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아랫글은 홍하사가 15년전 www.vietvet.co.kr "살아가는 이야기" 에 쓴글을 여기에 맞게 중요부분만 간추려 옮긴것이다.)
"꽁가이 이야기"---(5) (홍 진흠)
고보이 평야의 모기는 그 유명함을 넘어서
투과력이 모포 석장, 야전잠바 하나를 뚫고 들어온다고
소문이 난바 있다.
'왱~왜엥~ '
소리가 마치 건쉽(무장헬기)이 날아다니는 소리와도 같이
몸 주위를 맴돈다.
작전나가거나 매복서는 밤이되면
낮동안 쟝글에서의 강행군 피로로 말미암아 그대로 곯아 떨어진다.
호 파고 위장하고 총거치하고 크레모아, 조명지뢰 설치하고
수류탄 안정장치(1단계까지) 제거하고 병력 배치하기가 무섭게
쓰러지고만다.
세명이서 교대할때도 있지만 가끔은 막교대이다.
씨 레이션의 불랙커피를 생으로 혀에 갖다대지만
밀려오는 잠은 좀체 이길수 없다.
철모에 고무끈으로 메어둔 모기약은 한 십오분 정도는 약기운으로 달라들지 않지만
약효력이 떨어지면 또 다시 '왱~' 주위를 맴돈다.
얼굴을 문지르면 열두어 마리는 분해되고
이따금 하품을 하면 20-30마리씩 입안으로 들어온다.
그 와중에도 난 라디오를 갖고 다녔다.
아마도 매복이나 작전을 나가면서 라디오를 갖고간 병사는 나 뿐일것이다.
물론 이어폰을 꽂고 듣곤 했지만 적어도 내 계산은 호속에 앉은채로 꾸벅꾸벅 졸바엔 차라리
음악이라도 들으며 전방을 주시하는게 잠을 쫓는덴 상책이란 결론으로 낙착됐기 때문였다.
이따금 한번씩 조명탄이 올라오면 숙으려야함은 당연지사이고---
중대뒷산 올라가는 입구에서 1소대의 간부들(1소대장과 4개 분대장, 그리고 소대향도와 무전병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맹호 1R, 1BN" 를 '주월사' 에서 위문공연 왔을시 '박재란' 의 공연모습. 이쪽보는 이광우병장(분대원)은 '경남창녕'이 고향.
나중 알게된 둘쨋딸 Anh(안 16세)이며 "노앙"(월남사람들이 흔히 쓰고 다니는 모자)을 만드는 중)
장민지: "홍" 과 "안" 그리고 "앙" 이 마주 새겨진 손주건을보니 그녀의 느낌이 전해져 오는듯 가슴이 저리네요... 가슴 아프고
아리지만 소중한 추억 입니다.----한편의 영화로 만들어 졌으면 좋겠습니다----"인도 차이나" 처럼... -[08/18-04:26]-
(유공전우회 박천수전우 사모님이 밤새워 읽으며 꼬리글 달아주신 모습)
순종: 우와! 홍하사님 미소년같은 인상 그때 제가 봤어도 반했을것 같습니다. 로맨스 홍님. 글로벌한 로망이십니다 ㅎ
-[06/04-11:43]- (베트벳 안흥종전우 누이동생이 달으신 꼬리글입니다.)
그날 이후,
AN(앙)과 ANH(안)의 무언의 경쟁(?)속에 난 많은 갈등을 겪어나갔다.
두 사람 다 특색이 있다.
언니는 한마디로 순둥이다. 부잣집 맏며느리감으로 두리둥실한 성격에 한없는 착한 맘을 가졌다면
동생은 약간은 깍쟁이 타입의 그리고 끊고 맺음이 분명하다.
언니가 석가탑이라면 동생은 다보탑으로 비교가 될것이고
흔한 탈렌트로 비교한다면 언니를 "김희애"정도에 비교한다면 동생은 "전인화"에 비교함이 마땅하리라.
암튼 난 두사람에게 - 아니 그식구 모두에게 이젠 홍하사의 비중이 대단할 시기가 점점되어갔다.
혜성같이 갑자기 나타난 'Anh' 을 난 무시할수가 없었다.
특히 그녀의 영리함에 마음이 더 끌리게 됨은 무엇일까?
내가 그들과 대화함에 항시 누구보다 빨리 캣치해서 나름대로 그들에게 통역을 하는 모습이
먼저 알은 'An' 을 제껴 놓을듯 하다.
평생 반려자로써 저울질을 해 보잖을수가 없었다.
코 베어가는 서울로 데려와 그 험난한 한국의 세파속에 빠른시간에 적응하려면
동생이 더 낫지않을까 판단된다.
내가 마냥 착한 성격에 좋은마음씨를 가졌다고 누님들이 가끔 어떻게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려느냐고
좀 모질게 행동하라고 힐난을 가끔주곤했기에 반려자라도 좀 야무지고 당찬사람을 택해야됨을 알고있다.
차츰 동생에게 기울어져가는 내맘을 어쩔수없었다.
먼저 알은 언니에게는 다소 미안하지만 --- 이건 의리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좌로부터 김도훈박사,박남철전우,한호성전우(맹호),김성찬전우(백마공수), 홍진흠 하사 그리고 Anh(안)이 함께하다)
정부에서 일하시는 김박사님 중재로 13년전 "호치민市(舊 사이공) "득도성당 앞" 에서 39년만에 극적인 재회를 하고~
(편지가 왕래된(홍하사의 폰번호 011-9772-3408에서 현재의 010-8772-3408 로 바뀌고 난 후 연락이 두절된 상태)
Me T'Aspro Mou Mantili - Nana Mouskouri (하얀 손수건 - 나나무스쿠리. 1967)
---계속---
첫댓글 난 사실 淑에게도 이렇게 거액을 들여 사준적이 일찌기 없었다. 언젠가 한번 일본을 다녀오면서 화장품 Set 가 아닌 낱개로 사준적은 있었으나 이보다 훨씬 값이 저렴하였다. 솔직히 이번에 베트남에 갖고간 淑이가 사준 화장품은 홍하사 시간당 수당의 오십배쯤에 육박한다. 정말로 나는 이점에 있어선 바다만큼 넓은 마음을 갖인 울淑에게 진정 감사함을 표하고저 한다.(전우님들! 혹시나~ 하실까봐 이글을 당시 베트남을 다녀오면서(16편글 中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