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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좋은시 스크랩 티벳불교의 성자 밀라레빠
김정대 추천 0 조회 18 07.01.26 14: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티벳불교성자





롭상라롱파 지음 . 이경숙 옮김
















        


위대한 스승이시여

완전한 지혜와

더 없이 큰 힘을 성취하신

한 구도자의

생애

이야기




서문





  불타 석가모니의 열반 후 가르침은 히나야나(소승)에서 마하야나(대승)로 그리고 바즈라야나(금강승)로 혹은 탄트라야나로 심화되어 각 시대와 지역에 맞게 변용, 발전해 왔다. 석가모니께서는 인간의 근원적 존재의 원리를 깨닫고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실현한 후 깨달은 자의 길을 밝히셨다.


  이제 저 눈 덮힌 히말라랴의 준령으로부터 천년 세월을 뛰어 넘어 여기에 소개되는 티벳 불교의 성자인 밀라레빠는 그 깨달은 자의 길을 닦아 진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여 대각을 얻으신 분이었다.


  밀라레빠만큼 불타의 가르침을 몸소 행하고 하나하나 확증․체험하여 완전한 해탈을 얻은 사람은 2500여 년의 불교 역사 속에서도 많지 않다고 한다.


  제츈 밀라레빠는 종파를 초월한 모든 티벳의 불교도 뿐만 아니라 구라파나 미국의 구도자들에게도 불타의 법을 태양과 같이 빛낸 사람으로서, 또 불타의 가르침의 이정표로서 이미 높은 추앙을 받고 있다. 이는 요즈음 세상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불타의 가르침이 그 본래의 뜻에서 멀어져 있는 데 반해 밀라레빠의 설법은 모든 깨달음의 길이 불법의 근원으로 귀의하는 바 종교적 형식과 이념을 넘어 인류에 대해 영원히 그 광명의 문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웃들이 자아의 무거운 짐을 벗고 다함께 해탈을 얻어지이다.






세존 열반

불일출판사 합장





● 책 머리에





  저 머나먼 티벳 남부, 마루빠의 고향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밀라레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어린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생을 거는 그의 용기, 후에는 침몰해 가는 자신의 운명의 배를 구출하려고 불타의 가르침을 좇아 모진 고행을 수행하는 밀라레빠의 꺽이지 않는 의지가 어린 내 가슴에 뭉클한 감동을 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밀라레빠는 티벳 국민들 그리고 아시아 및 히말라야 고원 지대에 사는 불교도들에게 옛날 이야기 속의 영웅이 아닌 지극히 뛰어난 존재의 화신, 선지식의 아버지로서 지금 당장이라도 그들 앞에 다가설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스승인 것이다.

  그렇다. 티벳 불교 역사상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켜 왔으며 영적 지도자들과 정신적 엘리트들의 구도 정신을 고양시킨 사람은 일찍이 그 누구도 없었다.

  구원의 진실한 메시지나 보다 높은 비밀한 가르침을 찾는 이들에게 이 밀라레빠의 생애 이야기와 깨침의 노래들은 실로 중대한 의미를 선사할 것이다.

  이 마음 밝히기의 체험은 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으며 이제 그 영역은 세계각국으로 확장되어 나가고 있다.

  밀라레빠가 수행한 금강승 불교의 수도 과정은 우리의 심층 구조를 이루고 있는 복잡한 요소들, 즉 생각의 앙금들을 낱낱이 끄집어내어 보다 높은 의식과 인간성의 완전한 자각으로 닦아 나가 궁극의 밝음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마음 바꾸기’의 과정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들 일상에서의 말과 뜻과 행위 속에서 의식적으로 ‘바름’을 닦아 보석으로 깍아 다듬어내는 작업인 것이다.

  첫 단계로는 성별, 인종, 피부 색깔 혹은 종족 등에 기인한 맹목적 열등감 또는 우월감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전 인류와 우주적 동료에 대한 깊은 연대 의식 없이는 구도자들이 바른 길로 들어설 수 없으리라.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려면 우리는 각자의 조건지어진 환경이라는 견고한 껍질을 뚫고 나와야 한다. 이러한 마음의 새로운 자각이 곧 모든 진실한 정신 문명의 목표이며 또한 존재의 전체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싦을 향한 자세를 이루는 동기를 파악케 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착각은 대단히 파악하기 어려워서 우리는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삶의 목표를 향한 건전하고도 바른 자세를 닦는 이러한 예비 정신 훈련을 하지 않고서는 모든 정신적 노력은 그 본래 취지와는 달리 도저히 자기 도취에 빠져들기가 십상인 것이다.

  높은 의식 수준을 성취한 단계에서도 그러한 정신 훈련은 모든 인류의 우주적 해방의 이정표를 목표로 더더욱 발전되어 나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마음 바꾸기의 과정은 모든 종류의 착각을 제거하며 동시에 덕을 쌓아 나가는 점진적인 정화의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밀라레빠의 구도 과정은 혼자의 힘으로 말로는 전달될 수 없는 진리의 비밀을 캐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는 불교적 방법의 귀중한 실례를 보여 주고 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커다란 시련에 부딪혀 보기 전까지는 건전한 자기 소화가 된 성취를 얻었다고 할 수가 없다. 갖가지 시련 가운데서의 지속적인 정진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이 넓어지고 솔직해지고 결단력을 갖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목표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기 위해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삶이 만나는 모든 어려움을 한 곳에 모아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성의 발견은 명상 수행의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수많은 단계가 있다.

  따라서 자아 개조의 길로 바르게 인도되려면 우리의 자각이라든가 생각 혹은 감정, 그리고 인간의 신체가 갖는 실로 놀라운 만큼 복잡한 생리 구조와 잠재력을 알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 현대인들은 이 점에 있어 특히 많은 어려움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옛 전통에서 내면을 표현하는 신비적인 언어들을 다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소위 과학적이라 부르는 날마다의 우리 현대인들에게 ‘중음신’, ‘비어 있음’ 혹은 ‘깨어 있음’이라는 등의 형이상학적인 표현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독자들은 ‘명성’이라는 단어를 종래의 통념으로 알고 있듯 어 떤 종류의 신체적 형태나 자세와 연관시켜서는 아니 될 것이다. 차라리 명상을 깨어 있기 위한 투쟁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그 핵심에 가까울 것이다.

  굳은 서원과 의지로 번뇌와 고통의 그물과 같은 인과[카르마]를 벗어나 인류가 동경하는 가장 높은 이상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을 엮은 이 전기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커다란 자비의 은총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불타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




롭상라룽파


제 1 장. 사바에서의 삶




        어린 시절



  그 옛날, 지금은 가장 성스러운 순례지가 된 니야낭의 한 동굴에는 한때 아뉴다라 바즈라 야나(無上金剛大乘)파의 보배인 제츈 밀라(밀라레빠) 제빠도르제라는 대단히 위대하신 수행자가 있었다.

  또한 그곳에서는 깊이 명상을 수행하여 마음의 평정을 이룬 렛충 도르제 다꾸바를 위시한 여러 훌륭한 제자들과 수많은 선남선녀가 모여 제츈(밀라레빠) 존자로부터 부처님의 대승법을 듣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암자에서 명상 중이던 제자 렛충은 꿈을 꾸었다.

  렛충은 유겐이라는 천상의 한 나라를 거닐고 있었다.

  집이며 궁전은 귀한 보석으로 장식되었고 사람들은 예쁜 옷을 입고 몸에는 아름다운 장신구로 치장하고 있었다.

  더없이 상쾌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았으나 서로 즐거운 미소와 눈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뜻밖에 렛충은 네팔에 있을 때 그의 스승이었던 라마 데뿌와의 제자, 바리마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빨간 법의를 입은 그녀는 그들의 지도자인 듯 싶었다.

  렛충을 보자 그녀는 반색을 하였다.

  “조카여, 그대가 오다니 참으로 반갑구려!”

  그녀는 심신을 황홀케 하는 호화로운 저택으로 그를 안내하더니 매우 훌륭한 향연을 베풀어 주었다.

  그녀가 말했다.

  “조카여, 지금 유겐에서는 미큐파(Mikyupa, 아촉불)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신다오. 만일 법문을 듣고 싶다면 내 부처님의 허락을 얻어 드리리다.”

  렛충은 너무나 원하던 바이어서 “고맙습니다. 참 친절하시기도 합니다”하며 뛸 듯이 기뻐하셨다.

  둘은 함께 시내로 들어갔다.

  도시의 한가운데에 금은 보화로 장엄 된 높다란 옥좌가 있고 그 위에서 그가 명상 중 친견했던 것보다 훨씬 빛나고 위엄이 서린 미큐파 부처님께서 좌정하고 계셨다.

  그분은 드넓은 바다와 같이 운집한 제자들을 상대로 법을 설하고 계셨다.

  바리마의 인도로 부처님 앞에 나아간 렛충은 부처님 발아래 엎드려 예배하고 축수와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간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부처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시며 한없는 자비의 눈길을 보내 주셨다.

  그분이 설하신 것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과 불보살님들의 탄생과 생애에 관한 내력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법문은 그에게 깊은 신앙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모인 대중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각각 깊은 신앙심이 우러나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말솜씨로써 그가 여태껏 들어 아는 것보다 훨씬 자세하게 대성자이신 티로빠, 나로빠 그리고 마루빠님의 생애에 관해 말씀해 주셨다.

  법회가 끝날 무렵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일은 내 이제껏 이야기한 것보다 훨씬 경탄할 만한 밀라레빠의 생애 이야기를 말하려 하니 그대들은 빠짐없이 참석토록 하라.”

  거기에 있던 한 제자가 말했다.

  “우리가 들었던 이야기만 해도 굉장한 것인데 그보다 훨씬 경탄할 만한 것이라니 도대체 어떤 이야기일까요?”

  그러자 다른 제자가 말했다.

  “지금까지 들은 바로는 그분들이 수많은 생을 통해 덕을 쌓고 욕망과 망상을 제거하여 구원의 열매를 맺으셨다는데 이 밀라레빠라는 분은 단 한생을 통해 그 누구에게 못지 않은 공덕을 쌓고 완성에 이르셨다지요.”

  처음에 말을 꺼낸 이가 다시 말했다.

  “오, 모든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그와 같이 훌륭하신 분의 생애 이야기를 듣도록 청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참된 불제자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물었다.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누군가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오민이나 곤가(제석천) 중 어느 한 곳에서 계실 것입니다.”

  렛충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스승께서는 분명 지금 티벳에 계시는데 이는 대체 무슨 말들인가?

  그렇다면 이런 말들은 모두 나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나로 하여금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해 스승께 직접 생의 이야기를 해 주시도록 간청하라는 암시인 것일까?“

  렛충이 이런 생각을 하는데 바리마가 기쁜 듯이 그의 손을 잡고 흔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조카여, 그대가 이제야 겨우 알아차렸군요.”



  렛충이 눈을 떠보니 날은 이미 밝아 있었다.

  짐에서 깬 렛충은 몸과 마음이 매우 상쾌하였다. 간단한 아침 공양을 마친 후 그는 스승께 나아갔다. 스승은 이미 많은 제자들과 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좌정하고 계셨다. 렛충은 스승께 예배드리고 안부를 여쭙고 오른쪽 무릎을 굽혀 합장하고 말씀드렸다.

  “자비로운 스승이시여, 감히 청하옵니다. 이 대중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한 미래의 제자와 신자들의 공부에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스승의 생애를 통해 겪으신 일들을 소상히 말씀해 주시옵소서.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 역시 중생들을 위해 열두 가지 위업(偉業)의 내력과 그 밖의 기록을 남기심으로써 부처님의 진리는 더욱 널리 전파되고 번영하였습니다.

  대성 티로빠, 나로빠, 마루빠 그 밖의 많은 위대하신 성자들 역시 자서전을 남기시어 후세 사람들이 수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사옵니다.

  오, 스승이시여, 당신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 또한 많은 사람들의 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오니 부디 말씀해 주시옵소서.“

  렛충의 이 같은 간청에 스승은 미소를 띄우시며 답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렛충, 그대는 이미 나의 생애나 내력에 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들을 위해 이 같은 원을 말하는구나

  젊은 시절 나는 몇 가지의 악업을 지었고 후년에는 몇 개인가의 선업을 쌓았으나 이제 나는 선악으로부터 모두 떠나 있다. 근행에 주력하여 그것을 마친 나에게는 이미 굳이 마음 내어 행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느니라.“

  렛충은 다시 일어나 스승께 예배하고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존사께서 최초로 최상의 진리를 얻으신 방법과 그 이전의 많은 고행, 또 불멸의 진리를 체득하여 모든 지혜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실 때까지 존사께서 얼마나 끊임없이 명상하시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여 그물과 같은 죄업을 벗어나 다시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을 수 있으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큰 뜻과 희망을 지닌 사람들에게 더없이 흥미롭고 유익한 것이 될 것이옵니다. 그 전말을 상세하게 말씀해 주시옵소서. 친구들이여, 신앙의 형제들이여, 부디 나의 이러한 기원에 동참하여 말씀해 주시도록 함께 간청합시다.”

  그러자 대중들은 모두 일어나 절하며 말씀드렸다.

  “부디 저희들을 위해 스승의 생애에 대해 설하여 주시옵소서.”

  “자, 그대들 모두가 원한다면 구태여 내 생애를 숨길 필요가 없으니 내 이제 모두 말해서 그대들을 기쁘게 하겠노라.”



  나는 균뽀(취鷲 : 독수리) 성을 가진 종족 출신으로 이름은 밀라레빠, 나의 집안은 와루와루라 불리는 북방에서 가축과 양을 기르던 유목민의 집단이었다.

  나의 선조 증 한 분이 노름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는 고향을 떠나 네팔 국경 부근 갼가 쨔라는 곳에 정착하셨다.

  그 후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상업을 하여 큰 재산을 모으게 되었다. 아버지 세라뿌 갸르짼이 결혼한 것은 그가 막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상대는 그 지방 귀족 출신으로 갸르모 겐이라는 처녀였다. 그녀는 애증(愛憎)의 정이 깊고 현명하고 활발하여 갸르모 겐(하얀 보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그 지방의 가장 좋은 저택에서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이 무렵 어머니 갸르모 겐은 임신을 하셨다. 그것은 아버지 밀라 세라뿌 갸르짼이 남쪽의 여러 상품을 모아 북방으로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장사길을 떠나 있던 때의 일이었다.

  내가 태어난 것은 임진년(1052년) 가을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출산하자 곧 아버지에게 사람을 보냈다.

  “추수절이 다가옵니다. 저는 사내아이를 분만하였습니다. 아기 이름을 짓고 명명식을 갖고자 하오니 속히 돌아오십시오.”

  기별을 받도 아버지는 대단히 기뻐하셨다.

  “사내아이가 태어났다니 대단히 경사스러운 일이야. 아이의 이름을 ‘데빠가-들어서 기쁘다-’로 지어야겠다. 이제 장사일도 다 마쳤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나의 이름은 데빠가로 결정되었으며 명명식 날에는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그 후 내가 네 살이 되자 여동생이 태어났는데, 이름은 빠다 곤기라고 지었다.

  우리는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과 많은 하인들의 세심한 보살핌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저 집안처럼 근면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 타관 사람은 처음 봤어요. 저 굉장한 집을 보세요. 그 안에 있는 호화로운 가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참 대단한 부자예요.”

  우리가 이 같이 사람들의 부러움 속에 살고 있을 때, 나의 아버지 밀라 세라뿌 갸르짼이 위중한 병이 결리게 되었다.

  의사들은 아버지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친척들에게 알렸다. 본인마저도 이미 삶의 희망을 포기하고 죽음을 맞이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큰아버지∙큰어머니를 위시한 친척들을 전부 모이게 한 후, 어머니와 어린 자식들을 후견으로 큰아버지∙큰어머니를 지정하고 그들에게 전 재산의 관리를 위탁한다는 유언을 하셨다. 아버지는 모두 앞에서 유언장을 읽어 주고 서명을 하고 봉인한 후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얼마 더 살지 못할 것입니다. 아들이 아직 나이 어리니 친지 여러분, 특히 아들의 큰아버지∙큰어머니에게 후견을 부탁하고자 합니다.

  언덕 위 목장에 있는 모든 가축과 오르마 삼각주에 있는 비옥한 토지 및 그 밖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많은 토지와 기타 재산 중 일부는 나의 장례 비용에 사용하시고 나머지는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잘 보살펴 주십시오. 아들이 성장하면 어렸을 때 정하여 놓은 혼처, 제세와 혼인 시켜 주십시오. 그리하여 새 사람이 들어오면 모든 재산을 그들에게 돌려주십시오.

  그때까지 친지여러분, 그 중에서도 큰아버지∙큰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맡깁니다. 사후라도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에서도 당신들을 주시하고 있을 것입니다!“

  얼마 안 가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때 내 나이 일곱 살이었다.





        고통의 나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척들은 어머니 가르모 겐에게 살림을 맡기고, 그들은 필요할 때만 도움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이를 반대하고 모든 살림권과 재산 관리를 장악해 버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여름에는 큰아버지의 소작인으로 겨울에는 큰어머니를 위해 양털로 실을 잣고 옷감을 짜는 하인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 대가로 우리는 가축 먹이로나 알맞은 음식을 받아먹는 처지가 되었으며 몸에는 넝마 조각을 둘러야만 하였다.

  심한 노동으로 손발은 부르트고 갈라졌으며 물집이 잡혔다. 급기야 영양실조에 걸린 우리는 비참할 정도로 야위고 쇠약해졌고, 금과 유리 장식으로 꾸미던 윤기 흐르는 머리는 거칠어지고 이투성이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동정의 눈물을 흘리며 큰아버지∙큰어머니의 사악한 처사에 분개했으나 그들은 이런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동생과 나는 어머니가 큰어머니에 대해 “저 여자는 균 쯔바 빠르딘(귀족 자손의 고상한 사람)이라는 이름이 맞지 않고 두모 다꾸딘(막 굴러먹는 사악한 귀신)이라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 우리는 큰어머니를 “잔인한 귀신”이라고 불렀다. 그 정도로 우리는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마을 사람들조차 이제는 오히려 우리를 깔보고 업신여기기까지 하였다.

  “부자 남편에 양순한 아내? 부드러운 양모에 좋은 모포? 그건 다 옛날 이야기예요. 부자 남편이 죽으니 현모양처라는 것도 다 소용없잖아요?”

  그들은 이렇게 수근 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약혼녀 제세의 부모님은 우리의 처지를 동정하고 철 따라 나에게 옷과 신발을 대어 주셨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격려해 주셨다.

  “재산이란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니야, 그것은 풀잎의 이슬과도 같다네. 재산을 잃은 것에 너무 상심 말게. 그 재산도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고 자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노력과 근면으로 얻은 것이 아닌가? 때가 되면 자네도 그렇게 노력해서 그만한 재산을 모을 수 있을 걸세.”

