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영원한 연인 - 엘리자베트 황후(시씨)

[노백]

1848년 전 유럽에 혁명의 불길이 퍼질 때 18세의 나이로 황제가 되었던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이제 23세가 되어 있었다. 황실에는 상속자가 필요했기에 젊은 황제가 빨리 결혼해 아들을 낳는 것이 필요하였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제국에 맞는, 거기다 황제의 마음에도 드는 황후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어머니인 조피 대공비는 두루두루 여러 곳에서 황후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황실과 정치를 고려하여 그녀는 우선 프로이센을 염두에 두는데,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조카딸인 안나 공주가 후보였다. 그리고 1852년 황제는 신부감을 보기 위해 베를린을 방문한다.


공주가 신교도이고 이미 헤세-카셀 가와 약혼하였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피는 공주를 카톨릭으로 개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메테르니히의 영향으로 굉장히 보수적이던 그녀는 아직도 유럽의 정치 문제는 왕실간의 혼인을 통해 해결되고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프로이센 왕실은 빈에서 온 황제를 극진히 영접했지만 결혼에 대해선 반대를 하였다. 프로이센은 구시대적인-혼인을 통해 정치적으로 동맹을 맺는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고 무엇보다도 오스트리아는 독일 통일의 주도권을 놓고 서로 싸우는 라이벌이었던 것이다.


한편, 당사자 프란츠 요제프는 결혼에 있어서 정치적인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안나 공주가 마음에 들었기에 사랑으로 맺어지는 결혼을 할 수 있으리라는 낭만적인 꿈을 꾸고 있는 청년이었다.

이에 조피 대공비는 프로이센의 왕비인 언니 엘리자베트를 설득해서, 프란츠 요제프와 결혼해 오스트리아의 황후가 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고 강조를 하였다. 그러나 프로이센이 신앙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통보함으로써 결국은 실패로 돌아가 버린다.


그러자 조피 대공비는 이번엔 친정인 바이에른에서 며느리 감을 물색하였다. 바이에른 왕국은 같이 카톨릭을 믿는 데다가 프로이센의 세력을 견제해주는 곳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조피의 또 다른 언니 루도비카가 막시밀리안 공작과 결혼하여 낳은 8명의 자식들 중에는 18세의 장녀 헬레네가 있었는데 그녀는 키가 크고 날씬한 자태에 흰 피부와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공주였다.


조피 대공비는 이 조용하면서 얌전한 조카를 마음에 들어하였지만 바이에른의 비텔스바흐 가에는 오랜 세월의 근친결혼으로 인한 불안정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들의 친척인 바이에른 국왕 막시밀리안 2세의 두 명의 왕자 중 형인 루트비히 2세는 정신 착란 속에서 살며 그 이상한 행동으로 온갖 소문을 만들어내다가 후에 슈타른베르크 호수에 의문의 사고사로 생을 마감한 것은 유명한 얘기이다. 그 동생인 오토도 오랫동안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시씨의 부모인 막시밀리안 공작과 루도비카>

그리고 헬레네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공작도 만만치 않은 기인이었다. 아주 잘생긴 용모를 가졌지만 신분에 맞지 않게 전통과 인습을 무시하였으며 그 무엇보다도 사냥과 말,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한 자유로운 방탕아였다. 평범하면서 세심한 부인 루도비카는 남편의 이런 생활에 매우 괴로워했지만 항상 눈감아주고 있었다.


그 막시밀리안 공작의 귀여운 딸인, '시씨'라는 애칭의 엘리자베트 공주는 1853년 8월 아직 16세가 되지 못한 나이였다.
모두들 그녀를 어린아이로 여겼고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윳빛 살결에 보석 같은 눈동자를 지닌 시씨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용모를 갖고 있었으며 즉흥적이면서도 로맨틱하고 자유로운 성격에, 특히 시를 즐기는 소녀였었다.


그리고 그 해 조피 대공비는 헬레네와 황제의 맞선을 위해 이들 가족을 이슐로 초청하는데 막시밀리안 공작은 조피 대공비를 싫어했기에 초대를 거절, 시씨가 부친을 대신해 가게 되었다.


네네라고 불리던 예비신부 헬레네는 장래 시어머니와 남편을 만나는 불안함을 숨기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던 시씨는 늘 그렇듯 요정처럼 발랄하게 행동하였었다. 그리고 프란츠 요제프는 얌전하게 마치 목석처럼 앉아있는 헬레네보다는, 쾌활하고 명랑한 시씨를 더 주목하게 된다.


