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소낙비 내리는 천둥소리에 잠을 설쳤다. 일어나니 앞산으로 구름이 참 멋지다.
밤새 모기란 놈이 물어서 잠도 못잤다. 할무니가 왕골 부채로 부쳐주시며 내 배를 살살 쓰다듬어 주실제 살풋 잠이 들었다가 뒤채며 눈을 뜨니 얼굴 낯짝으로 멍석자국이 들어 우둘두툴했다.
마당 평상에서 할무니 무릎을 베고 잤는데 깨어보니 엄니 친구들이 울 집으로 마실오셔서 평상 가득 이야기들을 나누시는 소리에 일어나 마당 복판 멍석에 누워 은하수를 건너가는 견우직녀가 어디쯤 가고있을까 생각하다 그만 잠이 들었나보다.
부엌에 들어가니 보리밥에 감자가 섞혀 나왔다. 엄니가 내 밥위에 얹어주시는 누룽지를 냉큼 가져다가 마당가 평상에 앉아 먹는데 빨래줄에 나랩으로 앉은 제비들이 뽀르륵!~ 찌지배배 뽀르륵!~ 한다. 처마밑 제비집을 바라보는데 엊그제 새끼 깐 제비집 위로 노오란 주둥이들이 나란히 올라와 밥 달라고 서로 입들을 벌리고 야단이다.
햇볕이 나면서 들과 산이 깨끗하게 세수를 했다. 동네도 새동네같이 밤새 이뻐졌다.
"주열아, 핵교 가아자아~~~~." "응.. 나 밥 아적 못 다 먹었거덩." "알써 난 봉당에서 지둘릴겨."
주열아부지가 논꼬를 보시고 들어오시는지 삽자루를 어깨에 메고 막 삽짝거리를 돌아 마당으로 들어오신다.
"진지 잡수셨어유." "오냐.. 병윤이 핵교 가냐."
주열아부지가 샘가에 앉아 세숫대야에 세수를 하시는데 히잌????~ 입에서 틀니를 꺼내 닦으시는 통에 놀래서 얼릉 눈을 감았다.
주열이가 마루에서 책보를 싼다. 재는 맨날맨날 아침에 싸는지 몰러.
오늘은 방학식이 있어 오전수업만 하는데 주열이 책보는 불룩하니 한 짐이다. 바부팅이..
교문에 들어서면 어린이 행진곡이 아랫 강거리까지 울려퍼진다. 화단에 꽃들이 우리를 먼저 반겨준다.
"안녕 꽃들아~~." "꽃이 니 애기 들어줄까?" "아무렴. 조루에다 물들고 꽃 앞에 서봐." "???" "꽃들이 분명 팔을 흔들며 반가워한다. 너?"
난 꽃들하구 말을 주고받는데 주열이는 아닌가부다. 5-2반이 맡은 화단이 실한 이유를 주열이는 모르나부다. 분명 바부팅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때마다 괜히 목구녕이 먹먹해진다. 난 아무케도 애국자인가부다.
주열이는 경례할때도 다리를 벌려 뻐쩡다리로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만 아니믄 대갈통에 꿀밤이라도 냅다 질러주고 싶다.
??.. 주열이가 그 잠깐 사이에 또 졸고 서있다.
평소 몸이 약한 거는 알지만서도 한심할 지경이다. 뒤에서 정신 차리라구 떠다박질러 버렸다.
핵교 소사아저씨가 조선낫과 왜낫으로 번채로 깎은 화단이 참 이쁘다.
소사아저씨는 맨날 일꾼같이 말도 없이 일만 하신다. 그래두 볼 때마다 인사를 드렸더니 빵차가 오면 배급줄을 바꿔주시기도 하신다. 꼭 빵 때문이 아니다. 괜히 불쌍한 마음이 들고 어른이시니까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5학년에 올라와 반장이 되고나서는 핵교를 맨 먼저 일등으로 등교를 한다, 주번 완장부터 차고 교문앞에 나가서 서면 그제서야 동생들 손잡고 애들이 꾸역꾸역 등교길이 미여진다.
고얀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게 이상하다. 왜 완장을 차면 마음이 거만해질려구 하는지 모르것다. 동급생 애들도 괜히 내게 비굴한 웃음을 실실 짓고 하급생 애들은 두려운 눈으로 멀찌기 피해가고 왈패같은 지지바들도 교문앞에서는 갑자기 얌전해진다.
주열이가 동상 미열이를 교실에 데려다 주고 와서는 높은봉이 동네 애들끼리 편을 갈라 징어잡기를 하잔다. 강거리 춘식이한데 주번완장을 벗어주고 징어잡기를 신나게 하다가 그만 지지바들 꼬무줄에 걸려 된통 넘어졌다. 무릎팍에 피가 벌겋게 맺혔다.
