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어떻게 종족의 씨를 유지하는지 의심스러웠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보크 족은 서부 아프리카에 있는 말리에 살고 있는 소수부족이었다. 말리는 서부 아프리카 내륙지대 적도(赤道) 바로 밑에 있는 나라였으며 기온이 57도까지 올라갔다. 이글거리는 태양열에 모든 것이 타 버리는 것 같은 나라였다.
나라의 북부는 바로 사하라 사막이었으며 중부는 반(半)사막지대, 남부는 잡초와 말라빠진 관목들만이 자라는 사바나 지대였다. 남부의 사바나 지대 외에는 사람이 살기가 아주 어려운 나라였다. 보크 족은 중부의 반사막지대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모래판과 습지와 잡풀 밭만이 있었다. 농사를 지을 경지도 없었으며 소나 양을 방목할 초지도 없었고 생계를 유지할 자원도 없었다.
그런데 보크 족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사람의 목숨이 아무리 모질다고 해도 그런 곳에서는 살 수 없었다. 인류학자이며 동물학자인 리치박사와 캡틴 강(姜雄起·강원도 출신 한국계 귀화인 영국왕실박물관 직원·1882-1949)은 1931년 10월 어느 날 보크 족을 찾아갔다. 극한상황에 처해있는 부족의 생활실태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리치박사가 찾아간 마을은 인구 2백 명, 약30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그 일대에는 2-3Km의 간격을 두고 그런 마을이 5-6개나 있었다. 리치박사는 미리 선택을 하지 않고 그냥 어떤 집으로 들어갔다. 다른 집들처럼 잡풀로 엮은 거적을 원주형으로 덮은 집이었으며 집 안팎에는 솥 냄비 절구 칼 등 생활도구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뜻밖에 밝은 얼굴들이었다. 가난에 찌든 어두운 표정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도 다정하게 손님을 맞이해 주었다.
40대의 부부와 남편의 어머니, 그리고 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큰 사내아이는 스무 살이었고 열여섯 살인 딸과 여덟 살짜리 아들이 또 있었다. 주인인 칸탄은 두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말했다. 강한 사투리가 있었으나 프랑스 말이었다. 말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말을 사용했다. 그런데 캡틴 강은 그들이 내놓은 저녁식사를 보고 크게 놀랐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하얀 쌀밥이었다. 그리고 밥에는 물고기 매운탕이 덮여 있었다. 물고기는 말린 메기를 불린 다음 고추와 후춧가루를 뿌려 익힌 것이었다.
야자껍질에 담긴 밥과 고기를 그들이 하는 대로 손으로 비비면서 주먹밥처럼 뭉쳐 먹어보니 맛도 괜찮았다. 한국의 저녁식사 맛이었다. "이 지역에는 논이 있습니까? "이곳에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저쪽 습지에 자연적으로 자라는 벼들을 거둬들인 거죠." 그건 자연산 쌀이었다. 리치박사는 그걸 인정했다. 그 일대 습지나 못에는 예부터 벼가 자라나고 있었는데 그건 세계 최초의 벼라고 했다. 벼는 그곳에서부터 세계 각지로 보급되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벼가 자라나는 습지는 바로 앞에 흐르는 강의 물이 흘러들거나 스며들어 생긴 것이었다. 강에는 둑이 없었기에 호우가 나면 습지도 모두 강이 되어버렸고 강물이 말라버리면 먼지가 부옇게 일어나는 모래판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보크 족들은 그런 습지를 논으로 만들지 않았다.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아 벼가 자라나면 거둬들일 뿐이었다.
그 강의 이름은 니제르였다. 나일강 콩고강 다음 가는 아프리카 제3의 강이었다. 니제르강은 메마른 반사막의 나라, 말리의 젖줄이었으며 보크 족들의 목숨을 붙여주는 자비로운 강이었다. 보크 족들은 그 강에 의지해 살고 있었다. 보크 족들은 언제 없어질 줄도 모르는 논을 경작하느니보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살아갔다. 그들이 쌀밥 위에 얹어먹고 있는 메기도 작년에 그 강에서 잡았다.