  내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외가로부터 결혼지참금조로 작은 밭을 하나 얻게 되셨다. 외삼촌은 이 땅을 잘 경작하여 그 소득을 저축해 주셨다. 어느 날 외삼촌은 그 돈으로 많은 고기를 사고 술을 빚으셨다.

  바야흐로 어머니 갸르모 겐과 우리들이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을 돌려 받기 위해 큰 연회를 베풀 것이라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다.

  많은 친척들, 그 중에도 아버지의 임종시 함께 그의 유언을 들었던 사람들과 큰아버지∙큰어머니가 연회에 초대되었다.

  연회는 시작되었다.

  어머니가 일어나 인사 말씀을 하셨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에게 제가 이 연회를 열게된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자리의 여러 어르신네와 아이들의 큰아버님∙큰어머님은, 저희 남편이며 아이들의 아버지 밀라 세라뿌 갸르짼의 마지막 말씀을 잘 기억하실 줄 압니다. 이제부터 읽어 올릴 유언장의 내용을 다시 한번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외삼촌은 사람들을 향해 유언장을 크게 읽으셨다. 그것이 끝나자 어머니는 다시 말씀하셨다.

  “우리 모자는 지금까지 큰아버님과 큰어머님께서 우리를 보살펴 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이제 데빠가는 살림을 충분히 꾸려나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재산에 대한 권리를 돌려주시고 제세와 결혼할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큰아버지가 돌연 고함을 치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도대체 당신이 말하는 재산이란 무얼 두고 하는 말이오? 밀라 세라뿌 갸르짼이 생전에 내게 빌렸던 재산들을 죽으면서 우리에게 반환했던 것인데 그것을 말하는 것이오? 참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야. 물에 빠진 자를 구해 주었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격이구먼.”

  큰아버지는 난폭하게 상을 걷어차고 옷자락을 펼치며 큰어머니를 비롯한 그의 일행과 함께 나가 버리셨다.

  “오 밀라 세라뿌 갸르짼이여! 당신은 우리가 당하는 억울함을 보시나요. 당신은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후의 세계에서라도 우리들을 보고 있겠다고 그것이 정말이라면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어머니는 통곡하며 쓰러지셨다. 나와 여동생은 함께 흐느껴 울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외삼촌과 제세의 부모님, 그리고 우리의 처지를 동정한 몇몇 마을 사람들이 남아서 어머니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울지 마세요. 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차라리 이 자리에 참석하였던 사람들에게 부조금을 걷는게 어떻겠어요. 그걸 알게 되면 저 큰아버지∙큰어머니도 사람이라면 조금은 내놓을 게 아닙니까.”

  외삼촌도 같은 제안을 하셨다.

  “말씀하신 대로 따르렴. 그리고 데빠가는 기술을 배우러 보내고 너와 딸아이는 내 집에서 함께 살며 밭일을 돌보도록 하자. 그렇게 해서 큰아버지∙큰어머니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스스로 알도록 하는 게 어떻겠느냐?”

  어머니는 이런 제안을 울면서 거절하셨다.

  “저는 저의 재산을 다 빼앗겼으면서도 이제껏 단 한번 자식들을 기르기 위해 구걸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큰아버지∙큰어머니로부터는 우리 땅을 한자도 되돌려 받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들의 학대를 받을지라도 새벽부터 밤중까지 뛰며 일하여 그들을 수치스럽게 히겠습니다. 저는 제 보잘것없는 밭만을 일구며 살겠습니다.”

  쨔의 미도께라는 마을에는 루 가든 간[入龍]이라는 그 지방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는 닝마파의 스승이 계셨다.

  어머니는 읽고 쓰기를 가르치기 위해 나를 그리로 보내셨다.

  친척들은 우리에게 약간의 원조를 해 주셨고, 특히 제세의 부모님은 내게 일용품을 보내주곤 하셨으며, 때로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제세를 보내기도 하셨다.

  외삼촌 또한 어머니와 누이가 그걸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일거리를 갖다 주었고 누이는 누이대로 품팔이를 하여 자기 앞가림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이러한 가난은 나로 하여금 우울함과 참담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게 했다. 따라서 당시 나에게 기쁨이란 전혀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스승을 모시고 아랫마을에서 베풀어진 결혼 피로연에 참석하게 되었다. 스승은 그 만찬의 주빈으로 윗자리에 앉으셔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술을 권유받고 계셨다. 나도 오랜만에 이러한 스스럼없는 분위기에 모든 시름을 잊고 권하는 대로 술을 받아 마셨다가 완전히 취해 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나는 스승에게 올려진 헌물을 갖고 먼저 귀가하게 되었다. 나는 퍽 취해서 사람들이 만찬장에서 노래를 부르던 것을 마음에 떠올리며 스스로 상당히 자만하고 있던 나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길을 걸으며 나는 계속 노래를 불렀는데, 스승의 집으로 가는 길은 우리 집 앞을 자나야만 했었다.

  바로 그때 부엌에서 보리를 볶고 계시던 어머니가 그러한 아름다운 음성의 소유자는 당신 아들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셨다. 어머니는 아연실색해서 보리를 내던지고 오른손에는 막대기를 왼손에는 재를 움켜쥐고 달려 나오셨다. 어머니는 내 얼굴에 재를 뿌리고 막대기로 후려갈기셨다.

  “오, 밀라 세라뿌 갸르짼이여, 이 소갈머리 없는 당신의 아들 녀석을 보십시오!”라고 외치더니 어머니는 기절하셨다. 그때 누이가 달려 나왔다. 우리는 함께 어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즐겁게 노래나 하고 있을 기분이더냐? 이 세상의 어떤 불행한 사람이라도 우리보다 더하지 않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비애와 한탄에 젖어 우는 것뿐이다.”

  우리는 함께 목놓아 울었다.

  내가 말했다.

  “어머니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맹세코 저는 어머니의 원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네가 흑마술을 익혀 우리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가 흑마술의 달인이 되어 우리에게 이러한 참혹한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 저 사악한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없애고 구대(九代)에 이르기까지 그 자손의 씨를 말리는 것이 나의 뼈저린 소망이다.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나는 어머니에게 흑마술 스승께 바칠 수업료와 노잣돈을 마련해 주신다면 기필코 소원을 성취시켜 드리겠노라고 맹세하였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유일한 재산인 조그만 밭뙈기의 절반을 팔아 얼마간의 노잣돈을 준비하고 흑마술의 스승께 선물할 공물 및 그 밖에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셨다.

  나는 나대로 읍에 나가 여관에 며칠  동안을 머물며 동행자를 찾아보았다.

  이윽고 위(중앙주)와 짱 주로 종교의 이것저것과 흑마술을 배우러 간다는 인상 좋은 청년 다섯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가리 돌 지방에서 왔다는 이들은 나와 함께 동행할 것을 허락하였고, 나는 그들을 집으로 데려와 며칠간을 묵게 했다.

  극진한 대접을 하며 어머니는 몰래 그들에게 나에 대한 당부를 하셨다.

  “젊은 양반들, 내 아들아이는 의지력이 약하다오. 그러니 댁들이 친구로서 좀 야단도 치고 격려도 해 주어서 그애로 하여금 마술의 달인이 되도록 도와 주시겠소. 그리만 된다면 내 꼭 그 은혜를 갚으리다.”



  이별의 날이 다가왔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이별주를 권하며 단 하나뿐인 아들과의 헤어짐에 가슴이 찢기는 듯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흐느끼시고 또 흐느끼셨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응시하던 어머니는 비통한 어조로 그러나 단호히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그 먼 곳까지 마술을 익히려 가는 목적을 잠시도 잊지 말도록 해라. 너는 저 젊은이들과는 처지가 같지 않다는 것도 명심하여라. 저 사람들이야 부잣집 도령들로 마술을 그저 재미나 유희로 배우러 가지만 우리의 경우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이다. 네가 만일 우리 적에게 철저히 복수할 만큼 충분한 마술을 익히지 못하고 돌아와 버린다면 내 정녕 네가 보는 앞에서 내 목숨을 끊으리라.”

  그것음 참으로 기약 없는 작별이었다. 나는 이제 다시는 어머니를 만나 뵈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비통하고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눈물로 어머니께 작별을 고하고 흑마술의 스승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





        복수



  읍내에서 몇 사람의 라마를 만나 그들에게 흑마술의 가장 뛰어난 술사가 누구인가를 수소문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야루룽 교루뽀 마을의 라마 융통 트로겔이라는 분이라고 일러 주었다. 우리는 라마 융통 트로겔 문하로 들어가기로 결정하였다.

  야루룽 교루뽀에 도착한 우리는 스승을 찾아뵈었다. 나의 일행들은 스승께 갖고 있던 돈의 일부를 바쳤다. 그러나 나는 지니고 있던 모든 돈과 소지품, 그 위에 나의 몸과 마음을 전부를 스승께 바치며 나의 세습 재산을 박탈한 자들을 멸망시킬 수 있는 흑마술의 비법을 가르쳐 주기를 간청하였다. 또 한가지 그 비법에 숙달될 때까지 먹고 자는 것을 제공해 달라는 말씀도 드렸다.

  스승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대의 간청을 받아들이기로 하지.”

  그리하여 우리의 수업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지로 신통력을 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가 배운 것은 흑마술의 한 종류로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어 널리 울려 퍼지게 하는 도슬이었다. 이것은 하늘과 땅을 결합시키는 힘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법 그 밖에 두서너 가지의 유익한 것을 가능케하는 것이라 하였다.

  근 일년 가까이 이러한 수업을 받고 나자, 함께 왔던 젊은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스승께 청하였다. 스승은 이를 허락하고 정표로서 우리들 모두에게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털옷을 선사하였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이 아직 만족할 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하였다. 여태껏 배운 실력으로는 고향에 돌아가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는 틀림없이 내가 보는 앞에서 자결해 버리시리라. 정녕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의 마지못한 태도를 지켜본 친구들이 내게 그 이유를 물었다. 나는 아직 한가지도 배운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자 그들은 내게 이렇게 충고하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행법(行法)을 배웠잖은가? 스승께서도 더 이상 우리에게 가르칠 것은 없다고 하셨지 않나? 잘 생각해서 결정하게.”

  그들은 스승께 나아가 엎드려 절하고 각자 고향으로 향했다.

  나는 스승께 나아가 엎드려 절하고 각자 고향으로 향했다.

  나는 스승께서 주신 털옷을 걸치고 그들과 반나절 남짓 동행하여 전송하였다. 작별하고 돌아오는 데 길 위에는 많은 쇠똥이 굴러다니고 있어서 나는 그것들을 앞치마에 주워 담았다. 스승은 좋은 텃밭을 갖고 계셨다. 나는 그 밭에다 구덩이를 파고 주워 온 쇠똥을 묻어 드렸다.

  옥상에서 나의 이러한 행동을 보시던 스승께서는 주위에 있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내가 가르치던 제자 중 저 사람처럼 착하고 근면한 자는 없었고,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오늘 아침 내게 이별을 고하러 오지 않았던 것은 다시 내 밑으로 돌아올 작정인 것이야.”

  스승은 말씀하셨다.

  “데빠가, 그대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어찌된 연유에서인가?”

  나는 스승께서 선사하신 털옷을 벗어 잘 접어 그의 앞에 바쳤다. 내가 가진 재산이라곤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손히 인사드리고 스승의 발에 이마를 대고 말씀드렸다.

  “존경하는 스승이시여, 제게는 과부가 된 어머니와 한 여동생이 있습니다. 우리는 큰아버지∙큰어머니에게 우리의 유산을 빼앗겼습니다. 또한 참기 어려운 가혹한 학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우리의 재산을 찾고 그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저로 하여금 흑마술을 배우러 보냈습니다. 그러니 제가 만일 그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충분한 기술을 익히지 못한 채 돌아간다면 제 어머니는 필경 자결해 버릴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부디 제게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스승은 나에게 우리가 어떻게 해서 유산을 탈취 당하셨는지, 또한 그들에게 어떠한 학대를 받았는지 그 전말을 상세히 말하도록 이르셨다.

  나는 스승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일어난 일과 그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우리에게 저지른 가혹한 행위를 낱낱이 말씀드렸다.

  이야기 중간중간 설움에 복받쳐 나의 눈에선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이야기가 중단되곤 하였다. 스승께서도 슬픔을 참을 수 없는 듯 눈물이 그의 두 빰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대 말이 사실이라면 그대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억울한 일을 당하였구나. 좋다. 나의 주술의 힘으로 복수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지. 허나 정당한 사유 없이 절대로 그것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내가 처음에 그대들에게 이 주술을 가르치지 아니한 것은 이를 어리석게 사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대에게 아무 거짓이 없음을 알았으므로 내가 갖고 있는 주술의 전부를 가르쳐 주겠노라.

  나는 사람을 마비시켜 살해하는데 가장 효과가 있는 잔돈 마루나꾸(紫怪蛇)라는 마술을 알고 있다.

  쌍롱 계곡에 윤덴 카츠오라는 의사이며 마술사인 라마가 있는데, 나는 이 마술의 비법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대신 그는 손가락 하나로 큰 우박을 내리게 하는 마술을 내게 전해 주었다. 그 이래 우리는 서로 약속하기를 그에게 우박의 비법을 배우러 오는 사람은 내게 보내 배우게 하고 사람을 살해하는 마술을 배우러 내게 오는 사람은 그에게 보내기로 하였다. 자, 이제 그대는 나의 큰아들과 함께 그의 처소로 가서 그 술법을 전수 받도록 하라.“



  우리는 윤텐 카츠오가 있는 쌍룽 계곡으로 가서 그에게 스승께서 보내신 선물과 편지를 올리고 사정을 말씀드렸다.

  “나의 친구는 변함없는 우정을 갖고 맹세를 잘 지키는구나. 틀림없이 나는 그대에게 그 비술을 가르쳐 주리라.

  우선 그대는 인적이 없는 이 산 꼭대기에 암자를 하나 짓도록 하라.“

  나는 그가 지정해 준 장소에 큰 돌을 쌓아 올려 출구가 없는 튼튼한 암자를 하나 세웠다.

  라마는 내게 그 비술을 수련하는 데 필요한 주문을 가르쳐 주며 보통 칠일간의 수련으로 충분하다고 일러 주셨다. 그러나 나의 신통력을 발휘하고 싶은 곳은 이 나라와는 아득히 먼 곳이어서 나는 칠일을 더 수련하기를 부탁드렸고, 라마는 이를 허락하셨다.

  열 사흘째 되는 날 밤, 라마가 나의 암자로 찾아오셨다.

  “오늘 밤 그대는 만다라[제단] 옆에서 그대가 성공한 증거와 소원성취를 보게 되리라.”

  바로 그날 밤, 서른 다섯 개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와 심장을 갖고 수호신들이 모습을 나타내더니 이들 전리품을 쌓아 올리며 말하였다.

  “요 며칠간 거듭해서 자네가 우리를 불렀는데 그래, 자네가 바라는 것은 이것들이겠지?”

  그리고는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나를 찾아 온 라마는 희생되어 마땅한 그 사람을 살해할 것인지를 물으셨다.

  나는 기쁨에 차서 라마께 그들로 하여금 바로 내가 그와 같은 복수를 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고, 또 장래 내 신통력의 산 증인으로 그들을 살려 두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되어 나의 최대의 적,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가계의 멸망에서 제외되었다. 나는 수호신들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암자를 나왔는데, 그 당시의 흔젃이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런데 흑마술로 이룬 나의 복수의 현장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날은 마침 큰아버지의 장남 결혼식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초대되었다. 저택 안에는 큰아버지의 아들들과 신부 그리고 큰아버지의 편에 가세하여 우리를 멸시하였던 서른다섯 명의 일가 친척과 손님들이 있었다.

  초대된 손님 중 우리를 동정하였던 사람들은 아직 연회로 향하는 도중으로 그들은 가벼운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잔칫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 집사람들이야말로 ‘재산을 타인에게 맡기니 문 밖으로 쫓겨난다’는 옛말 그대로예요. 설마 흑마술을 배우러 떠난 데빠가의 복수가 아직은 효과가 없을지라도 이런 때야말로 인과의 응보가 찾아 올 다시없는 기회가 아니겠어요?”

  그때 한 하녀가 물을 길으러 나와, 많은 조랑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울타리가 처진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말들이 한 필도 보이지 않고 대신 수많은 전갈과 거미, 뱀과 개구리들이 우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중 괴물처럼 생긴 큰 전갈 한 마리는 거대한 집게발을 저택의 큰 기둥에 들이박고, 있는 힘을 다해 밖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경악해서 떨고 있던 하녀는, 짐승들이 흥분된 나머지 미쳐 날뛰기 시작했을 무렵에야 겨우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짐승들은 우리의 망을 찢고 뛰쳐나와 울부짖고 걷어차는 등 주변 일대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그 중 한 마리가 굉장한 힘으로 저택의 기둥을 들이받자 기둥이 부러지면서 저택 전체는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집안에 있던 신부 및 큰아버지의 아들들을 비롯한 서른다섯 명 모두가 다 그 밑에 깔려 죽고 말았다. 흙먼지는 하늘을 덮고 사람들과 짐승들의 시체가 폐허를 메웠다.

  굉음과 함께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 사람들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나의 누이가 무슨 일인가 하고 집 밖으로 달려 나왔다. 누이는 곧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숨 넘어가는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나와 보세요. 큰아버지의 저 집이 무너져서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나와 그것이 사실인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계셨다. 흙먼지에 뒤덮이고 허공에 가득 한 비참한 울음소리와 신음소리를 듣고 어머니는 완전히 놀라는 한편 잔인한 희열감에 젖으셨다.

  어머니는 긴 막대기 끝에 넝마조각을 매달아 깃발처럼 높다랗게 흔들며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외쳐대셨다.

  “스승께, 신들께, 모든 영광을! 여러분, 보시오. 밀라 세라뿌 가르짼에게 훌륭한 아들이 있나 없나를! 내 비록 돼지밥같은 음식을 먹고 누더기를 걸쳐야만 했으나 이것이 과연 우리의 희생에 대한 앙갚음으로 충분한지 모두들 나와 보시오!

  지금이야말로 약자의 저주가 어떤 일을 해 낼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바로 그때입니다.

  내 아들, 데빠가여, 참으로 장하다! 내 생전 이렇게 통쾌한 일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증오에 차서 퍼붓는 어머니의 독설을 듣고 있던 큰아버지를 위시한 마을 사람들은 우리의 사악한 복수에 오히려 분개하여 다시는 흑마술을 쓰지 못하도록 나에게 자객을 보내기로 합의하였다. 그 소문을 듣고 어머니도 내게 편지를 보내어 그들이 다시는 그와 같은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나의 강력한 주술력을 다시 한번 보여 주라는 청을 해 오셨다. 나는 스승께 어머니의 편지를 보여 드리고 폭풍우와 우박을 내리게 하는 술법을 가르쳐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수련당에 들어가 칠일 기도를 끝내자 당 안에 구름이 모이고 번개가 치고 우레 소리가 들렸다. 그때 나는 나의 주문대로 폭풍우의 진로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승께서도 이를 증명해 주셨다.

