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시작한 MBC 금토드라마 ‘수사반장 1958’이 5월 18일 SBS ‘7인의 부활’과 같은 날 끝났다. 3월 29일 시작한 16부작 ‘7인의 부활’과 같은 날 끝난 것은 ‘수사반장 1958’이 10부작이라서다. 방송사끼리 무슨 교감이 있어서는 아닐테고, 우연하게도 종영일이 같아 새로 시작한 MBC와 SBS의금토드라마 경쟁이 더 뜨겁게 됐다.
‘수사반장 1958’은 시청률 10.1%(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로 출발했다. 이는, 스포츠서울(2024.4.24.)에 따르면 역대 MBC 금토드라마 첫 방송 최고 시청률이다. 2회에서 7.8%로 떨어지긴 했지만, 이어진 3회는 10.8%를 찍었다. 이게 최고 시청률이 됐다. 최종회 시청률도 10.6%로 두 자릿 수를 기록했다.
‘수사반장 1958’은 전체 10부작중 최저 시청률 7.1%(4회) 포함 7%대가 두 번, 9%대와 10%대가 각각 4번으로 꽤 인기를 끈 MBC 금토드라마라 할 수 있다. 하긴 1971년부터 1989년까지 18년 동안 전파를 탄 ‘수사반장’은 최고 시청률 70%를 찍는 등 인기 만점 MBC 드라마였다. ‘수사반장 1958’은 그 ‘수사반장’의 프리퀄(본편보다 앞선 이야기를 다룬 속편)이다.
‘수사반장’의 인기에 대해 “실제 범죄를 소재로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라마에 녹여 시청자의 공감을 산 덕분이다. 최불암은 ‘방송사로 범인 잡아달라고 찾아오는 분들도 있었다’며 (촬영 스튜디오에서 나와) ‘그분들 얘기 듣고 돌려보내곤 했다’고 옛일을 들려줬다”(한국일보, 2024.4.18.)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1983년 7월 서울신문사 ‘TV가이드’가 주최한 제2회방송평론공모 대상을 수상하면서 방송비평가로 나선 나도 ‘수사반장’에 대해 글을 썼다. ‘부활된 수사반장’(월간 예향, 1985년 8월호. 방송평론집 ‘문학과 영상의 만남’ 수록), ‘뜨거운 감동 안겨준 수사반장’(전북일보, 1986.12.29. ‘텔레비전문화시대의 비평’ 수록) 등이다.
여기서 잠깐 ‘부활된 수사반장’을 다시 읽어보자. 봄철 프로개편으로 ‘수사반장’이 7개월 만에 부활되었다. ‘수사반장’은 1971년 3월 신설되어 작년(1984년-인용자) 10월 폐지까지 무려 13년 7개월이나 방송된 장수프로이다. 대본을 쓴 작가만도 윤대성 등 7명이고, 연출자도 허규부터 김승수까지 12명이다. 연기자는 1회 평균 30명만 잡아도 2만 명에 달한다.
또 ‘수사반장’은 시대에 따라 성격이 바뀌어왔다. 예컨대 방송 초기엔 수사경찰, 후기엔 휴먼드라마로서의 이미지 각인이 그것이다. 가령 “특집 성격을 띈 12월 25일의 ‘수사반장-마지막 선물’은 ‘없음’이 유독 쓸쓸하게 느껴지는 이 계절에 무언가 시큰함을 안겨주는 ‘뜨거운 드라마’였다. 주로 불륜ㆍ치정 등의 소재로 일관한 종래와는 다르게 부정(父情)을 담은 ‘마지막 선물’은 시큰하다 못해 아플 정도였다.”(‘뜨거운 감동 안겨준 수사반장’ 일부.)