저녁에 황제의 별장에서 열린 가족 무도회에서 흰색 드레스를 입은 헬레네는 차가운 조각상처럼 보인 반면에 핑크빛 드레스를 입은 시씨는 너무나도 예쁘고 달콤한 아가씨로 등장, 그 자태에 넋을 잃은 프란츠 요제프는 시씨와 함께 코티용을 추었다.


이에 조피 대공비는 심기가 불편하였다. 아들이 불쌍한 헬레네에게 노골적으로 불손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같은 시씨를 대 오스트리아 제국 황후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대공비의 태도는 시씨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그녀는 황제가 언니의 신랑감이란 생각에 갑자기 아주 조용하게 행동했지만 이미 프란츠 요제프는 요정 같은 소녀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상태였다.


1853년 8월 18일 자신의 생일 날 프란츠 요제프는 결혼을 결심하였고 마침내 조피 대공비는 시씨에게 청혼하였다. 헬레네에겐 안된 일이지만 어차피 바이에른 왕가서 황후를 구하려고 했었고 또 다른 조카가 황후가 되는 것에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피는 며느리에게 줄 선물로 'E' 모양의 카이제르빌라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시씨는 감격하여 울면서 기꺼이 청혼을 받아들인다. 그녀도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우아하고도 늘씬하며 늘 상상해오던 이상적인 왕자의 모습인 프란츠 요제프에게 반해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프란츠 요제프는 8시가 되자마자 호텔로 찾아왔고 다시 한 번 감동의 눈물이 한바탕 쏟아졌다. 젊은 황제는 신부를 끌어안았고 그 즉석에서 약혼이 이루어졌다. 그와 함께 밖에서는 수많은 군중이 "신의 가호가 있으시길"을 외치며 두 사람을 열렬히 축복하였다.


이렇게 시씨와 프란츠 요제프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그 후 결혼생활은 행복하지는 않았다.

프란츠 요제프의 사랑이 일생 동안 변치 않고 강했던 반면 유리처럼 깨지기 쉽고 일장춘몽과도 같은 시씨의 사랑은 환상이 깨지자 곧 시들어 버린다. 예민하면서도 낭만적인 감성을 지닌 자유로운 소녀는 철저한 보수주의자며 근엄하고 일벌레인, 시를 알지도 못하고 상상력도 전혀 없었던 남편을 평생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닮았었다. 부친 막시밀리안 공작은 남에게 큰 해를 끼치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을 좋게만 보며,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상류층의 생활과 규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선술집에 자주 가서 학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시를 쓰기를 좋아했으며 치터(zither: 현악기) 연주, 여행 등으로 나날을 보냈고 저택으로 자주 부르던 서커스단에 자신이 직접 말을 타고 서커스에 나온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에선지 시씨의 형제들도 모두 자유를 추구하며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큰오빠인 루트비히는 여배우와 사랑에 빠져 귀천상혼을 하였고 모든 상속권을 단념하였다. 따라서 동생인 카를이 형 대신으로 계승권을 받았지만 그는 통치와 정치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었고 다만 의학에만 흥미를 가질 뿐이었다.
카를은 안과의사가 되지만 신분으로 인해 개업을 할 수 없었기에 자신한테 오는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고 한다.


1837년 12월 24일 일요일에 태어난 시씨는 태어나면서 이빨 하나가 나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녀는 행운의 별 아래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씨는 여름을 보내던 포센호펜에서 수영과 승마를 배웠고 가정교사가 있었지만 귀족적인 행동을 배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부른 서커스 쇼를 자주 구경하기도 하며 아버지가 연주하는 치터에 맞춰 춤을 추며 기부금을 걷기도 하였었다.


이것이 엘리자베트 아말리아 에우게니아 폰 바이에른이 16세에 오스트리아 황후로서 빈 황궁에 오기 전까지 살던 세계였다.


유쾌했던 바이에른의 포센호펜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시씨에게 정해진 의식에 따라 인형처럼 정밀하게 움직이는 수천의 시종들이 있는 경직된 빈 황궁은 너무도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황후가 될 이 소녀는 황실의 법도가 얼마나 엄격한 것인지 처음으로 조피 대공비에게 배워야 했다. 포센호펜에 돌아와서 그녀는 '황후가 되기'위한 과정-에티켓, 오스트리아 역사, 댄싱, 화술 등을 배웠고 시어머니로부터 결혼식 때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에 대해 자세히 쓰여진 장문의 문서를 받았다. 또한 미래 황후가 모든 규정을 따르는지 엄격하게 지켜 볼 수행원도 준비되었다.