  나는 곡물의 수확기를 기다렸다가 순례자의 복장으로 꾸미고 몰래 고향 마을에 숨어 들어가 뒷산 높은 곳에 호마단을 설치하고 폭풍우와 우박을 내리게 하는 주술을 행하였다. 그러자 검은 구름이 하늘 가득히 낮게 깔리더니 돌연 세찬 우박과 함께 폭풍우가 밀어 닥쳐 그 일대에 수확을 앞둔 많은 밀밭을 낱알 한 개 남기지 않고 싹 쓸어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는 우리 가족을 비탄에 몰아넣고 학대했던 무리들에 대해 통쾌한 복수를 함으로써 또 다른 원한을 부를 수 있는 악업을 쌓았던 것이다.


  이야기가 끊어지자 듣고 있던 대중들은 비애와 한탄으로 마음 깊이 동요되었다. 눈물이 두 빰을 적셔 내려 한동안 모두 숙연하였다.







제 2 장. 밝음으로의 길





        성스런 진리를 구하다



  렛충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이신 제츈 밀라레빠께 절하고 합장한 후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당신께서는 어린 시절 친척들에게 유산을 빼앗기고 많은 학대를 받으신 후, 흑마술을 배워 그들에게 통쾌히 복수하심으로써 악업을 지었으나 후년에는 선업을 쌓으셨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물론 성스러운 진리에 대한 헌신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어떠한 연유로 스승께서는 참된 진리를 구하겠다는 마음을 내시게 되었는지요. 또 어떠한 연유로 스승께서는 참된 진리를 구하겠다는 마음을 내시게 되었는지요, 또 어떻게 그 진리를 만나게 되셨는지요?”

  제츈은 말씀하셨다.

  “나는 주술로써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폭풍우를 일으켜 재산을 파괴시키고 재앙을 일으킨 데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이를 몹시 후회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잠자는 일과 먹는 일을 잊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나 차마 스승께 이를 말씀드리고 바른 진리를 수행하고 싶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을 섬기던 한 유복하고 신앙심 두터운 신도가 중병에 걸렸다. 스승은 곧 그의 집에 초대되어 가셨으나 삼일 후 슬픔에 잠긴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내가 그 연유를 여쭈었더니 스승은 말씀하셨다.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간밤에 그 훌륭한 신도는 세상을 떠났다. 세상사란 참으로 무상하구나. 나는 나의 생애를, 사람들을 죽이고 비바람을 일으키는 흑마술을 수련하는 데 바쳤다. 그대 또한 이 죄 많은 주술에 전념하여 악업[카르마]을 쌓았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은 내게 있으므로 그 대가는 전적으로 내가 받게 되리라.”

  나는 스승께 여쭈었다.

  “중생들이 지은 바 악업을 소멸하고 보다 높은 단계의 상태로 구제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없습니까?”

  스승이 대답하셨다.

  “모든 중생들은 다 각각 밝은 광명을 스스로 갖추고 있어서 우리는 그 계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들은 적이 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확고하게 신뢰할 수 있는 진리에 이 몸을 바치고 싶다.

  그대는 여기에 남아 나의 가족과 제자들을 돌보라. 나는 그대와 나의 구원을 위해 정법을 가르치는 스승 밑에서 수행하리라. 아니면 그대가 나아가 그 진리를 배워도 무방하다. 그대를 위해서 어떠한 도움도 아끼지 않으리라.“

  나는 뛸 듯이 기뻣다. 그리고 곧 스승께 내 자신이 성스런 진리를 찾아 나설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그는 즉석에서 이를 수락하고 새로운 스승께 바칠 선물과 함께 짱롱 계곡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밀교파의 롱통라가라는 유명한 라마를 소개해 주셨다. 그는 ‘대성취’라 불리는 교리에 뛰어난 분이라고 하셨다. 스승이 원하시는 바를 좇아 나는 짱롱 계곡으로 새 스승을 찾아 나섰다.

  라마 롱통라가를 만나게 된 나는 가져온 선물을 그에게 바치고 단 일생(一生)에 모든 윤회[삼사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리를 배우기 위해 머나먼 서쪽 고지대에서 온 이 죄 많은 사람에게 아무쪼록 그 진리를 가르쳐 주십사 하고 부탁드렸다.

  라마는 말씀하셨다.

  “나의 교리는 ‘대성취’라 불리듯이 참으로 완전한 것이다. 그것은 뿌리에 있어서나 가지에 있어서나 똑같이 훌륨한 것이다. 낮에 그것을 향해 명상하는 자, 낮 동안의 구원을 받을 것이며 밤에 그것을 향해 명상하는 자, 밤 사이의 구원을 받을 것이다. 선업을 짓고 태어난 사람들은 이 교리를 듣기만 하여도 구원을 얻을 수 있으므로 구태여 명상할 필요조차 없다. 이것은 가장 뛰어난 지자(知者)들을 위한 교리이다. 나는 이것을 그대에게 가르쳐주리라.”

  라마는 그 자리에서 나에게 교리를 가르쳐 주고 수행법을 일러 주셨다.

  이때 나의 머리에는 과거의 일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주술을 배웠을 때,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데에는 열나흘이 걸렸으며 폭풍우를 일으키는 데에는 이레가 걸렸다. 이제 나는 밤낮으로 명상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더구나 선근이 있는 사람은 듣기만 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위대한 진리를 만난 것이다. 나는 생각하였다.

  ‘그렇다. 나는 틀림없이 이들 선근이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리라!‘

  나는 이러한 자만심에 차서 명상조차 않고 잠만 자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며칠 뒤 라마가 나의 처소에 오더니 말씀하셨다.

  “그대가 자신을 소개할 때 고지대 출신의 죄 많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것 참 옳은 말인걸. 나도 교리를 입에 발리게 너무 칭찬하였어. 그러고도 그대에게 교리를 너무 빨리 가르쳐 주었네. 아무튼 나는 그대를 해방의 길로 인도할 수가 없다네.

  로부락에 더위룽이라는 절이 있는데, 그곳에는 지금 위대하신 성자 니로빠의 성실한 제자께서 살고 계시다. 그분은 높은 분 중에서도 가장 높은 분이며, 역경(譯經)의 제 일인자이시다. 인도∙티벳∙중국의 세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탄트라(비밀한 법) 교리에 뛰어난 지식을 갖춘 분으로 역경 삼장법사 마루빠라 불리시지. 그대와 그분 사이에는 전생으로부터의 인연이 있으니 그대는 그분 밑으로 가야 할 것이다.“

  역경 삼장법사 마루빠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황홀한 기쁨으로 온몸에 전율을 느끼고 감동하여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는 다만 몇 권의 책과 약간의 음료만을 지참한 채 위대한 스승을 찾아 뵙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나는 오로지 한 생각뿐이었다.

  “언제 스승을 만날 수 있을까?”



  내가 더위룽의 밀밭에 도착하기 전날 밤, 마루빠는 꿈을 꾸었다.



  위대하신 그의 스승 니로빠님이 나타나더니 그에게 관정(물을 머리에 부으며 축복을 내리고 깊은 뜻을 전수하는 의식)을 행하시고 유리로 된 약간 더럽혀진 금강저를 내어 주셨다. 그와 함께 감로수를 채운 황금병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 병의 감로로써 금강저의 더러움을 씻어내도록 하라. 그런 후 이를 승리의 깃발(티벳의 사원이나 절 지붕 위에 꽂아 놓는 여덟 개의 경사스러운 깃발 중의 하나) 위에 놓도록 하라. 이는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며, 또한 유정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니라. 그러함으로써 너와 다른 모든 이들의 목표는 달성되는 것이다.”

  그러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가 스승의 훈시를 좇아 황금병의 감로로 금강저의 더러움을 씻어 내고 승리의 깃발 위에 올려놓자 갑자기 금강저는 눈부신 빛을 발하여 온 우주를 밝히는 것이 아닌가. 이 밝음에 놀란 육도의 중생들은 슬픔에서 벗어나 매우 행복해 하였다. 그리고 마루빠와 승리의 깃발에 대해 수없이 절을 하는 것이었다.



  이 광경에 놀라 마루빠는 잠에서 깼다. 그는 묘한 행복감과 즐거움에 젖어 들었다.

  그때 마루빠의 부인이 아침밥을 차려서 들어오더니 말씀하셨다.

  “선생님, 저는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서방 극락세계에서 왔다는 두 부인이 약간 더럽혀진 수정탑을 들고 오시더니 나로빠님께서 당신에게 그 사리탑을 깨끗이 하고 산꼭대기에 그것을 올려놓으라고 전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당신께서, 그것은 이미 나로빠 대성(大聖)에 의해 축복 받은 것이지만 그분께서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이건 좇지 않으면 안 된다 하시며 곧 수정탑을 성수로 씻은 후 산 위에 놓으셨습니다. 그러자 수정탑은 해와 달과도 같이 찬란한 빛을 내며 똑같은 모양의 수정탑이 몇 개 더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두 부인은 마치 수호자인 듯한 행동을 취하고 계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옵 니까.?”

  내심 두 개의 꿈이 일치되고 있음을 기쁘게 여기면서도 마루빠는 단지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나는 허망한 꿈의 의미 같은 건 알지 못하오. 오늘 나는 밭을 갈러 나갈 터이니 잘 빚어진 맛 좋은 술을 내오도록 하시오.”

  그러고는 밭으로 나가 버리셨다. 얼마 후 부인이 술 한 단지를 밭으로 내가자 그는 말씀하셨다.

  “이것은 아마 내 몫이 되겠지. 방문객이 있으니 한 단지 더 내오시오.”

  그래서 또 한 단지를 내 오자 그는 그것을 밭둑 위에 놓고 모자로 덮어두었다. 그리고는 술단지를 앞에 놓고 술잔을 기울이며 밭갈이 후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편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대요기이시며 역경 삼장법사이신 마루빠가 계신 곳이 어디인가를 물으며 길을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만난 대답은 대부분 그런 어마어마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자기들도 모르며 그냥 마루빠라는 노인이라면 저 너머 어디 어디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러 명의 소 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에게 물으니 나이 많은 이들은 모른다고 하였다. 그 중 좋은 옷을 입고 장신구를 몸에 장식한 깔끔하고 현명해 보이는 젊은이가 말하였다.

  “당신이 말하는 분은 나의 아버지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전 재산을 황금으로 바꾸시어 인도로 가셔서 많은 책을 구해 오셨습니다. 당신께서 찾으시는 분이 저의 아버지라면 그분은 지금 밭을 갈고 계십니다.”

  나는 그분이야말로 틀림없이 내가 찾던 분이라 생각되었지만 귀하신 역경 삼장법사께서 밭을 간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질 않았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젊은이가 가르쳐 준 밭으로 가보니 건장하기보다는 뚱뚱하고 부리부리한 눈매에 위엄이 서려 있는 한 라마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밭을 갈고 있었다. 그를 본 순간 나는 야릇한 황홀감으로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존자시여, 고명하신 성자 니로빠의 제자이신 역경 삼장법사 마루빠님은 어디에 계시온지요?”

  한동안 라마는 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훑어보더니 내게 물으셨다.

  “그대는 어디서 온 뭣하는 사람인가?”

  나는 짠의 고지대 출신의 죄 많은 사람으로 역경 삼장법사 마루빠님의 학식과 명성을 듣고 바른 진리를 배우고자 찾아 온 사람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가. 그럼 그대가 내 대신 이 밭을 마저 다 갈도록 하라. 그리하면 내 그대를 마루빠에게 데려다 주지.”

  라마는 모자 밑에서 술단지를 꺼내어 내게 권하고는 밭을 잘 갈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셨다.

  단지의 술을 다 마시자 여행의 피로가 말끔히 가시고 새로운 기운이 솟아났다. 나는 정성껏 밭을 갈았다. 얼마 후 밭갈이가 마쳐질 즈음 그 소치는 젊은이가 나를 데리러 왔다. 그 젊은이를 따라가니 바로 그 라마가 두 개의 방석 위에 모포를 한 겹 더 얹어 삼층으로 된 자리 위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몸을 단정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마와 코 사이에는 아직도 흙이 묻어 있었다. 그는 뚱뚱한 배를 불쑥 앞으로 내밀고 앉아 계셨다.

  이 분은 아까 나와 헤어졌던 그 라마였으므로 나는 다른 라마가 계신가 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바로 마루빠이다. 그러니 그대는 내게 예배하도록하라.”

  나는 라마의 발에 이마를 대고 예배하고는 말씀드렸다.

  “오, 존경하는 스승이시여, 저는 서쪽 고지대에서 온 대죄인입니다. 당신께 이 몸과 마음을 다 바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부디 제게 입을 것과 먹을 것, 그리고 진리를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제가 금생에서 해방을 성취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옵소서!”

  라마는 말씀하셨다.

  “그대가 스스로 대죄인이라 하는데, 그것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 나는 나를 위해 그대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한 일이 없으니까. 헌데 대체 그대는 어떤 죄를 지었는가?”

  그간의 일을 모두 말씀드리자 라마가 말씀하셨다.

  “좋아, 내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겠다는 그 말이 가상하다. 그런데 나는 그대에게 입을 것, 먹을 것, 그리고 진리 세 가지 모두를 다 줄 수는 없다. 그대가 다른 곳에서 진리를 구한다면 나는 그대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하나 내게 그 진리를 구하기 바란다면 그대는 다른 곳에서 먹는 것을 해결해야 할 것이야.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좋다. 또한 설령 내가 그대에게 진리를 가르쳐 준다 하여도 그대가 금생에 해방을 성취할 수 있을는지는 전적으로 그대의 정진과 인내 여하에 달려 있다.”

  나는 물론 후자를 택하기로 하였으며, 이렇게 하여 역경 삼장법사 마루빠 스승 밑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시련



  나는 로뿌다꾸 계곡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걸식을 하여 한 자루의 보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일부로 사면에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놋그릇으로 바꾸어서 나는 스승 댁으로 돌아왔다.

  온 종일의 행각으로 피곤해진 나는 그만 보릿자루를 쿵하고 마룻바닥에 떨어뜨렸는데, 이 때문에 집이 약간 흔들렸다. 그러자 스승께서 뛰어 나오시더니 노기 띤 음성으로 호통을 치시는 것이었다.

  “오라, 너 참 힘센 놈이로구나. 그래, 네가 알고 있다는 그 마술과 힘으로 이 집을 다 부숴 놓을 작정이야? 아주 기분 나쁜 놈이로구먼. 어서 그 자루를 내다 버리지 못할까!”

  이를 보고 나는 스승의 성격이 약간 급하신 듯하니 다음부터는 행동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스승께서 문 밖으로 걷어차 버리신 자루에서 놋그릇을 꺼내어 다시 안으로 들어가 이를 라마께 바치고 예배하였다.

  스승은 그 위에 손을 얹고 명상에 잠긴 채 한참을 계셨다. 나는 그의 빰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도가 끝나자 스승은 말씀하셨다.

  “훌륭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나의 스승이신 니로빠님께 바치려 한다.”

  그러더니 스승은 손을 들어 무언가를 바치는 시늉을 하셨다. 그리고는 요령을 좌우로 힘차게 흔들고 등불용 버터 기름을 놋그릇에 세워 제단에 올려 놓으셨다.

  자신의 악업으로부터의 해방에 관한 일이 한층 마음에 걸린 나는 무언가의 진리를 가르쳐 주시도록 말씀드렸다.

  “나에게 오기를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여기 오는 도중 야도꾸, 다꾸룽 등지의 유목민들에게 약탈을 당하고 있다. 그대는 그곳에 가서 도둑놈들에게 폭풍우를 일으키어 다시는 그 같은 못된 짓을 못하도록 혼을 내주고 오라. 이는 종교적 임무이다. 그런 후에 진실한 법을 그대에게 가르쳐 주겠노라.”

  나는 말씀하신 각각의 장소에 가서 세찬 폭풍우와 우박을 일으켜 그들을 위협한 후 돌아와 약속하신 법을 가르쳐 주시기를 청하였다.

  “뭐라고! 뻔뻔스럽게도 그대는 겨우 폭풍우와 같은 하찮은 담보물로 많은 비용과 희생을 치르고 인도까지 가서 구해 온 저 신성한 진리를 탐내느냐?”

  그대가 진심으로 진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로뿌다꾸의 난폭한 산 사내들을 해치우고 오라. 그 놈들 역시 종종 나에게 오는 제자들의 물건을 약탈하는 등 번번이 내게 무례한 행동을 했던 자들이다.

  그대의 주술로 그놈들을 혼내 주면 내 그대에게 존경하옵는 스승 대학자[빤디드] 나로빠님으로부터 전수 받은 비밀한 가르침을 내려 줄 것을 약속한다. 이 진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단 일생에 해탈을 성취케 하고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말씀하신 대로 행하였다.

  나의 주문은 로뿌다꾸 산 사내들 사이에 효과를 나타내어 그들은 자기들끼리 싸움을 시작, 그 싸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살인 사건을 또다시 내게 심한 양심의 가책과 고뇌를 불러일으켰다.

  스승은 살해된 자 중에 라마께 무례를 범한 자들이 있음을 시인하고 내게 대마술사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다.

  내가 다시 진리를 가르쳐 주실 것을 청하자 스승은 말씀하셨다.

   “허 참, 아니 그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돈을 허비하여 천신만고 끝애 인도까지 가서 들여 온 그 귀하고 신성한 진리를 자네가 범한 악업의 대가로 가르쳐 달란 말이지. 농담하는 건 아니겠지? 나니까 망정이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자넬 죽여 버렸을 걸. 어디 그렇다면 야도꾸에 가서 자네의 주술로 엉망이 되어버린 수확을 다시 걷어들일 수 있게끔 원상 회복시키고 또 죽은 산 사내들을 다시 살려 놓고 와 보렴. 그렇다면 내 자네에게 진리를 가르쳐 줄 것이다.”

  스승을 나를 이런식으로 조롱하며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나는 슬피 울었다. 이런 나를 존모(라마의 부인)께서는 따듯하게 위로해 주셨다.

  다음날 아침 일찍 스승께서 내 방에 찾아 오셨다.

  “간밤에는 자네에게 좀 심하게 대한 듯 싶네.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잘 참고 견뎌 보게나. 헌데 자네는 재주가 좀 있는 사람 같으니 내 아들 다르마 도다이의 수행을 위한 탑을 하나 쌓아 주지 않겠는가? 그대가 이것을 완성하게 되면 기필코 그대에게 위대한 진리를 가르쳐 주겠네. 뿐만 아니라 그 동안의 침식 제공도 해 줄 터인즉 자네는 더 이상 걸식을 나설 필요도 없게 되지.”

  “그것은 좋습니다만 만일 그 동안에 제가 구원을 얻지 못한 채 죽어 버린다면 어찌합니까?”

  라마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자네가 그 동안에는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것을 내가 보장하지. 나의 가르침은 그렇게 길지가 않아. 단 두서너 마디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가 있는 것이야. 인내와 투지를 갖고 내 훈시에 따라 명상해 본다면 자네가 단 한생에 밝음을 성취할 수 있는지 없는지 금방 알 수가 있지. 나의 종파는 그 어느 종파보다도 많은 불보살의 자비로써 깨달음을 향한 원력을 불어넣어 줄 수가 있거든.”

