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삼복에 광복까지 지나도 올해는 무더위가 가실 줄 모르고 기승을 부린다. SK건설에 있는 아들이 8월 19일부터 23일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하여 5일간 휴가를 얻어 18일 저녁 영광에 내려왔다. 우리와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겠다고 내려온 아들이 아내는 대견하고 마냥 좋은 모양이다. 나는 흐뭇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여자 친구와 휴가를 즐겼으면 하고 바랬는데... 19일 아침 필요한 옷가지와 짐을 챙겨 10시경 여행을 위해 첫 번째 행선지인 여수로 출발했다. 이번 휴가에는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을 목적지로 중간 기착지인 여수에 들러 엑스포 개막을 앞둔 실상을 보고 싶단다. 여행에 즐거움의 반은 먹는데 있다며 맛 집과 관광 명소까지 몇 군데 꼼꼼히 적어 왔다. 나는 내비게이션을 여수시 중앙동에 있는 진남관에 맞추고 아내와 아들을 태우고 출발 하였다. 무더위도 차안에서는 조금 피할 수 있고, 따분한 일상에서 탈출하는 일탈의 기쁨이 기분 좋아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다. 차창 밖에는 퍼렇게 늘어선 벼들이 처서를 지나서인지 조금씩 누런빛을 띠고 있다. 아내는 직접 수확한 옥수수를 쪄서 간식을 준비 했다. 다른 해 보다 올해는 사택 내 빈터에 심은 찰옥수수가 수확도 좋고, 맛도 좋다.
12시경 여수 시내로 접어들어 진남관 앞을 지나 예전에 시티투어 때 맛있게 먹었던 추억을 더듬어 돌산식당을 찾아 갔으나 갈치 맛이 그때만 못하지만 식당 내부는 훨씬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소화도 시킬 겸 걸어서 진남관 마루에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등줄기 땀을 거두어 간다. 거목으로 지어진 진남관의 68개 기둥이 늘씬하다. 지난번 왔을 때 못 보았던 조명 시설이 눈에 뜨인다. 방문객들이 가족 단위로 간간이 올라온다. 우리는 다음은 흥국사에서 태양의 열기가 누그러질 때 까지 쉬고 저녁 무렵 향일암에 오르기로 했다. 우리가 2시 20분경 흥국사에 도착했을 때는 계곡을 따라 차들이 줄을 이어 주차해 있다. 우리도 자리와 음료수 책 몇 권을 꺼내들고 계곡 편편한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독서하는 것도 피서로는 괜찮아 보인다. 주변에는 음식을 가져와 먹고 마시다 더우면 물에서 더위를 식히는 할아버지와 손녀 삼대의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물속에 담근 발을 간질이는 차가운 물 잠시 바위 위로 꺼냈다간 다시 물에 담금질을 반복하다가 3시 10분경 예전에 호남화력에 다닐 때 살았던 마을에 가 보기로 했다. 들어가는 길엔 진달래로 유명한 영취산이 보이고 새로 포장되어 있다. ‘84년도 내가 살던 때와는 지형지물이 달라져 있었다.