조피 대공비는 진보와 자유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를 제거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끔찍하게 증오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포센호펜의 자유분방한 생활방식을 끔찍하게 생각하였고 시씨를 자신이 생각하는 황후에 합당한 교육을 시키고자 하였다.


황후가 되지 못했던 조피의 일생 일대 목표는 아들을 완벽한 황제로 만드는 것으로, 아들에게 메테르니히의 보수주의 사상을 주입시켰고 프란츠 요제프가 지쳐 실신했을 만큼 엄격한 교육과 훈련을 시키며 결국 자신이 바라는 대로 만들어 낸 여장부였다.  


그런 조피 대공비는 시씨를 위대한 황실과 황제의 황후로, 자신이 그토록 공을 들인 아들에게 어울리는 바람직한 아내로 교육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시씨는 조피가 보낸 수행원들을 감시인들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보고 들으며 끊임없는 경고와 조언, 지시들로 자신을 한 순간도 평화롭게 놔두지 않는 시어머니를 차츰 증오하게 된다.


1854년 4월 21일, 다뉴브 강을 따라 린츠에 도착한 그녀는 프란츠 요제프의 즐거운 방문을 받고는 증기선 '프란츠 요제프' 호를 타고 빈에 첫 발을 내딛었다. 수 천명의 사람들이 그녀를 환영했고 거대한 쉔부른과 엄청난 수의 하인들도 그러했다.
그리고 4월 24일 70명이 넘는 주교와 사제들이 있는 가운데 합스부르크가의 전통적인 교회인 아우구스티누스 교회에서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엘리자베트는 결혼하였다.


신혼 거주지는 락센부르크 성이었다. 그러나 그 해 4월은 춥고 비가 왔으며, 크림전쟁 등 긴장된 국제정세로 인해 프란츠 요제프는 신혼의 밀월을 보낼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본궁인 호프부르크로 가야 했고 시씨는 하루종일 홀로 남아서 성을 하릴없이 돌아다니며 화장을 바꾸고 옷을 고르는 일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오스트리아 황후라는 장식품으로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그녀에게는 친정에서의 시녀들이 허용되지 않고 조피 대공비의 충실한 심복만이 있었기에 시씨는 보이지 않는 눈빛들의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움직일 때마다 그녀는 모든 것에 조심해야 했고 혹시 실수를 하여 시어머니에게 보고되지 않을까 우려하였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자 시씨는 항상 자신의 주위에 있으면서 남편과 자신 둘만이 함께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시어머니를 미워하기 시작한다.


아들을 황제로 만드는데 전 일생을 바쳤던 조피 대공비는 자신의 희생을 보상받기 위해서인지 아들은 황제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생각에 따르면 밤에도 낮에도 아들은 황제여만 했고 그의 통치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조피는 매력적인 아내에게 푹 빠진 아들을 조심시켰고 며느리가 부부 침실에서 어떤 정치적인 청원을 할까봐 늘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락센부르크에서의 신혼기간은 프란츠 요제프와 시씨, 조피 대공비 이 세 사람 사이의 심리적인 갈등만을 심화시켰을 뿐이었다.  

시씨는 불행했다. 그리고 프란츠 요제프는 그녀가 행복하지 않기에 불행했다. 시씨는 시어머니를 황궁서 내보내고자 했지만 프란츠 요제프는 그럴 수 없었고 시씨는 그가 왜 그러지 못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황후의 바이에른 방언 말투를 가지고 수군대는 위압적인 황궁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고립된 데다 고향과 가족에 대한 향수, 형식적인 궁정 생활의 공허함을 느낀 시씨는 말수가 줄어 들어갔고 점차 웃음을 잃어갔다.

나는 감옥 속에서 깨어 있다.
그리고 내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다.
나의 동경은 점점 강해지네.
그리고 자유여! 너는 나를 외면하는구나.
나는 도취 상태에서 깨어났다.
내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그것에서
그리고 하릴없이 이 거래를 저주하고 있다.
자유를 맞바꾼 이 거래! 자유 너를 잃어버린..


