서 좌절도 수차례하고,
그러다 전공과는 무관한
아니 어쩌면 자신이 가장 잘할수있는일이라며..
1년간 항공사 시험 보면서 아르바이트로
짬짬히 모은 돈500만원을 들고 밴쿠버
이모에게로 갔어요.
그게 2007년1월이었어요‥
캐나다 어학연수를 가겠다면서
이모와 이야기 끝냈다면서
소요경비를 이야기하며 조금만 도와달라고 했어요..
학원비 홈스테이비용(동생집) 용돈 기타 잡비
학원비80만원,동생에게30만원,2존교통카드10만원
활동 잡비며 가끔 여행하는비용 2~30만원
모두해서 월150만원×12=1800만원 예상으로
대충2000만원 정도 예상했더랬습니다‥
6개월 ilsc, pgic과정이 끝나고
밴쿠버시내에 있는 센트리 칼리지에 입학합니다.
호텔경영 인턴쉽을하기위해서는
실습을겸한 학비가 2년간 900만원이었어요‥
학기가 끝나면 실습을 나가는 시스템이기에
등록을하면 워킹비자를 받습니다‥
학생비자가 아닌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비자입니다‥
9월 부터 12월까지 한 학기를 마치고
2008년1월에 이모로부터 독립을합니다‥
당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특수수요 때문에 호텔들이 비상이었고,
휘슬러등 리조트에서는 인력이 많이 필요하던차
한학기를 끝내고 캠룹스라는곳을 가기로 결정된것을 그곳은 너무 멀고
(밴쿠버에서 자동차로 5시간 가는거리 ㅠ)
겨울에 눈이 많이오면 허벅지까지
눈이 쌓이는곳이라서 고민고민을 하더니
냉큼 휴학을 하고는
밴쿠버 외곽에 있는 버나비 이모집에서 나와서
다운타운에 있는 스타벅스에 이력서내고
인터뷰를 봐서는 와서 일해달라는 연락을받고
2008년 2월부터 7월말까지 6개월동안
커피와 음료를 만드는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매장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
오전출근할때는 첫번째로 출근해 문열고
오후에 출근시에는 퇴근할때 문닫는사람이었대요‥
법으로 정해진 근로시간 꽉 꽉 채우고
그렇게 받는 돈으로 숙식을 해결하면서
한사코 송금하지말라고‥잘지내니 염려말라고‥
(900만원 학비포함 1년간 경비로 2천만원정도 보냈던거 같아요‥)
그게 아깝다고‥아깝다고‥
본전을 뽑아야한다고‥아주 지독한 아이입니다‥
쎄빠지게 일해서 버는 돈 한달100만원중
셋이서 쉐어하는 집에서 거실 한켠에 파티션으로
가려진 곳 쇼파에서 잠을자며 쉐어비30만원
셋중에 제일 적게 내는돈이니 그럴수밖에 ~ㅠㅠ
스타벅스에서 파트너에게 하루에 커피나 음료가 두번 제공되는데 그게 그렇게 꿀맛이었다고,
마감때 수퍼바이저가 팔다남은 빵을 공짜로 가져가라니 그게 참 좋았다고 ‥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좀 난다고‥ㅠ
그때 같이 살았던 룸메이트아이중 한 명이 권ㅇㅇ이랍니다‥
얼마전 스페인 자라로 스카웃되어간다고 썼던
그아인 벌써 스페인으로 떠났답니다‥
주변에 여러유형의 유학생들 보면서
내가 이곳에 왜 왔나를 생각하며,
나태해지기 쉬운 마음 다잡고
한국으로 돌아갈때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얻어가지고 간다라며‥
벌룬티어도 열심히 쭟아다니고,
단골 고객도 늘어나면서
특히 캐나디언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너무 좋아하더라는 ‥
오늘도 네가 만든 커피를 맛보러 왔다고^^
그렇게 고난?의날을 보내고
1년7개월만에 한국에 돌아왔어요‥
그때가 2008년 우리나이로 26살‥
공항에내려 이런기회를 주신 엄마아빠께 정말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돌아와서 바로 캐세이퍼시픽 시험보고
파이널까지 잘 끝냈는데‥
그게 얼마나 드라마틱한지는
지금도 잊지못한다고 합니다..
