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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사기》제1권 '오제본기'부터 제12권 '효무본기'에 이르는 <본기> 12편을 완역한 책. <사기본기>는 동양의 문(文), 사(史), 철(哲)이 집대성된 인문 고전의 정수로 손꼽히는 책이다. 중국의 전설 시대부터 춘추전국 시대를 거쳐 한 무제에 이르기까지 3천여 년의 역사를 제왕이나 제왕을 대신했던 실권자의 사적을 중심으로 기록하였다. 고금의 광범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명확하게 기술하고, 기천체 형식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흥미진진하게 탐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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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사마천(司馬遷)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학자(B.C.145~85).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이 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太史令)이 된 후 그 영향을 받아 역사 기술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무제(武帝)하에 관리를 지내면서 한나라 전역을 여행하고, 이를 통해 견문을 넓히며《사기》저술에 필요한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하게 되었다. B.C. 104년 사마천은 부친의 유언에 따라 10여년에 걸쳐 《사기》 집필에 착수하였으나, 친구 이릉(李陵)을 변호하다가 한무제에 의해 궁형을 받게 된다. 궁형을 당할 것인가, 아니면 자결을 택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길목에서 사마천은 한신(韓信)이 동네 사람의 가랑이 밑을 기어 나가 훗날 중용되었듯이 궁형의 치욕을 감수하고라도 살아남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후 다시 황제의 신임을 얻고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中書令)에 올랐으며, B.C. 90년에 드디어 《사기》를 완성하였다.
옮긴이
김원중
충남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문심조룡(文心雕龍) 수사론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만사범대학 국문연구소 방문교수, 대만중앙연구원 중국문철연구소 객좌연구원을 역임하고, 현재 건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사기열전》,《정관정요》,《중국문화사》등의 작업을 통해 어려운 중국의 고전과 독자와의 거리를 한층 좁혀 놓았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한국 최고(最古)의 역사서《삼국유사》(MBC !느낌표 선정도서)를 새롭게 해석하여 우리 고전의 대중화에 이바지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중국문화사》, 《중국 문학 이론의 세계》(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중국 문화의 이해》(문화관광부 추천도서), 《허사대사전(虛辭大辭典)》(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당시(唐詩)》, 《송시(宋詩)》, 《한문강좌》, 《고사성어백과사전》등이 있고, 역서로는《사기열전》(대학교수 추천 베스트 10), 《삼국유사》, 《정관정요》, 《正史 三國志》, 《한비자》(문화관광부 추천도서) 등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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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해제 일러두기 01. 오제본기 02. 하본기 03. 은본기 04. 주본기 05. 진본기 06. 진시황본기 07. 항우본기 08. 고조본기 09. 여태후본기 10. 효문본기 11. 효경본기 12. 효무본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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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 본기(五帝本紀) 오제(五帝)란 중국 고대의 전설에 나오는 다섯 명의 제왕 - 황제(黃帝), 전욱(顓頊)[高陽], 제곡(帝嚳)[高辛], 요(堯), 순(舜) - 이다. 이 편에서는 사료의 제한으로 전설적 색채를 가지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듯한 인물들을 다시 역사의 무대로 돌려놓았다. 중국 고대 개국시조들의 존재를 처음으로 내세우면서 황제의 성공은 덕을 닦는 데서 비롯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p.31)
