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에 칸 영화제에서 배우 송광호씨가 '브로커'란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쾌거를 뉴스로 보았는데, 그 영화의 내용이 아기 입양을 두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란 것을 알고는 큰 경사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뒤끝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실패한 사업이긴 했지만 모닝글로리 문구 매장을 달라스에서 열고 있을 때였다.
직원들은 필드 영업을 나갔고, 내가 매장을 보고 있던 오전, 매장 문을 열고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백인 여자가 들어섰다. 매장 상품들을 꼼꼼히 둘러보다가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물었다.
"한국 전통놀이에 관련된 물건은 없나요?"
자연스럽게 왜 한국 전통놀이 물건을 찾느냐고 물었고 그 대답은,
"한국 입양아들과 주류 아이들을 데리고 여름 캠핑을 가는데, 매번 미국 아이들이 잘 아는
게임들만 하곤해서 이번엔 한국 전통놀이를 한번 소개해보고 싶어서요."
'우리 매장에 그런 제품이 뭐가 있지?'
생각해보니 아쉽게도 매장에 있는 물건 중에 우리 전통놀이라 할 만한 것은 공기밖에 없었다.
입양아들에게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전통놀이를 가르쳐주고 싶어하고, 놀이를 통해 자부심도 심어주고 싶다는 그 고마운 뜻에 가슴은 감동의 물결로 일렁거리는데, 준비된 것이 별로 없으니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만 앞섰다.
"공기놀이 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는지 배워볼래요?"
공기통을 헐어 공기를 진열대 사이 매장 바닥에 흩어두고 그녀와 내가 매장 바닥에 마주 앉았다.
"자, 처음엔 이렇게 한 알을 위로 던지고 그 사이 바닥의 한 알을 얼른 주운 다음 내려오는 돌을 받고... 그렇게 하나씩 다 줍고 받으면..."
시범을 보여주는데, 사십년도 더 전의 추억들이 휙휙 머리 속을 지나갔다.
골목 땅바닥에 앉아, 오직 이겨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공기돌을 던지고 받던, 마지막 점수를
낼 때는 어떻게든 많은 공기돌을 받아보려고 손등을 최대한 오목하게 만들던, 던진 돌들이
흩어지지 않게 집중해서 위로 던지고 그 돌들을 한 손에 움켜잡으며 오점!!이라 외치던 기억들이 골목 친구들의 얼굴과 겹쳐지며 휙휙 지나갔다.
"와우~ 베리 굿!!"
이젠 투박해진 내 솜씨에도 그녀는 감탄사를 연발해주었고, 공기놀이를 가르치던 나는 더욱
신이나 열심히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녀도 금방 나에게 배운 것을 시도해보았지만
실수 연발...
"처음 배운 솜씨로 그 정도면 아주 잘 하는 겁니다~!"
실수가 웃음을 만들고 서로에게 이방인인 그녀와 나는 어느새 서로 하하호호 웃으며 공기놀이를 통해 친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사무실에 있던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나와 인터넷 동영상으로 제기차기, 비석치기, 윷놀이 등등을 보여주며 서툰 영어로 한국 전통놀이에 대해 설명해주다가, 한국 전통의 종이접기 같은 것은 없냐고 물어, 전통 종이접기는 아니지만 내 비장의 종이접기 하나를 가르쳐주겠노라며 폴짝폴짝 뛰는 개구리접기를 가르쳐주었다.
그날 오전 내가 판 것은 공기놀이통 두 개, 합 3불이었지만, 나는 그때까지 내가 판 어떤 것들보다 더 귀한 것을 판 것 같은 뿌듯함에 한참 동안 즐거웠었다. 그러나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었던 것은 한번 보지도 못했던 그녀가 돌본다는 그 입양아가 가슴에 얹혀있었기 때문이었다.
OECD 가입국 중에 해외입양아 수가 가장 많은 나라. 콜트 아동 복지회에 아이들 수출국으로 저개발 국가들과 나란히 이름이 올라있는 대한민국.
개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조 단위의 예산을 쉽게 편성하는 대한민국에서 인구도 급격히 줄어든다는데, 이젠 이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만큼은 이 땅에서 책임지면 안 될까?
입양할 마땅한 부모를 못 찾는다면 국가가 책임을 지는, 그래서 나라가 나를 버렸다는 원망만이라도 듣지 않는 국가였으면 참 좋겠다.
첫댓글 맞아요.
아이는 국가 재산이기도 한데
함부로 대한다 싶습니다.
출산율이 낮아 걱정이기도 하네요.
입양해서 고국의 놀이까지 챙기는
분들의 마음이 참 곱습니다.
지언님 말씀이 맞습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행복한 아이들이 풍성하게 자라나야 합니다.