그러나 ‘수사반장’은 범죄를 다루기 때문 TV로서의 역기능을 초래한다는 질타에 시달렸다.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이 범죄 흉내를 내는 등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그 여세에 몰려 범죄는 날로 지능화되고, 대형화되는 추세인데 제작여건상 소화해낼 수 없는 이유와 시청률 하락현상으로 ‘수사반장’은 장정의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방송사 자구책이라곤 하지만, 차제에 ‘수사반장’을 부활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범죄 없는 사회란 없다. 범죄는 사회생활의 필요악이기 때문 범죄수사물이 TV 프로에 있어야함은 당연하다. ‘수사반장’이 범죄의 사회병리학적 측면을 얼마나 그려내고, 취지처럼 범죄예방에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는 그만두고라도 수사물로서의 관록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좀 장황한 듯싶긴 한데, 내가 ‘수사반장’에 대해 쓴 예전 글을 다시 읽고보니 다소 의아한 점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1989년 종영된 ‘수사반장’인데, 왜 2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수사반장 1958’로 돌아왔는가 싶은 생각이 그것이다. 앞에서 ‘수사반장’ 프리퀄이라 말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수사반장 1958’을 만나보자.
‘수사반장 1958’은 1958년 경기도 황천의 소도둑 검거율 1위 형사 박영한(이제훈)이 서울 종남경찰서로 전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먼저 비포장길에 소가 끄는 마차가 지나가고, 전차 오가는 서울 거리며 ‘단성사’ 극장을 비롯한 가게 간판ㆍ노래ㆍ선거벽보 등 당대를 재현한 사실감 넘치는 미장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사물이면서도 시대극이 주는 묘미라 할까.
당시는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독재시대. 이정재 등 자유당과 결탁한 정치깡패들이 그 어떤 권력보다 득세해 설쳐대던 시절이라 그들과 충돌하는 올곧은 경찰 영한과 김상순(이동휘)ㆍ조경환(최우성)ㆍ서호정(윤현수)의 범죄 수사 활약이 더 짜릿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영한 27세, 상순 25세, 경환 24세 등 그들 모두 그야말로 혈기방장한 20대 청춘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가령 ‘자유당동지회’ 간부가 저지른 아기 유괴 및 불법입양사건이라든가 살모사(강인권)의 성칠이 살인사건 수사과정을 살펴보자. 증거가 있음에도 구속영장도 못받는 현실은 개탄을 넘어 공분(公憤)을 불러 일으킨다. 그 공분은, 그러나 기어코 단죄하고야마는 데선 어느새 통쾌함으로 바뀐다. 단순한 범인 검거에 그치지 않고 애민(愛民)이 부각돼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경찰공무원이면서도 “우리나라는 다 썩어가지고”라 말하는 영한의 모습 역시 뭔가 믿을 구석 내지 든든함 같은 걸 느끼게 한다. 그만큼 막장이었던 자유당 독재시대는 4ㆍ19 혁명으로 무너진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이어진 1961년 5ㆍ16 군사투데타 정국이 6부에서부터 펼쳐진다. 그러니까 10부작 절반은 1950년대말 자유당 독재정권, 나머진 5ㆍ16 군사투데타로 실권을 쥔 육군소장 박정희의 군정(軍政) 속 형사들 활약으로 나뉜 것이다.
1961~62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 범죄 수사 및 범인 검거는, 그러나 ‘그랬을까’ 하는 의문도 남긴다. 가령 9~10부에서 펼쳐진 이른바 권력형 범죄 사건이 그렇다. 영한은 고관대작 자녀들이 아버지 뒷배를 믿고 살인까지 저지른 범죄를 해결한다. 서슬 퍼렇던 ‘의장 각하’ 기조실장 아들이 범인인데, 드라마에서처럼 그렇게 단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백도석(김민재)의 경우 교수형에 처해지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같은 경찰서장이 있을까 하는 의문 역시 생긴다. 그의 극악무도함은 전임자였던 친일파 최달식(오용) 정도는 악의 축에 끼지도 못할 만큼 오싹할 지경이다. 이 정도면 단순 수사극을 넘어 어마무시한 픽션의 시대극이라 할만한 ‘수사반장 1958’이 아닐까 싶다.
