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혜 목사님 말씀 중).
막16:1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
무덤에 들어가신 예수님이 살아나셨는데 우리는 이것을 잘 이해를 해야 한다.
예수님보다 먼저 무덤에서 나온 사람이 나사로다.
요11: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서 나왔으나 그 육신의 목숨을 죽었다 그러나 그는 영생자다.
코로 숨 쉬는 것이 산다 하지만 그것은 육신만,,, 그러나 몸 안에서 영혼이 있어서 이것이 사는 거다.
우리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 그 그릇에 담긴 영혼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영혼이 중요함을 깨달으라고 육체를 꼬집는 시험이 있다.
예수님이 살아났다 하는데 본문을 통하여 보편적인 진리보다 더 큰 은혜를 받으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성경 전체는 부활의 복음이다.
껍데기는 예수님이며 그 속은 그리스도시다.
예수는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분이며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다시 사는 새 호흡을 주실 분이다.
예수 예수 하면서 표적과 증거만 처다 보았는데 이것은 첫번째 것으로 영을 살리기 위하여 보여준 것이다.
고전1: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고자 함이 아닌 것을 필요하다고 땡기는 신앙으로 갈 것인가?
하나님을 내가 너를 보배롭게 여겨 너는 내 것이야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어,,, 이런 존재로 갈 것인가?
부활도 주님이 살아나셨어 우리는 안 죽어! 이런 의미보다 훨씬 첫째 것이 무너지는 것이다.
내 육의 사람이 무너져야 두번째 영의 사람이 소생한다는 의미다.
예수님이 첫번째 당신의 몸을 통하여 말할 때 두번째는 그리스도로 말했다.
계22:13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알파가 첫번째요 예수요 앎이요 지식이지만 그 지식으로는 안된다.
욥이 알파의 삶을 살았으며 처음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시험을 당했으며 저와 여러분도 다 욥과 같다.
첫번째 것으로 열심히 하는 알파가 깨어지고 오메가가 두번째인 그리스도가 성령이 내 심령에 와야 한다.
성령이 내 심령에 기둥처럼 있으면 안 흔들리며 이것이 그리스도시다.
이것이 에너지로 그것이 부활이요 살았다는 증거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감성이 풍부하고 인정이 많고 자존심만 쎄서 형식 외식 포장이 많고 네모 반듯하다.
앎이 실존이 되어야 한다 곧 실지 존재하는 성령이다.
예수님 살아났다 하는데 그 지식과 나와 뭔 상관이 있어요? 내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면 기념한 것뿐이다.
예수님의 삶이 우리에게 너도 살아! 이것을 말한다. 곧 내가 죽어야 살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을 예수로 표적으로 말한다면 두번째는 우리 심령으로 들어와야 한다. 성경도 아무리 읽어봐야 첫번째 거다.
내 안에 들어온 그것이 에너지요 실존인데 여러분이 지식은 있었는데 말씀이 없었다는 거다.
그것을 처음이라 하며 처음 신앙은 표적 신앙이요 나중은 두번째 신앙은 진리의 앎이 삶이 된다.
근원이 처음 하늘 처음 땅이라면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는 것이다.
표적과 증거만 보고 간다면 내가 지금 처음사람이다.
아 나를 사랑해서 그랬구나 나의 앎이 지식이 궁극적으로 오메가로 실존으로 내 안에 진리의 성령으로 오시길
원하셨구나! 이것이 여명으로 비취면 열어진다.
처음을 시간으로 본다면 크로노스 내가 인생으로 사는 시간 두번째 카이로스 하늘의 시간 내가 잡을수 없는 시간.
아브람-> 아브라함. 사래-> 사라. 야곱-> 이스라엘. 개명을 해야 한다 곧 본질이 변해야 한다.
그래야 숨구멍이 열리는데 육신의 크로노스의 숨이 아닌 심비에 말씀이 와서 하늘이 열렸다는 거다.
안 보이는 것을 가르친다는 게 어렵지만 영은 하나라 끝에 가면 똑같아진다.
창조세계 있는 만물은 먼저 하나님이 만들었을 때 우리 두번째 사람에게 주시기 위함이다.