운이 좋아서
어렵게어렵게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2008 미국발 금융위기로 홀딩되어 조인이 미루어지니
(회사사정상 지금 너희를 데려갈 수가 없지만.‥입사가 취소된것은 아니니 추후연락이 갈때까지 기다려라~)
그시점 다른회사에도 계속 어플라이중이었고
워커힐호텔과 그리고 같이 진행했던
새로 오픈하려고 준비중이었던
마포에있는 l호텔에 최종합격하고
입사해서 2년가까이 다니다가,
2010년 6월 지금 항공사에서 처음 모집한 한국승무원1기 채용공고를 보고 들어갔어요‥
근데 참 재밌는것이 그 무렵 캐세이퍼시픽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연락이 왔어요‥
1년8개월만에 메일이 왔는데
(미안하다‥입사할 마음이 있으면 8월에 다시 인터뷰를 보기를 기대한다 ~)
2008년 처음 채용당시 4000명 지원에
서류통과 초청장 받은사람이 2500명이었고
홍콩에서 면접관이 와서 리츠칼튼에서 일주일간
서바이벌방식으로 면접진행을 했더랬습니다‥
최종에서 뽑힌 사람이 120명 대기자 20명
신체검사 마치고 비자와 조인만 기다리는중인데
홀딩 메일을 주고는 너무 시간이 흘렀으니
다시 파이널 면접을 보겠다는겁니다‥
두회사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입사가 확실한 지금의 회사로 결정
최초 지원자 2000명중 최종 23명이 쿠알라룸푸르로 2010년 8월에 떠났습니다‥
떠날때 딸이 2년만 일하고 돌아오겠다는거
거기서 남편을 만나니 이젠 아예 눌러 사네요..^^
만약에 홍콩으로 갔다면,
어찌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남편을 못 만났으리란건 확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은 울 사위는
어머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합니다‥
내가 홍콩보다는 쿠알라룸푸르로 가는것이 낫겠다고
조언했었거든요‥^^
호텔에서 온갖 진상고객들 상대하면서
쌓은 내공^^으로
언제나 밝고 친절한 미소를 무기로
지금 회사에 무난히 합격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끔 맞게방에서 따님 두신 분들 승무원희망하시는분들 좀 계시더라고요‥
아이가 공부는 못하는데.. 그럼서;;;
뭘해야겠냐고 승뭔은 어떠냐고‥
항공사 인터뷰는 살아있는 경험입니다‥
특히 외항사는 서비스 경력없으면 합격하기 어렵습니다‥
서류통과 인비받아서 1,2차 어치어찌 운이 좋아 패스한다해도
3차,파이널 2:1,혹은 1:1 면접은 무조건 일에대한
경험이 인터뷰 내용이거든요‥
순발력 침착함 위기대처능력 그런것과 제일중요한 서비스마인드를 봅니다‥더하여 강한 체력도‥
동료간의 화합이나..팀웍도 아주 중요해서
이기적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합니다...
일이 고되고 시니어티리도 있고
(특히 칼 아시아나등 국적항공사는더합니다‥)
아‥이게 아닌데‥하면서 얼마못하고 퇴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찌보면 최고의 소양을 요구하는 직업인지도 모릅니다..
파일럿처럼 매년 자격시험도 따로 봅니다‥
통과 못하면 한번의 재시험 기회,
그것도 탈락이면 바로 퇴사해야합니다‥
사위는 8월에 시험보았고,
딸은 이번주에 시험이 있습니다 ‥
세상에 쉬운일은 없지요‥돈버는일은 다 어렵습니다‥
외모에 대한 이런저런 편견도 있고
머리가 비었다느니@@
식당서빙녀이다‥ 된장녀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선 시장에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어하는‥
그리고 한때는 재벌가 사모님들이 며늘감으로 좋아한다는 시절도 있었지요만‥
글쎄요‥
딸아이는 그런이야기에 예전엔 질색팔색‥
지금은 웃지요..
그냥 직업인일뿐입니다‥
우리 딸 인생 참 드라마틱하지요?
외국남자와 사랑하며 결혼한 이야기는 더 드라마틱합니다
다음번에 시간이 되면
그 이야기도 한번 써볼게요~~~
사진은 아즈란오스만라니 에어아시아x사장과
2011년 회사 행사에서,
아래 3년이 지난 올해초(유부녀^^)기내에서~
그리고 2013년 6월 서울에서 남편과 웨딩사진
그리고 현재 프놈펜 사진들~~~
※사진 내렸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수 있어요‥
친절한 마음씨 착하고 남을 돕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리고 어학공부도 꾸준히 잘 해야겠고요‥
왜 내가 이 일을 가지려 하는가 ‥반문하면서 노력하면 이룰 수 있어요‥
행운을 빌어요‥
@미네르바 고맙습니다
행운이 있길바래요~^^
따님 잘~~~키우셨네요^^야무지고 똑똑하고 이쁘고ㅎㅎ
네 고맙습니다 ‥
제가 복이 많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참 야무진 딸이네요.
잘키우셨어요.
사내결혼 했나봐요.
홍콩 항공사 근무하다 그곳에서 영국의 귀족가문 출신 파일럿이랑 결혼 한 친구가 생각나네요.
