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단종애사의 사적지 청령포 트레킹
나루에서 배를 기다리며 물끄러미 청령포를 바라본다. 국가지정 명승 제 50호인 청령포는 그지없이 수려하고 아름답다. 청령포는 남한강 상류의 한 지류인 서강이 휘감아 돌면서 흘러 삼면을 둘러싸고, 포구 뒤쪽으로는 오직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산이 울룩불룩 맥을 형성해 전체 지형이 마치 큰 감옥처럼 되어있다. 도참에서 말하는 천옥혈이다. 스크류 달린 나룻배로 강을 건넌다. 모래와 자갈이 뒤섞인 길을 걷는다. 강가에는 억새들이 바람 따라 처용무를 춘다. 느림과 비움의 춤사위. 병(病)과 액(厄)을 내치는 율동에 시선이 멎는다. 비운의 땅에서는 저 억새들도 그렇게 재앙을 없애는 춤을 춰야 하지 않겠는가. 금송 숲을 지나 단종어소에 도착한다. 단종어소는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의거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어소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인물을 조성, 당시 생활상을 애면글면 보여주고 있다. 그럼 조선 제6대왕이었던 단종이 왜 여기까지 유배를 왔을까. 단종은 1441년 7월 23일(세종 23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원자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홍위(弘暐)이다. 8세가 되던 1448년(세종 30년) 왕세손으로 책봉되었다. 1450년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즉위하게 되자 그 해 7월 20일 왕세손에서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다가 1452년 5월 18일 문종의 승하 후 단종은 경복궁 근정전에서 12세의 어린나이로 제6대 왕에 즉위하였다.
그 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자, 1455년 6월 11일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5세에 상왕(上王)이 되었다. 이렇게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데, 박팽년 하위지 성삼문 등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김질의 밀고로 발각되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 1457년 (세조3년) 노산군으로 강봉된 뒤 1457년 윤6월 22일 첨지중추원사 어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창덕궁은 출발하여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 되었다. 단종은 이 삭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고독과 공포의 생활을 곰비임비 했으며,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길 지경이 되어 부득이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그런 경황에서 그 해 9월 금성대군(錦城大君) 유(瑜)가 다시 그의 복위를 꾀하다가 사사되자 단종은 노산군에서 소인으로 내려지고 결국 영월 유배 4개월만인 1457년 음력 10월 24일 유시(酉時 : 오후 5시에서 7시)에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17세의 일기로 승하 하였다. 이 때 사약을 진어 한 자는 금부도사 왕방연이었다. 역사에서 말하는 단종애사(端宗哀史)의 줄거리다. 숙부가 조카를 죽인다. 그것도 왕인 조카를. 단지 왕권을 잡기 위하여.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실 앞에 생각이 먹먹해 진다. 우거진 금강송 숲 우듬지 사이로 하늘이 힐끗 보이기도 한다. 흘러가는 구름, 강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 살그머니 흔들리는 나뭇가지. 이런 것에서 자극을 받지만 정신은 슬픈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어소 담장 내에 있는 담묘재본부시유지비로 간다. 이 비(碑)는 1763년 세워진 것으로 총 높이 162cm이고, 검은 돌 오석(烏石)으로 만들어 졌다. 앞면에는 ‘端廟在本府時遺址(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이다).’ 라는 글이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되어 있다. 그 뒷면에는 ‘영조 39년 계미년 가을 울면서 받들어 쓰고, 어명에 의하여 원주 감영에서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데크길을 따라 금표비로 간다. 금표비는 어소 북쪽에 있으며, 앞면에는 ‘청렴포 금표(淸泠浦 禁標)’라고 쓰여져 있고, 뒷면에는 ‘동서로 33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시나브로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된다.’ 이라 적혀 있다. 이 금표에 의해 청령포가 그나마 솔숲과 그 청정한 자연을 유지 할 수 있었다. 부근에 있는 관음송도 관람한다. 관음송(觀音松)은 수십년에서 수백년생의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선 수림지(松林)에 있는 거송이다.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었고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단종이 유배 생활 할 때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 때로는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이라 불리어 왔다. 나무 나이는 600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단종의 유배시에는 약 60년생으로 짐작하고 있다. 망향탑으로 방향을 트는데, 제법 세찬 바람이 불어 왔다. 소나무들은 부르르 떨더니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기울고, 그 순간 나도 기울면서 눈에 눈물이 고인다.
