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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1장, 2장
택함받은 성도들의 믿음, 바울의 사역과 선교사들
저자와 제목, 연대, 주제
어휘, 문체, 신학이 바울의 다른 편지들과 잘 조화를 이루는 데서 입증되듯이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의 저자로 널리 인정된다. 실라("실루아노")와 디모데를 공동 발신자로 언급한 것(1:1)은 바울 자신을 포함한 선교사들을 하나의 팀으로 소개함으로써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방문하러 오지 않고 그 대신 디모데를 보낸 데 대한 그들의 실망을 상쇄시키기 위함일 것이다(2:17~18, 3:1~2, 6).
대부분의 학자들은 오늘날 데살로니가전서의 연대를 바울이 2차 선교 여행(행 18:1~18) 기간 중에 고린도에 18개월간 머문 때의 초기인 주후 49~51년으로 본다. 사도행전을 역사적으로 믿을 만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극소수의 학자들만이 이 편지의 연대를 주후 40년대 초로 잡는다.
델피 비문-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델피 시에 보낸 서신은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재위한 기간을 주후 51~52년으로 기록하고 있고 행 18:12~17은 바울의 고린도 체류 기간이 끝나 갈 쯤에 갈리오를 언급한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주제는 예수님의 재림이다. 재림은 이 책에서 장마다 언급된다(1:10, 2:19~20, 3:13, 4:13~18, 5:1~11, 23~24). 예수님이 장차 오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하여 산 자들과 함께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이다(4:15~17).
불신자들은 주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진노에서 구출되어 진노 대신 구원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1:10, 5:2~4, 9~10). 성도('거룩한 자들')로서 재림에 참여하도록 예정된 이들은 거룩하고 흠이 없어야 하며(3:11~4:8, 5:23) 신실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부르시는 이들의 삶 속에서 거룩함이 생겨나게 하실 것이다(5:24).
목적, 계기, 배경
데살로니가전는 로마의 마게도냐 속주의 자부심 높은 수도였고 인구도 10만 명이 넘었다. 이 도시의 자연 항구와 분주한 동서 방향의 에그나티아 가도와 핵심적인 남북 방향 통상로 위에 위치한 입지는 이 도시가 무역과 철학의 번성하는 중심지 였음을 의미했다. 데살로니가는 자유 도시였고 '읍장들'(참조, 행 17:6, 8)이라고 불리는 지역 관리들이 다스렸다.
종교적으로 이 도시는 그리스-로마의 신들과 함께 황제 숭배에 열심이고 이집트 종교들도 눈에 띄었다. 데살로니가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인구가 있었다(행 17:5). 바울, 디모데, 실라는 세 안식일 동안 데살로니가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고 많은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 믿었다(행 17:4).
살전 1:9~10은 바울이 그 이후 몇 주 동안 믿지 않는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열매가 풍성한 사역을 하며 지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 선동된 폭도들은 야손(바울을 초대한 주인)과 그 밖의 몇 몇 그리스도인들을 읍장들 앞에 끌고가 그들에게 로마 황제에 대한 소요를 선동했다는 혐의를 씌워(행 17:5~8) 선교사들로 하여금 예정보다 앞당겨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만들었다(행 17:9~10).
바올은 이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염려되었고 그래서 몇 달 뒤 디모데를 다시 데살로리가로 보냈다(살전 3:1~2, 5; 행 17:5). 디모데는 고린도에서 바울을 다시 만나(행 18:5)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새소식을 전해주었다. 디모데는 이 교회 공동체가 대체로 잘 지내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벌어진 모든 일이 다 장밋빛은 아니었다.
교회의 일부 지체들이 죽었고(4:13)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교인들이 충분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3:10, 4:13) 어떤 이들은 죽은 자들이 재림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소망 없는 슬픔에 빠졌다(4:13). 게다가 디모데는 바울에게 주의 날의 시기에 대한 교인들의 질문(5:1~2)을 전해주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질문이 차분하지 못한 조급함이나 거짓된 안도감을 반영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견해는 5:4~5, 9에 나오는 바울의 반복된 확인과 더불어 5:1~11에 위협이나 경고가 없다는 사실을 통해 반박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들은 주위 날에 진노가 아닌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다며 안심시킨다.