경환이가 운동장 흙을 뿌려줬다. 그래도 더욱 따끔거려서 양호실에 가서 빨간 아까딩끼를 발랐다. 눈이 비둘기같이 이쁜 유관숙 선생님 앞에서면 이상 야릇한 향기가 나는 통에 정신이 혼미해지며 어지럼증이 온다.
매일같이 청소검사 맡으러 가면 교무실 복도 앞에서 두 팔을 벌려 못가게 하시다가 품에 꼭 안아주시면 기분 째지게 죽을 맛이다.
마라톤 대회마다 쫓아오셔서 간호사 그림이 뚜껑에 그려진 안티프라민이라는 박하향 향긋한 약을 장딴지에 듬뿍 발라주시곤 하시는데 그때도 기분이 붕붕거려서 뜀박질 칠때보담두 더 가슴이 야단질 한다.
유관숙 선생님 정성으로 매 대회마다 마라톤 일등을 놓치지 않나보다.
"누가 우리 병윤이를 이랬는고?" "아퍼유~~" "아유~~~ 이를 우째."
핑게 삼아 양호실에 누워 아침조회도 안나갔다.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찌르릉!!!!~ 하는 아침조회 종이 울리자 놀던 동작을 멈추고 각 반 줄로 찾아드느라 수선스런 소리가 아득히 들린다.
이곳 양호실은 참 좋다.
유관숙 선생님이 주머니에 살짝 넣어주신 박하사탕도 꺼내 먹고 어제 배급하고 남았는지 붕긋한 빵도 하나 내주시며 오성사이다도 병마개를 따서 주셨다.
히힛!~ 맨날 맨날 아프면 좋것다.
교장 선생님 훈시는 양호실에 누워서 들어도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다. 여름 땡볕 아래서 쓰러지는 애들이 양호실에 실려와도 애~~또. 애~~또. 하시며 뭔 말인지 못 알아들을 공자인지 공작새인지를 말씀하시는데 애들이 짝발을 하고 먼 산을 바라보다가 옆 친구와 발장난을 쳐도 맹자인지 맹꽁이인지... 그노무 애~또.
길고 지루한 조회가 끝나면 애들이 갑자기 새나라에 어린이로 바뀌어 씩씩해져서 들어간다.
운동장이 갑자기 고요해진다. 양호실 옆의 3학년 교실에서 풍금소리가 들려온다. 난 저 풍금소리를 들으면 오줌이 마려워지면서 갑자기 슬퍼진다.
어느 날은 핵교 끝나고 혼자 동네 뒤 고봉장둥에 올라가 마을과 넓은 저수지를 내려다보며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바다 보고싶어 강으로 간다.~
라는 동요를 부르다가 코가 먹먹해지고 목이 꽉 막혀서 혼났다. 그때도 분명 저 풍금소리가 귓가에 들렸었다.
노는 시간에 서로 타려고 다투던 그네도 바람을 태우고 흔들리며 쉬는 시간이고...
서로 기어오르며 장난 치는 엄니 품속같은 느티나무도 바람을 안고 낮잠을 자고...
교장 선생님의 애~~또 훈시용 스피커도 입을 닫고 고요한 핵교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양호실 건너 3학년 교실 앞 화단 해바라기는 아직 꽃도 벙글지 않았다.
양호실 창문 위로 한가로운 구름만 하릴없이 떠가고...
졸업식 때마다 강당이 되곤하는 교실 끝 6-3반 교실문은 언제나 조용하다.
이승복 어린이는 맨날 공부 안해도 선생님 꾸중도 안들으니 참 좋겠다.
핵교 전체가 너무 조용하다. 하.아..아..품!~
아.. 졸려라.
잠시 유년의 단잠에서 깨어일어나니 어느 이름모를 분교 운동장.
저 깨어진 유리창. 낡은 교실마루. 사태 무너진 화단.
방학하여 아이들 소리 끊긴 고요한 정적.
주열아, 저 세상에도 국민핵교가 있더냐? 너와 노닐던 유년의 핵교 마당에 서서 너를 그리워하노니...
이제 네 祭日이 가깝게 다가오는구나.
불쌍한 제수씨와 아이들을 저리 남겨두고 무엇이 급해서 하늘 먼 곳으로 그리 서둘러 갔느냐.
너를 조상하며 잠시 핵교 골마루와 운동장 느티나무 아래를 서성여 본다.
꽃들은 저리 너를 기다려 웃고있는데 그 어디에도 없는 다정했던 너의 그림자.
일간 너 잠들어 있는 고봉장둥을 찾으마. 내 술 한 잔 받고 오늘 못 다한 우리 눈물없던 그 유년의 이야기를 마져 나누자꾸나.
보고픈 내 초동친구 주열아,
그곳에도 국민핵교가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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