1855년 3월 5일에 첫 딸이 태어났다. 모든 사람들이 실망하였고 시씨도 그러했다. 그녀는 아들을 낳아서 시어머니에게 맞설 것을 희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첫 손녀를 본 조피 대공비는 그런 대로 흡족해했고 시씨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아기의 이름을 조피라고 짓고는 자신의 옆에 둔다. 유아방은 대공비 침실 바로 옆에 있었고 어머니인 시씨가 딸하고만 단 둘이 있고 싶어할 때도 조피는 언제나 그 옆에서 참견하였다.


1856년 둘째 딸 기젤라가 태어나도 상황은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조피 대공비는 손녀들을 독점하였고 시씨는 딸들을 보기 위해선 마치 방문객처럼 다른 층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오스트리아령 북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그녀는 딸들이 자기보다 할머니를 더 따르는 것에 몹시 마음이 상하였다.

시씨는 딸들은 어머니인 자신과 있어야 한다며 남편에게 일련의 행동을 취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마음 깊숙한, 영혼의 밑바닥에서는 어머니를 두려워하고 있던 황제는 그럴 수 없었다.
다만 편지로 아이들은 어머니인 황후의 곁에서 있어야 한다고 썼을 뿐인데, 조피는 만약 그러면 자신이 황궁을 떠나겠다고 위협해 아들을 꺾는다.


그러던 중 마침내 시씨가 딸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그토록 원하던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1857년 황제 부부는 정치 문제로 인해 헝가리에 가야 했고 그녀는 이 여행에 두 딸들을 데려갈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낯선 기후가 어린 공주한테 좋지 않을 거란 의사의 충고와 시어머니의 만류에도 시씨는 조피와 기젤라를 동반하였다.


헝가리는 황제 부부를 대대적으로 환영하였고 특히 황후의 미모에 모든 이가 매료되었기에 이 헝가리 방문은 성공적인 것 같았다. 그러나 부다페스트에서 기젤라와 조피는 그만 병이 났고 기젤라는 회복되지만 약했던 조피는 두 살로 죽어버리고 만다.


조피의 죽음으로 인해 시씨에 대한 황실의 눈총은 더욱 따가워졌고 모두들 그녀를 아이들 양육에 부적합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시씨는 황후로서의 의무를 거의 충실하게 하지 않고 공식적인 행사를 가급적이면 피했기에 국민들의 뇌리에 황후 엘리자베트의 존재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시씨는 딸 조피의 죽음에 오랫동안 매우 상심해 있다가 1858년 8월 21일 마침내 아들을 낳고 황실에 대한 책임을 완수하였다. 그러자 이제 손녀들보다는 황태자인 루돌프가 더 중요해지자 조피 대공비는 기젤라를 시씨에게 양도하였고 그 옛날 아들에게 한 것처럼 손자를 미래 황제로서 손수 양육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미 시씨는 더 이상 시어머니와 투쟁하려 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였다.
1859년 이탈리아와의 전쟁으로 프란츠 요제프가 이탈리아로 가면서 남편마저 곁에서 떠나자 시씨는 사랑하는 말을 타고 고독 속으로 달아났다.


어느 하나 마음 붙일 곳이 없었던 그녀는 자신의 불안정한 마음을 미친 듯이 승마를 함으로써 달랬고 미모에 대해 도가 지나치도록 신경을 쓰게 된다. 세 번이나 출산하였음에도 언제나 그 자태를 잃지 않기 위해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22세 때에는 단식요법을 하기도 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와의 전쟁서도 패배, 영토를 계속해서 잃어갔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제국은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적대적인 주변 상황과의 기나긴 투쟁을 벌여야만 했던 시씨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쳐있었다. 그녀는 세상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고 거기다 1860년에 남편이 바람 피운 사실은 그녀를 더욱 극한으로 몰고 가게 된다. 남편과의 심각한 다툼 끝에 시씨는 1860년 7월 포센호펜으로 도망갔다. 다시 빈으로 돌아왔지만 그녀는 아팠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며 자주 울곤 하였다.


그런 상태서 참을 수 없었던 시씨는 혼자서 마데이라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해서 황제와 황실을 당황케 만든다.

아무리 괴로워도, 그녀는 황후였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대신 억눌린 그녀의 정신은 상상의 시적 공간, 따스한 정감이 있는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시동생이 영원한 봄의 낙원으로 묘사했기에 택하게 된 마데이라는 그러한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황실은 황후가 병이 났다고 소문을 내고 1860년 11월 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빌려준 한 척의 왕실 요트를 타고서 시씨는 오스트리아를 떠났다.