잠시 후 여수화력이 보이고 마을을 이루고 있던 곳은 이주를 하고 그 자리엔 큰 석유 화학 탱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추억을 더듬어 달라진 길 위를 달려 예전에 근무 했던 호남 화력에 도착 했다. 발전소도 많이 달라져 석유 전소였던 발전소가 석탄 혼소로 바뀌면서 모과 밭은 저탄 시설로 바뀐 듯 했다. 우리는 향일함으로 가는 도중 4시경 수산 과학관에 들렀다. 예전에 왔을 때보다도 시설이 더 보완 되었다. 대형 수족관에서 헤엄치고 있는 거북이 가재 가오리 상어와 박제 된 각종 어패류를 들러 보고 4시 35분경 향일암을 향했다. 돌산대교를 건너 향일암을 들어가는 길은 구불구불 2차선으로 한참을 들어가니 향일암 가기 전 주차장에서 차를 통제하고 주차비를 받고 있었다. 3천원을 내니 주차한 사람들에게 요금은 받지 않고 자체운행 하는 버스로 행객들을 날랐다. 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길을 올라가는 양편에는 돌산 갓김치와 막걸리 가게가 즐비하다. 평 길과 계단으로 오르는 길 중 그늘이 드리운 길을 택해 오르는데 계단을 오르는 대문 전각에 금오산향일암(金鰲山向日庵)이라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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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걸음마다 땀이 비 오듯 흐른다. 금오산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형상이란다. 이름에 걸맞게 바위들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육각형 형상을 하고 있고, 힘들게 계단을 올라 제일 먼저 해탈문이라고 불리는 돌문을 지나니 향일암 대웅전이 보인다. 지난번 화재로 소실되어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는 못하고 가건물로 지어져 있었다. 향일암의 기암괴석은 대웅전으로 오르는 돌문과 원효스님이 수도한 관음전으로 가는 돌문, 흔들바위로 가는 돌문 등 7개의 돌문 마다 지나치는 자연의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5시 반이 지나자 무더위가 조금은 수그러진듯하여 우리는 약수로 갈증을 달래고 평 길을 택하여 내려갔다. 6시경 주차장에서 통제하던 사람도 없고 차가 자유스럽게 드나든다. 오던 길을 되집어 아들이 예약해둔 호텔 이스턴주얼리에 짐을 풀고 난 뒤, 택시를 불러 대경도 여객 터미널로 향했다. 10분정도 대경도 대합실 앞에서 기다리니 7시경 배가 들어온다. 요금은 배 안에서 받는데 왕복 1500원이었다. 가까운 섬들에는 숙박을 할 수 있는 원형의 하얀 방갈로가 줄지어 보인다. 대경도까지는 10여분정도 걸렸을까? 들어가자마자 좋은 장소에 앉으려고 모두 잰 걸음을 재촉한다. 우리도 경도회관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앉아 하모유비끼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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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노을 속에 흰 구름이 붉게 물들어 지는 해를 마중한다. 하모는 소문대로 담백하고 맛있었다. 하모 샤브샤브 한 점에 소주 한잔을 먹다 보니 어느 새 두병을 마시고 식사로 죽까지 먹으니 너무 배가 불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스름이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하나 둘 전등이 불을 밝힌다. 8시 20분이 지나니 배가 들어와 승선하여 나왔다. 택시를 잡기 위해 걸어 나오는데 웬 아주머니 두 분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길에 서서 이야기 하고 있고, 우리는 지나치며 잠시 가자 앞에 빈 택시가 오고 있어 차를 세웠다. 그러자 두 부인은 화를 내며 우리가 여기서 30분 정도 차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택시 승강장도 아니고 30분을 기다렸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차를 내주며, 엑스포를 치르려면 좀 더 친절한 교육과 문화 정착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스턴주얼리 호텔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편의점에서 술과 안주를 사서 입가심으로 한잔 더 마시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짐을 챙겨 여객터미널을 향했다. 여객 터미널 선착장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터미널 앞 구백식당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주차를 하는데 직원이 주차를 못하게 한다. 넓은 주차장에 차 몇 대가 주차해 있고 자리도 많은데, 어차피 통영을 갈 때 뱃길로 갈까 국도로 갈까 갈등했는데 기분이 나빠 우리는 국도로 가기로 하고 구백 식당 앞에 주차를 하고 유명하다는 금풍생이를 아내와 아들이 시키고 나는 복어탕을 시켜 식사를 했다. 구백 식당은 전화번호가 900번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아들이 설명해 준다. 음식은 우리 입에는 소문처럼 맞지 않았다. 식당에서 나와 통영 여객터미널을 내비게이션에 입력 한 후 출발했다. 통영에서 소매물도행 배가 11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서둘러 10시 45분 도착했는데 배표가 이미 매진되어 두 번째 행선지로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기로 하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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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50분경 케이블카가 운행되는 미륵산 어귀에 도착하니 ‘주차장 만 차’ 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고 양쪽 길을 따라 차가 길게 주차되어 있었다. 때 마침 차가 한 대 빠지며 나가는 길옆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곳에 주차를 하고 승강장을 향했다. 무리지어 내려오는 사람의 숲을 헤치며 올라가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식히며 차례를 기다렸다. 11시 20분경 우리도 케이블카에 올랐다. 우리가 탄 케이블카에는 우리 세 사람과 다른 부자 로 보이는 둘 모두 다섯이 타고 올랐다. 반대쪽에는 연신 케이블카가 줄을 이어 내려오고 우리 뒤쪽에도 오르는 케이블카가 줄을 잇는다. 케이블카 아래로 산길을 오르는 길이 보인다. 산자락에는 용화사가 있어 미륵산을 용화산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15분정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여 케이블카에서 내렸다. 다음은 미륵산 정상까지 왕복 30분 정도 걸린단다. 오르는 길은 방염처리 된 나무 계단으로 죽 이어진다.