  이러한 위로의 말에 고무되어 나는 자청하여 탑 쌓기에 들어갔다.

  탑이 반쯤 올라갔을 때 라마가 보시더니 탑 쌓기에 대해 자세히 연구해 보지도 않고 그 일을 시켰으니 곧 일을 중지하고 여태껏 쌓아 올린 돌이며 흙은 그 원래의 자리에 갖다 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모든 것을 원래 상태로 해 놓자 라마는 다시 술에 취한 모습으로 나를 서쪽 산마루로 데려 가셨다. 그리고 그곳에 같은 형태의 탑을 쌓도록 이루시고는 가 버리셨다. 새로이 명령 받은 탑을 거의 절반 높이까지 쌓아 올렸을 무렵 라마가 오셨다. 그리고는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니 모두 허물어 원래 상태대로 해 놓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또 라마의 말씀에 따랐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를 북쪽 산마루로 데려가서는 말씀하셨다.

  “대마술사여, 요전에 성을 쌓으라고 했을 때는 술에 취해 잘못된 지시를 내린 걸세. 암, 그것은 잘 못 된것이고 말고, 이제야말로 이 장소에 멋진 탑을 하나 쌓게나!”

  나는 몇 번이나 탑을 쌓았다가 허물고 하는 것은 스승한테도 무익한 일이지만 내게 있어서도 대단히 괴로운 일이니 잘 생각하셔서 확실한 지시를 내려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러자 스승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늘은 취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게. 탄트라 행자가 사는 집은 삼각형이어야 하니 그렇게 쌓도록 하게.“

  나는 삼각형 모양의 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 삼 분의 일 정도를 마친 어느 날 라마가 찾아 오셨다.

  “누가 이런 탑을 쌓으라고 했느냐?”

  나는 말씀드렸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는 스승님께서 아드님의 수행을 위한 탑으로 몸소 제게 시키신 것이 아니옵니까?”

  그러자 라마는 말씀하셨다.

  “야, 이놈 봐라. 아주 맹랑한 걸. 내가 그렇게 시켰다는 증거라도 있다는 거냐? 네 놈은 이 괴상한 마법의 성과도 같은 삼각형 탑 속에 우리 가족을 잡아 가두고 주술로 우리를 몰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는 거냐? 이놈아, 나는 너의 상속 재산을 훔친 일이 없다. 그래 바른 진리를 갈망한다는 놈이 흑마술 신이나 모시기에 알맞은 탑을 쌓고 있느냐? 당장 허물고 모든 흙과 돌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

  그러더니 몹시 화난 모습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대단히 마음이 상했으나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나에게는 단 일생에 모든 악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대한 가르침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쌓던 탑을 허물어 원래의 자리에 갖다 놓았다.

  며칠 귀 라마는 나를 산보에 동행시켰다. 이리저리 배회하던 우리는 어느 구릉까지 오게 되었다. 라마가 걸음을 멈추시더니 내게 말씀 하셨다.

  “이곳에 사각형의 흰 탑을 쌓도록 하라. 아홉 층을 쌓고 그 위에 뾰족한 첨탑을 한 층 더 얹어 도합 십 층이 되도록 하는 게 좋겠다. 이 탑은 절대로 허물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다 완성된 후에는 그대가 바라는 진리를 가르쳐 주지. 뿐만 아니라 암자에 들어앉아 그 진리를 수행하는 동안 필요한 먹을 것, 입을 것을 다 대 줄 것이야.”

  “그러시다면...”

  하고 나는 말했다.

  “존모님을 지금 존사께서 제게 분명히 밝히신 약속의 증인으로 세워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좋도록 해라.”

  스승은 선선이 이를 허락하셨다.

  나는 존모를 모셔다가 땅 위에 새로 지을 탑의 모형도를 열심히 그리는 스승 앞에서 말했다.

  “존모시여, 나는 세 번이나 탑을 쌓았다가 허물어야 했습니다. 첫번에는 스승님께서 충분히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러한 지시를 내렸다 하여, 두 번째는 술에 취해서 잘못된 지시를 내렸다 하여, 세 번째는 그런 엉뚱한 지시를 내린 것은 무언가 정신이 없었거나 하여간 올바른 상태에서 내린 지시가 아니었으므로 새로 탑을 올려야만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지요.

  게다가 제가 오로지 스승님의 지시대로만 한 것이었다고 말씀드릴라치면 스승님께서는 호통을 치시며 증인이라도 있냐고 화를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탑을 쌓으라 하시니, 이제 스승님께서 제게 이 자리에서 이러 이러한 지시를 내리셨음을 분명히 들으시고 후에 증인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존모는 말씀하셨다.

  “물론 그렇게 해 드리거 말고요. 하나 선생님께서는 워낙 마음대로만 하시는 분이니 나중에라도 나의 증언을 인정해 주실는지는 알 수가 없군요.

  글쎄 이 탑만 해도 그렇지 무엇에 쓰려고 이 탑을 쌓으라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더구나 이 땅은 우리 소유가 아니고 저 양반의 사촌들 것이랍니다. 분명 말썽이 날 거예요. 제가 아무리 말씀드려도 들은 척이나 하셔야죠.“

  스승은 눈을 부릅뜨더니 존모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부탁 받은 증인 일만 하면 될 것이야. 어이 마술사. 자네가 정 그렇게 내 약속을 믿을 수 없다면 그냥 가버리면 되지 않겠는가.”

  나는 또다시 명령받은 사각형 탑의 기초 작업에 들어갔다. 이 무렵 스승의 상수 제자 고꾸단, 통, 메똥 등이 관정을 받기 위해 스승 댁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은 틈틈이 운동 삼아 커다란 둥근 돌을 운반해 주곤 하였다. 마침 알맞은 크기여서 나는 그것들을 주춧돌로 사용하였다.

  라마 마루빠가 나의 일하는 모습을 보러 오셨을 때 나는 막 일 층을 끝내고 이 층을 올리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그는 쌓은 탑을 주의 깊게 이리저리 살피더니 라마의 제자들이 날라다 준 주춧돌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대마술사여, 그대는 저 돌을 어디서 얻었는가?”

  나는 말씀드렸다.

  “존자시여, 그것은 스승님의 세 분 제자들께서 고맙게도 운반해 주신 것이옵니다.”

  “아, 그런가”하더니 라마는 “그러나 그대는 그들이 운반한 돌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야. 그 돌을 꺼내어 제자리에 갖다 두라”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라마께 다시 허물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상기시켜 드렸다. 그러자 그는 말씀하셨다.

  “나는 비밀한 대진리를 전수 받은 내 제자들을 자네의 일꾼으로 쓰게 한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지. 더구나 쌓은 탑 전부를 부수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내 제자들이 날라 온 돌만을 끄집어내라는 것이야.”

  그러나 그 돌을 꺼내기 위해서 쌓은 탑을 다 허물고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라마의 친척들이 수군거렸다.

  “마루빠는 제정신이 아니에요. 아 글쎄 서쪽 고지에서 교리를 배우러 왔다는 힘센 젊은 사미를 시켜 탑을 쌓다가 허물고 또 쌓다가는 허물게 하고 있구려. 필경 이번에 쌓고 있는 저 탑도 얼마 못 갈 거예요.”

  그러나 그들은 그 탑이 허물어지지 않고 계속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무렵 짱롱에서 스승의 제자 쫀뽀가 「최승락신만다라(最勝樂神曼陀羅)」의 대관정을 받으러 왔다.

  존모는 내게 넌지시 귀뜸을 하여 주셨다.

  “지금이야말로 당신도 관정을 부탁드릴 좋은 기회입니다. 어서 가 보세요.”

  나 이제 역시 이제 한 개의 돌, 한 줌의 흙이라도 모두 내 힘으로 운반하여 탑을 쌓았으니 무언가의 대가를 주시리라 생각되어 관정 법회의 대중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라마가 나를 보더니 물으셨다.

  “대마술사여, 그대는 이 법회에 무엇을 공물로 바치려하느냐?”

  “존사님께서는 아드님을 위한 탑을 쌓으면 진리의 말씀과 함께 관정의 은혜를 내려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무엇이라고! 이 도둑놈아, 네가 그래 겨운 두서너 개의 흙벽을 쌓았다고 해서 내가 그 많은 비용과 위험을 무릅쓰고 인도까지 들어가 얻어 온 신성한 진리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냐? 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 네가 그에 응분한 공물을 마칠 수 있다면 좋아, 내 너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해 주지.”

  라마는 나의 머리카락을 거머쥐더니 잡아끌어 자리로부터 일으켜 세운 후 발길로 걷어차서 밖으로 내 쫓아 버리셨다.

  나는 이대로 죽고만 싶었다. 숙소로 돌아와 울며 한탄하고 있던 나에게 존모가 찾아 와 위로해 주셨다.

  “라마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일체 중생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이 땅에 인도로부터 성스런 가르침을 가져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지나가는 개에게조차 교리를 설해 주시며 축수를 해주시기도 한답니다. 행여라도 라마께 향한 신앙심을 잃으셔서는 안 됩니다.”

  존모는 그토록 따듯하게 나를 위로해 주셨다.

  다음날 아침 라마가 내 처소에 오더니 말씀하셨다.

  “이제 탑 쌓기는 그만하고 우선 탑의 아래층에 있는 법당을 꾸미고 그 둘레에는 열두 개의 기둥을 세워 지붕이 있는 회랑을 만들도록 하라.”

  지시하신 바를 끝낼 무렵 통이 새로 입문한 제자들을 데리고 관정을 받으러 왔다. 존모께서 버터 한 통과 천 한 조각과 구리 냄비를 내게 가져오시더니 말씀하셨다.

  “이것들을 공물로 바치시고 관정을 부탁해 보세요.”

  나는 그 물건들을 갖고 법회장으로 들어갔다.

  스승이 나를 보더니 물으셨다.

  “마술사, 그래 그대는 무슨 공물을 갖고 이 자리에 끼었는가?”

  나는 존모가 주신 물건들을 스승님께 바쳤다.

  “버터 한 통과 천 한 조각 그리고 이 구리 냄비입니다.”

  “아, 그것들. 그건 이미 내게 공물로 바쳐진 것들이어서 그대가 다시 바칠 수가 없지. 그대의 물건을 가져오도록 하라. 그렇지 못하다면 어서 썩 돌아가랏!”

  스승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게 마구 발길질을 하셨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고 싶었다.

  ‘아, 이는 내가 지은 죄과의 응보란 말인가. 라마는 내가 다르마(진리)를 수행하기에는 적합치 않은 자라고 생각하시는 것일까. 아니면 그는 도대체 자비심이라고는 없는 사람일까. 그러나 진리를 모르고 사는 삶이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차라리 죽어 버릴까.’


  스승께서 지시하신 구층탑과 법당과 그 둘레의 회랑을 완성할 즈음 나는 등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존모께 등을 보여 드리고 고통을 호소하였다. 종기가 나서 고름으로 범벅이 된 내 등을 보더니 존모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셨다. 그리고는 스승께 나아가 애원하셨다.

  “저 불쌍한 사미는 이제 탑을 구 층도 더 넘게 쌓아 올렸고 회랑도 완성하셨나이다. 이제 그의 등에는 등창이 나서 고름하며 상처하며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사옵니다. 그 아이는 가진 거라곤 아무 것도 없고 선생님은 그를 위해 아무 것도 해 주시지 않으니 정말 너무 하시옵니다.”

  스승은 말씀하셨다.

  “그를 이리로 데려 오라.”

  나의 등에 난 종기를 요모조모 면밀히 살펴보시더니 스승은 고름을 짜내고 그 자리에 내 옷을 찢어 심지를 해 박으셨다.

  “나의 스승이신 니로빠님께서는 모두 스물네 번의 시련을 겪으셨지. 그 중 열두 번은 매우 심한 것이었고, 열두 번은 그보다 덜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대의 이따위 고통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들이야. 나로 말하더라도 생명이나 재산에 대한 미련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이 나로빠 스승님께 헌신하였다. 네가 진리를 찾고자 한다면 보다 겸손해지라. 그리고 묵묵히 일하라.”

  내가 일터로 돌아가 아픈 등을 무릅쓰고 일하는 광경을 보시며 스승은 남몰래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그런 어느 날.

  존모께서 오더니 나에게 한 계책을 일러 주셨다. 나는 그 계책에 따라 몇 가지 소지품과 책 꾸러미를 보릿자루에 싸서 걸머지고 라마의 눈에 띄는 곳에서 나가는 척하고 존모는 존모대로 그런 나를 말리는 시늉을 하며 실랑이를 연출 하셨다.

  "아이구, 아무리 고생이 되더라도 좀 참고 견뎌 보세요. 선생님도 결국은 진리를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라마는 존모를 소리쳐 부르셨다.

  “아녀자여, 그대들 둘은 대체 거기서 무엇들을 하고 있는 것이요?”

  존모가 멀씀하셨다.

  “아 글쎄 저 가여운 사미가 진리를 배우러 여기에 왔지만 배우지도 못하고 일만 하고 매만 맞으니 진리를 배우기도 전에 죽어 버릴 것 같다고 다른 라마를 찾아 떠난다지 않습니까? 그래 제가 지금 조금만 참아 보라고 말리고 있사옵니다.

  “응, 그래?”하더니 라마는 내게로 성큼 다가와 내 볼을 후려치더니 말씀하셨다.

  “이놈아, 네가 처음 여기 와서 뭐라 했지? 너의 몸도 마음도 다 내게 바친다고 했겠다. 그런데 어딜 간다는 게지? 설령 내가 네 몸뚱어리를 갈래갈래 끊어 놓는다 해도 너는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이미 모든 것을 내게 바쳤으니까. 헌데 어딜 간다고? 또 내 보릿자루는 왜 들고 나가는 거지?”

  나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만 했다.

  슝에서 스승의 제자 곡통 쵸도르가 공물을 잔뜩 갖고 많은 제자들과 함께 관정을 받으러 왔다.

  존모께서 나에게 보석 구슬을 갖다 주며 말씀하셨다.

  “선생님께서 당신이 탑 쌓은 공덕으로 만족치 않으시고 더욱 많은 공물을 원하신다면 선생님 몰래 간직하고 있었던 이 보석을 바치고 관정을 부탁해 봅시다.”

  그리하여 나는 라마께 나아가 공물로써 그 구슬을 바치고 다시 대중들 사이에 앉았다.

  라마는 구슬을 들어올려 찬찬히 살펴보더니 내게 물으셨다.

  “그대는 이것을 어떻게 손에 넣게 되었는가?”

  “존모께서 주셨습니다.”

  라마는 빙긋 웃더니 말씀하셨다.

  “닥메마를 이리로 부르라.”

  존모가 오시더니 라마의 앞에 몇 번이나 꿇어 엎드리면서 말씀하셨다.

  “선생님, 이 보석은 결코 우리의 공유 재산이 아니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결혼할 때 제 부모님께서 주신 제 개인 재산입니다. 선생님께서 매사에 성급하신 것을 보시고 혹여 이혼할 때를 대비하여 저에게 주신 것이므로 남 몰래 간직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와 같이 구도 정신이 투철한 사람은 제가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하여서 저는 이 젊은이를 위해 보석을 준 것이니 부디 받아 주시고 그에게 법을 설해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이 일을 부탁해 올립시다.“

  말을 맺으며 존모는 눈물을 흘리며 합장 배례하셨다.

  라마의 성질을 아는 고꾸빠나 다른 사람들은 누구도 감히 나서려 하지 않았다. 다만 일어나 절하며 “그렇습니다. 존모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해 주십시오.”라고만 할 뿐이었다.

  나는 이 광경에 혹시라도 라마께서 관정을 허락하시는가 하여 머뭇거리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라마는 나를 향해 불같이 성을 내며 소리를 지르셨다.

  “건방진 놈, 내가 말할 때 왜 너는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가? 내 앞에 앉아 있을 무슨 권리라도 있다는 겐가!”

  라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무섭게 노려보시더니 옆에 있는 주장자를 집어들고는 나를 후려칠 기세였다. 나는 황급히 창문을 뛰어넘어 내 방으로 도망쳐 왔다. 존모께서는 내 방에 와서 밤을 지새우며 나의 처지를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 주셨다.

  “마술사 양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댁보다 더 성실하고 헌신적인 제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진리를 배우러 다른 스승을 찾아 나서겠다면 내 필요한 것들을 죄다 준비해 주겠소.”

  다음날 아침 라마가 나를 부르셨다. 나는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그에게로 갔다.

  라마는 물으셨다.

  “그래, 어제 일로 너는 내게 무슨 나쁜 생각이라도 들었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사옵니다. 오히려 저는 제가 지은 죄과의 대가를 받고 있나 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나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러자 라마는 또다시 역정을 내셨다.

  “눈물을 보여서 내게 동정이라도 얻어내겠다는 것인가? 썩 나갓!”



  나는 생각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 무슨 유익한 점이 있을까. 라마는 나만 보면 화를 내시는 그분께는 누를 끼쳐 드릴 뿐이며, 또 그런 나를 딱하게 생각하시는 존모께는 안타까운 마음을 야기시켜 드림으로써 구원의 진리를 수행하기는커녕 죄업만 쌓을 뿐인 것이다.

  차라리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자. 아니면 다른 일자리라도 구해 보기로 하자.‘

  나는 지난번의 일도 있고 하여 스승의 물건에는 일체 손대지 않고 처음 이곳에 올 때 가져 왔던 책 몇 권만을 지닌 채 존모에게도 알리지 않고 스승 댁을 나왔다.

  반나절 남짓 걸어온 나는 시장기를 느끼고 약간의 보리를 구걸하고 끓여먹을 냄비를 빌렸다. 나뭇가지를 긁어모아 밥을 지어먹자니 문득 서글픈 느낌과 함께 늘 정성스럽게 세끼 밥을 마련해 주시던 존모 생각이 났다.

  ‘한 끼 밥 얻어먹는 게 이토록 힘이 드는구나. 내가 스승 댁에서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사실 존모께서 내게 쏟아주신 정성과 배려를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니잖은가.’

  그러한 분에게 인사조차 없이 나와 버린 내 자신이 너무나 무례하고 몰염치하게 생각되었다.

  ‘아니다. 돌아가서 인사라도 여쭙고 오자.’

  한편 존모께서는 내가 집을 나가 버렸음을 알고는 라마께 달려가셨다.

  “선생님의 결코 꺽이지 않던 막강한 적이 집을 떠났사옵니다. 이제 아주 후련하시겠지요?”

  “어딜 갔다고!”

  “불구대천지 원수모양 그토록 고생을 시키고 괴롭히던 대마술사 말고 또 누가 있겠사옵니까?”

  존모의 말에 라마의 얼굴이 흐려졌다. 두 빰에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리며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셨다.

  “오, 가꾸파의 선지식들이여, 수호신이시여, 내 운명의 아들을 돌려 보내주시옵소서.”