하본기(夏本紀) 하나라는 전설 속의 오제(五帝)와 역사적인 실증이 가능한 은(殷)대의 중간 단계로서, 하 본기에서는 우 임금 위주로 17명의 다른 인물들의 활약상을 기록하고 역사적 사실성을 강조하였다. 만일 이 편이 없다면 하나라의 존재 자체는 부정될 수밖에 없다는 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여기에도 덕의 성쇠로써 한 시대의 흥성과 패망을 나타내는 사마천 특유의 논조가 담겨져 있다. (p.59)
은본기(殷本紀) ≪상서≫와 ≪시경≫에 근거하고 ≪국어≫와 ≪춘추좌씨전≫에서 자료를 보완하여 은 왕조의 발전사를 완전하고 정확하게 기술하였다. 이 편에는 탕, 중종, 반경, 무정 등 중요한 천자와 유명한 신하들을 서술하면서 기전체 역사서의 기본적 틀을 확보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도 역시 덕치를 강조하면서 전편인 <오제본기> 및 <하본기>와 서로 일맥상통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p.83)
주본기(周本紀) 867년간 37명의 왕이 제위에 올랐던 주나라의 장구한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서, 천하대세가 명백히‘덕치(德治)’로부터 ‘무력(武力)’으로 전환되면서 천명론이 쇠락하고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p.103)
진본기(秦本紀) 서쪽 변방에 위치한 진나라는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룬 진시황 이전의 작은 나라였으나 점점 세력을 확장하여 천하통일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기술한 진 본기는 특히 통일의 대업을 방해할 만큼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진(晉)나라 및 초(楚)나라와의 사건, 전쟁을 위주로 하고 있다. 이 편은 다음 편인 <진시황본기>와 자매편 격인데, 이것은 진시황에 관한 자료가 많아 진시황만을 따로 분류하여 <진시황본기>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p.153)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이 편에서는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성공담과 국력의 막강함 그리고 진나라가 최고조에 달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동시에 진나라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진시황의 사람됨, 성정과 심리 등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의 위대한 업적 이면에 짙게 드리워진 그의 탐욕과 교만 등에 서술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나라가 통일한 이후에 정치, 경제, 문화 등 세 방면에서 추진한 일련의 개혁 및 분서갱유 등의 행적에 대해 비교적 사실감 있게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진나라 왕조의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p.197)
항우본기(項羽本紀) 항우는 진나라를 멸망시킨 중요한 인물로써 초나라와 한나라 전쟁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사마천이 항우를 본기에 편입시킨 것은 그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공적을 높이 평가했고, 명목상의 존재일 뿐인 의제(義帝)를 뒤로 한 채 서초패왕이 되어 절대 권력을 누렸기 때문이다. 이 편은 다음 편인 고조본기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지만 그 인물의 묘사방향은 선명하게 대조된다. 즉 저자는 초나라와 한나라가 한쪽은 성공하고 다른 한쪽은 패배한 원인을 독자들에게 사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항우본기는 사기 130편 중에서 가장 뛰어난 편명의 하나이고, 문학사적으로 보더라도 빼어난 전기 문학으로 평가된다. 이 가운데에 특히 항우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구축한 거록의 전투, 삶과 죽음의 길목을 사이에 둔 홍문연의 긴박한 상황, 그리고 해하 전투에서의 항우의 심리적 갈등묘사의 장면은 특히 수작이다. (p.269)