설사 그게 경찰미화라 하더라도 그리 나빠 보이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공권력 불신시대에 그런 경찰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어서다. “후손들한테 물려줄 땅은 없어도 떳떳함은 물려줘야죠”라든가 “뒷돈의 시작이 밥 한 끼부터 시작하잖아요”라며 민원인의 식사대접도 거부하는 그런 경찰들을 보는 것이라서다.
위정자 등 ‘윗대가리’보다 국민을 위해 민중의 지팡이로서 본분을 다하려는 사명감ㆍ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영한 같은 경찰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 민주사회가 될까. 비록 드라마 속 이야기라 하더라도 이런 전개라면 시즌 2로 돌아와도 최소한 ‘수사반장 1958’만큼의 인기는 따놓은 당상이 되지 않을까?
또 하나 특기할 건 본방송의 자막 서비스지만, 이에 대해선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아쉬운 점을 들어보자. 아쉬움이 가장 큰 건 빈번한 영한의 연애 에피소드다. 가령 2회를 보자. 서점으로 피해 들어온 영한의 어깨까지 짚으며 이마 피를 직접 닦아주기까지 하는 이혜주(서은수)는 너무 나간 모습이다. 형사라 신분을 밝혔다곤 하지만, 처음 본 남자에게 그렇게 하는 건 일반적ㆍ상식적이지 않아서다.
운명적 만남의 첫순간쯤으로 봐줄 수도 있지만, 빈번한 연애과정은 좀 아니지 싶다. 완급 조절, 그러니까 범죄를 다룬 수사물인 만큼 잔혹성이라든가 무미건조함을 이완시키는 장치란 긍정론도 펼 수 있으나 결혼 이후에도 데이트를 하는 등 사건 해결과 관련 없는 연애 에피소드는 긴장감을 해치고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한다.
부패혐의자로 처리된 것으로 나오긴 하지만, 달식에 대한 직접적 단죄 장면이 없는 것도 좀 아쉽다. 친일파로 살아남기 위해 민중의 지팡이는 개나 줘버려 하는, 도무지 경찰이라고 봐줄 수 없는 경찰서장의 말로가 어땠는지 생생하게 그려져야 했다. 말할 나위 없이 사필귀정이 주는 통쾌함의 배가를 위해서다.
매끄럽지 않은 전개도 아쉬움을 준다. 일부러 그런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가령 6부를 보자. 6부 시작은 1부 서두를 장식했던 최불암이 다시 나온다. 5부에서 반장 유대천(최덕문)이 야밤에 피습 당하며 끝났는데, 그에 대한 시
청자들의 궁금증을 뭉개버린 전개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20분쯤 지나서야 유반장 피습사건 장면이 이어져 우롱당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한편 ‘수사반장’의 엄청난 인기를 이끌었던 최불암은 10부에서 또 한번 나온다. 총 3번 나온 것인데, 10부에선 5ㆍ16때 ‘쌀도둑놈’이었던 송경철과 깡패였던 이계인이 최불암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한다. 오랜만에 보는 그들도 반갑지만, 범인들이 자신을 검거한 형사를 “사람 만들어줘 고맙다”며 보은하는 건 ‘수사반장’만이 할 수 있는 장면이라 할만하다. 더 흐뭇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아쉽게도 “싸가지를 귀향 보냈냐?” 등 기억에 남는 대사와 달리 ‘창꼬’(2부)라든가 “아버님께서 반대가”(3부) 따위 배우들의 발음상 오류가 드러났다. 여러 번 말했듯 ‘창꼬’가 아니라 ‘창고’다. ‘아버님’은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다. 살아있는 본인 아버지를 지칭한 것이므로 틀렸다. “성칠이였(었)으니까”(5부) 같은 자막 오류도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