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는 오늘 왜 권위를 상실했으며 교회는 왜 이렇게 오늘 타락했는가? 여기에 대한 원인과 책임은 전적으로 목회자의 세속화와 권위주의에 있다고 본다.
*이제는 사명감 없이 목회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시대이다. 사명감이 없는 목회자에게는 언제나 세상적이며 인간적인 유혹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영적 권위의 소유자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를 따라 희생적으로 목회하는 목자들과 평신도들에게만 영적 권위가 인정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의 권위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지만 영적 권위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권위 회복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가 우선 그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성도들에게 행함으로 보여주는 방법밖에는 없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최고의 권위를 두고 절대 순종하는 실천적인 삶을 살 때만 이 영적 권위를 회복할 수 있으며, 그 말씀과 함께 따르는 이적과 표적으로 설교의 권위도 살아나는 것이다.
*교회성장을 위해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바로 목회자의 권위라고 본다. 목회자의 권위가 교회와 성도들 앞에 올바로 서 있을 때, 교회는 성도들의 순종을 바탕으로 해서 튼튼하게 성장할 것이다.
*목회자도 하나님 앞에서 권위를 상실했을 때 교회는 말씀에 기근이 오고 분열이 생기고 유언비어가 생기고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위기가 온다.
*목회자에게 권위는 목회의 생명과도 같다.
*목회자의 삶의 전부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근거해 있을 때에 거기에서 바로 목회자의 진정한 권위가 생긴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 잡혀 있는 목회자에게는 하나님의 권위 있는 음성이 들어 있다. 목회자는 그 권위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할 때 진정한 영적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다윗왕 앞에 나가서 다윗왕의 죄를 당당히 지적하고,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요!”하고 외친 나단 선지자의 권위가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말씀에 사로잡힌 하나님의 권위다.
*목회자는 순교의 삶을 살 때 침범할 수 없는 권위가 있게 된다. 그리고 바울과 같이 청빈과 청부의 경지를 체득한 자족할 줄 아는 목회자에게서 진정한 권위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안타깝게도 성도들을 복종시킬 이 영적 권위를 잃어버리고 반면에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영적 권위보다는 관료적 권위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교회성장은 메마르고 목회가 불안정하게 되는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위는 그의 생활이 말씀과 일치하는 데 있었다.
*목사직의 히브리어 어원은 메살레스(meshares)이다. 이것이 신약에서는 레이투르고스, 디아코노스, 포이멘, 휘페레테스 등으로 번역하였고 영어에서는 다시 'minister'와 'pastor'로 번역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말 성경에는 영어처럼 명확한 구분이 없는 상태이다. 이런 말은 다 ‘주님의 종’, ‘주님의 일꾼’, ‘주님의 사환’, ‘주님의 심부름꾼’, ‘주님의 대사’를 의미한다. 또 ‘목회자’는 ‘수종자’의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수종자라는 말은 신약성경 헬라어 원문에 나타난 ‘휘페레테스’로서 ‘노를 젓는 사공’이란 뜻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세속화되어 상업주의와 물질주의로 오염되고 형식주의와 편의주의로 타락해 가는 심각한 중병에 걸려 있는 것은 한국교회가 부패했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교회가 부패해 가는 것은 목회자의 책임이다. 목회자들이 말씀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말씀대로 목회하지 않았으며, 교인들에게 도덕적 본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이중적 두 얼굴의 목회자, 이것이 바로 철저한 위선과 이기주의로 뭉친 현대판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아닌가!
*현대 목회자들은 정말 너무 욕심에 매여 지내는 것 같다. 목회자들의 대화 내용은 큰 교회 만들기, 권위세우기, 사례금, 자가용, 학위취득, 해외여행, 건강, 사우나, 노회와 총회의 정치, 정부에 대한 비판 등 물질욕과 명예욕으로 압축되기가 쉽다. 경건과 영성 향상에 대한 이야기는 드물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진실한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서야겠다는 강성보다는 어떻게 하면 교회를 빨리 크게 지을까, 어떻게 하면 많은 신자를 모을까, 어떻게 하면 총회나 지방회에서 한 자리 할까 등등의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아 보인다.