작년에는 천렵(川獵)기간이 짧아 고기도 많이 잡지 못해 빚만 졌지만 그래도 말린 고기는 아직 조금 남아있다는 말이었다. 천렵기간이란 매년 10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계속되는 건기(乾期)를 가리킨다. 5월부터 9월까지 계속되는 장마철에는 강의 물이 넘쳐흘러 고기를 잡지 못한다. 건기가 되어야만 지류(支流) 여기저기에 흘러들어 갔던 물이 본류(本流)로 빠져들어 오고 거기에 살던 고기들이 본류에 모여든다. 그리고 그 본류의 물도 줄어들게 되면 보크 족은 천렵을 했다.
보크 족들은 배를 타고 니제르강을 유랑하면서 고기를 잡았다. 건기인 반년 동안 내내 유랑하면서 고기를 잡아 훈제로 하든가 햇볕에 말렸다. 그들은 그 훈제고기나 건어를 물물교역이지만 바마코로 갖고 가 다른 생활물자와 바꿨다. 가장인 칸탄은 작년에 진 빚이 아직도 남아 있었으나 별로 염려하지 않았다. 그해는 8월에 장마가 끝났기 때문에 천렵기간이 길어질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왜 천렵을 하지 않고 있지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배도 고치고 그물도 손질하고 땔감도 마련해야 됩니다. 온 식구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며칠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리치박사는 그 집 옆에 간이 천막을 치고 그들이 바쁘게 일하는 것을 지켜봤다. 배를 수리하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다. 길이가 10m쯤 되는 배 두 척은 수리되고 있었다. 칸탄은 어느 나무의 즙을 삶아 만든 진득거리는 액체를 배에 바르고 있었다. 방부와 방수가 되는 액체였다. 왜 배가 두 척이나 필요한가. 가족들이 두 파로 나뉘어 별도로 천렵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한쪽의 수확이 없더라도 다른 쪽의 수확으로 가족들의 마지막 생활선이 지켜졌다.
그리고 한 쪽이 사고로 목숨을 잃더라도 다른 쪽이 집단의 씨를 유지할 수 있었다. 천렵은 그만큼 위험했다. 언제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몰랐다. 드디어 준비가 끝났다. 두 척의 배가 각기 짐을 싣고 기나긴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한 쪽 배에는 아버지 칸탄과 그의 처와 막내아들이 타고 다른 배에는 할머니와 아들딸들이 탔다. 리치박사와 캡틴 강도 자그마한 발동 보트를 타고 칸탄의 배를 따라가고 있었다.
두 척의 배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아버지가 탄 배가 위험부담을 지고 앞서가고 있었다. 먼저 가다가 위험한 일이 생기면 약2Km의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아들의 배에 연기를 올려 신호를 보내게 되어 있었다. 건기의 니제르강은 강폭이 좁아지고 있었고 물도 아주 완만하게 흐르고 있었으나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힘들었다. 배에 타고 있던 여덟 살짜리 막내둥이까지 노를 젓고 있었다. 한창 장난을 하고 싶은 나이였는데도 그 아이는 쉬지 않고 노를 젓고 있었다.
리치박사는 날이 어두워지자 덮쳐드는 모기떼에 견디지 못해 상륙하여 천막을 쳤다. 그러나 거기도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되지 못했다. 밤중에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직하지만 살기를 띤 소리였다. 총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보니 저쪽 강가에 요사스러운 불빛들이 보였다. 표범인 것 같았다. 니제르강 주변을 돌아다니는 표범들은 질이 나빴다. 놈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강가를 소리 없이 돌아다니면서 물을 마시러 나오는 동물들을 노렸다.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가축들도 희생되었으며 사람들도 결코 안전하지 못했다.