미래사 입구 산길과 전망대로 오르는 두 갈래 길로 나뉘어 우리는 전망대 쪽으로 아들은 미래사 쪽으로 올랐다. 한산대첩 전망대 쪽으로 가는 길에 정지용 시인의 통영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 중략” 는 겸손한 내용의 글이다. 경관이 빼어난 곳은 어디를 가나 걸출한 시인과 문필가를 배출하는 모양이다. 미륵산 정상 입구에 칡즙과 커피 등 음료수를 파는 사람이 있고 봉수대 터가 있었다. 11시 45분경 해발 461미터에 도착하여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다보는 통영의 경관이 안개 탓에 흐릿하지만 사통팔달로 시야에 들어온다. 맑은 날에는 대마도가 보인다는데 오늘은 한려해상의 조망이 흐릿하여 조금 아쉬웠다. 내려오는 길에 칡즙을 시켜 마시며 미래사 코스로 발길을 향했다. 내려오는 길에 아내가 칡즙을 시켜 시원하게 마시고, 내려오는 길섶 작은 정자에 한 가족이 도시락을 풀고 식사를 하고 있다. 옆에는 토지의 저자 박경리의 묘가 보이는 곳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몇 년 전 성제봉 산행을 할 때 들렀던 토지의 촬영 주 무대이던 평사리 마을의 평화로운 전경과 노송 그리고 전라와 경상을 가르며 흐르던 섬진의 강물이 잠시 뇌리를 스친다.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하니 갈증으로 물 한 병을 1000원에 사 마셨다.
12시 10분경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멍게 비빔밥으로 유명한 통영 맛 집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식당을 물으니 친절하게 알려주며 올 때는 주차 도장을 받아 오란다. 작은 식당은 깔끔하고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멍게유곽비빔밥은 멍게, 김, 해초, 조개젓, 새싹에 참깨를 뿌려 꽃잎으로 마감하여 미역국과 함께 내어 놓았다. 반찬은 전어구이, 마른 실 갈치, 녹두 나물, 콩자반, 다시마, 고구마 순 등이 나왔다. 아내는 미영이네가 왔으면 좋아했을 텐데 하고 말한다. 독특한 멍게 향이 입안에 가득 고인다. 오늘의 싱싱 메뉴로는 갈치 호박국과 멸치회가 쓰여 있다. 계절에 따라 나오는 농수산물로 만들어 한시적으로 나오는 모양이다. 오른쪽 벽에는 통영을 빛낸 예술가들의 사진과 작품 소개 글이 적혀있었다. 1시가 조금 지나 우리는 서울로 가기 전에 충무김밥이 유명하다며 원조 뚱뚱할매 집을 찾았다. 여객선터미날 앞으로 죽 늘어선 김밥 집은 교통이 너무 혼잡했으나 차가 느리게 가는 동안 아들이 김밥을 사서 바로 서울로 출발할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을 자양동으로 맞추고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아들에게 운전대를 넘기고 느긋이 의자에 기대니 졸음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