입양아가 많다는 건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말씀처럼 인구도 점차 줄어드니 이젠 국내 입양을 추진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서양 손님에게 공기놀이를 가르치는 마음자리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오네요 ㅎㅎ
가장 간단히 할 수 있는 게 제기차기인데 그것도 갖추어 놓으면 찾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재미와 사색의 길에서 쉬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옛날 살기 어렵던 시절도 아니고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지금도 해외입양아 숫자 상위 국가에 등재되어 있다는 것은 모순이자 국가의 큰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후에 제기들도 가져다 놓긴 했었습니다. 10년 전에 그 사업은 접었지만, 그날 일어났던 그 일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도 마음에 와 닿습니다만,
내용 역시, 우리 모두 함께 생각해야 할 문제이지요.
한국 전통놀이라고 하니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오징어 게임' 이라는 것이 떠 오릅니다.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 썼다는 자부심 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민들의 올바른 가치관과 정서함양입니다.
정신적인 문화와 안간애적인 관계를 생각해 봅니다.
불특정 다수가 오는 카페라지만,
수필수상방 만큼은 정과 질서가 흐르는 곳입니다.
마음자리님, 감사합니다.
그동안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고 인문 강국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이 넘치고 질서가 잘 잡힌 수필수상방에 끼워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입양한 아동의 양부모들이 세심하게 아동의 처지를 헤아리며 열심히 키워주는 이들이 많지만,
더러는 자신의 생각이나 방식과 맞지 않다 싶으면 홀대하는 경우도 많아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고 하네요.
2000년부터인가 양부모의 신분을 절로 따르게끔 제도화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양부모가 그 절차를 밟아주지 않으면
성장후 뒤늦게 자신의 신분이 불체자인 것을 알고, 난감한 입장에 놓이기도 하는 모양.
다행히, 손님으로 찾아와 우리의 공기놀이를 배워가신 그분은 입양한 아이에게 참 좋은 양모인 것 같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그날 찾아온 손님은 인상부터 참 착해 보였습니다. 공기놀이 가르쳐주니 너무 재미있어 해서 저도 더 신이 났지요. 그 손님 떠나고 난 후 여러가지 생각에 한참을 멍하게 그 손님이 머물다 간 자리만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한때 외국에 모닝글로리 빅 히트 였던 시절이 있었지요
막차를 타셨나 보군요
다행히 공기가 있어서 가장 좋은 놀이 였네요
네. 사연이 많습니다만 차차 이야기 풀 기회가 있겠지요.
공기는 저도 어릴 때 즐겨하던 것이라 그 솜씨가 남아 있더라구요. ㅎㅎ
이번 추석에 온가족이 모여서
성당 가는 길에 늘어진 아카시아 잎을 따서
잎치기를 하였어요.
가위바위보 하면서 이긴 사람이
먼저,잎을 엄지와 검지로 처내는 게임 이었지요.
사위,딸, 외손녀 고3, 외손자 중2
큰아들과 며느리 우리부부
게임에서 승자는 사위였고
끝은 큰아들이 되어
저녁 간식을 마련하고 달 밝은 명절을
평화롭게 보냈습니다.
우리만의 놀이 문화가 정겹고 유쾌한
가족 화합의 오락이 됩니다.
저도 잎치기를 즐겨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삼대가 어울리는 잎치기 놀이 아주 재미있었겠어요. 추석에 즐기기에 딱 좋은 놀이 같습니다.
아프시다는 허리는 많이 좋아지셨나요?
마음자리님. 한국의 전통놀이를 현장에서 가르쳤군요.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요즘도 한국은 아기들을 수출하는지 궁금하군요.
직접 시범보이며 가르쳐 보람이 있었습니다. 입양은 예전 그대로라고 하네요. 안타깝습니다.
지금은 없어 졌지만 역삼동에 서울 영아 일시 보호소라는 미혼모가 낳은 영아들이 입양 가기 전까지 보호라는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5년 정도 한적이 있어요.
신생아부터 돌 전 아기들 였는데요. 아기는 천사라는
말이 딱 맞는데 생활 환경에 따라 아기들이 인생이 달라지니까요.
양부모로 부터 조국의 공기놀이를 배우는 아기는
그나마 축복받은 아기 같아요.
같이 할 수있는 공기놀이를 가르쳐주셔서 넘넘 잘 하셨신 것같습니다.
아... 그런 봉사활동 이력이 있으셨군요. 한명 한명 정성들여 돌보다가 멀리 떠나보낼 때가 제일 힘들다던데... 오년동안 애 많이 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기놀이 그 일은 보람과 안타까움이 함께했던 경험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그후로 고국의 놀이들에 관심을 가졌기를, 이번 오징어게임이 에미상을 휩쓸 때 우리처럼 같이 기뻐했기를 바래봅니다.
좋은글 감명 깊게 잘 읽고 마음에 담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