리치박사는 1주일쯤 전에 그곳에 오던 도중 어느 마을에서 장례식을 거행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 죽은 사람은 바로 표범의 희생자라는 말이었다. 밤에 고기를 낚다가 표범의 기습을 당했다고 한다. 그 표범도 어쩌면 천막 안에 있던 리치박사 일행을 노리다가 다른 먹이를 찾아 나선 것인지도 몰랐다. 표범이 노리는 먹이의 정체도 밝혀졌다. 구름 안에 들어가 있던 달이 나오자 물가에서 표범과 싸우고 있는 짐승의 모습이 보였다. 거대한 물뱀이었다.
원주민들은 그 물뱀을 "키우사이"라고 불렀는데 보아의 일종이었다. 몸길이가 6m나 되는 놈이 있었으며 쉽게 표범의 먹이가 될 놈은 아니었다. 상황으로 봐서 물뱀이 도리어 표범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물뱀은 쉽게 물 안으로 도망갈 수 있었는데도 강가의 모래바닥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유인작전이었다. 표범이 덤벼들면 물속으로 끌고 들어갈 작전이었다. 표범도 위험했지만 그놈도 위험한 놈이었다. 그놈은 고기를 잡는 어부들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질식시킨 다음 삼켰다.
물뱀과 표범의 싸움은 장기전이 될 것 같았다. 표범은 물뱀을 땅 쪽으로 더 끌어올리려고 했고, 물뱀은 반대로 표범을 물 쪽으로 유인하려고 했으나 양측 모두 움직이질 않았다. 표범과 물뱀은 서로의 상대가 얼마나 무서운 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물러나지 않았다. 적을 기어이 죽이겠다는 집념이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대치한 지 30분쯤 지났을 때 표범이 선제공격을 시작했다. 표범은 측면으로 돌아가면서 그쪽에서 공격하는 척 했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정면에서 덤벼들었다.
표범은 빨랐다. 몸을 둘둘 말고 대가리를 뻣뻣하게 치켜들고 있던 물뱀의 자세를 흩트려 놓은 다음 번개처럼 덤벼들어 뱀의 목덜미를 꽉 물었다. 그리고 갈퀴 같은 앞발 발톱으로 뱀의 등을 찍어 눌렀다. 거의 완벽한 공격이었다. 물뱀의 대가리와 상반신은 꼼짝을 못했다. 표범은 선제공격으로 뱀이 물속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물뱀은 도망가려고 하지 않았다. 적을 죽이겠다는 뱀의 집념은 그 정도의 타격으로는 포기되지 않았다.
물뱀은 대가리를 쓰지 못하고 상반신이 꼼짝 못하게 눌려 있었으나 창조의 신은 그놈에게는 기묘한 몸과 무기를 주었다. 비록 상반신은 꼼짝 못했으나 뱀에게는 하반신이 있었다. 상반신보다 훨씬 길고 굵은 하반신이었다. 물뱀의 하반신이 반격을 했다. 그 꼬리가 상반신과는 별도의 생물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꼬리는 소리도 없이 표범의 등으로 기어 올라가 감았다. 물뱀의 하반신이 표범의 몸을 감아 붙인 다음 다시 한 번 더 감으려고 했다. 그게 두 변 겹쳐서 감기면 여하한 적도 살 길이 없었다. 그대로 조르면 적은 질식해버렸다. 고무 타이어처럼 탄력이 있고 강한 뱀의 몸이었다. 뱀이 표범의 몸을 겹쳐서 감고 있을 때 표범은 비로소 위협을 느꼈다. 뱀의 대가리를 두 번 세 번 되씹으면서 치명상을 주려던 표범은 자기의 몸을 짓누르는 무서운 힘을 느꼈다.