고조본기 (高祖本紀) 작자는 이 글에서 예리한 역사적 통찰력으로써 유방의 살아 있는 인간적 면모를 묘사하고 있다. 그는 겉으로는 너그럽고 어질었으나 속으로는 마음에 거리끼는 바가 많았고 솔직한 듯했으나 내면은 벽을 많이 쌓고 있었으니 이런 이중적 면모가 가감 없이 묘사되어 있다. 또한 이 편에서는 주변의 영웅호걸의 숫자가 갑자기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고조라는 인물의 호방함이 부족하다는 점을 대변한다. 이 편은 <항우본기>와 자매편이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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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그대로, 오늘을 사는 한국인을 위한《사기본기》완역 청나라 말기의 유명한 번역가 엄복이 제시한 번역의 원칙 - 신(信) · 달(達) · 아(雅) - 을 적용하여 중국 원전을 고스란히 현대적이면서 고풍스런 한국어로 되살렸다. 즉, 이 책은 역자의 자의적 판단에 근거하여 작품의 원뜻을 가리거나 저자의 진의를 왜곡하지 않도록 원문에 충실하였고(信), 번역문은 물 흐르듯 무리 없이 읽혀 나가도록 했으며(達), 적절한 수식을 덧붙여 어감을 살리고 글의 품위를 유지시켰다(雅). 이러한 번역 원칙의 타당성은 국내 수많은 《삼국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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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그대로, 오늘을 사는 한국인을 위한《사기본기》완역 청나라 말기의 유명한 번역가 엄복이 제시한 번역의 원칙 - 신(信) · 달(達) · 아(雅) - 을 적용하여 중국 원전을 고스란히 현대적이면서 고풍스런 한국어로 되살렸다. 즉, 이 책은 역자의 자의적 판단에 근거하여 작품의 원뜻을 가리거나 저자의 진의를 왜곡하지 않도록 원문에 충실하였고(信), 번역문은 물 흐르듯 무리 없이 읽혀 나가도록 했으며(達), 적절한 수식을 덧붙여 어감을 살리고 글의 품위를 유지시켰다(雅). 이러한 번역 원칙의 타당성은 국내 수많은 《삼국유사》,《사기열전》의 번역본들 가운데 김원중 번역본이 학계는 물론 대중들에게까지 널리 사랑받은 전례에서 입증된다. 역사서의 전범(典範); 기록을 넘어 미언대의(微言大義)로 《사기》는 상고(上古) 시대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까지의 중국 역사를 뛰어난 통찰력과 날카로운 역사적 안목으로 쓴 대서사(大敍史)로서, 모든 중국 역사의 전범으로 일컬어질 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역사서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것은 방대한 자료들을 근거로 역사적 사실만을 정확하게 기술하면서 역사를 움직인 실체와 그 발전적 흐름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후세 사람들에게 도덕적 규범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사기본기》에서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편은 <항우본기>, <여태후본기>이다. 당시 황제 이상의 권력을 장악하고 중국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들 실권자를 여타 황제들처럼 한 편에 담아 논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명분을 지양하는 사마천의 현실적 역사관과 그 시사점을 엿볼 수 있다. 구양수도 인정한 탁월한 문학서, 문화적 영감의 근원이 되다 《사기》는 중국의 산문, 소설, 희곡 등에도 영향을 끼쳐, 당송 필대가인 유종원(柳宗元)은 《사기》를 ‘웅심아건(雄深雅健)’이라고 평가하면서 문장 학습의 기본틀로 삼았고, 구양수(歐陽修)는 《사기》애호가로서 그의 문장에 적지 않게 이용했다. 또한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인간적 갈등과 고뇌, 흥망성쇠를 극적으로 구성하여 전기문학으로서도 손색이 없으며, 노래, 속담, 격언, 편지, 비문, 시중에 떠도는 일화나 사건 등을 삽입하여 이야깃거리로서의 흥미와 재미 역시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사기》는 문학과 영화의 원 텍스트로도 폭넓게 활용되어, 진시황을 영화화한 《진용》이나 항우와 유방을 영화화한 《서초패왕》, 《패왕별희》, 그리고 수많은 판본의 삼국지, 진시황 평전 등의 깊이 있는 이해와 제대로된 감상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상고시대 문화의 완벽한 복원 《사기본기》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사마천이 기술하고자 하는 시대의 사회구조와 그 내부 양상의 발전과 변화, 인물과 사건, 제도 등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일정한 양식으로 표현되는 각 시대만의 독특한 문화들을 복원해 놓고 있다. 특히 중국의 신화나 전설로만 여겨졌던 오제(五帝)의 이야기나 하나라의 진위 여부가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에 편입되었다는 것은 《사기》의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 이를 위해 사마천은 황가(皇家)에 소장되어 있는 도서나 문서 103종의 열람하고 금석문(金石文), 문물(文物), 회화(繪畫), 건축 등 문화유산을 활용했으며 현지답사 등을 통해 상고 역사에 관한 전설을 수집하고 오류들을 바로잡아 나갔다.