*목회자가 배금풍조의 유혹에 빠지면 허영심과 영웅주의에 빠지게 된다. 세속적 성취욕에 도취된 나머지 어떤 수단과 방법도 정당화 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은 현실과의 타협, 대중의 인기, 손에 쥔 권력을 목회의 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자들은 이제 목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다 알고 있다. “성도들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엡4:12)에 전념하지 않는 목사를 꿰뚫어 볼 뿐 아니라,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행12:6),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행12:8)이라는 사도의 좌우명을 이제 낡은 액자에 끼워 놓은 채 자신의 영광을 위해 뛰는 목사의 정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이다.
*목회자의 참 권위란, 낮아져서 섬기는 데에 있다.
*권위주의란 어떤 일을 권위에 의지하여 해결하려는 태도로써, ‘의(義)’를 빙자한 ‘힘’을 사용하여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권위에는 영어의 ‘power'에 해당되는 뜻과 ’authority'에 해당하는 뜻이 있다. 전자는 아랫사람을 강제로 복종하게 하는 물리적 위세를 말하고, 후자는 개인적 재능과 덕망, 문벌 등에서 생기는 사회적 힘으로서 어떤 분야나 일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된 사람이 얻는 세력을 말하는 것이다.
*권위는 강요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되고 얻어지는 것이다.
*권위주의라는 것 자체가 사실 ‘속을 비었다’라는 말이다. 속이 차면 그 자체에서부터 권위가 생긴다.
*권위주의자는 자기에게 없는 내적 실체를 외적으로 과시하려고 노력한다.
*목회자들이 받는 가장 무서운 시험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처럼 되려는 시험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되어 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할 능력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데서 오는 잘못된 권위주의가 우리 주변에 참으로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 같다.
*담임 목회자의 비인격성, 재물에 대한 애착, 세속적인 신앙, 심지어 신앙이 없는 경우까지도 허다하며, 담임 목회자의 설교의 내용과 그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아 위선적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지적이었다. 목회자는 말씀 충만과 영력 충만이 있으면 외적인 명예나 지위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위를 가지고 얼마든지 목회에 전념할 수 있을 텐데, 결국 목회자 자신의 영적 빈곤이 이러한 외형적 권위주의에 사로잡히게 하고 있다.
*오늘 목회자들은 자신의 권위를 세속적인 입장에서 세우려고 할 필요가 없다. 목회자는 자신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도록 그리스도께서 세운 사자(使者)임을 바로 알면 스스로의 권위를 알게 된다.
*참된 권위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는 영성이 없고 소신이 없기 때문에 안일하게 산다. 나는 편하면 되고 내게 손해만 없으면 된다는 식의 적당주의와 안일주의가 교계 특히 목회자들에게 팽배되어 있다.
*목회자는 예수님처럼 될수록 은혜도 넘치게 되고 목자로서의 영적 권위도 올라가게 되며, 존경과 대우도 더 받게 된다. 이런 유리한 입장에 있으면서도 목회자들이 딴 짓하느라고 예수님 닮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목회자에게 엑수시아의 ‘권위’가 없을 때, 교인들은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불신하고, 불순종하고, 반항하고, 냉소하고, 경멸하며 목회자에게 자기 고집을 세우기 시작한다.
*흔히 권위없는 목회자는 자기의 주장, 자기의 신앙, 자기의 신학의 정당성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앞세운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자기의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데 있다. 그런 목회자는 자기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파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말끝마다 ‘하나님의 뜻’을 세운다.
*목회자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한다면, ‘엑수시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겸손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실천한다면 권위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자연히 권위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권위없는 목회자가 찾아야 할 진정한 권위는 명예나 직위가 아니라 목회자의 사명의식이다.
*존 디쎈(John C. Dissen)은 소명을 받지 못한 자들의 특성은, 그들의 사역을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고 사람들의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을 지상과업으로 여기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무오성과 영감을 부인할 뿐 아니라, 설교할 때에 설교문은 다른 사람들의 설교집에서 취하며 성경은 단지 그들의 설교 본문에 필요한 구절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만 인용하며 설교 사역에 자주 환멸을 느끼고, 그들의 수입에 낙심하며 그 사역을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목회자가 말하는 것을 따르는 사람들의 응답여부는 그 목회자의 행실에 근거한다.
*자신감이 없는 열등감이나 불확신과 그냥 흐름이나 타는 목회자는 훌륭한 목회자가 아닌 것이다. 겸손과 열등감은 다르며, 우월감과 소신도 다른 것이다. 그리고 긍지와 교만도 다른 것이다. 자신감 있고 소신이 있으며 긍지가 있고 확신이 있는 목회자여야 한다.