그런 며느리의 도피로 승리를 얻은 조피 대공비는 시씨가 자식들의 교육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였다.
조피가 황후보다 막강한 존재였기에 전 궁정은 시씨보다는 그녀가 황후인 것처럼 떠받들고 있었다. 거기다 시씨가 패배하고 도주하자 승리자의 쾌감을 맛보게 된 조피 대공비는 며느리와 좋은 관계인 것처럼 보이려 했고 며느리의 미모만은 자랑스러워했기에 친히 시씨의 초상화를 그려 황제의 방에 걸어둔다.
그러나 시씨는 조피와 화해하지 않았고 여행 내내 조피에게 한 통의 편지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6개월 간의 여행 후 1861년 5월에 돌아왔을 때 시씨가 받은 느낌은 '이방인'이라는 것이었다. 기계처럼 잘 돌아가고 있는 궁중생활에서 그녀는 방해물이자 외톨이였다. 오히려 황실은 적응하지 못하는 그녀가 여행으로 차라리 밖에 나가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분위기였었던 것이다.


그녀에겐 이제 자식들도 낯설었다. 기젤라와 루돌프는 인형처럼 레이스 달린 옷을 입고 하루 한 시간 정도 어머니와 만날 뿐이었다. 그리고 무정하게도 한시간이 지나면 즉시 할머니의 품으로 돌아가 버렸다.


시씨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떠날 준비를 하였다. 거기에는 따스함이 있었고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있으며 성가시고도 답답한 의식도, 시어머니도 없었다.
현실과 맞서는 대신 그녀는 가능한 모든 것에서 도피하고자 하였다. 이번엔 스페인의 세빌랴를 비롯해 그리스 섬인 코르푸로 여행을 계속 하였고 아이들을 만나보기 위해 베네치아로 갔지만 빈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1862년 8월 18일 남편의 생일에야 겨우 시씨는 빈으로 돌아왔다.


                         
 <프란츠 요제프가 가장 좋아한 시씨의 초상화. 그녀가 늘 곁에 없었기에 이 초상화를 자신이 일하는 서재에 걸어두었다>

한편, 시씨는 교양있는 여성이며 이지적이었고 특히 언어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 어를 배웠으며 호메로스의 작품들은 가장 즐겨 읽던 책이었다.


또한 규율과 규제에 맞서면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군주제에 반대하며 개혁을 지지했다. 그러나 시씨가 의견을 표현하면 누구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녀는 군주제를 낡은 것으로 여겼고 오스트리아와 같은 다민족 국가의 종말을 예언했던 것이다.

황후는 국민이 어떤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다면 그 일의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는 유럽서 가장 오래된 전제 궁정을 깜짝 놀라게 한다.


그러한 시씨는 딱 한번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있었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성립이었다.
1857년의 첫 방문 이후, 헝가리와 그들의 정신에 끌린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강압적인 지배를 받는 헝가리가 자신과 왠지 비슷하다는 느낌에 동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거기다 시어머니가 헝가리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헝가리를 사랑하며 헝가리 어를 열심히 배워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시녀들도 모두 헝가리 인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몹시도 아름다운 황후를 헝가리 역시 열렬히 사랑했고, 이런 관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성립하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비록 프란츠 요제프는 헝가리와 연합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시씨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고 아내의 소망과 헝가리 회유정책이란 정치적 측면서 한 발 물러나야 했던 프란츠 요제프는 이중 왕국으로 헝가리에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였다.


1867년 6월 8일, 프란츠 요제프와 시씨는 헝가리 왕과 왕비로 대관식을 하였다. 자신을 소원을 들어준 남편에게 시씨는 고마워하였고 그 보답으로 프란츠 요제프는 대관식이 있은 지 10달 후, 네 번째 아이를 얻을 수 있었다.

1868년 4월 22일, 부다페스트에서 시씨는 막내딸 마리 발레리를 낳았다. 프란츠 요제프는 이 15년 간의 결혼생활서 시씨를 여전히, 무척이나 사랑하였지만 이 사랑은 이제는 추상적인 감정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이 여성을 정신적으로나 영혼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네 번째 아이가 딸이라는 사실은 그를 실망시킨다.


하지만 그와 달리 시씨에겐 그 딸이 자신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이제 조피 대공비의 시대는 지나갔다. 63세인 조피는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버렸고 마지막 손녀를 놓고 더 이상 며느리와 싸우지 않았다. 시씨는 온전히 자기 뜻대로 딸을 교육할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모정을 이 어린 딸에게 모두 쏟았다. 그런 어머니에 대해 나중에 마리 발레리는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은 나에게는 숨막힐 정도였습니다." 라고 회상한다.


