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보약 매실(梅實)
예로부터 망종(芒種ㆍ6월 5일 무렵) 이후 수확한 매실(梅實)이 최고의 효능을 갖는다고 한다. 올해 6월
매화(梅花)의 열매인 매실 수확기를 맞아 대형마트나 전통시장에 가보면 과일코너에 매실 박스가 쌓여있
으며, 가정에서는 매실 엑기스, 매실식초, 매실 장아찌 매실주(梅實酒) 등 ‘웰빙 건강식품’을 만드느라 분
주했다. 매실(plum)은 씨앗이 든 핵과류(核果類)로 원산지는 중국의 사천성과 호북성의 산간지라고 알려
져 있다.
매실(매화)나무는 장미나무과(科) 앵두나무속(屬)에 속하는 낙엽교목이며 키는 5m 정도 자란다. 줄기는
굵고 거칠며 검은색이지만 어린가지는 초록색이다. 잎은 어긋나고 난형이며, 잎 가장자리에는 뾰족한 톱
니들이 나 있다. 꽃은 이른 봄에 흰색 또는 연분홍색으로 피는데 향기(香氣)가 강하며, 잎겨드랑이에 1-2
송이씩 달린다. 매실의 성분은 수분 85%, 당분 10%, 유기산 5% 등이다. 유기산(有機酸) 중에서도 시트
르산(구연산) 함량이 다른 과일에 비해 월등히 많다.
시트르산은 섭취한 음식을 에너지로 바꾸는 대사(代謝)작용을 돕고 근육에 쌓인 젖산을 분해해 피로를
풀어준다. 또 칼슘의 흡수를 촉진하는 역할도 한다. 매실의 자극적인 향(香)을 내는 피루브산은 간(肝)의
해독(解毒)작용을 도와준다. 카테킨산은 장(腸) 속의 유해세균 번식을 억제해 염증(炎症)을 예방한다. 또
한 매실에는 같은 무게의 사과보다 칼슘은 4배, 철분이 6배, 마그네슘은 7배, 아연은 5배 이상 많이 들어
있다. 매실은 보기만 해도 갈증(渴症)이 해소된다는 망매해갈(望梅解渴)이라는 말이 있다.
매실은 과일 중에서도 약으로 여겨질 만큼 피로회복을 돕고 강한 해독(解毒)과 살균(殺菌)작용이 뛰어
나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녹색보약(綠色補藥)’이라고 불리 우는 과일이다. 매실의 뿌리는 매근(梅根)
가지는 매지(梅枝), 잎은 매엽(梅葉), 씨는 매인(梅仁) 이라고 하며 모두 한약재(韓藥材)로 쓰인다. 꽃말
은 ‘고귀한 마음’, ‘인내(忍耐)’이다. 매실은 가공법에 따라 오매, 금매, 백매로 나눌 수 있다.
오매(烏梅)는 청매실의 껍질과 씨를 벗긴 다음 짚불 연기에 그을려 말린 것으로 임금이 대신들에게 내린
청량음료(淸凉飮料)인 ‘제호탕’을 만들 때 사용한다. 오매는 가래를 삭이고 설사, 구토, 갈증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금매(金梅)는 매실을 증기로 찐 뒤 말린 것으로 주로 술을 담그는 데 이용된다. 백매(白梅)
는 매실을 소금물에 하루 밤 절인 뒤 햇볕에 말린 것이다. 백매를 입에 물고 있으면 입 냄새가 사라진다
고 한다.
매실을 날 것으로 먹으면 ‘아미그달린’이라는 독성(毒性)물질 때문에 많이 먹으면 유독 성분의 청산(靑
酸)으로 분해 되어 중독을 일으킨다. 매실은 술, 음식이나 약재(藥材)로 가공하면 청산 성분은 대부분 없
어진다. 매실은 신맛 때문에 과육(果肉)을 그대로 먹지 않는 거의 유일한 과일이다. 신맛은 구연산 등 유
기산(有機酸)이 풍부하기 때문인데, 이는 위장(胃腸)기능을 활발하게 해 소화를 돕고 식욕을 돋워주며,
피로를 풀어준다.
또 유기산에는 살균력(殺菌力)이 있어 여름에 일어나기 쉬운 식중독(食中毒)에도 효과가 있다. 매화는
9월에 꽃망울을 맺고, 그 상태로 겨울을 난 뒤 3월초부터 꽃망울을 터트린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고자라나면 5월부터 풋매실이 나돌기도 한다. 그러나 덜 여문 풋매실은 청산이 당과 결합되는 배당
체로의 형성이 끝나지 않아 오히려 몸에 해로울 수 있다. 또한 풋매실은 각종 유기산(有機酸)들의 함량
도 극히 낮아 매실로서의 완전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따라서 망종(芒種)이 지난 뒤 6월 초중순 경에 충분히 숙성된 ‘청(靑)매실’을 수확한다. 청매실이 2주가
량 더 익으면 붉은 노랑색을 띠는데 이것이 ‘황(黃)매실’이며 주로 장아찌용으로 쓴다. 매실은 다른 과일
에 비해 병충해(病蟲害)가 적은 편이다. 매실을 구입할 때는 신맛과 향이 진하고, 과육이 단단하며 표면
이 윤택하고 잔털이 많으며, 상처가 없는 것을 고르는 게 좋다.
‘매실엑기스’를 만드는 순서는 (1)매실 꼭지부분을 이쑤시개로 깨끗하게 제거한 후 물에 씻어 바구니에
담아 물기를 완전히 뺀다. (2)항아리에 매실과 설탕을 같은 분량으로 담는데, 맨밑에 설탕을 한번 깔아주
고 매실을 깔고, 또 설탕을 깔고를 반복하여 맨위에 설탕으로 잘 덮어 매실이 보이지 않게 한다. 설탕은
황(黃)설탕이 백(白)설탕보다 더욱 깊은 맛이 난다.