  그러더니 그는 장삼에 얼굴을 묻고 입을 다문 채 말없이 잠잠히 앉아 계셨다.

  바로 그러한 순간에 내가 스승 댁에 당도한 것이었다.

  존모는 나를 보고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시며 라마께 소리치셨다.

  “선생님, 대마술사가 돌아왔사옵니다. 선생님께로 데려올까요?”

  라마는 말씀하셨다.

  “그는 우리를 버렸지만 자기 자신만은 버리지 않았구나. 당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

  나는 라마 앞에 섰다.

  라마가 말씀하셨다.

  “대마술사, 그대가 만일 진심으로 진리를 찾고자 한다면 그를 위해 생명이라도 바쳐야 할 각오가 있어야 할 거다. 가서 탑의 나머지를 마저 쌓아 올려라. 그런 후에 교리를 가르쳐 주겠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대로 라마 앞을 물러 나온 나는 존모께 가서 말씀드렸다.

  “스승님은 아직도 제게 교리를 가르쳐 주시지 않사옵니다. 제게는 나머지 탑을 쌓아 올리면 가르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절대로 안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스승님 내외분께서는 부디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존모께 엎드려 절을 하고 책을 챙겨들었다. 그러자 존모는 내 손을 잡으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다.

  “내 언젠가 약속한 일이 있지요? 선생님께서 끝내 당신에게 교리를 안 가르쳐 주신다면 다른 라마에게 가도록 도와주겠다고. 내게 맡기세요.”

  존모는 독한 술, 약한 술, 중간 정도의 술로 나누어 잘 빚어 놓고 매월 10일 갖는 재일(齋日)을 기다렸다.

  그 날이 되자 존모는 약한 술은 수호신께 공양 올리고 독한 술은 스승의 잔에 자꾸 채워 올렸다. 중간 술은 승려들에게 그리고 존모와 나는 약한 술을 술쩍 혀끝에만 대고 마시는 척할 뿐 거의 마시지 않았다.

  재가 끝나자 독한 술인 줄 모르고 연거푸 받아 마신 라마와 승려들은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존모는 몰래 스승의 방에 들어가 스승의 도장을 훔쳐서 내게 교리를 가르치고 관정을 베풀 것을 명령하는, 미리 스승의 필체를 흉내내어 써 놓은 편지에 봉인을 하셨다. 그리고 그 증거로써 대나로빠님께서 마루빠 스승에게  직접 하사하셨던 루비 염주와 보석을 꺼내 내게 주셨다.

  “이걸 갖고 어서 라마 고꾸빠에게 가서 선생님께서 보내신 것처럼 하세요.”

  나는 스승의 상수 제자, 라마 고꾸빠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슝으로 떠났다.

  이틀 후 스승이 존모에게 물으셨다.

  “마술사는 무얼 하고 있는가?”

  “길을 가고 있겠지요. 더 이상은 저도 알 수가 없사옵니다.”

  “무어라고? 어디에 갔는데?”

  “그가 말하길, 탑을 다 완성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선생님께서는 교리를 안 가르쳐 주실 터이므로 다른 라마를 찾아간다고 했습니다. 제가 있는 힘을 다해 말렸지만 듣지 않고 떠났사옵니다.”

  라마는 얼굴에 노기를 띠며 물으셨다.

  “언제 떠났는가?”

  “그저께입니다.”

  라마는 잠시 명상에 잠기더니 말씀하셨다.

  “나의 아들은 멀리에 있지 않도다.”



  드디어 나는 슝에 있는 경딩 산에 도착하였다. 내가 막 고꾸빠의 절에 당도하였을 때 그는 제자들에게 성스런 탄트라의 교리를 설법하고 계셨다.

  나의 출현에 놀란 고꾸빠는 연유를 물으셨다. 스승의 지시인 양 거짓으로 자초지종을 말하고 나는 가져온 편지와 선물을 드렸다.

  편지와 나로빠님의 성물인 루비 염주를 보자 라마 고꾸빠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셨다.

  “지시만 내리셔도 어김없이 수행할 터인데 이 같이 귀한 보믈을 보내 주시다니....”

  고꾸빠는 마루빠 스승이 계신 쪽을 향해 수없이 절을 하였다.

  라마 고꾸빠는 내게 관정을 주어 불보살의 가호를 추구하고 교리를 가르쳐 주셨다. 그런 후 가파른 절벽에 있는 동굴로 안내하고 그 속에서 교리를 바탕으로 한 명상에 들어가게 하셨다.

  나는 쉬지 않고 명상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내부의 변화도 느낄 수가 없었다.

  어느날 라마가 내게 오더니 물으셨다.

  “형제여, 아무런 체험도 얻지 못했는가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참으로 묘한 일인 걸.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데. 혹 당신이 마루빠 스승님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이곳에 왔으면 몰라도.... 그럴 리는 없고, 하여간 계속 정진하여 봅시다.”

  나는 겁이 더럭 났다. 나는 사실을 털어 놓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에는 마루빠 스승께서도 다 알게 되겠지.... 나는 다시 명상에 몰입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으로부터 라마 고꾸빠에게 전갈이 왔다. 내가 쌓던 탑을 마저 다 완성하고 이제 바햐흐로 큰 법회를 여니 그때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해 갖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편지 말미에는 “그대 처소에 있는 그 사악한 놈도 함께 데려오라”는 분부도 있었다.

  우리 일행은 긴 여행 끝에 마루빠 스승의 대법회장에 도착하였다.

  지시하신 물건들과 함께 자기에게 들어온 공물들을 낱낱이 스승에게 바치는 라마 고꾸빠의 신심을 칭찬하시며 스승은 말씀하셨다.

  “내게는 사실 이런 것들이 다 소용없노라. 다만 그대들에게 가르침을 실행하는 연습을 시키고자 함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서운 얼굴이 되어 고꾸빠를 째려보셨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된 연유로 내 허락도 없이 데빠가라 부르는 사악한 자에게 관정을 베풀고 교리를 가르쳐 주었느냐?”

  라마 고꾸빠는 무서워 떨며 말했다.

  “아니옵니다. 스승님께서 보내신 편지의 지시대로 하였을 따름이옵니다. 나로빠님의 염주까지도 보내 주시지 않았사옵니까?”

  스승은 더욱 험악한 얼굴로 내게 물으셨다.

  “그대는 그런 물건들이 어디서 났는고?”

  나는 턱을 떨며 사실을 말씀드렸다.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스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아카시아 가지로 만든 회초리를 들고 존모를 찾아 나서셨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존모는 재빨리 몸을 날려 법당으로 들어가 안에서 문을 잠가 버리셨다.

  나의 가슴은 찢어질 듯하였다. 세찬 바람에 뿌리채 뽑힌 나무와도 같은 심정이었다.

  내가 악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나에게 황금이 있었다. 바른 길을 걷고자 하는 지금 그것이 내 손에 없는 운명을 나는 한탄하고 괴로워하였다.

  ‘세속적인 부를 갖고 있지 않다면 라마는 결코 나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지 않으리라. 나는 구원의 진리를 얻지 못한 채 살아가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어찌하면 좋을까. 아, 어찌하면 좋을까....“





        깊은 뜻을 전수받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대중들은 제츈 존자께서 수련 기간 중 겪으셨던 시련에 한숨을 쉬며 안타까워하였다.

  렛충이 다시 일어나 스승께 절하고 여쭈었다.

  “라마 마루빠께서는 그 후 어떻게 하여 스승님께 법을 전수하게 되었습니까?”

  제츈은 말을 이으셨다.

  “내가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고 스승의 자비와 총애를 받는 많은 사람들의 행운을 부러워하며 자결을 결심했을 때 한 제자가 나를 부르러 와서는 ‘라마께서 당신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여전히 미심쩍어 하면서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갔다. 뜻밖에도 라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나의 분노는 파도와 같이 가라앉았다. 그것은 속인들의 세속적 분노와 같지 않다.

  깨달은 자의 분노는 설령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난다해도 그에 따라 그 사람이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여 깨달음으로 나가는 데에 기여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아들을 아홉 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림으로써 그의 죄업은 완전히 소멸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닥메마의 때를 알지 못하고 가련해 하는 마음과 좁은 안목으로 그것을 다 채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그는 사소한 여러 징벌을 받을 것이고, 그의 죄업은 그때야 비로소 완전히 소멸될 것이다.

  이제 나는 그를 위해 내가 알고 있는 바 모든 교리와 관정을 베풀어 줄 것이니라. 또한 내 몸소 그를 토굴에 넣고 그의 수행을 점검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나는 지혜의 어린 나뭇가지가 마음에서 쑤욱쑤욱 자랄 때까지 수년간 스승 밑에서 자성(自性)을 계발시키며 참으로 즐거운 명상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렛충이 여쭈었다.

  “스승님께서는 언제 어떠한 연유로 마루빠 스승님 곁을 떠나시게 되었는지요? 또 토굴에는 얼마나 오래 계셨는지요?”

  스승은 말씀하셨다.

  “나는 그곳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토굴에 있는 동안 나는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하였다. 그 결과 많은 진전이 있었다. 그런 어느 날 황폐해진 고향 땅, 나의 집이 잡초가 우거져 폐허가 되고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며 하나뿐인 누이동생 빠다마져 걸인이 되어 이곳 저곳 떠돌고 있는 꿈을 꾸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오래 전 불행한 상태로 어머니와 이별한 후 한번도 그분을 뵙지 못하였으므로 꿈속에서도 나의 마음은 슬픔과 그리움으로 메어질 듯하였다.

  꿈에 베개가 눈물에 젖어 흥건하였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늙으신 어머니를 뵙고 오리라 결심하였다.“

  날이 새자 나는 토굴의 벽을 스스로 허물고 스승께 나아가 고향에 다녀오겠다는 결심을 말씀드렸다.

  이에 라마는 말씀하셨다.

  “아들아, 그대가 처음 나를 찾아 왔을 때 그대는 가족이나 친척을 여하히 그리워하지 않겠노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토록 그리워 못견디겠다는 것이냐?

  허나 고향에 간다 해도 그대는 이미 살아 계시는 모친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대는 흑마술을 배우기 위해 짱에서 수년간을 지냈고, 여기서도 벌써 오랜 세월을 보냈으니까.

  그토록 고향에 가고 싶다면 할 수 없다만 다시 돌아오리라는 그대 생각처럼 이 생애에서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

  스승께서는 나의 귀향에 앞서 미처 내가 배우지 못한 불법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상세히 가르쳐 주시고 고향에 돌아가서 내가 지켜야 할 것, 그리고 성스러운 수행터를 지정해 주셨다.

  존모께서는 나와의 이별을 슬퍼하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주셨다. 그리고 내가 떠나는 날 두 분의 신앙의 형제들은 멀리까지 나를 배웅해 주셨다.

  나는 석별의 섭섭함으로 눈물이 앞을 가려 차마 스승의 용안을 바로 뵈올 수가 없었다.

  스승께서는 나의 여정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두 손을 모아 빌며 다음과 같은 훈계의 시를 노래해 주셨다.



    그대 만나는 고향집의 비참함 속에

    무상(無常)을 가르치는 스승 있으리

    그대 누이, 큰아버지를 비롯한 친척 중에서

    가족의 인연 맺게 한 맹목적 꿈을

    보여 줄 스승 있으리


    고요하고 조용한 암굴 속에

    이 윤회하는 생명을 영원한 지복(至福)과

    바꾸어 주는 시장 있으리


    신령스런 사원, 그대의 몸 속에

    천상의 신들이 모여 노니는 방 있으리


    건강에 좋은 음식, 쓰디쓴 나물국 속에

    신들을 기쁘게 하는 단 이슬 있으리


    고향에서 그대를 기다리는

    증오와 분함 속에

    곧 귀의케 하는 원력 있으리


    인적이 끊어진 곳, 분주함 없어

    곧 비밀한 힘(싯디)의 은혜 있으리


    그대 명상할 청청한 땅에

    성취를 향한 희망찬 즐거움 있으리


    신심 깊은 진실한 마음에

    근면에서 비롯된 덕 있으리


    자활(自活)의 자유 속에

    하늘의 축복인 평화 있으리


    귀의의 성스런 동산에

    모든 성공의 원천 있으리


    그대, 밀라레빠의 열성과 정진 속에

    모든 불교도 신앙의 표석(標石) 있으리


    그 표석을 지키는 자(밀라레빠) 위에

    원컨데 모든 신들의 가호 있을지어다.



  이리하여 나는 눈물로 스승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고향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였다.





        모든 세속의 인연을 포기하다



  다시 렛충은 여쭈었다.

  “존사시여, 당신께서 고향집에 당도하셨을 때 그 꿈은 사실로 나타났습니까? 아니면 모친께서는 아직 살아 계셨습니까?”

  제춘은 말씀하셨다.

  “불길한 꿈은 너무도 사실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만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내 집이 바라다 보이는 협곡 위에서 나는 몇 사람의 양치기들을 만났다. 나는 외지에서 온 순례자인 것처럼 하고 그들에게 마을 사정에 관해 이것 저것을 물으니 그들은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나의 집을 가르키며 대단히 큰 저택인데 어찌하여 저렇게 폐허가 되었으며, 또 거기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었는가를 물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 집에는 옛날에 매우 재산이 많은 부지가 살았으며, 아들 하나를 두었습니다. 그의 부친이 임종시 유언장을 작성하는 데 실수가 있어서 이를 기화로 아들의 큰아버지가 재산을 몽땅 가로챘습니다.  그 아들은 장성하여 재산을 반환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그때는 이미 큰아버지의 권세가 너무 커서 재산을 돌려 받을 수 없게 되자 흑마술을 익혀 그 비술로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그 토지에 커다란 재앙이 내리게 했었지요. 그 후 우리는 모두 그자의 수호신을 두려워하여 누구 한 사람 감히 그쪽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저 집에는 그 아들의 어머니의 시체와 악귀가 살고 있지요. 그 아들에게는 누이가 하나 있었는데, 어머니가 죽자 집을 버리고 멀리 떠나 거지가 되어 유랑하고 있답니다. 아들 또한 아직 소문도 없는 것을 보니 필시 어딘가에서 객사한 모양입니다. 순례자 양반, 만일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저 집에 가실 수 있다면 거기서 많은 경전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만.... 그 부친 생전에 장사차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많은 좋은 책을 구해 왔었다고 합니다.‘

  그런 일들이 모두 언제 일어났는지를 물으니 그 모친이 죽은 지는 팔 년이 지났으나 그 아들이 흑마술로 큰 저주와 재앙이 일어나게 한 것에 대해서는 그때 그들이 아직 어려서 잘 기억하지 못하며, 단지 사람들에게 들어서 알뿐이라고 하였다.

  어머니의 죽음과 누이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슬픔과 절망에 빠졌다. 나는 해가 질 때까지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하염없이 울었다.

  해가 진 후 나는 마을을 내려갔다.

  오! 이럴 수가!

  꿈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의 내 집을 보았던 것이다.

  사주 팔각(四柱八脚)이라 불리던 사원처럼 장엄했던 옛집은 폐허가 된 채 잡초가 우거져 입구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많던 경전들을 바래고 찢기고 비에 젖어 두터운 먼지와 지붕에서 무너져 내린 흙더미에 덮여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모두 황량한 폐허뿐이었다. 나는 완전히 낙심했다.

  현관 입구를 찾아 더듬거리던 나는 흙더미가 두텁게 쌓인 둔덕을 발견하였다. 그 위에 역시 많은 잡초가 무성해 있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어머니의 유골이 묻혀있는 흙더미임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를 향한 깊은 그리움의 정으로 나는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나는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나는 어머니의 영혼과 가꾸파 성자들의 신령에 융합하고 어머니의 뼈 무덤을 베개로 삼아 투명하고 깊은 명상, 평정하고 미혹 없는 경지에 들어갔다.

  이와 같은 명상 속에서 일주일이 지난 후 나는 사마디[삼매]에서 깨어났다. 이를 통해 나는 윤회하는 존재로서는 어떠한 상태로든 변치 않고 영원한 지복의 은혜를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나는 어머니의 유골을 부수어 흙과 섞어 짯짜라 부르는 조그마한 소상을 만들어 부족하나마 격식을 갖추어 장례를 지내 드리기로 하고, 나 자신은 스승께서 지정해 주신 토굴에 가서 오로지 진리의 터득에 생애를 바치리라 결심하였다. 만일 세속적 욕망이 나를 유혹하여 마음이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그때는 생명이라도 끊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시도록 수호신께 기원하였다. 나는 이 확고한 결의를 스스로 마음에 새기기 위해 시를 지어 노래하였다.“



    이 세상 모든 것 덧없고 무상하여서

    나는 불멸의 행복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아버지 살아 계실 때 내 나이 어렸고

    내가 성인 되니 그분 이미 세상에 없네

    우리 함께 있었다 해도

    영원을 기약하진 못할 것

    나는 불멸의 행복을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나는 집을 떠나 없었고

    나 이제 돌아오니 그분 이미

    세상에 없네

    우리 함께 기약하진 못할 것

    나는 불멸의 행복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경전이 있을 때 공부할 사람 없었고

    공부할 사람 돌아오니

    그건 이미 낡고 해졌네

    우리 함께 있었다 해도

    영원을 기약하진 못할 것

    나는 불멸의 행복 찾아 수행에 정진하라


    기름진 밭 있을 때 농부 떠나 없었고

    농부 돌아오니 밭은 잡초만 무성하네

    둘이 함께 있었다 해도

    영원을 기약하진 못할 것

    나는 불멸의 행복을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기름진 밭 있을 때 농부 떠나 없었고

    농부 돌아오니 밭은 잡초만 무성하네

    둘이 함께 있었다 해도

    영원을 기약하진 못할 것

    나는 불멸의 행복을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좋은 집 있을 때 주인은 멀리 떠나 없고

    주인 돌아오니 집은 이미 폐허 되었네

    우리 함께 있었다 해도

    영원을 기약하진 못할 것

    나는 불멸의 행복을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나는 불굴의 귀의자

    이 세상 모든 것 다 허망한 것임을 알아

    불멸의 행복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



  나는 먼지와 흙구덩이 속에서 경전을 추려 짊어지고 어머니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옛날 나를 이끌어 주셨던 루가드간 스승댁을 찾아갔다.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어머니의 유골로 짯짜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고, 그 대가로 갖고 있던 경전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경전을 받으면 악귀가 그의 집에 붙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생각에 감히 경전을 받지 못하였다. 나는 기꺼이 경전을 드리는 것이니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그를 안심시켰다. 나는 그것을 스투파[무덤]에 안치하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스승의 아들은 “얼마 안되지만 수행하는 동안 쓰십시오. 그리고 도를 이루시거든 부디 저희들을 위해서 제도해 주시기를....”하며 보릿가루 한 포대와 얼마간의 버터와 치즈 그리고 약품 등을 내게 주었다.