그러나 시씨는 막내딸에겐 사랑을 퍼부으면서도 다른 자식들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때 황태자 루돌프는 10세였다. 어머니 시씨를 닮아 섬세한 감수성에 자유로운 정신을 소유하고 있던 그는 할머니와 부친의 교육방식에 숨막혀 했고 어린 여동생보다 더 절실하게 어머니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공무에 바빠 아들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었고 어머니는 대부분 부재 중이었다.


루돌프는 7세 때부터 군대식으로 교육받았는데 교관은 어린 그에게 육체와 정신을 훈련시킨다는 명목으로 눈 속을 행진하게 했고 잠자는 루돌프를 깨우기 위해 한 밤중에 권총을 발사하거나 얼음 같은 물을 붓는 등 그 훈련은 너무도 가혹했다.
그걸 안 시씨는 남편에게 아들의 교관을 바꿀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고 그것이 아들에게 해 준 어머니로서의 유일한 배려였다.


아들한테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시키기엔 시씨는 궁전을 너무 자주 비웠었고 루돌프는 어머니를 사랑하며 의지했지만 모자의 관계는 막연했다. 시씨는 늘 부재중으로, 편지만으로는 모자간의 유대를 확고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시씨가 가장 사랑한 딸 마리 발레리가 태어난 이후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질 뿐이었다.
대신 아버지는 항상 있었지만, 프란츠 요제프가 자신의 책상 주위에 세운 보이지 않는 유리벽은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가까이 갈 수 없게끔 하였었다.

프란츠 요제프는 아내의 뜻에 따라 아들이 일정부분 자유주의적 교육을 받게 해주었지만 그러나 결국 이것은 부자간의 불화만을 불러왔을 뿐이었다.


1872년 조피 대공비의 죽음은 오랜 세월 괴로움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러나 시씨는 변하지 않았고 더욱 더 자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여행은 최종 목표가 정착이 아니라 단지 여행이기 때문에 열망할 만 하다. 만약 내가 어느 장소에든 도착한 후에 결코 그곳에서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그곳이 낙원이라 할지라도 내게는 지옥이 될 것이다."
라고 언젠가 그녀는 밝혔었다. 그녀는 자신의 불안과 우울증을 알고 있었다. 영원한 추구, 영원한 도피...이것은 점점 더 자주 일어났고 점점 더 길어졌으며 벗어날 길이 없었다.


감수성 강한 그녀는 시를 쓰며 자신의 마음을 나타냈고 때로는 황궁의 귀족들, 가족을 조소하며 빗대기도 하였다. 그녀의 시 스타일은 독일시인 프리드리히 하이네와 비슷하였다. 하이네를 무척이나 좋아한 그녀는 1887년에는 하이네의 누이를 만나보았고 뒤셀도르프에 하이네 동상을 세우려고 하기까지 하였다.


시를 쓰지 않는다면 시씨는 선물로 받은 부다페스트의 Godollo성이나 영국서 머물면서 승마를 하였다. 승마를 좋아하는 황후의 말들은 모두 최고였다. 그녀는 무척이나 비싼 영국산 말들을 사기도 했는데 프란츠 요제프는 아내의 소망을 거절하지 않았고 그 값을 다 지불해주었다. 물론 프란츠 요제프 자신도 훌륭한 기수였기도 했다. 1870년대 부부 사이의 편지들은 대부분 말과 사냥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펜싱 등의 거친 운동을 하였고(쉔부른에는 아직도 그녀가 사용했던 운동기구가 남아있다.) 거처하는 곳 어디에서나 그녀는 오래도록 걸었다. 심지어는 8시간 넘게 걸은 적도 있었다. 거기다 황후의 조깅은 너무 빨라서 그녀의 안전을 책임지는 비밀경찰은 '따라갈 수 없다'며 황후를 호위하기를 포기할 정도였다. 그래도 시씨는 밤새도록, 날씨가 나빠도 계속 걸었다.
이렇게 빠르게 오랫동안 걸을 때는 적어도 잠시는 우울함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끊임없이 전 유럽을 떠돌아다녔다. 시씨는 육지에 있는 것보다 바다에 있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날씨가 험해도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이 자신의 얼굴을 스치는 것이 좋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어깨에 작은 돛 모양의 문신을 새기기도 하였다. (당시 문신은 중범죄자나 하던 것이기에 아내의 문신에 대해서 들은 황제는 충격을 받는다.)


