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그 이상의 가치 BMW NEW 5 SERIES. ![]() |
더 가볍고 강력해진 직렬 6기통 3.0L 엔진을 얹은 BMW 5시리즈 마이너 체인지 모델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났다. 3일 동안 1,380km를 달려야 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직렬 6기통 엔진은 부드러움과 정교함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새 5시리즈의 옹골찬 달리기는 사막의 강렬한 태양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 |
지난 5월 13일, 한국과 미국 미디어를 대상으로 한 BMW 5시리즈 마이너 체인지 모델의 론칭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11시간을 비행 후 라스베이거스 공항을 빠져나오자 작렬하는 태양빛이 아무런 여과 없이 머리를 후려쳤다. 뜨거운 열기와 눈물을 찔끔거릴 정도로 공격성이 강한 태양빛 때문에 약간은 아연해졌다. 이렇게 뜨거운 곳에서 미디어 론칭 및 시승 행사를 하다니, 새로워진 5시리즈로 잭팟을 터트리겠다는 속셈이었을까. 진정한 변화는 심장 속에 있다 주차장에서 기자들을 호텔로 안내해 줄 뉴 535i를 처음 만났을 때 차가 주는 감흥은 크지 못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의 폭이 아주 작기 때문이었다. 앞쪽의 에어 인테이크 양끝이 이전 모델은 밑을 보고 있었는데, 2008년형은 미소 띤 입 모양처럼 위로 올라갔다. 때문에 끝을 위로 뽑아 올린 헤드라이트와 더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역사다리꼴이었던 2개의 세로 바도 없애고 크롬을 입힌 1개의 가로 바로 단순화했다. 리어램프에는 5개의 붉은색 라인을 긋고 깜박이에 LED를 박아 넣었다. ![]() 실내는 X5에 선보였던 조이스틱 형태의 스텝트로닉 기어 노브가 눈에 띈다. 레인 디파처 워닝 시스템 버튼이 더해진 스티어링 휠의 디자인도 약간 바뀌었고, 윈도 버튼도 암레스트로 내렸다. 이 정도다. 조금이라도 생경해야 할 새차와의 첫 만남이 낯설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이 같은 5시리즈의 소심한(?) 변화는 이미 예견된 일일지도 모른다. 5시리즈 이전 모델들도 큰 변화의 화장은 없었다. 하지만 새차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외관도 실내도 아니다. BMW가 침이 마르고 닳도록 자랑하는 직렬 6기통 3.0L 엔진이 바로 이번 변화의 핵심이다. 이미 3시리즈에서 소개된 바 있는 이 엔진은 그 정밀함과 파워에서 자타가 공인한 세계 최고의 직렬 6기통 엔진이다. 반면 뉴 550i와 뉴 M5의 기계적인 변화는 없다. ![]() 528i 엔진 무게와 크기 줄이고 출력 높여 첫날은 528i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라스베이거스-데스밸리 코스를 달렸다. BMW는 3일간 1,300km가 넘는 장거리 시승을 랠리 형식으로 열어 기자들의 즐거움을 더했다. 또 코스 이탈을 막기 위해 특정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게 했고, 사고를 대비해 각 코스별로 제한속도를 준수했을 때의 도착시간을 정해놓고 너무 빠르거나 느렸을 때 15분마다 1점씩 깎았다. 2인 1조로 팀을 이뤄 정해진 코스를 제한속도에 맞춰 도착한 순서로 점수를 매겨 묘한 경쟁심을 부추긴 것이 되려 재미를 돋궜다. 첫날부터 우리 팀은 우승권에서 멀어질 것을 예상했다. 라스베이거스 시내를 벗어나면서부터 528i의 속도를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로는 넓고 통행량은 극히 적었다. 특히 데스밸리 교차로를 지나면서부터 사막을 가로지르는 일직선 도로가 수 km씩 이어졌다.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다 보니 사진 포인트를 지나치기 일쑤였다. 뉴 528i는 단단하면서도 밸런스가 잘 맞은 섀시에 앞뒤 무게배분까지 이상적이어서 맛깔스런 핸들링을 만들어냈다. 새로 얹힌 직렬 6기통 3.0L의 ‘N52’ 엔진은 크랭크 케이스를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들었다. 알루미늄만을 사용한 525i의 ‘M54’ 엔진보다 무게는 약 10kg, 크기는 1인치 정도 줄었다. 이로써 차체의 무게배분도 앞뒤 50.3:49.7로 거의 절반에 가까워졌다. 이는 다른 5시리즈보다 뛰어난 수치다. ![]() 무게만 줄인 것이 아니다. 지난 2002년 V8 엔진에 선보였던 밸브트로닉 시스템(Valvetronic System)이 2세대로 진화해 더해졌다. 