어떤 이들은 고린도 교인들이 준비되지 않은 채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까 봐 염려했다고 생각하지만 4:3~8은 그들이 거룩한 생활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암시한다. 아마도 가장 간단한 설명 방법은 이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최근의 예상치 못한 교인들의 죽음(4:13) 앞에서 자신들의 최종적 구원을 의심하고 있었다는 설명일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죽음이 하나님의 내버리심의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을 수도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분명 죽은 자들(4:13~18)과 재림 때에 자신들의 운명(5:1~11)에 대한 보증이 필요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다른 면에서도 연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처음의 박해가 그렇게 오랫동안 줄지 않고 지속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3:3~4). 더구나 그들은 바울을 그리워하며 바울이 아직 자신들을 보러 돌아오지 않은 것에 실망했던 것으로 보인다(3:6~10).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또 다른 문제가 바울의 관심을 요구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생계를 꾸려 가지 않고 더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을 부양해 줄 것을 기대함으로써 교회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있었다(4:18~12, 5:14). 이 문제는 미래에 대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잘못된 생각의 결과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일부 교인들이 이기적으로 나태하게 일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더 부유한 지체들의 자비심을 이용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울은 대체로 긍정적인 디모데의 전언을 듣자 즐거운 안도감으로 충만해져 궁지에 몰려 낙심한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바울은 즉시 데살로니가전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3:6~8). 바울의 주된 목적은 회중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예상치 못하게 죽은 이후에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을 회복시키고 그들에게 죽은 자와 산 자 모두 재림 때 구원받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점을 재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4:13~5:11).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들이 구원을 얻도록 하나님께 택한 받은 이들 중에 속해 있음을 재확인시켜 주려는 바울의 소망은 이와 관련되어 있었다(1:1, 5:24). 바울은 또한 자신의 긴 부재와 관련된 실제적이거나 잠재적인 문제들(2:17~3:10), 끊임없이 일어나는 박해(3:3~4), 예상치 못한 죽음(4:13) 등의에 직면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서의 선교사들의 진정성을 강조하기를 원했다(1:5, 2:1~12).
또한 바울은 박해는 그리스도인에게 정상적인 것임을 설명함으로써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격려하고자 했다(3:3~4). 이에 더하여 바울은 최근에 회심한, 주로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에는 성적인 거룩함(4:3~8)을, 공동체의 나태한 지체들에게는 돈벌이가 되는 일자리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울은 교회에 그들의 사역자들을 존경하고 따를 것을 촉구함으로써 바울 자신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려 하고 있는 듯하다(5:12~13). 이런 점은 바울이 예언을 멸시하는 일이 금하고(5:19~22) 디모데의 자격을 강조하며(3:2) 선교사들을 한 동료로 표현하는 데서(그래서 편지의 대부분에 걸쳐 1인칭 복수형이 사용됨)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약속들을 성취하는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구원을 되돌아보고 그 약속들을 완성하는 재림을 바라보아야 한다.
핵심 주제
1. 하나님의 진노는 복음을 거부하는 애들에게 임한다(2:16, 5:3).
2.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기초다(4:14, 5:10).
3.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진노가 아닌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다(1:10, 5:4, 9).
4. 죽음을 겪는 그리스도인도 재림에 온전히 참여할 것이다(4:14~17, 5:10).
5. 복음에 반응하는 이들은 역사 이전에 하나님께 선택받았고 하나님께 부르심 받았으며 이 땅에 사는 내내 계속해서 하나님께 부르심 받는다(1:4, 2:12, 4:7, 5:9, 24).
6. 그리스도인은 전반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3:13, 4:3~8, 5:23).
7. 그리스도인은 일해야 할 의무를 회피해선 안된다(4:9~12, 5:14).
8. 복음의 신뢰성은 복음 전파자들의 진실성을 통해 확인된다(1:5, 2:1~12).
9. 특별히 고난 가운데서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한 특징이다(1:6, 5:16).
10. 그리스도인은 예언된 새 언약의 실재를 경험한다(4:8~9).
11. 믿음, 소망,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이다(1:2~3, 5:8).