표범은 강하게 몸을 흔들어 뱀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뱀은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자 표범은 있는 힘을 다해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몸무게가 300Kg이나 되는 뱀을 몸에 감은 채 표범은 공중으로 1m나 뛰어올랐다. 강철과 같은 뒷발의 탄력이었다. 물뱀은 털썩 털썩 하면서도 표범을 풀어주지 않았다. 물뱀은 표범의 몸을 두 겹으로 감으려던 공격을 포기하고 표범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물뱀도 표범도 그때쯤에는 지쳐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상대에게 치명상을 줄 힘이 없는 것 같았다. 표범이 물고 있던 뱀의 대가리를 놓아주자 뱀도 표범의 몸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물뱀은 물속으로 표범은 땅 위로 물러섰다. 싸움은 무승부로 끝났다. "조심해야 되겠는 걸." 리치박사가 중얼거렸다. 그런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한 니제르강의 어렵 족들은 위험했다. 물뱀과 표범들이 언제 사람들을 기습할지 몰랐다. 반사막지대인 그곳에는 초식동물도 육식동물도 모두 굶주리고 있었으며 먹이만 보면 덮쳤다. 살기위해서는 적을 잡아먹어야만 했다.
보크족의 어부들은 바로 그런 지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긴 그들 자신도 메마른 땅에서 삶의 길을 찾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아무래도 위험했다. 리치박사의 보트는 다음날 오후 늦게 보크 족 어부 칸탄 일가를 발견했다. 그들은 강가에 머물고 있었다. 방랑의 첫 번째 기착지였다. 그들은 거기에 임시로 집을 지어놓고 있었다. 배에 싣고 왔던 높이3m 정도의 기둥을 박아놓고 그 주위에 여섯 개의 통나무를 원형으로 세워서 가운데 기둥들을 함께 엮어 묶은 다음 거적을 덮어씌운 집이었다.
리치박사가 들렀을 때 남편인 칸탄은 줄낚시에 미끼를 끼고 있었고 그 아내는 샛강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리치박사는 칸탄의 아내가 고기를 잡고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리 봐도 그 샛강에서는 고기가 잡힐 것 같지 않았다. 그 샛강은 강이라기보다 도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았다. 장마철에는 꽤 큰 강이었지만 그때는 물이 바싹 줄어 강폭이 불과6m, 깊이는 사람의 발목 정도밖에 되지 않는 썰물 구덩이였다.
그런 썰물에 무슨 고기가 있겠는가. 칸탄의 아내는 거기에 네 개의 통발을 설채해 놓고 있었다. 갈대로 짠 직경1m 정도의 통발은 고기가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기가 없는 곳에 그런 걸 설치해봐야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았다. 칸탄의 아내가 통발 하나를 집어 올렸을 때 그 안에서 퍼드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꽤 중량이 있는 고기가 걸린 것 같았다.
리치박사는 크게 놀라 땅 위에 끌어올려진 통발 안을 내려다봤다. 놀라웠다. 그 안에는 길이가 40Cm쯤 되는 메기가 세 마리나 걸려 있었다. 수염 길이만도 20Cm나 됨직한 놈들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다른 통발에도 역시 메기들이 걸려 있었다. 모두 열 마리나 되었다. 칸탄은 도리어 수확이 예상보다 적다고 아내를 나무랐다. 통발 설치의 장소가 잘못되었다는 말이었다. 칸탄은 그곳 메기들은 물이 없어도 며칠 동안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썰물이라도 있으면 언제까지나 살 수 있었다.
칸탄의 말에 의하면 니제르강의 고기들은 장마철에는 샛강으로 들어가 거기서 산다는 것이었다. 샛강에는 먹이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고기들은 건기가 되면 본류로 빨려 들어가는 물 흐름에 따라 그곳으로 들어가지만 메기만은 맨 나중에 철수를 했으며 물이 다 빠질 때까지도 버티는 메기들도 있었다. 메기는 물론 아가미로 산소를 흡입하는 고기였으나 특수한 보조기관이 있어 체내에 상당한 양의 공기를 비축할 수 있었다. 메기의 생태도 신기했지만 그걸 잡은 통발도 신기했다.