드로틀 밸브의 역할을 흡기밸브로 대행시켜 액셀 페달을 밟는 길이와 속도, 차의 속도, 엔진에 걸리는 부하 등의 여러 정보를 빠른 시간에 수집해 ECU로 처리하고 흡기밸브의 움직임을 최적화시킴으로써 엔진회전수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처럼 더 똑똑해진 밸브트로닉 기술이 더해져 출력과 토크가 높아졌고, 연료효율도 약간 좋아졌다. 528i는 가볍고 경쾌하며 운전자의 의도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시속 150km의 코너링에서도 라인을 잘 타고 달렸다. 단단한 하체와 가볍고 부드러운 엔진, 이상적인 앞뒤 무게배분이 합쳐진 결과다. 여기에 245/40 R18 초광폭 타이어도 뛰어난 코너링에 한몫을 한다. 코너를 탈출해 풀 드로틀을 시도하면 반응이 더 빨라진 스텝트로닉 트랜스미션이 현재 속도와 액셀 워크에 민감하게 반응해 최적화된 엔진회전수를 만들어낸다. 사막이다 보니 약간의 모래가 쌓인 아스팔트 도로에서 뒤가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곧바로 DSC(Dynamic Stability Control)가 트랙션을 확보한다. 헤어핀에서 DSC의 개입이 너무 과하다 싶을 때는 DTC(Dynamic Traction Control)를 켜면 된다. 의도적으로 DSC의 개입 시점을 늦춰 드리프트를 유도해 좀 더 다이내믹한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고속에서 순간 가속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수 km나 이어진 직선도로에서 231마력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액셀 페달이 차체에 박힐 정도로 밟고 있어도 앞서 달리는 뉴 535i와의 거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벌어졌다. 또 고도가 높은 곳에서 자연흡기 3.0L 엔진은 그 반응속도가 약간 더 느려진다. ![]() 535i BMW 최초 직분사 트윈 터보 엔진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또다시 사막을 달렸다. 두 번째 스테이지는 데스밸리-레이크 이사벨라였다. 40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데스밸리. 이름 그대로 죽일 듯한 더위에 휩싸여 있었다. 시승차에 냉풍시트 기능이 없는 것이 아쉬었다. 우승권에서 멀어지면서 긴장감이 떨어졌지만 535i의 속도계와 엔진음은 지루함을 달래 주고도 남았다. 스피드에 초점을 맞춘 엔진은 액셀에 발을 올리는 것만으로 304마력의 전투력을 끌어 올려 무서운 가속을 만들어냈다. 터보랙 따위도 전혀 느낄 수 없다.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지른 직선도로에서 차는 태양을 가르듯 가열차게 전진했다. 직분사와 트윈 터보.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을 BMW는 기술력으로 승화시켜 최초의 직분사 트윈 터보 엔진을 만들어냈다. V6 대신 직렬 6기통을 고집하는 BMW는 메르세데스 벤츠, 렉서스 등의 라이벌들이 배기량을 3.5L로 늘리는 것에 대응해 직렬 6기통 3.0L 엔진에 트윈 터보를 달았다. 기계적으로 V형 엔진은 블록의 길이가 긴 직렬 엔진보다 배기량을 늘리는 것이 쉽다. 직렬 엔진은 배기량을 키우려면 리디자인에 가까운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BMW의 트윈 터보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535i에 새로 얹힌 엔진은 밸브트로닉을 쓴 528i의 엔진과 달리 이전 2,979cc 알루미늄 블록 엔진을 바탕으로 더블 바노스와 피에조 인젝터, 트윈 터보를 추가한 것이다. 바노스는 차의 속도에 맞게 밸브 타이밍을 조절해 어느 rpm 영역에서나 엔진효율을 높인다. 여기에 더해 흡·배기밸브까지 모두 제어하도록 만들어 더블 바노스라 부른다. 연료 직분사의 냉각효과에 힘입어 압축비를 10.2도까지 높일 수 있어 연소의 정밀제어 및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또한 0.4바의 낮은 압력으로 과급하는 2개의 터빈 덕분에 1,300rpm의 낮은 영역부터 40.8kg·m의 최대토크를 5,000rpm까지 길게 끌고 갈 수 있다. 엔진은 너무나 부드럽게 회전하지만 카랑카랑한 엔진음에는 기계적인 느낌이 더해 있다. 변속에 따라 음색을 달리하는 엔진음에 귀를 빼앗기는 동안 속도계는 어느새 시속 220km를 가리킨다. 그 뒤로 가속이 약간 더뎌지기는 하나 제한속도인 시속 250km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에서 5분 이상 최고속도를 유지하면 5시리즈의 놀랄 만한 차체안정성과 견고한 엔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 535xi 5시리즈 최고의 핸들링 머신 피곤이 몰려왔다. 오전에 300km를 넘게 달렸는데 오후에도 360km의 거리가 남아 있다. 세 번째 스테이지는 레이크 이사벨라에서 요세미티까지. 차는 535Xi가 준비되었다. 미국의 시골길은 너무 한산하다. 한참을 달려도 옥수수나 밀밭이다. 로드맵을 잘 본다고 봤는데 코스를 이탈해 버렸다. 랠리는 단순한 속도경쟁이 아닌 미션 수행방식이다. 정해진 코스가 있고 해당 코스에 대한 간단한 질문지에 답을 적어야 한다. 