따라서 빈에서의 체류는 드물어졌고 여행은 길어졌으며 그에 비례해 황제는 고독해져갔다.
30년이 넘게 부부로 살면서도, 시씨는 남편이 개인적인 기쁨보다는 나라에 대한 의무를, 왕가의 미래를 개인적인 행복보다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프란츠 요제프는 시씨를 열렬히 숭배했고 비굴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다. 이미 그는 수년 전부터 편지에 자신을 낮추어 '그대의 못난 남편', '그대를 사랑하는 그대의 애인'이라 서명했다.
소년시절부터 80세의 노령까지 철제 침대서 자고 목재의자에 앉고 소박한 식사를 하는 등 자신은 검소하게 생활하면서도 프란츠 요제프는 시씨가 원하는 것은 아무리 막대한 돈이 들어도 다 들어주었다.


변덕스런 그녀가 그리스 문화에 빠지고 그리스어를 배우면서 '그리스인이 되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하자 프란츠 요제프는 빈에 그리스 식의 헤르메스빌라를 지어주었다. 시씨를 자신의 옆에 붙잡아 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실패하였다.
그러자 시씨가 자주 가는 그리스 섬 코르푸에 그녀가 좋아하는 영웅인 아킬레스를 주제로 한 저택 아킬레이온을 지어주었다. 여기에 시씨는 열광했지만 막상 빌라가 완성되자 흥미를 잃는다.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야 우리의 꿈은 언제나 더욱 아름답다....'


황제는 한없이 고독했고 저물어 가는 제국의 황혼 앞에서 굴욕과 고난을 참으며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무엇보다도 가정의 따스함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외로운 그는 마치 아이처럼 그녀의 곁에 있기를 간청했으나 시씨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았고 늘 그를 홀로 내버려두었다. 심지어는 빈에 1년 중 15일도 채 있지 않을 때도 있을 정도였다.
우울증과 나르시시즘 속에서 그녀는 자기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지치고 힘든 남편도, 연이은 전쟁과 패배로 인해 고통받는 오스트리아 백성들도 없었다.


그러나 남편이 극도로 약해지자 죄책감을 느낀 시씨는 남편을 위해 자신과 닮은 카타리나 슈라트를 발견한다. 1883년 황실 극장 무대서 데뷔를 한 카타리나에게 프란츠 요제프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시씨는 그걸 알고 있었고 궁정 화가에게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기도 하였다.

카타리나는 황제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국정에도 간섭하지 않았고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프란츠 요제프에게 휴식을 주는 여성이 된다.

이제 50세인 시씨는 자신이 점차 늙어간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속된 삶의 공허함 속에서 미모만이 인생의 유일한 가치였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그 미모를 간직하기 위해 그녀는 끈질긴 투쟁을 하였다.

40세 이후의 초상화는 그리지 못하게 하였으며 가장 친한 주변 사람 외에는 누구도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시씨는 부채로 중년의 주름살을 가렸으며 외출 시에는 양산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또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요법을 동원했는데 이 살인적인 요법은 그녀의 건강을 해치기도 할 정도였다. 언젠가 그녀의 몸이 끔찍스럽게 부어 오르자 의사들은 과도한 다이어트 때문에 생긴 기아 수종이라고 발표한다.

그리고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아내가 매일 6개의 오렌지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받고는 크게 놀라기도 하였다.


키가 172cm에 46kg의 몸무게를 가진 그녀는 키가 컸지만 날씬한 몸매 탓에 그리 커 보이지 않는 아담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 눈은 어린애 같은 표정을 지닌 갈색이었고 입술은 밝고 붉어 항상 조용한 미소를 띤 채 꼭 다물어져 있었다.

과도한 승마에도 볼은 늘 예쁜 장밋빛이어서 그녀를 멀리서만 본 사람들에게 시씨는 늙을 줄 모르는 항상 똑같은 매력을 가진 아름다운 황후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런 그녀와 프란츠 요제프에게 불행이 닥쳐왔다.
루돌프는 1881년 벨기에의 스테파니 공주와 결혼했지만 시씨는 며느리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고 루돌프와 스테파니 역시 전혀 맞지 않는 부부였다.
그런데다 프란츠 요제프와 루돌프 사이의 불화는 점차 심각해지고 있었다. 어머니처럼 글을 쓰길 좋아하던 루돌프는 자유주의적인 신문에 익명으로 기사를 썼고, 아들과의 정치적 불화로 인해 프란츠 요제프는 그를 정부 권력에서 떼어놓았으며 부자사이에 담을 쌓아놓았다.