  그것들을 갖고 나는 집 뒷산 중턱에 있는 암굴로 가소 명상에 들어갔다. 몇 개월이 지났는지 식량이 완전히 떨어졌다. 먹을 것 없이 명상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마을로 걸식을 나갔는데 공교롭게도 저 대참사 후 이사를 했다는 큰아버지의 집 문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내 나를 알아보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 나왔다.

  “내 비록 늙어 송장처럼 됐지만 생전에 네 놈을 꼭 만나 원수를 갚으려 했는데 이제야 바로 만났구나!”

  큰아버지는 고함을 치며 나에게 돌을 던지셨는데 모두가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갔다. 나는 그대로 도망을 쳤으나 큰아버지는 끈질기게 쫓아오며 이번에는 활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저 놈, 내 아들을 죽이고 마을을 파괴한 원수놈, 어이 여러분, 마을 사람들! 우리의 원수가 여기 나타났소, 빨리 나오시오!”

  이 소리에 젊은이들이 몰려나와 합세하여 내게 돌을 던지고 활을 쏘아댔다. 나는 그들의 격노와 복수의 희생이 되는 게 아닌가 두려웠다.

  나는 절규하였다.

  “오, 아버지, 가꾸파의 구루시여, 무수한 피를 마시며 신앙을 수호하는 신들이시여. 귀의자 밀라레빠는 지금 적에게 쫓기고 있나이다. 저들을 물리쳐 주옵소서!”

  그러자 그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두려워한 끝에 몇 사람이 중재자로 나서서 내게 오히려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큰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각각의 형편대로 음식물을 보시하여 나는 그것들을 갖고 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느 날 내 약혼녀였던 제세가 내가 이곳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음식물을 갖고 찾아 왔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나를 부둥켜안았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처절한 임종 모습과 가련한 누이의 유랑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말했다.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고 있다니, 당신은 얼마나 순결하고 지조 있는 여인인가.”

  “사람들이 당신의 수호신을 겁내어 누구도 감히 제게 청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설사 누군가 청혼했다 해도 저는 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이 이처럼 수도 생활을 하시는 것을 뵈오니 참으로 장하십니다. 그러나 집과 토지는 어찌하실 생각이신지요?”

  “나는 들쥐나 날새처럼 한적한 동굴에 앉아 수행에 전념하는 몸, 그런 것들이 매게 무슨 필요가 있겠소? 혹시 나의 누이를 만나게 되거든 그녀가 수습토록 하여 주시오. 그녀가 죽으면 당신이 처리하여 주면 좋겠소.”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신념은 너무나 비참하고 처량해 보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당신 같은 수행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마하야나[大乘]의 어느 파에 속하십니까?”

  나는 그녀에게 이 법은 마하야나의 가장 높은 가르침[敎義]으로 이 한 생에서 붓다후드(정각을 얻는 것)를 성취할 수 있는 ‘완전한 자아 포기’라 부르는 말 그대로 이 속세의 모든 바람이나 목적이나 대상, 그리고 나까지를 멸각(滅却)시켜 나가는 수행법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그 같은 수행이 다른 사람들의 수행과는 정말 판이하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바 법의 수행이란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 또한 잘 알았습니다.”

  나는 말했다.

  “속세에 대한 미련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요기는 내가 이상으로 하는 훌륭한 수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항상 누런 옷에 몸을 감싸고 청정 계율을 지키고 있는 수도승조차 실은 법에 대한 차이가 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지금 당장 당신이 이 점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만일 당신이 나의 말을 수긍할 수 있는 날이 오거든 당신 자신도 이 대승의 진리를 수행하십시오.

  그러나 그 일이 자신에게 적합치 못하다고 생각된다면 내 이미 말했듯이 나의 집과 토지를 가질 수 있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제세가 말하였다.

  “저는 당신 누이가 마땅히 소유해야 할 집과 토지를 가질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저도 수행자가 되고 싶습니다만 당신처럼 될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그녀는 나를 떠나갔다.





        홀로 수행에 들어가다



  나는 이곳에서 머무는 것이 큰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의 분노만 야기시킬 뿐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알고 이미 마루빠 스승께서 말씀해 주셨던 성스러운 수행터 다까루 간의 암굴로 떠나기로 하였다. 이 굴은 내가 사마디의 기초를 쌓는 동안 나를 가호해 주었다 하여 후에 ‘밀라레빠가 수행의 첫 발을 내민 굴’이라 불리게 되었다. 다까루 단의 암굴은 수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나는 이렇게 서원하였다.

  “진리를 체득하지 못하고 일생을 지내느니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나으리라. 싯디(비밀한 힘)를 성취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서원이 깨뜨려진다면 오, 신앙의 수호신들이여, 원컨데 이 생명을 끊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내생(來生)에서는 부처님과 선지식의 자비로 정법에 인도하여 주시고 도를 닦음에 있어 온갖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굳센 힘과 지성을 갖추도록 가피하여 주소서!”

  나는 이러한 나의 원을 모든 불보살과 마루빠 스승께 바치기 위해 시를 지었다.



    원컨데 덧없는 세상의 환락에

    유혹되지 말며

    명상에서 오는 청정함이

    한없이 불어나게 하소서.


    원컨데 평온한 무의식 속으로

    빠지지 말며

    초의식의 꽃이

    내 안에서 피어나게 하소서.


    원컨데 마음이 지어 낸 생각이

    나를 괴롭히지 말며

    불생(不生)의 무성한 나뭇잎이

    내 안에 무성하게 하소서.


    원컨데 산에 머무는 이 행자가

    속세의 하찮은 지식으로

    괴로움 당하지 말며

    지혜와 원체험(原體驗)의 과실이

    무르익게 하소서


    원컨데 이렇게 가는 길과 방법에

    더 이상 의혹을 갖지 말며

    항상 마음의 아버지

    그분 곁에서 수행하게 하소서



  나는 지극히 적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며 명상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마하 무드라(大印)의 지혜를 습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몹시 쇠약해져서 몸의 기(氣:정신 생리적 신경의 힘)를 지배할 수 없게 되어 희열의 내부에 있는 불을 구할 수 없었다.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추위로 고통을 당하였다.

  나는 거기에 정신을 집중하고 구루께 기도하였다. 어느 날 밤 초의식 상태에서의 선명한 경계를 보게 되었다. 마루빠 스승께서 보내셨다는 무수히 많은 여인들이 나를 에워싸고 법회를 연다고 분주히 음식을 차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마루빠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당신이 희열의 불(blissful fire of tummo)을 내부에 느끼지 못하시겠거든 당신의 육체와 음성 그리고 마음을 대상으로 이 방법을 시도해 보라 하십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요가 방법을 실제 포즈를 취해 가며 내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 우선 여섯 개의 아궁이(interwoven hearth)라 알려진 앉은 자세를 취해 보였다. 또 허공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질러 성대 에너지를 조절하였다. 그리고 뱀이 똬리를 틀 듯 자신을 안정시키는 강력한 힘을 개발하여 점진적 조화를 명상하고 실수하였다. 그랬더니 과연 얼마 안가 희열의 불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일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문득 바람도 쏘이고 기분 전환도 할 겸 굴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처음 세웠던 서원이 생각나서 자책의 시를 지어 노래하였다.



    그대, 밀라레빠여!

    이 자책의 노래를 그대에게 들려 주노라.

    달콤한 대화로부터

    그대는 멀리 떨어져 있어

    그것이 적적하다 하여 즐거움을 구하려 하네


    마음을 흥분시키지 말고

    평온 속에 안주하라.

    마음을 단속하지 못하면

    곧 죄악이 잉태되리


    기쁨을 찾아 나서지 말고 선좌에

    만족하라

    유혹에 지고 나면

    수행은 곧 바람결에 흩어지리


    고개를 쳐들지 말고 아래로 떨구라

    고개를 쳐들면 곧 무익한 세간사를

    탐하게 되리


    수마에 빠지지 말고 명상을 계속하라

    수마에 빠지면 곧 무지(無知)의 해독이

    그대를 정복하리


  이후 3년 동안 나는 끊임없이 명상을 계속하였다.

  그토록 아껴 먹었던 식량은 바닥이 났고, 나는 깨달음을 이루지도 못한 채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불멸의 공부를 하는 데 있어 참으로 큰 방해였다. 그때 나에게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만일 사람 사는 곳으로 내려가지 않고 생명을 이을 음식을 찾아 나선다면 그것은 서원을 깨뜨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행을 위해서이므로.

  그리하여 굴 밖으로 나와 주위를 살펴보니 쐐기풀이 무성하고 양지바르고 앞이 확 트인 언덕에 동굴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 쐐기풀의 즙을 내어 먹어가며 명상을 계속하였다. 이제 나에게는 몸을 가릴 옷도 몸에 유익한 음식도 없었다. 내 몸은 쐐기풀처럼 초록빛이 되었으며, 초록빛이 띤 머리털은 쐐기풀처럼 길게 자라 온 몸을 뒤덮었다.

  나는 스승께서 주신 책을 머리에 이거나 혹은 그분의 자비하심을 머리에 새기며 예배하곤 하였다. 이러한 일은 배가 고플 때 위를 달래는 효과가 있어서 때로는 마치 배불리 먹은 것처럼 트림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일 년이 지나, 이제는 입고 있던 옷이 다 헤어져서 보리를 담았던 자루로 상반신을 덮고 있던 가리개마저 닳고닳아 드디어는 가리개로도 쓸모가 없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세 겹으로 접어 몸에 두르고 밤의 추위를 막아야 했다.

  그런 어느 날 굴 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나가 보니 사냥꾼 일행이 포획한 사냥물을 짊어지고 동굴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동굴 입구에 있던 나의 모습을 보더니 앞서 오던 남자가 “귀신이다. 귀신이 나타났다!” 외치며 놀라 달아났다.

  나는 그들을 불러 내가 귀신이 아니고 수행자로서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며 명상하다 보니 먹을 것, 입을 것이 다 떨어져 이런 몰골이 되었노라고 말해 주었다. 그들은 나를 찬찬히 훑어 보고는 다시 굴 안으로 들어와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그러나 쐐기풀과 그것을 끓여먹던 냄비 이외에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그들은 모두 내게 대해 깊은 존경심을 일으켰다.

  “이렇게 고행을 하고 계시다니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저희들이 사냥한 동물로 공양코자 하오니 부디 저희들의 죄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은 공손히 말하더니 갖고 있던 음식물과 잡은 짐승을 내게 바치고 가 버렸다.

  세상 음식을 먹자 나는 육체의 안온함을 느껴 정진을 하는데 유익한 마음의 희열을 갖게 되었다. 적정처에서 홀로 수행하는 행자에게 필요한 음식물을 보시한 사람들의 공덕은 마을의 안락한 환경에서 수행하는 이들에게 보시하는 공덕보다 훨씬 크리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어느 날 밤 나의 동굴에 한 남자가 살금살금 들어오더니 무엇이 있나 하여 구석구석을 뒤지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굴 안에 있는 내가 아무 것도 찾지 못하였는데 그대가 이 밤중에 찾아 낼 것이 있을까.... 어디 잘 좀 뒤져 보시오.”

  그 남자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듯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거리며 가 버렸다.

  세월은 또 흘러갔다. 어느 때 갼가 짜의 사냥꾼 몇 사람이 이곳까지 사냥을 나왔다가 길을 잃고 헤메다가 나의 동굴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나는 세 겹으로 접은 넝마를 몸에 두르고 깊은 사마디[삼매]에 들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사람인지 귀신인지를 알아보려고 내게 절하는 척하며 나를 찔러 보는 것이었다.

  나는 입을 열어 말했다.

  “내가 인간인 것은 확실합니다.”

  나의 목소리를 듣더니 그들은 내가 혹시 대빠가가 아닌지를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그들은 반색을 하며 내게 먹을 것이 있으면 후일 답례를 충분히 할 터이니 좀 달라고 하였다.

  “우리는 몇 년 전 당신이 집에 왔었다고 들었는데 그후 쭉 여기에 계셨는지요?”

  “그렇소. 하지만 내게는 당신들이 먹을 만한 음식이 없소.”

  그러니 그들은 먹을 수 있는 거라면 아무 거라도 달라고 졸랐다. 나는 그들에게 불을 지피고 쐐기풀을 끓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하고서 맛을 낼 고기나 기름 같은 것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는 말해 주었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나도 맛 좋은 풀국을 먹을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몇 년간 나는 그런 음식을 구경도 못하였소. 쐐기풀을 양념 삼아 조금 더 넣고 끓이시오.”

  그러자 이번에는 풀국을 진하게 할 가루나 곡식을 찾았다. 나는 그들에게 만일 그런 것들이 있었다면 나도 살이 될 풀국을 먹었겠지만 수년간 그런 것 없이 지내 왔으니 대신 쐐기풀 토막을 사용하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소금을 달라고 하였다. 소금은 맛을 내는 데 좋은 것이지만 나도 요 몇 년간 소금 없이 지내 왔으므로 소금 대신 쐐기풀 토막을 더 넣도록 권하였다.

  “과연 이러한 음식을 먹고 그런 옷을 걸치고 있으니 이 지경이 되었군요. 당신은 이미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차라리 남의 집 머슴으로 일을 해서라도 배를 채울 음식과 따듯한 의복을 구하지 그러셨습니까?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입니다.”

  나는 말하였다.

  “오, 친구들이여, 그런 말 마시오. 나는 생을 받은 중생 가운데 가장 행운아이며 이 세상의 뛰어난 사람들 중의 하나요. 나는 로뿌다꾸의 역경 삼장법사이신 마루빠 대스승님을 만나게 되어 그분으로부터 단 일생에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위대한 진리를 배워 이제 온갖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이 한적한 곳에서 엄격한 수행으로 정진하고 있소. 나는 내 자신을 영원히 이익 되게 하는 길을 찾고 있는 것이오. 그런데 당신들은 불타의 높은 교리가 유포되어 있는 나라에 살면서도 거기 귀의하기는커녕 그분의 가르침을 들어 보려고도 하지 않았소. 그뿐이겠소? 자신들이 고통스런 감옥에 갇혀 사는 줄도 모르고 그 속에서 좋아라 서로 다투고 경쟁하며 죄를 쌓아가고 있소. 당신들이 갖고 있는 삶의 목적이란 얼마나 어리석고 밝은 길에서 벗어나 있는 것인가?

  나로 말하면 영원한 행복에 대한 희망이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수행 생활에 만족하고 있소.“

  나는 그들에게 「다섯 가지 즐거움」이란 시를 들려 주었다.



    여기 다까루 단 암굴 한가운데에

    티벳의 수행자 밀라레빠는

    세속의 모든 욕망과 망상을 떠나

    위없이 높은 깨달음을 구하며 사네


    즐거움은 밑에 까는 조그만 방석

    즐거움은 위에 걸친 누더기 면포

    즐거움은 무릎을 받치는 명상대(帶)

    즐거움은 배고픔을 잘 견디는 이 몸뚱이

    즐거움은 바로 이 순간에 머물며

    궁극의 목표를 인식하는 빈 이 마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다

    즐거움의 원천

    즐겁지도 않은 것은 하나도 없네.



  나의 노래를 듣더니 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아름다운 음성을 갖고 계시는군요. 수행의 여러 가지 즐거움에 대해 노래하셨습니다만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생활은 불편하기만 해서 한시도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갔다.

   갼가 쨔에서 해마다 축제가 열리면 사람들은 나의 이 「다섯 가지 즐거움」의 노래를 함께 부르곤 하였다. 마침 누이 빠다가 축제에서 음식을 구걸하다가 그 노래를 듣게 되었다.

  “여보세요, 주인님. 그러한 시를 노래하신 분은 틀림없이 부처님이시겠지요?”

  사냥꾼 한 사람이 말했다.

  “하하하, 이 처녀가 제 오빠를 크게 명예롭게 해 주네.”

  다른 사람이 말했다.

  “놈은 부처든가 아니면 짐승이지. 아무튼 굶어 죽기 직전에 있는 네 오빠임에는 틀림없어.”

  “오, 나의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친척들은 적이 되었습니다. 오빠는 고향을 멀리 떠났으며, 저는 이렇게 구걸을 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이 같이 비참한 신세를 어찌 그다지도 조롱하십니까?”

  빠다는 이렇게 말하며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제세가 우연히 그것을 지나다가 빠다를 발견하고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빠다, 울지마. 그 사람이 틀림없이 네 오빠일 거야. 몇 년 전 오빠를 만났었는데 그때도 굴 속에서 수행하고 있었으니까. 어서 다까루 단으로 가 봐.”

  이렇게 하여 빠다는 구걸을 해 가며 나를 찾아 오게 되었다.

  나를 본 빠다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놀라 자빠졌다. 두 눈은 움푹 패이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났으며, 피부는 푸르스름한 녹색, 근육은 바짝 오그라들은 데다 머리는 자라 헝클어진 나의 모습에 그녀는 넋을 잃고 바라보다 한참 후에야 절규하며 나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오빠, 어쩌다가 이런 지경이 되셨나요. 어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어 하셨는지 아시기나 하세요? 만일 살았다면 귀하신 몸이 되어 계신 오빠를 만날 것을 기대했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다 틀렸어요. 이 세상에서 우리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빠다는 울고 또 울었다, 마침내 나마저 비참한 생각이 들어 누이에게 노래를 들려 주었다.



    나의 주, 마루빠님께 예배합니다.

    굳게 정진토록 하여 주소서


    비탄에 빠진 나의 누이여,

    이 세상의 모든 기쁨․슬픔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라.

    나의 수행은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


    나의 집은 들짐승의 그것과 같고

    내기 먹는 음식은 사료와 같이

    보잘 것 없으며


    나의 몸은 해골과 같고

    나의 행장은 미친 사람과 같지만


    나는 차디찬 바위 위에 앉아

    가죽을 벗기는 듯한 열성으로

    정진하노라.


    그리하여 최상의 지혜와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이생에서는 번영과 행복을 누리고

    내생에서는 부처를 이루리니


    누이여 사랑스런 빠다여,

    슬퍼하지 말라.

    너 또한 영원한 행복을 위해

    진리의 수행에 몸을 바치어라.



  나의 노래를 듣고 빠다는 말하였다.

  “나는 오빠가 뭐라 하셔도 오빠가 이처럼 궁핍한 수도 생활을 하시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답니다. 설사 오빠가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는다고 해서 수행이 도망가 버리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오빠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대 드리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오빠는 이 적막한 곳에서 배고픔과 추위로 돌아가시겠어요.”

  누이는 가져온 음식을 내게 권하고는 나의 입을 옷과 음식을 구해 오겠다며 굴을 나갔다.



  갑자기 좋은 음식을 먹게 되자 나는 마음의 동요가 극심해져서 도저히 명상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수행을 계속하는 데 이보다 더 큰 장애는 없는 듯했다. 나는 스승께서 주신 책을 열어 수행 중에 나타나는 장애를 극복하고 화를 복으로 바꾸어 열의와 정진을 더해 현재의 번뇌를 치유하는 행법을 찾아냈다. 또 그 책에는 이러한 경우를 당해서는 몸에 유익한 음식물을 충분히 취하는 것이 좋다고 씌여 있었다.

