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내린 비로 대지와 대기가 촉촉한 수분을 공급받았습니다.
살다보면 건조함 때문에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시원한 물 한 잔이 날려버리는 통쾌함이 삶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느낌표를 꽈-악 찍어줍니다.
오늘 신덕엽 시인이 낙서에 와서 그런 시원함을 주셨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시는 구조를 따지고, 정해진 해석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죽은' 시 공부가 됩니다.
1. 시는 낯섬에서 시작한다
신덕엽 시인께서는 '낯섬'으로 시에 대한 화두를 이끌어내셨습니다.
낯섬은 기대감, 설레임으로 이어집니다. 곧 사람의 감수성,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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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는 함축성 있는 예술이다
정제된 언어의 깊은 맛을 알게 하는 것이 시입니다.
신덕엽 선생님이 소개한 두 시는 낙서회원 모두를 압도하였습니다.
프랑스 시인 장 콕도의 시 (불어를 몰라 영어로 씁니다.)
Snake,
too long.
(뱀,
너무 길다.)
단 두 줄의 시입니다. 여기서 'too'가 주는 함축성을 느껴보십시오.
저는 그 순간 전율이 흘렀습니다.
함인복 시인의 <어머니>도 보았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를 고아 먹었다
맛이 하나도 없었다.
낙서회원 중에는 이 글을 읽고 계속 울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의 예민한 감수성에 나도 속울음을 울었습니다. 참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퇴근길>도 재미있습니다.
퇴근길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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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는 여백이 있다
산문시라는 형식도 있지만, 시는 독자가 침투할, 독자가 해석할, 독자도 참가할 공간이 많은 글입니다.
4. 시를 잘 쓰려면
1) 다독이 중요합니다. 많이 읽어야 합니다.
2) 많이 느껴야 합니다.
3) 많이 들어야 합니다. 빗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보리쌀 씻는 소리와 결합한 적이 있다고 하십니다. 보리쌀은 강하게 씻어야 하는데 그 소리가 빗소리와 닮은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잘 들었기 때문에 결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많이 메모해야 합니다. 꿈에도 시를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깨고나면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지만 안타깝기 그지 없답니다. 메모하는 습관을 대단히 중요합니다. 시어를 선택할 때도 메모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어떤 경우는 여러 개의 낱말이 동시적으로 튀어나오는 데 그것을 버리지 말고 다 사용해본 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재음미하면 더욱 적절한 낱말을 고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5) 종합적으로, 그냥 보지 말고, 그냥 듣지 말고, 그냥 지나치지 말라 하십니다.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면 시와 삶이 일치한다 하셨습니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회원들을 일깨우셨습니다.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6) 시를 좋아하면 시를 잘 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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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의 감상
1) 공감되는 시가 좋은 시랍니다. 신덕엽 시인의 경우는 시인들보다는 시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자작시를 먼저 보여준다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공감을 얻으면 그 시를 좋은 시로 생각한다 하셨습니다. 일반인의 공감을 얻는 글, 그것이 생명이 있는 글일겝니다.
또 좋은 시란, 그 속에 철학이 들어 있답니다. 시에서 철학적인 부분이 빠져있다면 공감을 얻기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2) 시낭송, 시낭송대회에 대한 회원의 질문에 대해 시인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시는 시각 예술이지 청각 예술이 아닙니다. 시에는 행, 연, 심지어 구둣점 하나도 의미있게 배치하거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 구둣점을 사용치 않기도 합니다. 가령, 신덕엽 시인의 시는 구둣점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데, 나는 어떤 연속성을 느낀다고 시인께 말씀드렸더니 그런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답변해 주셨던 일이 있습니다. 낭송은 시의 이런 특징들을 전혀 살리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시는 묵독의 대상이지 낭독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낭독하는 글로 시를 이제껏 소개했는데, 그런 측면이 있는 시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측면도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일리아스>와 같은 서사시가 낭송되는 작품이니만큼 그런 것에 기초한 시독서법들이 그대로 모든 시에 적용된 것이 아닌가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3) 학교의 시공부는 우선 교과서에 수록되는 시가 학생들의 생활경험과 동떨어진 것이 많아 공감을 이루기 힘들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하셨습니다. 두번째는 특정한 시를 놓고 객관적인 문제풀이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 하십니다. 공감했습니다. 이는 시도 죽이고 독자(학생)의 감성과 이성도 마비시키는 '나쁜' 교육임에 틀림없습니다.
6. 시인으로서 삶
1) 일기를 쓰면서 시를 처음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생활 중 감동적인 부분을 시로 표현한 것이지요. 또 시로 편지를 써보냈는데, 그 시들을 다 모아 두었다가 크리스마스때 시집으로 축하해준 두 친구가 있었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른 사람을 위한 시쓰기를 생각하셨고, 등단작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2) 고등학교때까지만 해도 의사가 되려는 꿈을 꾸셨으나 가정사정, 여타 사정으로 인해 사범대학에 진학했고, 이과공부하던 학생이 문과로 전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를 계속 쓰면서 삶의 우여곡절을 시로 표현하며 극복하셨다고 하셨습니다.
3) 신덕엽 시인님께 시는 구토요 에너지라 하셨습니다. 구토물은 구토자에게는 시원합니다. 보는 사람에게는 불쾌할 수 있지만요. 에너지는 말 그대로 삶의 동력원입니다. 시인은 깊은 고민에 빠진 때도 시를 쓰셨는데, 그때의 시는 모아두긴 했으나 다시 들춰보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그때의 슬픈 감정, 분노가 다시 떠오를 것 같기 때문이랍니다.
4) 시인과 술은 가깝습니다. 신덕엽 시인께도 그러하다 하셨습니다. 지금은 소화기관에 이상이 생겨 의사의 강력한 주의때문에 조심하고 있으나 회복되는 대로 술을 가까이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5) 신덕엽 시인님의 시를 읽어주는 최고의 독자는 시인의 '어머니'십니다. 뭉클했습니다.
첫댓글 이제사 카페 가입하여 선생님의 글 읽었습니다. 사진과 함께, 시에 대한 제 좁은 소견을 멋지게 간추려 주신 정성 고맙습니다.
독서교육에 열성적으로 헌신하시는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