얼핏 보기에는 그건 아무렇게나 만든 것 같았다. 가느다란 갈대를 직경 20Cm 정도의 원통으로 말아놓고 그 밑에 저변직경이 1m쯤 되는 원추형 바구니를 덮어씌워 놓았는데 고기는 원통으로 들어가 원추형 바구니의 밑 부분에 빠지게 되어 있었다. 고기는 바구니 밑 부분에 끼워놓은 개구리를 잡아먹기 위해 원통으로 들어갔지만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원통 밑에는 갈대를 뾰족하게 깎아놓았기 때문에 좁은 원통을 다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비늘이 없는 보드라운 피부를 갖고 있는 메기는 뾰족한 갈대 끝을 피해 넓은 바구니 밑바닥에서만 돌고 있었다.
보크 족들이 고기를 잡는 방법은 교묘했고 다양했다. 리치박사는 그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훌륭한 어부들이라고 칭찬했다. 칸탄 일가는 그날 저녁 호화로운 만찬을 즐겼다. 그들의 식사는 언제나 쌀밥 위에 민물고기 찌개를 얹은 것이었으나 그날 식사는 고기가 쌀밥보다 더 많았다. 여덟 살짜리 막내둥이는 연신 입 안에서 고기 뼈를 가려내고 있었다. "아빠, 언제나 이런 맛있는 밥을 먹었으면 좋겠어." "그래, 그렇게 될 거야."
칸탄은 그렇게 하기 위해 그날 밤 니제르강에 줄낚시를 설치했다. 1m간격으로 바늘이 달려 있는 줄낚시가 물 흐름에 따라 떠내려갔다. 100m나 되는 줄이었으나 절대로 엉키지 않았다. 간탄은 굵은 본 줄에 바로 바늘을 달지 않고10-50Cm 정도의 가는 실을 연결시켜 거기에 바늘을 달았다. 가는 줄의 길이는 잡으려는 고기의 종류에 따라 달랐다. 그리고 미끼도 달았다. 칸탄은 그날 밤 줄낚시를 세 개나 설치해 놓고 집에 돌아왔다. 과연 고기가 잡힐까. 잡힌다면 얼마나 잡힐까.
그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앞으로 반 년 동안이나 계속될 고기잡이의 전조(前兆)가 되기 때문이었다. 낚싯줄은 커다란 돌을 묶어놓은 통나무 토막에 연결되어 있었다. 다음날 새벽, 낚싯줄을 들어 올리는 칸탄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줄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줄은 무거웠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어젯밤 정성들여 기도를 드렸던 니제르강의 수신(水神)은 역시 자비로웠다. 니제르강에는 여전히 고기들이 많은 것 같았다.
칸탄은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맨 먼저 걸려든 고기는 얼룩덜룩한 무늬의 괴물스러운 고기였다. 원주민들이 팔세이라고 부르는 고기였으며 지느러미에 날카로운 가시가 달려 있었다. 뼈가 너무 많은 것이 흠이었으나 그런 대로 맛이 있는 고기였고 40Cm나 되는 크기도 만족스러웠다. 다음에 걸린 고기는 칸탄이 바라고 있던 메기였다. 1m가까운 거물이었으며 작살로 찍어 배 위에 간신히 끌어올렸다. 그날 잡은 고기는 20Kg정도였는데 그런 대로 만족스러운 어획이었다.
지난해는 고기들이 많이 잡히지 않아 빚을 졌지만 올해는 괜찮을 것 같았다. 잘하면 빚도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칸탄이 고기를 잡아오자 그의 아내가 바빠졌다. 고기의 배를 따고 말끔히 씻은 다음 말려야만 했다. 그래야만 보존이 잘되고 상품가치가 있었다. 말린 고기는 선어(鮮魚)보다 값이 3배나 나갔다. 다행히 그곳에서는 고기를 말리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적도의 뙤약볕에 하루만 말리면 고기는 굳어졌다. 그리고 2-3일이면 돌처럼 딱딱해졌다.