  나는 곧 이러한 행법의 실천에 들어갔고, 마침내 신경조직의 가장 미묘한 매듭(심령 신경 매듭-차크라)을 파악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아는 삼사라와 니르바나라는 동전의 앞뒤와 같이 서로 의존적이어서 모든 그릇된 견해를 벗어나게 되면 삼사라가 곧 니르바나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를 깨치게 한 가장 근본적인 에너지는 수행의 초기 단계에서의 불굴의 정진력이었으며 그것이 신체의 원만한 조화를 준 영양가 있는 음식과 스승의 심오한 가르침을 실행하였을 때 피어났음을 자각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밀교(바즈라야나, 금강승)의 가르침이 모든 감각적 체험을 정신적 성취로 바꾸는 방법론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음식을 보시하여 나에게 이러한 깨침이 일어나게 한 직접적인 장본인 빠다와 제세에게 감사하고 그들의 보시행이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밝음의 세계와 인연 지어지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는 시를 지었다. 이 시는 상호 의존하는 것들의 본질과 인연을 노래한 것이다.



    로뿌다꾸에 계신 마루빠 스승님의 발 아래 예배합니다.

    원컨데 이 행자가 외로운 이 암자에서 수행을 성취토록 축수하소서.

    속인들이 바친 청정한 보시는

    나와 그들의 마음 밝히는 씨앗 되었네.

    이 몸뚱이 죽기는 쉬워도 만나기는 어려워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건강을 회복하였네.


    단단한 대지의 흙과 광대 무변한 창공에서 내리는 비

    이들은 결합하여 모든 중생에게 혜택을 주니

    이는 곧 성스런 진리


    황량한 들판의 이 암굴과 거룩한 불법에의 귀의

    이들은 결합하여 대망의 목표를 성취시키리니

    이는 곧 불성의 실현


    밀라레빠의 꺽이지 않는 수행 의지와 삼계 중생들의 신심

    이들은 결합하여 그들을 시봉하리라는 나의 원력 고취시키니

    이는 곧 자비


    암굴에서 명상하는 위대한 수행자와 그에게 음식을 보시한 신도들

    이들은 결합하여 더불어 함께 밝음의 세계로 나아가니

    이는 곧 공덕의 회향


    밝은 스승의 자비심과 수행 중인 제자의 쉬임 없는 정지

    이들은 결합하여 성스런 다르마를 수호하리라는 서원 다지게 하니

    이는 곧 거룩한 헌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관정(수계)과 신심에서 우러난 서원

    이들은 결합하여 빠른 소원 성취 있게 하리니

    이는 곧 축복


    오, 영원의 부처님이시여

    당신은 이 탁발승의 행복과 불행을 다 아시나이다.



  나는 전에 체험했던 상태와 비슷하긴 해도 그 깊이와 힘에 있어 먼저의 것을 훨씬 능가하는 초감각적인 평정과 청정의 경지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더욱 열성을 다해 명상을 계속해 나갔다.







제 3 장. 니르바나





        대성취로 나아가다



  마침내 나는 자유자재로 자신을 변신시키고 마음대로 공중을 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낮에는 이러한 무한한 힘을 연습하고 밤에는 꿈속에서 자신과 똑같은 힘을 가진 수백의 분신을 만들어 내어, 각각의 분신들은 허공을 가로질러 모든 불국토로 달려가 설법을 듣고 돌아와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였다. 나는 또 이 몸을 불꽃이나 흐르는 맑은 물로도 변화시킬 수가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비록 꿈속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나는 이 같은 현상에 고무되어 더욱 성공하리라 확신을 갖고 환희에 차서 명상에 전념한 결과 실제로도 그 같은 능력을 체득하게 되었다.

  어느 때 내가 그렇게 날아서 우연히 론다라는 조그만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는 큰어머니의 친척 오빠가 살고 있었는데, 마침 그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아들이 내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저것 좀 보세요! 사람이 날고 있어요.”

  그는 일손을 멈추고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저런 것을 보고 놀라거나 재미있어 하면 안 된다. 쨔의 갸르모 겐이라는 악녀에게는 사악한 마술을 쓰는 밀라라는 아들놈이 있었는데, 저것은 바로 그 기아에 허덕이던 형편없는 놈이다. 옆으로 비켜서 놈의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조심해라. 자, 어서 소나 몰자꾸나.”

  그는 내 그림자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려는 듯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아들은 “아버지, 형편없든지 병신이든지 하여간 사람이 난다는 것은 얼마나 신기한 일이에요”라고 말하면서 넋 빠진 듯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내가 원하기만 하면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중생 구제에 이 몸을 바치리라 결심하였다. 그러자 구루께서 일찍이 내게 명령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것은 나의 전 생애를 명상 수행에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곧 법을 이익 되게 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최상의 길’이라 하셨다.

  ‘그렇다. 내 생애를 오로지 수행에 바침으로써 후세의 귀의자들은 나를 본보기로 삼아 일체의 세속적인 목적과 희망을 버리고 나처럼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게 되리라.’

  나는 다시 곰곰히 생각하였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명상하면서 그간에 설법하였던 사람들에게 나의 모습은 드러나고 말았다. 게다가 날고 있는 모습도 들키고 말았으니 더 이상 여기에 머물게 되면 속인들은 단지 악해(惡害)로부터 피하기 위한 이기적 욕망의 성취를 위해 내게로 몰려들 것이다. 이는 하늘의 아들 제석천[인드라]의 유혹을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 되리라. 세속적 명성과 번영은 내 수행에 방해가 되어 궁극의 완전한 지혜를 가리게 할지도 모른다.’

  나는 라뿌찌 간의 조용한 암굴로 가서 명상 수도를 계속하기로 하였다.

  쐐기풀을 끓여먹던 냄비 하나로 둘러메고 다까루 단 굴을 나섰다. 충분치 못한 영양 상태에서 갑작스레 눈부신 햇살 속으로 나오니 나는 그만 발을 헛디더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갖고 있던 냄비는 떼구루루 굴러 돌멩이에 부딪쳐 깨지고 말았다. 그런데 깨진 냄비 속에서 또 하나의 초록색 냄비가 굴러 나왔다. 그것은 쐐기풀국의 앙금이 쌓여 굳어진 것이었다.

  이 재난은 새삼스러이 모든 사물의 본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그것을 수행을 계속하라는 훈계로 알고 깊은 신앙심에 잠겨 시를 지어 노래를 하였다.



    방금 있던 냄비조차 이미 간 곳 없으니,

    그 속에서 모든 사물의 본성 보았네.

    일체는 무상하고 덧없다는 것을

    냄비는 깨졌으나 나의 스승이 되어

    심심미묘한 무상법문 설해 주었네

    나, 귀의자 밀라는 냄비의 법문을 듣고

    다시 굳은 서원 세워 다짐하네.

    세세생생 선지식 만나

    부처님 시봉하기를 발원....



  내가 이 시를 노래할 때 마침 한 사냥꾼 일행이 밥을 지어 먹기 위해 나의 동굴을 찾아 왔다. 그들은 내 노랫소리를 듣더니 이렇게 물었다.

  “오, 수행자시여, 당신은 매우 아름다운 음성을 가지셨군요. 그런데 그 깨진 냄비와 풀 앙금으로 굳어진 것으로 무얼 하시려는지요? 당신은 퍽 야위시고 피부는 사람과 같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이십니까?”

  내가 쇠약해진 연유를 말하자 그들은 크게 놀라며 나더러 자기들과 같이 밥을 먹자고 권했다. 식사를 하던 중 한 젊은이가 말을 걸었다,

  “보건대 당신은 원래 체격이 튼튼했던 것 같습니다. 배를 주리며 이런 고생을 하지 않고 대신 세상에 나가 생활을 했더라면 그 인내와 끈기로 모르긴 몰라도 상당한 지위도 얻고 재산을 모아 사랑하는 가족을 거느리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아니면 장사로 큰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겠지요. 아니 최악의 경우 남의 집 머슴을 살았다 해도 이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연로한 사냥꾼이 그의 말을 막으며 말하였다.

  “내게는 이 분이 대단히 훌륭한 수행자로 보이는 걸. 그러니 이 분은 우리의 세속적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으실거야. 괜히 입 열어 헛수고 할 것 없잖아.“

  그리고는 나를 향해 말하였다.

  “당신의 아름다운 음성으로 다시 한번 저희에게 그 훌륭한 시를 읊어 주시지 않으렵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당신들은 모두 나를 불쌍히 여기는 듯 하오만 이 세상에서 나처럼 행복할 뿐만 아니라 보다 큰 지각(知覺)과 보다 고귀하고 큰 행운의 생애를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오. 허나 당신들은 이 점을 이해 못하겠지요. 나의 즐거움을 가르쳐 주리다. 그것은 마치 당신들이 생각하는 보물처럼 나의 기쁨을 이루는 것이니 들어보오.”

  나는 「요기의 달리는 말」이라는 시를 그들에게 노래해 주었다.



    내 몸은 보리(지혜) 언덕 위의 사원

    가슴은 신성한 재단

    마음은 말처럼 그 안에서 날뛰고 있네

    이 말은 어떤 올가미로 붙잡을 수 있을까?

    어떤 말뚝에 묶어야 할까?

    어떤 먹이를 먹여야 할까?

    어떤 물을 주어 그 목을 축이며

    어떤 옷을 입혀야 할까?

   

    그 올가미는 오로지 한 생각, 정신 집중

    묶을 때에는 명상의 말뚝에

    배고플 때에는 구루의 법을

    목마를 때에는 의식의 흐름을

    추울 때에는 공(空)의 옷을 입히라.


    안장으로는 의자를

    그물로는 지성을

    껑거리 끈으로는 흔들림이 없는

    마음[心]을 말에 매달아

    그 주위에 생명의 기운을 통하게 하라.


    기수는 지성의 젊은이

    그의 투구는 대승의 이타사상

    갑옷은 수학(修學)과 사고 그리고 정관(靜觀)

    등에는 인내의 방패를 메고

    손에는 대망의 긴 창을 들었네

    허리에 이성의 검을 차고

    우주의 마음인 거침없는 화살을

    현명하고 올바른 시위에 매겨

    신심 깊은 자들의 이기심을 관통하네


    그 말은 행복을 넘치는 평원을 달리니

    행선지는 모든 승리자(불타)들의

    경지인 달성

    뒤에는 삼사리에의 집착을 버리고

    앞으로는 구원의 안전한 장소로

    달려가네


    이것이 너희가 생각하는

    행복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라.

    세속의 덧없는 행복을

    나는 바라지 않노라.



  이 노래를 듣자 그들은 마음속 깊이 감동을 받고 경건한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딘으로 가서 사람들로부터 라뿌찌 간(에베레스트의 별칭)과 기 뿌꾸(기쁨의 굴)에 대해 자세히 듣고 기 뿌꾸로 가기로 정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수개월을 지내며 수행한 결과 순조로운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내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공물을 바치러 찾아 왔다. 이 이상 더 머물면 높아진 명성 때문에 공부에 방해가 될 것이다. 나는 더욱 조용한 곳을 찾으리라 생각하고 구루께서 이미 언급하셨던 성스러운 수행처 라뿌찌 간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하였다.

  내가 막 출발하려는 데 빠다가 한 장의 모직천을 가지고 나를 찾아 왔다. 그것은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쓰다 남은 자투리 실을 얻어 모아 짠 것이었다. 그것을 갖고 그녀가 다까루 단으로 가니 내가 보이지 않아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행방을 수소문하여 이곳까지 찾아 온 것이었다.

  도중에 그녀는 라마 다리 로짜와(대역 삼장법사 다리)가 천개(天盖)를 받치고 높은 단위에 앉아 오색 비단을 두루고 많은 제자들과 대중들에 둘러싸여 법요식을 행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녀는 생각하였다.

  ‘다른 수행자나 승려들은 이러한 명예를 누리고 있는데 오빠의 종교는 슬픔의 원천이며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뿐 아니라 친척들에게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게 할뿐이니 이번에 오빠를 만나면 저 훌륭하신 라마의 제자가 되도록 권해 봐야지.’

  나를 보자 누이는 대뜸 말하였다.

  “오, 오빠 제발 이런 배고픔과 벌거숭이의 모습을 다시는 하지 마세요. 오빠는 그것을 훌륭한 명상법이라고 하시지만 이는 너무나도 부끄럽고 예절을 벗어난 짓이에요!

  이 천으로 바지라도 만들어 입으시고 라마 다리께서 계신 곳으로 가세요. 그분은 가장 훌륭한 라마로 추앙 받는 분 중의 한 분이신데 그 모습이나 수행은 오빠와는 전혀 틀립니다. 그분은 아래는 옥좌로 바쳐지고 위는 천개로 가려지고 있으며 몸에는 비단을 입은 향그러운 차와 짠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분 앞에는 항상 몰려드는 제자와 신도들로 큰 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딜 가도 그분은 군중과 공물을 모아 제자들과 친척들을 이익 되게 하십니다.

  저는 오빠가 그분 밑으로 들어가셨으면 합니다. 설사 오빠가 가장 비천한 학승으로 받아들여진다 해도 이 생활보다는 낫겠지요. 오빠의 궁핍한 수도 생활과 나의 불행한 삶은 이 세상에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누이는 슬피 울었다.

  나는 누이를 위로하여 말했다.

  “빠다야,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너는 내가 훌륭한 옷을 입지 못하고 거의 나체로 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구나. 그러나 나는 사람 몸을 받아 진리를 성취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거기에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나? 오히려 알면서도 죄를 범하는 자나 삼보에 바치는 재산을 도둑질하며 거짓말이나 비천한 행동을 하는 자들이야말로 모든 신과 성자들의 증오의 대상이며 부끄러운 자들이라는 것을 알라.

  또다시 네가 나의 알몸을 보고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오히려 네가 태어났을 때는 없었던 유방이 실로 크게 부풀어 있는 그것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야.

  또한 내가 돈을 벌거나 먹을 것, 입을 것을 구할 수 없어서 이토록 궁핍하게 수행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나의 구루이신 역경 삼장법사 마루빠님께서는 내게 명하셨다. 일체의 세속적인 관심이나 목적, 혹은 재산이라든가 명성에 집착하지 말고 한 군데에 머물지 말며 여러 곳을 유행하며 오로지 수행에만 정진할 것을. 그것이 그분의 훈계이므로 나는 그 말씀을 좇아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곧 나를 좇는 사람들에게 안락과 위안을 주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나를 포함한 모든 유정들을 위한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는 길이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죽음이 언제 우리를 찾아 올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이것 저것에 마음 쓸 시간이 없는 것이다. 만일 내가 부와 안락을 얻고자 하였다면 라마 로짜와 정도의 것이야 얻을 수 있었겠지. 그러니 그의 비천한 학승으로 어쩌니 저쩌니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생애에서 부처를 이루기를 열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정진하여 이 몸을 귀의와 명상에 바치고 있는 것이다.

  빠다야, 너 또한 모든 새속적 욕망을 포기하고 이 오빠와 함께 생애를 오로지 붓다후드의 성취에 바칠 수 있다면 이생의 행복은 물론이려니와 변치 않는 영원한 행복의 태양이 찬연히 빛나게 되리라. 오빠의 노래를 들어 보아라.“



    누이여, 새속의 욕망으로 괴로워하는 자여

    내 노래를 들으라

    천개(天盖) 위에는 황금의 작은 첨탑

    아래로는 우아한 중국 비단의 수술이 드리워졌네

    화려한 공작 날개 모양의 일산, 아름다운 무늬

    이것 모두 세속적 욕망이어서

    나는 도망하였네

    누이여, 그대 또한 모든 욕망을 버리고

    라뿌찌 간으로 가자.

    나와 함께 라뿌찌 간으로 가자.


    하이얀 소라 고동의 머얼리 울려 퍼지는 가락

    숙련된 나팔수의 볼에 가득한 입김

    구름같이 모여든 승려들의 대집회

    이것 모두 세속적 욕망이어서

    나는 도망하였네.

    누이여, 그대 또한 모든 욕망 버리고

    라뿌찌 간으로 가자.

    나와 함께 라뿌찌 간으로 가자.


    마을 위에 있는 흘리듯 아름다운 절

    새파란 신참자들의 막힘 없는 지껄임과

    근면한 일손

    향긋한 차가 끓고 있는 잘 정돈된 부엌

    이것 모두 세속적 욕망이어서

    나는 도망하였네

    누이여, 그대 또한 모든 욕망을 버리고

    라뿌찌 간으로 가자.


    주문이나 점성술 같은 수입 좋은 장사

    승려들의 방정함과 겸손, 놀이를 위한

    여러 가지 법회

    속인을 취하게 하는 구성진 가락의 법가(法歌)

    이것 모두 세속적 욕망이어서

    나는 도망하였네

    누이여, 그대 또한 모든 욕망 버리고

    라뿌찌 간으로 가자.

    나와 함께 라뿌찌 간으로 가자.


    연와조의 묵직하고 아름답게 치솟은 지붕

    식량과 보화로 가득한 창고

    광대하고 비옥한 땅

    많은 제자들과 모여드는 신도들

    이것 모두가 세속적 욕망이어서

    나는 도망하였네

    누이여, 그대 또한 모든 욕망 버리고

    라뿌찌 간으로 가자.

    나와 함께 라뿌찌 간으로 가자.


    태어난 것은 죽지 않을 수 없고

    죽을 때는 정해져 있지 않으니

    내게는 지체할 시간이 없네

    누이여, 그대 또한 윤회의 굴레에 매일

    세속 욕망 모두 버리거

    라뿌찌 간으로 가자.

    거기에 영원한 행복의 태양은

    찬란히 떠오르리라.



  빠다가 말하였다.

  “오빠께서는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라고 하셨지만 우리에게는 더 이상 버릴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라마 로짜와처럼 되시지 못한 오빠가 자신의 무능함을 숨기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라뿌찌 간으로 가지 않으렵니다. 가보나마나 그곳에도 먹을 것, 입을 것이 없겠지요. 저는 그러한 궁핍함을 구하러 그렇게 먼 데까지 가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그나저나 오빠, 사냥개에게 쫓기는 짐승모양 여기저기 헤매며 사람이 살지 않는 절벽이나 암벽에 매달려 살지 말고 제발 한 곳에 머무르세요. 그래야 저도 쉽게 오빠를 찾을 수 있고 신도들도 모일게 아니겠어요. 아니 며칠만이라도 여기에 계세요. 그리고 이 천으로는 꼭 옷을 만들어 입으세요. 저는 먹을 것을 구해서 이삼일이면 돌아오겠어요.“

  나는 누이를 불법에 귀의시키기 위해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머물기로 승낙하였다.

  누이가 떠난 후 나는 천을 도려내어 얼굴을 푹 덮는 두건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머지로는 음경의 가리개와 손가락 발가락 하나를 쌀 수 있도록 각각의 싸개를 만들어 두었다.

  며칠 뒤 누이가 돌아왔다. 누이는 내게 옷을 만들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만들어 둔 싸개를 꺼내어 하나하나 몸에 붙여 누이에게 보여 주었다.