<택함받은 성도들의 믿음>
1~10절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교인들이 신앙생활에 필수적인 특징인 믿음, 사랑, 소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기억함이니'.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선교할 때 있었던 사건들을 회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이는 단지 기도상의 표준적인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 사랑, 소망 바울 서신에 흔히 나오는 3대 강령, 여기서는 눈에 띄는 마지막 자리에 소망이 오는데 이는 말세와 관련이 깊은 편지에 적합해 보입니다. '역사... 수고... 인내', 이 셋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핵심이 낳은 실제적인 효과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이루는 역사는 그들의 믿음의 결과 내지 결말입니다. 그들의 수고도 사랑에서 나오며 그들의 인내는 소망에서 나옵니다(1~3절).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택한 받은 사실에 대해 바울이 확신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선택을 뒷받침하며 선택으로 인해 입증됩니다. '택하심'(직역하면, '택함받은') 사람들을 영생에 이르도록 정하시는 하나님의 선행적인 주권적 행위를 가리킵니다(4절).
'이는'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택함받은 자들이라는 확신의 근거를 그들에게 전파한 이들의 부인할 수 없는 진실성과 권위 및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복음에 대해 보인 모범적인 반응에서 찾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선교사들의 복음 전파('우리 복음')의 특징이 '능력'(초자연적인 능력이나 복음 전파 있어서 능력, 또는 둘 다)과 '성령'(그들을 인정하는 성령의 임재가 나타남)과 '큰 확신'(듣는 이들의 마음에 확신을 주는 명백한 신실함과 진실함)이라는 사실에 호소합니다.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복음의 진정성은 언제나 그래야 하듯이 복음을 전파하는 이들의 명백한 진실성을 통해 뒷받침되었습니다.
'주의 말씀이....들릴 뿐 아니라', 이는 전도 활동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새로 발견된 믿음에 대한 소식을 가리킬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어느 쪽이든 데살로니가에서 일어난 일은 복음이 멀리 광범위하게 전파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데살로니가가 전략적인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이 이런 결과를 낳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5~10절).
<바울의 사역과 선교사들>
1~20절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빌립보에서 능욕을 당하였으나, 힘입어' 빌립보에서 맹렬한 박해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복음이 또 곧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파하는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2절).
소극적인 면에서 바울은 자신과 자신의 동료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거나 자기 배를 채우거나 심지어 그것이 합당하다 하더라도 영예를 얻기 위해 사기꾼들이나 거짓 선지사들처럼 말하지 않았다고 단언합니다. 적극적인 면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신자들을 향한 선교사들의 의무에 범위를 넘어선 진실함과 이타적이고 깊은 헌신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그들은 사도로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독특한 권위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자신의 동료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권위와 똑 특권을 이용하지 않고 확실한 이들에 대해 주제넘지 않은 자세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5~9절).
바울은 선교사들이 새로운 신자들 가운데 있는 동안 모든 일을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했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바울은 선교사들의 복음선포의 방식과 내용이 그들의 신뢰심과 권위를 입증했다는 점을 또다시 강조합니다. '나라와 영광',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의 모든 법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10~12절).
바울은 계속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택함받음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믿었고 유대인은 모교회가 당한 것과 같은 박해를 당했습니다. 다음으로 바울은 선지자들과 예수님을 대적하고 보다 최근에는 바울을 데살로니가에서 쫓아낸 배도한 유대인들을 성토합니다(13~16절).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울은 사도로서의 자신의 말에 대한 절대적인 신적 권위를 분명하게 주장하며 자신의 말을 평범한 인간의 말과 대조합니다. 바울은 사도로서의 가르침은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온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너희....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도 데살로니가 공동체 안에서 역사하십니다(13절).
'우리를 쫓아내고',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선교사들에게 일어난 일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유대인의 적대행위를 보여주는 일련의 긴 예들 중에서 가장 최근의 예로 간주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구원을 제공하는 복음을 듣는 것은 온 인류에게 유익이 됩니다. 따라서 복음을 방해하는 것은 곧 온 인류를 대적하는 것입니다(15절).
선교사들은 박해에 직면에서 자신들의 뜻과 달리 데살로니가를 떠납니다. '떠난', 이 말은 비자발적인 헤어짐으로 인한 깊은 괴로움을 암시합니다. '잠시', 디모데의 최근에 방문은 짧은 부재 기간을 끝냅니다.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육신적 부재는 관심 결여를 반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희 얼굴 보기를... 힘썼노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혹시 품었을 생각과는 달리 선교사들은 거듭 데살로니가로 돌아가려 애썼습니다(17절).
재림 때 자신이 회심시킨 이들을 예수님께 바치는 일은 바울의 그리스도인들로서의 소망의 핵심적인 일부였습니다. '면류관', 면류관 또는 화관은 승리한 선수에게 주어졌습니다(19~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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