우리 조는 우승권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535xi는 기자에게 근사한 재미를 안겨 주었다. 네 바퀴를 굴리는 535xi는 헤어핀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산길을 구렁이 담 넘듯 부드럽고 깔끔하게 돌아나갔다. 산길이 점차 익숙해지자 빠른 속도로 코너에 들어서도 웬만해서는 뒤가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기자는 풋 브레이크 대신 엔진 브레이크를 걸면서 코너를 공략하는 대담함도 서슴없이 보인다. 물론 속도가 과하다 싶을 때는 DSC가 깜박이면서 동력을 끊고 자체적으로 브레이크를 잡는다. DTC(Dynamic Traction Control)를 켜면 DSC의 개입 시점을 늦춰 좀 더 다이나믹한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 BMW의 xDrive는 휠스핀이 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전자제어식 멀티플 디스크 클러치를 이용하여 노면 조건에 따라 앞뒤 바퀴의 토크를 가변식으로 분배한다. 운전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연속적으로 DSC에서 각 휠의 회전속도, 조향각도, 드로틀 포지션, 요 속도 및 횡 가속도 등의 정보를 전송 받는다.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운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차가 움직이는지 판단한다. 만약 자동차에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 현상이 발행할 가능성이 있다면 사전에 차단한다. 간단히 말해서 xDrive는 운전자가 달라진 주행조건을 인식하기도 전에 작동을 시작하여 운전자를 도와주는 것이다. 차가 언더스티어 경향을 보이면 토크를 뒷바퀴로 치우치게 분배해 방향 안정성과 뉴트럴에 가까운 조향 특성을 만들어낸다. 535xi는 5시리즈 중에서 산과 눈, 비가 많은 한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아쉽게도 535i와 535xi의 수입 계획은 없다. ![]() 닮은 듯 다른 550i와 M5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자연경관은 입을 다물기 힘들다. 지구를 짓누르고 있는 거대한 바위산과 206m에 달하는 폭포는 가히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며칠 쉬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550i는 기자를 빠른 속도로 내몰았다. 대배기량의 자연흡기 엔진이 선사하는 질주의 힘은 트윈 터보 엔진과 사뭇 다르다. 엔진음부터 535i는 카랑카랑하고 550i는 웅장한 중저음이다. 초반 가속에서는 별 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수치상으로도 550i는 0→시속 100km 가속이 5.5초로 535i보다 단 0.2초 빠르다. 하지만 이후부터 가속은 배기량의 차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2톤이 훌쩍 넘는 750i를 가뿐하게 움직이는 4.8L 엔진은 고속으로 접어들수록 535i를 어렵지 않게 따돌렸다. 제한속도인 시속 250km에서도 rpm이 여유롭고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전반적으로 535i의 파워가 짧고 굵은 느낌이라면 550i는 파워를 굵고 길게 끌어냈다. 그렇게 550i는 산호아킨 밸리까지 길을 재촉했다. 마지막 스테이지(산호아킨 밸리-몬트레이)에서 M5를 만났다. 지난해 국내에서 M5를 시승했던 동료 기자가 달릴 곳이 없었다고 한탄스러워 했던 것을 기억하며 뉴 M5에 올랐다. 처음 접한 7단 SMG가 약간 서툴기는 했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507마력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시내를 빠져 나오자마자 스포츠 모드로 전환해 500마력으로 맞추고, EDC를 눌러 3단 조절식 서스펜션도 가장 단단하게 했다. 통행량이 많지 않은 시골의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도로는 오로지 M5만의 것이었다. 첫 번째 변속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지자 속도는 이미 시속 110km를 넘어섰다. 엔진회전수가 8,000rpm을 넘으면서 다시 시프트 패들을 당기니 눈앞의 광경을 빠르게 끌어당기면서 시속 200km에 근접했다. 이날 M5는 기자를 시속 290km로 내던지면서 535i와 550i에서 느꼈던 가속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M5를 운전할 때는 제도기를 든 화가처럼 이성과 감성을 고루 분배해야 한다. 이성에 치우치면 재미가 없고, 감성에 치우치게 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