  누이는 어이없어 하며 말하였다.

  “아니 오빠, 이제는 제정신이 아니군요. 오빠는 부끄러움을 모를 뿐만 아니라 제가 나가서 고생 고생하여 얻어온 천마저 조각 조각을 내버리시다니요. 어느 때 오빠는 명상 이외에는 무엇에고 할애할 시간이 없는 듯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또 어느 때는 지나치게 시간이 많은가 보군요.”

  나는 대답하였다.

  “나는 가장 가치 있는 인간이다. 그것은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 귀중한 은혜를 최고의 가치로 바꾸는 일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이야. 무엇이 참으로 부끄러운가를 알고 나는 진리[다르마]를 터득하는 일에 이 몸을 바치고자 하는 자신의 서원을 엄격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네가 나의 음경을 보고 부끄럽다고 하므로 나는 그것을 도려내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내 귀중한 생명을 앗아갈 터, 그것 없으면 나는 수행도 할 수 없을 것이므로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네 말대로 명상의 시간을 희생하면서까지 이 싸개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천은 소용없이 된 게 아니고 바로 네가 원하던 바대로 쓰여진 것이다.

  너는 너무도 조심성이 많아 부끄러운 것에 민감하다. 만일 네가 나의 음경을 수치로 여긴다면 너의 그것 또한 수치로 여기지 않으면 안 될 것이야. 수치라는 것은 몸에 붙이고 있는 것보다는 없애는 것이 좋으니 정히 그렇다면 될 수 있는 한 빨리 그것을 도려내는 것이 좋지 않겠니?“

  내가 이렇게 말하자 누이는 치미는 울화를 억제하려는지 가만히 있었다. 나는 말을 계속하였다.

  “세속 사람들은 하등 부끄럽지 않은 것을 부끄럽다고 하는구나. 참으로 부끄러워해야만 하는 것은 사악한 행위의 죄를 감추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참으로 수치인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한동안 누이를 나의 암굴에 붙잡아 두고 부처님의 진리와 인과의 법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누이로 하여금 어느 정도까지 불타의 법에 귀의하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무렵 큰어머니 또한 큰아버지가 죽고 난 후 진심으로 우리에게 자행한 악행을 후회하고 사람들에게 나의 행방을 수소문하여 많은 공물을 갖고 라뿌찌 간, 험한 절벽 끝에 있는 나의 암굴로 찾아 왔다.

  나는 큰어머니를 용서하고 대승의 부처님법을 설해 주었다. 이에 큰어머니는 완전히 개심하고 고행과 명상에 몸을 바쳐 급기야는 해탈을 성취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제츈 밀라 제빠 도르제, 위대하신 성자의 ‘어떻게 하여 일체의 세속적 욕망과 위안, 명성이나 평판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고 구루의 명령에 따라 생애를 보냄으로써 구원의 해방을 얻으셨던가?’하는 이야기는 끝이 난다. 대중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신앙심으로 깊이 감동되어 성스런 다르마에 대한 굳은 서원을 세우고 진리의 수행에 정진하여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입멸



  제츈 밀라레빠 존자께서 앞서 이야기한 모든 수행을 성취하셨을 때 딘의 깊은 골짜기에는 재산이 많고 높은 권세를 누리는 게세 짜뿌와라는 한 박학한 라마가 살고 있었다. 그는 지방의 유지로 모임이 있을 때면 언제나 상석을 차지 하였다.

  겉으로 그는 제츈에게 경의를 표하곤 했지만 내심으로는 제츈에 대한 질투로 속이 터질 듯하였다.

  그는 한 계교를 생각해 내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츈에게 난해하고 유식한 질문을 하여 그를 곤경에 빠뜨림으로써 제츈이 자신보다 못하다는 것을 폭로시키리라.

  갑인년(서력 1134년, 제츈의 나이 83세가 되던 해), 가을 상달에 마침 제츈 존사와 짜뿌와가 함께 초대된 큰 결혼피로연이 있었다. 제츈은 하객들의 제1열 상좌에, 게세 짜뿌와는 그 차석에 자리하였다. 짜뿌와는 제츈이 마땅히 그에게 답례할 것을 기대하며 제츈에게 예배하였다. 그러나 제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츈은 항상 그의 스승 이외의 누구에 대해서도 예배는커녕 답례조차 하지 않았고, 이때도 그는 언제나의 관습을 바꾸지 않았다.

  게세는 한층 더 깊은 원한을 마음에 새겼다.

  “이 무슨 창피란 말인가! 나 정도의 대빤디드[학자]가 그처럼 배우지 못한 무식한 자에게 능멸을 당하다니! 내 기어코 복수를 하고 말리라.”

  짜뿌와는 난해한 철학서를 꺼내어 제츈에게 이 같이 제의하였다.

  “오 제츈이시여, 부디 이 책을 음미하여 글자 하나 하나를 잘 풀이해 주셔서 나의 의혹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제츈은 답하셨다.

  “이 논리적 추론의 단순한 문자적 해석에 관해서는 당신 자신이 더 잘알 것이요. 그러나 그 참된 진리를 스스로 체험하기 위해서는 여덟 개의 세속적 욕망과 개인적 자아의 그림자를 철저히 포기하고 니르바나와 삼사라[윤회]가 분리 될 수 없는 하나임을 알아 깊고 조용한 곳에서 명상 수행하여 나를 정복하는 것이 필요하오. 암기되어 전해 내려온 문답이라는 형식을 기록한 말장난이나 지식의 궤변을 나는 배우지도 존중하지도 않소. 이러한 것들은 지적 혼란만 일으킬 뿐, 진리의 성취를 가져올 수 있는 진실한 수행으로도 인도하지 않소. 그러한 말장난에 나는 무지하오. 설령 내가 그런 것을 좀 알고 있었다 해도 훨씬 전에 잊어버렸을 것이오. 탁상 위의 공론을 귀중히 여기지 않은 까닭을 노래하고자 하니 부디 귀기울여 주시기를....”



    영광스런 마루빠, 역경 삼장법사의

    발 아래 예배합니다.


    스승의 은총이 내리신 이래

    나는 결코 한눈 팔지 않았네.


    사랑과 자비를 오랫동안 숙고하다 보니

    나라는 것, 너라는 것

    다 잊어버렸다.


    나와 나눌 수 없는 수호신께

    오래 명상하다 보니

    이 비천한 몸뚱이의 일, 다 잊어버렸네.


    최상의 진리를 향해

    오랫동안 명상하다 보니

    책에 기록된 온갖 것, 다 잊어버렸네.


    이생과 내생을 오랫동안 명상하다 보니

    친구나 가족의 의견을 구할 필요,

    다 잊어버렸네


    깨달음을 향해

    하나하나 새로운 체험을 쌓다 보니

    온갖 교리나 교조, 다 잊어버렸네


    불생․불멸․무주(無住)에

    오랫동안 명상하다 보니

    이런 저런 목표에 대한 갖가지 정의

    다 잊어버렸네.


    이 마음의 근본자리를 부처로 알아

    오랫동안 명상하다 보니

    마음이 만들어 낸 희망이니 두려움이니 하는 온갖 궁리

    다 잊어버렸네.


    자유 속에서 창출된 경지에 오랫동안

    마음을 두다 보니

    인습 같은 건 다 잊어버렸네


    몸과 뜻을 오랫동안 살피다 보니

    강자의 오만이니 불손한 작태니 하는 것,

    다 잊어버렸네.


    이 몸을 오랫동안

    수행의 장으로 여기다 보니

    사원의 안락함과 위안거리

    다 잊어버렸네.

    언어를 초월한 진리의 의미를

    오랫동안 찾다보니

    그 내력 조사하는 것

    다 잊어버렸네.


    오, 박학한 이여,

    원컨대 그대가 이런 말들을

    그대의 권위 있는 책에서 찾아내 보라.



  그러자 짜뿌와는 말했다.

  “그런 말이야 당신들 요가 교의에 따르면 대단히 훌륭한 것이겠지만 우리 학자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나는 당신을 매우 훌륭한 분으로 생각했는데 실망을 금치 못하오.”

  짜뿌와가 이렇게 말하자 그의 지지자들조차 불쾌한 감정을 나타내며 일제히 소리쳤다.

  “오, 대덕이시여, 이 세상의 당신 같은 박학한 학자들을 다 합친다 해도 제츈의 옷자락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아니 그분의 단춧구멍 하나도 메우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자리에 만족하시오. 그리고 고리대금이나 잘 하셔서 재산 늘릴 연구나 하시오. 진리에 관한 한 당신에게는 그 좋은 향기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짜뿌와는 매우 분해했지만 참석자들이 일치하여 제춘의 편을 들었으므로 싸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꾹 참고 침묵을 지킨 채 앉아 있었다.

  ‘이 무식한 놈, 밀라레빠는 부처의 법을 속여 기이한 행동을 나타내고 허튼소리를 하여 많은 보시와 공물을 받고 있다. 그리고 내가 경전의 연구에 조예가 깊고 많은 재산과 권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능멸하고 나의 학문을 개똥보다도 못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가 다시는 그따위 짓을 못하게 하리라.’

  이 같은 결심을 하고 짜뿌와는 그의 첩에게 값비싼 보석을 주겠노라고 설득하여 제츈에게 독약을 탄 우유를 바치게 하였다. 제츈이 딘의 암굴에 머무셨을 때 그녀는 이 일을 위해서 찾아왔다.

  한편 제츈은 인연 있는 제자들과 신도들을 완성과 해방의 길로 인도하는 임무를 마치고 이제는 설사 그가 독을 탄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 해도 임종의 시기가 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짜뿌와의 첩이 독약을 탄 우유를 제츈께 공물로 바쳤을 때 그는 잔잔한 미소를 띄며 이를 받아 마셨던 것이다. 제츈이 아무 말도 없이 공물을 수락하자 그녀는 내심 제츈에게 투시력이 없다는 짜뿌와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였다.

  “약속 받은 보석은 손에 넣었는가?”

  제츈이 이렇게 묻자 그녀는 양심의 가책과 공포감으로 떨기 시작하였다.

  “네! 주여, 보석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제츈의 발 아래 꿇어 엎드려 그 독이 든 우유를 자신에게 돌려줄 것을 애원하였다.

  그러자 제츈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물론 나는 그대에게 돌려 주지는 않을 것이야. 나는 그대를 가엾이 여기노라.

  내 수명은 이미 다 되었고 이제 할 일도 끝났다. 그대의 독이 우유가 내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대와 짜뿌와 두 사람이 이번 일의 모든 것을 깊이 참회할 때가 오리라. 그때가 되면 그대들도 고행과 수도에 전념할 것이다.

  내가 지금 그대들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그대들 두 사람은 한량없는 미래세 영겁토록 행복에서 멀어지고 지옥고가 따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의 공양물을 수락한 것이니라.“

  그러더니 독이 든 우유를 마셨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제츈은 발병하였다. 제자들은 제츈께 의사의 치료를 받을 것을 간원하고 스승의 쾌유를 비는 기도회를 열도록 허락하시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제츈은 이를 만류하셨다.

  “수행자는 병을 수행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게 하여 고통이나 죽음조차도 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 밀라레빠는 은혜 깊은 스승, 마루빠께서 가르쳐 주신 특별한 행법에 의해 모든 장애나 불행을 친구로 만들었으므로 기도나 속죄의 공양물이 필요치 않다. 다섯 가지 독(욕망, 증오, 무지, 자만, 질투)으로 생긴 병을 다섯 신의 축복으로 바꾸었으므로 나는 약제 또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광명의 세계에 융합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에 이르른 것이다.

  생애에 사악한 법을 쌓아 올리고 그 결과로 생로병사의 고통을 받는 세속 사람들은 기도나 의술로써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헛되이 노력한다. 제왕의 권력, 미인의 매혹적인 용모, 부자의 재보 혹은 겁쟁이의 민첩함과 웅변가의 변설로도 이 불변하는 인연법의 집행을 방지할 수는 없으리라.“

  이와 같이 제츈께서는 그를 위한 어떠한 치료나 기도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은 여쭈었다.

  “스승이시여, 만일 당신께서 참으로 입멸하시려 한다면 저희들은 공덕을 위해 장의는 어떻게 만들어야 합니까?

  또한 누가 법사가 되어 당신의 뜻을 계승할 것이며, 열반제는 어떻게 집행하오리까? 이 모든 일에 대해 지침을 내려 주시옵소서.“

  “나의 유해가 남겨질른지.... 나에게는 스투파도 짯짜도 소용이 없노라. 나에게는 절이나 암자조차 없었으니 법사 또한 지명할 필요가 없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 수도하라. 육도의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라.

  모든 법에 대해 신앙심을 기르라.

  짯짜대신 네 가지 큰 서원을 날마다 부단히 복창하라.

  나를 위한 열반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성실한 기도를 내게 바치는 것으로 하라.

  이 같이 힘쓴다면 설사 경전에 기록된 계율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더라도 결코 부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리라.“

  이때 소식을 듣고 뒤늦게 도착하여 애통해 하며 흐느끼는 제자 렛충을 위해 제츈은 노래하셨다.



    오, 사랑하는 렛충, 나의 아들이여

    이 노래, 나의 마지막 가르침을 들으라.


    삼계에 윤회하는 고통 바다의 대 죄인은

    바로 이 보잘것없는 몸뚱이

    다만 먹고 입는 세상사에 항상 분주하여

    구원을 찾지 않네.

    렛충, 일체 세간사, 모든 애착 놓으라.


    이 몸뚱이는 덧없는 고깃덩어리

    마음은 진실함이 없어 그걸 따를 뿐

    참된 진리를 구하지 않네

    렛충, 마음의 참된 본성을 깨치라.


    무지와 현상계에서 대죄인은

    그대 안에 넘치도록 쌓아 논 지식

    그저 재난이나 피하려 할 뿐

    나고 죽음이 없는 진리를 깨치려 않네


    이생과 내생에서의 대 죄인은

    부단히 올라오는 모든 궁리

    오로지 갖지 않은 것만을 찾아 끝없이

    헤맬 뿐.

    렛충 그대 안의 영원한 진리를 찾으라.


    육도의 덧없는 도시에 태어난 요인은

    사악한 카르마로 빚어진 죄의 은폐

    인간은 좋다 나쁘다 시비에 몸믈 맡겨

    둘 아닌 하나임을 결코 알려고 않네.

    렛충, 좋고 나쁨을 다 피하라.


    보이지 않는 극락에 대한 난해한 논의에

    뛰어난 붓다께서

    많은 난해하고 심원한 진리의 방편을

    보여 주셨으나

    사람들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참 뜻을 알려고 하지 않네


    렛충, 난해한 논의를 피하라.

    대망의 목표와 명상과 참된 수행.

    이들을 한데 묶어 부지런히 행하라.

    이생과 내생, 바루도[중음신]의

    생과 생 사이

    이들을 하나로 보아 거기에 익숙해지라.


    이는 나의 최후의 가르침이니

    오, 렛충, 나의 아들이여

    부디 참다운 도를 닦으라.



  노래가 끝나자 제츈은 말씀하셨다.

  “이제 나의 생명의 등불은 꺼지려 하고 있다. 법을 지키고 나의 훈계를 따르다.”

  이윽고 제츈께서는 깊은 삼매의 평온한 경지에 들어 가셨다. 때는 을유년(1135-(사경주:위에서 이미 기록된 갑인년(1134년) 다음이면 을묘년이 맞는데, 오타인지 아니면 위의 갑인년이 맞는지 만세력을 확이해야 한다.)) 겨울, 정월 열나흘이니, 여든네 살의 세수로 제츈 제빠 도르제 위대하신 성자께서는 입멸하셨던 것이다.

  입멸의 순간 맑고 깨끗한 허공은 꽃잎 위에 펼쳐진 지극히 아름다운 만다라로 채워졌으며 오색 구름이 산봉우리를 에워싸고 그윽한 향 내음과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천상의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이르는 곳마다 솟구치는 놀랄 만한 상서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이 많았다.

  이와 같이 하여 붓다의 법은 태양처럼 찬란히 빛나게 되었으니 모든 인연 중생들은 다 해탈을 얻고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 옮기고 나서





  등나무, 작약의 달콤한 꽃 향 내음이 훈풍에 실려 코끝을 스치는 계절.

  가만히 앉았어도 가슴 설레이는 이 찬란한 오월에 히말라야의 불멸의 향기, 밀라레빠님의 생애 이야기를 소개 드리게 됨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

  이 분의 이야기는 이미 몇 년 전 월간 「불교사상」에 일본판(오오에 마사노리 옮김) ‘티벳의 요기 밀라레빠’를 번역 요약하여 4회에 걸쳐 실은 바가 있다. 그후 많은 분들의 바람이 있었고 이번에 현장스님의 주선으로 비로소 단행본으로 엮어지게 되었다.

  기왕에 번역된 일본판과 롭쌍 라룽빠님의 영어 번역판을 비교 대조하여 인명과 지명, 내용상의 미숙한 점을 보완하였고, 특히 우리 나라 사람들의 기호에 맞지 않는 지나친 헌사, 가 보지 않은 성지에 대한 긴 설명 등은 과감하게 생략하였다. 이 생애 이야기가 씌여진 본래의 뜻을 손상치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우선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되고 감명 깊게 읽힐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역점을 두고 이야기를 엮어 본 것이다.

  성자의 밝음이 이 책과 인연을 맺게 되는 모든 분들의 어두움을 밝혀 무상의 행복을 성취하기를 발원한다.



1988년 6월 1일

옮긴이(이경숙)




● 寫書를 마치며



  당초 솔스님의 말라레빠 십만송의 연재를 하이텔 경전방에서 만나고 난 한참 뒤에 하불동에서 만난 어느 분으로부터 밀라레빠의 이야기를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한 수행자의 삶의 이야기거니 하였는데 우연히 불교용품점에서 만난 이 조그마한 문고판 형식의 책은 내 작고 어두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야기를 조금 읽고서 더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저 여기 저기 옮겨 싣게 되었다. 이 일이 이 책의 저자와 출판사와 큰 뜻을 가지고 번역하여 옮기신 분께 분명한 손해를 끼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섰으나, 이 글을 쓰시고, 옮기시고, 출판하신 까닭은 많은 분들의 불법에의 귀의와 밀라레빠 존자를 본 받기를 원하시는 크고 혜량하기 어려운 수승한 마음이 계셨으리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게 되어 너그러운 용서를 빌기로 하고, 이 글들을 옮기기로 하였다. 아무쪼록 이 짧은 전기를 읽으신 분들께서 불법에 귀의하려는 아주 조그마한 마음이라도 생겼거나 아주 미약한 힘이라도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또한 이 일로 허물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이 사람의 것이며, 이 것으로 인하여 혹여 티끌만한 공덕이라도 있게 된다면 이는 모든 시방세계의 모든 유정과 무정에게로 돌리는 바입니다.

  일체 중생 모두가 번뇌를 다 여의시고 성불하여지이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佛紀 2546年 3月 3日

떡쇠  慧明 곽주현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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