망향탑으로 가면서 단종이 지은 ‘문자규’라는 시(詩)가 떠 올라 여기에 옮겨본다. ‘한맺힌 새 한 마리 대궐에서 날아가 벽산에 외로운 그림자 되었네. 밤마다 자는 듯 잠 못이루고, 해마다 쌓이는 한 더욱 깊어져 울음마저 그친 산에는 새벽달이 창백하고, 골짜기에 핏물이 흐르니 꽃잎은 더욱 붉구나. 하늘은 귀를 먹어 피맺힌 절규 듣지 못하는데, 어찌 내 귀에만 이리 서럽게 들리는가.’ 정말 창자를 끊어 내는 듯한 단장의 비애로움이 깃든 시다. 망향탑은 청령포 뒷산 육육봉(六六峯)과 노산대(魯山臺) 사이의 층암절벽 위에 있는 탑으로 단종이 유배 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 할 수 없는 근심 속에서도 한양에 두고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비록 잡석으로 쌓아 올린 돌탑이지만 돌 하나하나에 단종의 붉은 사랑이 묻어 있는 것 같아 처연해진다. 이제 길을 내려와 포구로 나간다. 수백년의 세월에 녹아든 분노와 슬픔, 애절함 비통함이 서린 청령포 나루. 오후의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서강 푸른물에 물수제비를 날려본다. 행여나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단종애사에 내 마음이 닿을까 생각하며. 강을 건너면서 문득 조식의 칠보시(七步詩)가 뇌리를 스친다.
수천 년 전 옛날, 중국 위, 오, 촉 삼국 중 하나인 위나라 왕이었던 조조는 왕위를 맏아들 조비에게 물려주고 사망한다. 새 황제가 된 조비는 신하들의 이간질에 넘어가 조조 생전에 총애를 받던 조식을 죽이려 한다. 조비는 조식에게 ‘형제라는 뜻’이 들어가되 ‘형제의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시(詩)를 일곱 걸음을 걸을 때 까지 지으라고 명령한다. 이에 조식은 눈물을 흘리면서 저 유명한 칠보시를 지었다. ‘자두연두기(煮豆然豆器, 콩깍지로 콩을 삶으니). 두재부중읍(豆在釜中泣,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시동근생(本是同根生, 본시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상전하태급(相煎何太急, 서로 태우는 게 무엇 그리 급한가).' 그 칠보시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은 조비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조식을 살려 주었다고 한다. 그럭저럭 강을 건넌다. 오늘날에도 콩깍지로 콩을 삶는 일이 없을까보나. 아스콘 도로 곁에 왕방연의 시조비가 있다 하여 들려 본다. 청령포가 눈 안에 꽉 차는 목 좋은 장소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진어하고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며 읊은 시조이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중학교 때 암기해서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는 홍살문 같은 시조. 누구에게 인지도 모를 애처롭고 책망하는 그 부글거리는 눈길이 지금은 나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화들짝 놀란다. (끝)
첫댓글 이번 4월 13일날 대구문협에서 추진하는 국내 문학기행에
청령포가 있어 등재합니다.
상기 글은 수년전 영남일보 김찬일의 방방곡곡 길을 걷다. 에
실린 글입니다.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시기적절한 글 감사합니다.
국내에도 이렇게 방방곡곡 이야기가 숨어있는 명소들이 많다는 것을 또 느낍니다. 잘 읽었습니다
김찬일 시인님 문협 문학기행 길라잡이 해주셔 감사합니다.
김석 시인님, 방종현 수필가님. 잘 계시죠.
배려말씀 감사합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대구문협의 아름다운 문학기행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두분께서도 항상 건강행복하시고 문운이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관심과 좋은 말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참고가 되리라 여깁니다.
@문협사무국
문협 사무국 귀하.
안윤하 회장님. 회장되시고, 첫 큰 행사이므로 문협 회원님들이
많이 참석해야 된다는 뜻에서 청령포를 등재 했습니다.
김삿갓 문학관과 장릉 청령포는 매우 아름답고 문향이 물씬 풍기는
그리고 역사의 발자취가 살아있는 의미있는 코스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잘 선정하셨다고 느껴지고, 앞으로 더 많은
문협회원님들의 참가 신청이 있으리라 봅니다.
배려말씀 감사합니다.
김찬일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전에 충분한 지식을 갖고 여행할 수 있게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무팀들이 영월 군청에 안내 책자도 요청하여 구비해 두는 등
이병욱 추진 위원장님과 실무진들이 첫 사업이라 서툴겠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 번 다녀오신 곳이기도 하지만
한 곳에 함께 가서 공감대를 형성해 봅시다.
ㅎ
안윤하 회장님. 잘계시죠.
이번 국내 문학기행은 안회장님의 첫 큰 행사라서 더 많은 문협 회원분들이
참가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안내는 영월 군청에 문화유적 해설사 선생님을 배정해 달라고 하면
배정을 해줍니다. 그래도 그분들이 가장 정통하고 알찬 해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당일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불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해를 바랍니다.
나는 오랜 세월동안 등산과 트레킹 안내를 하였습니다. 만 각 시대마다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을 강조한 국내문학기행이 되면 더 좋은 국내문학 기행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모쪼록 관심과 배려에 감사드리며, 대구문협의 번영과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