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 지혜의 보고(寶庫) 《사기》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사마천이 바라본 역사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역사’이다. 역사의 변화와 발전을 가져온 커다란 사건들 뒤에는 타인과의 대립과 갈등, 배반과 우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 선택의 길목에 선 인간의 고뇌와 결단이 어김없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본연의 문제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사유(思惟)거리로, 인생의 의미, 처세의 태도, 인간관계 등에 대한 삶의 지혜를 제공해 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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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를 몇번째 보는 것일까. 헤아림조차 아득할 정도로 나는 이 매력적인 역사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싶다, 그런데 소설은 싫다 라고 말하는 이들을 가끔 만난다. 허구의 경계에 서기 싫어하는 실용주의자들. 그들에게 나는 보통 사기, 그중에서도 오래 앉아서 진득하게 읽는 습관이 아직 붙지 않은 이들에게는 열전을 권한다. 열전은 한시대를 풍미한 이들의 이야기이다. 제왕도 제후도 아니지만 현실적인 사관을 지닌 사마천의 예리한 시각으로 보아 가히 영웅의 풍모를 지녔다고 할 수 있는 이들. 문관과 무관, 장수와 심지어는 천민계층인 광대도 포함하고 있는 열전은 사기의 백미이며 사마천의 아름다운 문체가 절정의 빛을 발하는 편이다. 나 역시 열전을 가장 즐겨 읽으며 읽을 때마다 그 유려한 묘사와 시대에 떠오르고 불타올라 지는 별들의 장엄함에 압도당하고는 했다. 그러나 완역본 본기를 읽어본 기억은 없다. 본기는 제왕들의 이야기로 사기의 첫부분을 차지하는 편이다. 제후들의 전기인 세가와 가장 보편적으로 읽혀지는 열전에 비해 '황제'부터 시작해 전설의 왕조 하, 은, 주를 거쳐 진, 한에 이르는 제왕들의 일대기를 쓴 것으로 비록 갈무르는 시간은 길지만 간략한 문체로 요약해 사기를 이루는 편 중 가장 짧고 건조하다. 그러나 본기에는 그야말로 걸출한 사관이었던 사마천의 역량이 배어나있다. 본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항우본기'이다. 항우본기는 그 비장함과 유려함으로 문학적 가치도 높게 평가되기도 하지만 장수에 불과한 항우를 제왕들의 일대기인 본기에 편입시켰다는데에서 매우 대담하다. 이는 항우가 진을 멸망시킨 핵심적인 인물이었으며 진에서 한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천하를 재패한 패왕이었음을 깊이 인식한 사마천의 현실적인 사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리타분한 학계의 관례를 뒤흔들만한 패기이다. 이는 '여태후본기'에서도 드러나는데 '척부인' 사건을 비롯, 섭정을 하면서 저지른 갖은 악행은 서슬 시퍼렇게 비판하면서도 엄격한 정치와 사려깊은 외교력은 높이 평가하여 편중되지 않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당시 관습적으로 이루어지던 한결같은 역사평가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현실적이고 분별있는 판단이라 할 수 있겠다. 궁형을 당하는 수모를 겪고서도 오로지 사기를 쓰기 위해 구차한 목숨을 연명했던 사마천. 그는 자신을 궁형에 처한 황제를 계속 모셨는데 이는 황궁에서만 볼 수 있는 갖은 고서들을 읽기 위해서였다. 책의 한계에 이르면 그는 직접 답사를 갔다.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고 구설로 내려오는 사료들을 종합하면서 그는 이전의 어떤 사서도 이르지 못한 시간, 중국 역사의 시발인 '황제'부터 내려오는 긴 시간을 총망라했다. 사기는 사마천의 생명이었다. 한 사학자의 생명을 사른 불꽃, 사기는 그렇게 그 안에 갈무리된 시간의 양을 넘어서는 유구한 세월을 거치며 모든 이에게 뜨거운 혼이 되어왔다. 역사는 지난 세월의 기록만이 아니다. 다가올 시간들의 거울이며 걸어가야할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잡하고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엄정한 사서와 사학자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이 시간들, 온생을 불사르며 필생의 업으로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과 같은 이 있는지 돌아보고 생각해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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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쥔장 허락없이 퍼온겁니다. 개인적으로 공부하는데 말곤 퍼나르지마세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