(3)유리병 또는 항아리 입구를 랩으로 잘 밀봉한 후 뚜껑을 닫고 온도가 일정하고 서늘한 곳에 둔다.
(4)두 달 정도 지난 후 매실을 건져내고, 매원은 한 달 정도 그대로 두어 숙성시킨다. (5)건져낸 매실은 얼
려두었다가 배가 아프거나 설사가 날 때, 등산갈 때 씹어 먹고 매원은 뜨거운 차로, 얼음물에 탄 음료로,
초고추장이나 소스를 만들 때 두루두루 쓸 수 있다.
매실주(梅實酒)는 담글 때 청매실을 물로 씻어 물기를 잘 빼고, 같은 양의 설탕을 넣어 2-3주 발효(醱酵)
시킨 다음 소주(燒酒)를 붓고 잘 밀봉해서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취향(趣向)에 따라 설탕에 발효시키지
않고 바로 술을 담그기도 한다. 매실로 술을 빚은 매실주를 더위 먹었을 때 밥먹기 전에 한 잔 마시면 입
맛이 돌며 식사 후에 마시면 소화가 잘 된다. 또한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
매실 장아찌는 (1)매실(1kg)은 깨끗하게 씻어서 물기를 말려 준비한다. (2)매실 꼭지 부분을 이쑤시개
로 제거한다. (3)과육(果肉)을 씨를 제외하고 4등분해서 준비한다. (4)매실과육과 설탕(1kg)을 섞어
열탕 소독한 유리병이나 항아리에 담아 밀폐 후 상온(常溫)에 15-20일 정도 숙성시킨다. 우리나라에
서는 신라(新羅)시대 이전부터 꽃(매화)과 열매(매실)로 사랑받았다고 한다. 꽃을 보기 위해 심을 때는
‘매화나무’ 열매를 얻기 위해 심을 때는 ‘매실나무’라고 부른다.
남녘에서 매화(梅花)가 피었다는 꽃 소식이 전해오면 우리는 비로소 계절을 실감한다. 매화가 사군자
(四君子) 중에서도 맨 앞에 호명되는 것은 겨울이 채 물러가기도 전에 더러는 눈보라 속에서 절개 있
게 꽃을 피우는 그 기상(氣像) 때문일 것이다. 사군자(四君子)란 매화(梅花)·난초(蘭草)·국화(菊花)·
대나무竹〕등 네 가지 식물을 일컫는 말이다.
매화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며, 난초는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
지 퍼뜨린다. 국화는 늦은 가을에 첫 추위를 이겨내며 핀다. 대나무는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추운 겨울
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한다는 각 식물 특유의 장점을 군자(君子), 즉 덕(德)과 학식(學識)을 갖춘 사람
의 인품에 비유하여 사군자라고 부른다.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에서 격조 높은 꽃으로 존중받았던 꽃이 매화이다. 다른 모든 꽃들은 날씨가 따
뜻해져야 꽃을 피우지만, 매화는 추운 날씨에서도 꽃을 피우고 그윽이 풍기는 향기(香氣) 즉, 암향(暗香)
을 풍기기 때문이다. 정원에 매화가 만개(滿開)하면 암향으로 가득해 진다. 또 매화는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일컬어 졌다.
매화를 유독 사랑했던 인물은 중국 송나라 임포(林逋)와 조선의 퇴계(退溪)이다. 임포는 세상에 나가지
않고 오직 매화와 학(鶴)을 기르면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퇴계는 매화가 피는 겨울 섣달 초순 임종(臨終)
하는 날 아침에 “매화에 물을 주어라” 고 했으니, 그의 매화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퇴계는 매화를 매형
(梅兄), 매군(梅君), 매선(梅仙)으로 부르면서 매화를 인격체(人格體)로 대접할 정도였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ㆍ1501-1570)는 매화에 대한 시(詩) 107 수를 지었으며, 생전에 이를 모아 ‘매화시
첩(梅花詩帖)을 편집했다. 제목부터 ‘매화(梅花)’인 시(詩)에서 퇴계의 시를보자
溪邊粲粲立雙條/(시냇가에 팔 벌린 매화두 가지)
香度前林色映橋/(그 향기는 숲으로 퍼지고 그 빛깔은 다리에 어룽어룽)
未伯惹風霜易凍/(찬바람에 서리 내린다 해도 쉽게 얼지는 않으리)
只愁迎暖玉成消/(하지만 햇빛 받아 꽃봉오리 녹을까 저어하노니)”라고 읊었다.
흔히 말하기를 매화는 늙어야 한다고 한다. 그 늙은 등걸이 용(龍)의 몸뚱어리처럼 뒤틀려 올라간 곳에
성긴 가지가 군데군데 뻗고 그 위에 띄엄띄엄 몇 개씩 꽃이 피는데 품위가 있다고 한다. 매화는 어느 꽃보
다 유덕한 암향(暗香)이 좋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를 벽에 붙여 놓고 봄을 기다렸다고 한다. 동 지(冬至)로부터
날짜를 세기 시작하여 81일간이 구구(九九)에 해당한다. 흰 매화꽃 봉오리를 81개 그려놓고 매일 한 봉
오리씩 붉은색을 칠해서 81일째 (3월 12일 무렵)가 되면 백매(白梅)가 홍매(紅梅)로 변하는 그림이다.
글/ 靑松 朴明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