창조도 베레쉬트 바라,,, 바라창조(하나도 없었는데 창조) 앗사창조(두번째 우리 창조는 있던것이 새롭게 됨).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기에 만들어서 있었는데 이것이 처음 하늘이며 처음 땅.
두번째로 만든 창조가 앗사(빗였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빗었는데 우리의 힘이 들어감으로 같이 빗는 거다).
막16:1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여자들이 먼저 오는데 여자는 밭이며 교회의 표상으로 교회가 만들어졌음을 말한다.
제일 처음 온 여자가 막달라 마리아 릭네임 일곱 귀신 들린 여인.
막16:9[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요20:1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16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8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일곱 귀신 들림은 완전한 구원을 말하는 것이며 부활의 표적을 처음으로 보았으며 완전히 치유,,,
일곱 귀신 들렸다 하면 완전하게 다른 말이 들어가 있는 곧 나를 말한다.
간음한 여인을 보고도 저 나뿐년 하는데 영의 눈이 열림으로 내가 간음했음이 보인다.
요8: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안 열렸으며 자랑질하고 잘난 체 하고 판단하고 했을 건데,,,
내가 목사라고 성도들 등이나치고 간이나 뺄건디 그러나 그건 아니다.
성경은 신묘막측하여 읽으면 나의 옛사람이 들통이 난다.
처음 기도할 때는 난 그래도 괜찮은데!? 요것을 가지고 나갔으며 사람 앞에 보이는 신앙이었다.
깨어지고 나니 내가 보이고,,,
한꺼번에 깨어지면 좋은데 십자가로 계속가면 계속 깨어진다.
오늘 전하고 싶은 말씀은 도의 초보를 버려라.
히6: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구원받는다 거듭난다 새 창조다 부활한다,,, 다 같은 말인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목적은?
그럼 이 말하는 단어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오면 구원이야 거듭나 부활해 영생 새 창조야!히브리서 6장은 이것을 말한다.
제발 초보적인 것을 버려라! 그러니까 내 자아가 깨어져야 일곱귀신이 나가면서 초보가 버려진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간만 갈 뿐 제발 자신을 유심히 보면서 나 이러네요,,, 발견될 때마다 나간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내가 뱀 독사 나에게 무슨 귀신? 유대인 바리새인들도 독산데 우리는 아닐까 봐?
뱀의 물이 들어와서 뱀의 신앙으로 혼탁(바벨)하다. 그것을 말한다.
완전한 (5047 텔레이오테스. 상태의 완전, 현존이 실존의 완전). 곧 기둥(에너지체)이 나에게 들어와야 한다.
가짜는 들어 나는데 교회 안 나오면 벌 받을까 봐? 그것 아니다
어린아이 일 때 표적으로 이제는 장성한 자로 선악을 분별하며 가야 한다.
히5:13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계속 환경을 통하여 십자가로 기도하며 가면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자요 완전한 데로 나간다.
나갈지니(5342 훼로. 생기게 하다, 계속하다, 참는다, 감당하다). 곧 십자가가 들어가는 거다.
우리의 첫사람 첫증거 처음하늘 첫 믿음 육의 사람 땅의 사람 일곱 귀신 내 신앙이 깨어지는 것이 부활이다
고전13: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이게 재림이며 강림 파루시야 엘코마이 임마누엘 주님이 나와 함깨 하심이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데 세상이란 단어도 두 개가 있다.
코스모스도 주안에서 성막 뜰만 밟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세상이다.
(카타볼레- 들어서 던져 버리다), 나의 옛사람을, 처음 하는 신앙의 행위를 들어서 던져 버린다.
그래야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요단을 건너야 본향 새 하늘 새 땅,,,
계2: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처음강은 홍해로 모세를 따라 그냥 왔다면 두번째 요단강은 자가 죽음을 빠져 죽어야 한다.
성경은 일관되게 한 맥으로 나의 첫 사람이 두번째 사람 되는 것으로 그러기 위하여 십자가가 필요하다.
안 죽으면 옛사람 기질 성품 감정 꼬라지 욕심,,, 타락한 본성이 그대로 나온다.
곧 십자가로 끝까지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