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보수당
영국은 340년 전 의회민주주의를 만들어낸 나라이다. 의회민주주의는 정당 정치를 기반으로 한다. 영국은 지구상의 민주주의 전형이다. 영국의 민주주의는 왕권과의 투쟁의 역사이다. UCLA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한 전옥숙 박사는 "조선시대 주자학은 인본사상이 기본이었다. 오늘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조선시대 사림파의 민본사상에 바탕을 둔다."고 했다. 그러나 민본과 민주는 다른 말이다. 정치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논리이다. 지배의 대상이었던 백성을 살려야 지배자는 백성에서 세금을 받고 병역을 하게 하여 국가를 영위할 수 있다. 건달이 자기 나와바리(なわばり)(?)를 관리할 때 먼저 상인들이 돈을 벌게 한다. 그리고 돈을 뜯어간다. 민본사상은 시혜적(施惠的) 사상이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민본을 기본으로 하지 않고서는 오래 지배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지배자를 선거로 뽑는다.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통째로 헌법에 베껴 쓴 나라이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당이 정권을 잡았다. 보수당은 시대 조류를 따라가지 못했다. 개혁에 실패했다. 로버트 필(Robert Peel, 1788~1850)은 보수당으로 총리를 두 번(1834~1835, 1841~1843) 지냈다. 산업혁명이 영국 전 사회에 파급됐다. 영국인의 절대 다수가 곡물을 재배하기보다 사먹었다. 곡물법이 있다.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곡물에 높은 관세를 매겨 농민을 보호하는 법이다. 왕도 국민도 곡물법 폐지를 희망했다. 보수당의 기반은 귀족⋅지주⋅교회지도자들이고, 지역은 농촌이다. 보수당은 정치 기반을 잃지 않으려고 곡물법 폐지를 적극 반대했다. 필은 반대파와 손잡고 곡물법을 폐지했다. 이 개혁으로 보수당의 기반을 확보하고 정권을 잡았다. 보수당의 창립자라 부른다.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는 영국 보수당의 총리를 두 번(1868~1868, 1874~1880) 지냈다. 산업혁명으로 도시민이 농촌보다 더 많았지만, 선거구는 농촌이 더 많았다. 의회제도는 인구수에 비례하여 선거구를 확정해야 한다. 다수의 영국인은 선거구 개편을 요구했다. 그러나 보수당은 정치 기반이 농촌에 있으므로 선거구 개편을 반대했다. 개혁이 과제였다. 보수당은 도시에 선거구를 늘리고, 농촌에 선거구를 줄이자는데 부정적이었다. 농촌에 선거구를 줄이면 농촌에 선거구를 두고 있는 보수당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이 안 된다. 도시에 새로운 선거구가 생겨 대표를 뽑는 것보다 나의 의원직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했다. 의회정치를 하는 국가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대한민국도 공화당 시절 농촌에 표가 많은 공화당은 인구가 많지만, 야당이 성한 도시에 선거구 배정을 반대했다. 디즈레일리는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다. 도시민이다. 보수당에 들어가 보수당 국회의원이 됐고, 선거구를 개편하여 선거제도를 바꿨다. 어려운 개혁을 해냈다. 보수당의 아버지로 지칭한다.
나는 국회 국방위원으로 있을 때 민원을 하나 받았다. 전방 부대의 사격장 곁에 사는 주민의민원이다. "우리는 사격장 곁에 사는 주민이다. 사격장에서 흘러나오는 파편 등 고물을 주워 팔아 살고 있다. 최근에는 이유도 없이 사격을 하지 않는다. 사격을 하지 않으니 고물을 수집할 수가 없다. 고물을 팔지 못하니 생계를 위협받는다. 사격을 계속하게 해 달라."는 요지이다. 어불성설이다. 원자력 5, 6호기 반대와 찬성도 마찬가지이다. 원자력 발전을 유지하자는 주장도 일리가 있고, 원자력을 점진적으로 폐기하고 대체에너지로 전향하자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정책의 선택 사항이다. 에너지 수급에 대한 논제를 접어두고,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 실업자가 생기고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원전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주민도 있다. 문제가 있다. 농촌 선거구를 줄이지 말라. 곡물법을 폐지하지 말라. 사격장을 활성화하라. 원전건설 사업을 중단하지 말라. 합리성에 맞지 않는 논리이고 주장이다. 의회정치를 제대로 하는 나라는 어디에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합리성만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북한 사회는 다양한 주장을 하지 못한다. 독재로 가는 길이다.
20세기에 가장 오래 정권을 잡은 보수당 수상은 마거릿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1925~2013)이다. 대처는 하이에크(Friedrich Hayek, 1899~1992, 197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의 <예종(隸從)의 길>을 탐독했다. 신자유주의의 노선을 따랐다. 장기에 걸친 석탄노조를 탄압하고 친기업 정책은 처음은 성공했다. 시장경제 정책은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실업이 증가하고, 재정이 바닥났다. 신자유주의의 금기인 인두세(poll tax, 人頭稅)를 들고 나왔다. 소득과 관계없이 사람 머리수로 매기는 세금이다. 가장 쉬운 과세방법이다. 실각했다. 영국의 보수당은 세계사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고, 가장 오랫동안 정권을 잡은 정당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개혁했다.
2017년 10월 26일 목요일 大邱내일신문 朴贊石(전 慶北大 총장⋅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