*성서적 훈련, 영적 훈련, 지도자 훈련 결여
*많은 목회자들이 물질적 관심, 자신의 영적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목회자료가 풍부한 여건 때문에 자신이 깊이 있는 성경연구의 필요성이 감퇴되어 게을러지게 되었고 프로그램의 대량 소개로 말미암아 영성보다 수단을 더 의지하게 되었다.
*영성이 약화되고 소멸되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목회자의 전문성 의식의 부재이며 이것의 원인은 세속화이다.
*거리감 있는 설교, 지루한 예배, 불확실한 신학, 논쟁적인 강단, 식어진 첫사랑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것은 영적 갈등 때문이다.
*목회자는 제일 먼저 실력(知的, 學的)을 갖춘 성경학자가 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전문적 실력을 갖추고 영적인 권위를 회복시켜야 한다.
*전문직으로서의 목회, 전문가로서의 목회자
*전문가가 된다고 하는 말은 그만이 가지고 있는 전문의식과 특수한 지도이념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 성별하여 바쳤던 그 몸을 자기 마음대로 범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을 거두어 가신다.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중대한 문제는 신학과 성경지식의 빈곤이 아니라 목회자로서의 윤리와 기강에 투철하지 못한 점이다. 성직을 맡은 목회자의 자격은 첫째로, 성경을 중심한 올바른 신학과 교리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둘째로, 윤리 도덕적으로 순결해야 하고, 셋째로, 영성이 살고 신령한 면이 구비되어야 한다.
*목회자가 공금을 유용하거나 또는 성도들에게 빌려 쓰거나 빌려주는 문제, 혹은 출장시 여비를 사용함에 있어서 분명치 못하거나 헌금을 약속하고 바치지 않거나 성도들이 은밀하게 바치는 헌금을 착복하는 등의 과오로 오는 위기가 만만치 않다.
*목회자의 제일가는 재산은 삶을 통한 청렴결백의 실천이다.
*기독교 영성은 청빈을 뜻한다. 즉 부정한 재물을 넘겨다보지 않고, 혼자만 배부르지 않고, 가난하더라도 양심과 신앙을 지켜서 깨끗하게 사는 것이 청빈의 영성이다.
*목회자가 돈을 사랑하게 될 때 그 사람은 하나님께 쓸모가 없게 된다.
*물질에 대한 욕망은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음란, 부정, 사욕’ 세 가지는 성욕에 관한 부도덕이다.
*영적 지도자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즉각 돌이키는 사람이며, 실수했을 때 책임을 인정하고 일어나 더욱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면서 지난날을 속죄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자이다.
*영적 권위는 하나님의 주권적 허락이지만, 보존과 강화는 지도자의 책임이다.
*‘권위’란 위임된 권세이기 때문에 이 권위의 근원과 순종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만이 ‘권위’를 가질 수 있고 또 이 권위를 사용할 수 있다.
*종이란 말은 헬라어로 ‘둘로스’로서 자유인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목사의 재능, 지식, 시간, 소유, 그 외 모든 것이 목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은 목사 개인에게는 전혀 자유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얽매인 몸이라는 의미이다.
*신약에서 종의 개념에 대한 성서의 헬라어 원어는 네 가지이다. 즉 ‘디아코노스’(봉사 활동을 강조), ‘둘로스’(종으로서의 책임강조), ‘휘페레테스’(주인의 권세 아래 있는 종의 신분 강조), ‘레이투르고스’(조직의 일부로서의 종의 위치 강조) 등이다.
*살아서 우리 심령을 움직이는 설교는 그 인격과 일치한 설교들이다.
*왜 교회가 성장을 멈추고 분열되며 침체되는가? 이것은 바로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주요 원인들이, 바로 목회자들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권위주의적이고, 물질에 대한 관심이 많고, 낭비적이고, 호화스러우며, 나눠주는 삶은 인색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가 안 되며, 정직하지 못하고, 거짓되고, 위선되고 부도덕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나타났다.
*목회의 정도(正道)는 정직성과 진실성에 있다.
*목회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먼저 자기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목회자의 인격 상실은 곧 권위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고, 목회자의 권위상실은 곧 교회성장의 가장 큰 저해 요인이 되는 것이다.
*성도들이 지도자의 영적 권세에 전적으로 순복하는 양 만큼 교회는 성장한다.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는, 선교 2세기를 향한 한국교회의 이상적인 권위의 목회자는 바로 거짓 없는 진실한 인격의 ‘영적인 목회자’라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2024.1.15 완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