불행한 결혼생활, 그로 인해 겉돌다가 얻은 성병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한 모르핀과 알콜, 아버지와의 불화에 시달리던 루돌프는 종종 '내가 빨리 죽을 거라는 걸 안다'며 자살을 생각하곤 하였다.
그리고 1889년 1월 30일, 마이어링에서 황태자 루돌프는 애인 마리 베체라와 함께 권총 자살하였다.(자살이 아니라는 의혹도 있다)


황태자의 죽음을 황제에게 감히 알리지 못한 사람들은 시씨에게 먼저 알렸다. 침착하게 남편을 위로했지만 시씨의 슬픔은 너무나 컸다. 아들의 죽음으로 절망한 그녀는 더 이상 보석도 하지 않았고 이 때부터 오직 검은 옷만 입고 다녔다.
시를 쓰는 것도 그만뒀고 그렇게 열렬했던 그리스와 헝가리에도 흥미를 잃어버렸다. 거기다 친구였던 안드라시 백작도, 루트비히 2세도 죽고 가장 사랑했던 딸 마리 발레리도 1890년 7월에 결혼하자 시씨는 더욱 더 고독 속으로 내몰렸다. 그녀는 아들을 따르기 위해 종종 자살을 꿈꿨고 그런 그녀를 보는 빈 황궁 사람들은 황후가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사람도 만나보길 피하던 그녀는 그저 오래도록 걷고 프란츠 요제프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여행을 할 뿐이었다.
마지막 공식석상인 1896년 헝가리의 1000년 축하에 모습을 드러냈을 땐 '에르체베트(엘리자베트의 헝가리식 발음)!'라 외치는 사람들의 환호에 잠시 고개를 들었을 뿐이었다.


1898년 공식적으로 황후의 병은 빈혈, 신경염, 심장 확장으로 발표되었고 시씨는 늦여름 스위스로 요양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9월 10일 오전에 호텔을 떠나 호수 언덕에 있는 증기선 정류장으로 갔을 때였다. 암살자는 황후와 수행 시녀인 차타라이 백작부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암살자 루체니는 원래 시씨를 노린 것이 아니었다. 무정부주의자로 사악하고 부당한 세계에서 지배자는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그는 오를레앙 공작을 살해하려 했으나 오를레앙 공작은 제네바에 오지 않았고 마침 시씨가 온 것이었다. 무정부주의자에겐 오스트리아 황후도 환영할만한 암살 대상이었다.


시씨는 늘 그렇듯 양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그가 급한 일로 아무런 주의 없이 달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게 길을 비켜주려 했으나 암살자 루체니는 그대로 달려와 칼로 황후의 가슴을 뚫었다.
허리 16~18인치를 유지하기 위해 코르셋으로 몸을 꽉 졸라맨 시씨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하고 정신을 잃었다. 백작부인이 얼른 옷을 풀었지만 코르셋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호텔로 실려간 그녀에게 의사가 달려왔지만 이미 늦어 황후 엘리자베트는 숨을 거두게 된다.


"어머니는 자신의 살인자를 찾아다녔어" 하고 마리 발레리는 탄식하였다.
아들이 죽은 후로 엘리자베트는 더 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았고 죽음에 대한 동경이 그녀를 부추겨 죽음을 찾아 떠돌아다니게 했던 것이다.


이 비극적인 보고가 도착했을 때 황제는 시씨가 그렇게도 혐오하던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 책상은 일생동안 그녀의 고독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부관 파르 백작이 이 끔찍스러운 소식을 더듬거리며 말하자 프란츠 요제프는 굳어버렸다. 곧 정신을 차린 황제는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황후 엘리자베트, 시씨의 긴 삶의 불행은 사랑했지만 끝끝내 이해할 수 없었던 남편과 고부간의 불화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좀 더 근원적으로는 숨막힐 듯한 황실과 그에 어울릴 수 없었던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에 있었던 것이다.

폐쇄된 속에서 저 밖의 세계를 동경했던 여인은 억눌린 자신을 찾아 평생을 그렇게 떠돌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그렇게 생의 마지막도 낯설고 머나먼 곳에서 끝을 맺게 된다.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