사는 곳은 홍콩, 별장은 시드니, 애들은 이튼스쿨..
그때 나랑 같이 가자 했는데
같이 갔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요? ㅎㅎ
담달 저도 프놈펜 가요.
괜히 더 반갑네요. ㅎ
네 사내결혼이요‥
전혀 뜻하지 않았는데 운명처럼이요‥
울 사위는 가문이 아니라 혼자 노력하며 이룬것이고요‥
지금은 캄보디아 신생 항공사 부사장으로 있습니다‥
아‥운항도 합니다‥
얘네들은 사는곳이 여러군데 입니다‥쿠알라룸푸르가 본거주지이고 프놈펜은 사위 직장때문에‥ 여기선 레지던스호텔에 장기투숙이고요‥
한국엔 일산에 탄현제니스에 있어요‥
그렇게 떠돌이 인생이라 어려움도 있지요 그래도 젊으니까 할 만 하고요‥ 손녀딸 교육 들어가면 딸은 또 어디든 옮겨가겠지요‥
네 프놈펜 슬로우시티‥
저는 좋습니다‥
웃는 얼굴의 미소가 정말 아름답네요.
딸이 너무 너무 멋지네요~^^
감사감사요~
여기 지금 비가.몹시 내려요‥
바람불어 시원하기도 합니다‥
자기가 가진 꿈을 이루어간 아이입니다‥..
10년을 일하고 이젠 아이 키워요‥
수앤이가 아빠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엄마 닮은 것 같기도 하고...그러고 보니 두 분이 묘하게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사진 보니 늠 좋네요~
똘똘한 따님 복덩어리네요~
하하
알바님 고마워요‥
둘이 적당히 섞었지요‥
지난번처럼 수앤이 수영장 끝내고‥
지금 바깥으로 나갑니다‥
@미네르바 아이고 귀여워라~
수앤이 튜브 우리 몬돌이랑 커플이네요~ㅋㅋㅋ
@쟤시켜 알바 어 사진 올리는 새 사진이 바꼈어요 ㅋㅋㅋ
건강해라 기요미~
@쟤시켜 알바 아 ‥예 저위에 같은 사진이어서요‥
그러네요.. 몬돌군 아니지 리틀 보검군과 커플이군요~ㅎ
정말똑똑하고 야무진 따님이네요 부럽네요
네네..댓글 고맙습니다‥
님도 늘 행복하세요~
정말 멋지네요.. 감동입니다.. 저번주 쿠알라룸프르 다녀왔는데 에어아시아항공 타고 한국 왔는데....얼굴이 비슷한 승무원분 본거 같아요~~~ ㅎㅎㅎㅎ
네‥
딸램 6년근무하고 작년에 퇴직했습니다‥
한국인 승무원 1기 였고요‥
1기에 천사선배가 있다는 전설이‥
많은 후배 크루들이 함께 일하고싶은 선배 1위였다고요‥
지금은 아기 열심히 키우고 있습니다‥고마워요 ‥
따님 미소가 엄마를 닮았네요
참 잘 키우셨어요 손녀도 이쁘구요
알아서 인생을 개척한 따님 그 뒤에는 미네르바님이
정신적 지주로 굳건히 버텨주셔서 저렇게 잘 자란것 같습니다.
아이고 과찬이시고요‥
저는 그저 최선을 다해서 돕고 싶었어요‥
부모가 자식을 아무리 사랑한다한들 부모가 해줄 수 없는 사랑도 있고요‥
대신 자식이 부모뜻에 따라 잘 커주고 사회에 제 몫을 다하면 고맙고 감사한일이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댕이님 기분이 좀 나아지셨나요?
달달한것드시고 잠도 층분히 자도록 하세요‥덕담 감사합니다‥
아 저도 버나비랑 써리에 살았었는데 캐나다 유학 이야기 들으니 반갑고 나름 치열하게 살았던 제 캐나다 시절 생각도 나요.. 시니어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했었구오. 저도 그때 이 악물고 고생했던 거 발판삼아서 외국회사 취직해서 그 곳에서 지금의 남편 만나 따님 계시는 곳 멀지않은곳에 터잡고 사는중이랍니다. 많이는 아니어도 조금은 비슷한 느낌^^ 아마도 따님이 열심히 사시는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았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도 힘들땐 부모님 생각하며 버텼거든요.. ^^
네네 ‥딸이 캐나다에 있을 때 두어번 방문해서 버나비에 사는 동생이랑 같이 빅토리아며 록키 여행하던거 생각납니다‥
인생님도 참 열심히 사셨네요‥
댓글 주신거 감사합니다‥
따님이 참 멋진 여성이네요. 아마도 글쓴님이 좋은 엄마라서 딸을 그렇게 키우셨겠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