칸탄은 고기의 뒤처리는 아내에게 맡겨놓고 오후에 다시 강으로 나갔는데 그가 줄낚시를 설치하고 있을 때 방해자가 나타났다. 수십 마리의 가축 소가 요란하게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소들은 간탄의 배 바로 앞을 헤엄쳐 가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간탄은 낚싯줄을 거두어 들여야만 했다. 리치박사는 칸탄이 화를 내며 소를 모는 유목인들에게 항의를 할 줄 알았으나 칸탄은 그들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 소들도 역시 여기저기를 유랑하면서 강가에 있는 풀밭에서 풀을 뜯었는데 그게 어부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소들은 그 풀밭에서 똥, 오줌을 누었는데 그것들은 장마철이 되어 물이 불어나면 고기들의 먹이가 되기도 했고 다량의 플랑크톤을 생산하기도 했다. 어부들과 유목인들은 서로 돕고 돕는 관계였다. 어부들이 내다버리는 고기의 내장들은 또한 풀들의 좋은 비료가 되기 때문이다. "표범에 조심해. 사흘 전에 놈들이 소 한 마리를 물고 갔어. 소가 없으면 사람이라도 물고 가는 놈이니까 밤에는 조삼해야 돼."
소몰이꾼들은 그렇게 충고를 하면서 강을 건너갔다. 칸탄은 그 충고에 따랐다. 그는 그날 밤 거적집과 고기 건조장 앞에 모닥불을 피웠다. 그곳에서는 땔감이 될 나무가 귀해 취사를 할 경우 외에는 불을 피우지 않았으나 칸탄은 표범의 기습을 막기 위해 밤새 불을 피웠다. 그 모닥불 때문인지 몰라도 표범은 그날 밤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표범은 그곳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있던 다른 보크 족 가족을 덮쳤다.
아침에 그 소식을 들은 리치박사와 캡틴 강은 급히 그곳에 가봤다. 표범은 다섯 살 난 계집아이를 물고 갔을 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에게는 중상을 입혔다. 하긴 그 가족은 너무나 조심성이 없었다. 그 집은 부부가 딸 하나를 데리고 있었는데 전날 밤 어머니는 건조장에서 일을 했고 아버지는 집안에서 낚시도구를 손질하고 있었다. 딸은 집 앞에서 혼자 놀고 있었는데 표범은 바로 그 딸을 덮쳤다.
아버지는 딸의 비명소리를 듣고 바깥으로 뛰어나갔으나 그는 맨손이었다. 표범은 그의 어깨를 물어 쓰러뜨려놓고 딸을 물고 도망가 버렸다. 어깨의 상처는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깊었다. 열심히 살려는 젊은 부부들의 불행을 못 본 체 할 수 없었다. 리치박사는 부부들의 거적집 옆에 간이천막을 쳤다. 그들이 할 일은 두 가지였다. 리치박사는 중상을 입은 젊은 어부를 치료해주는 일이었고, 캡틴 강은 부부의 딸을 잡아먹고 보크 족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은 표범을 사냥하는 것이었다.
불행한 부부를 도와주려는 사람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칸탄을 위시하여 인근에서 어렵을 하고 있던 보크 족 사람들이 위문하러 왔다. 그들은 식량을 주기도 하고 일을 거들어주기도 했다. 어떤 늙은 어부는 줄낚시에 미끼를 끼워주었고 칸탄은 어부의 처에게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리치박사는 그런 일들을 보고 보크 족들이 그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비밀을 알았다. 불우한 사람들끼리 서로 돕는 따뜻한 인정이었다.
리치박사는 그날 환자의 어깨를 수술했다. 상처는 봉합했으나 그 뒷일이 문제였다. 그 더위 속에서는 꿰맨 상처가 이내 화농(化膿)할 것이었기에 화농을 막기 위해서는 수시로 상처 안에 집어넣었던 헝겊을 갈아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상처에 몰려드는 쇠파리 떼를 막아주고 상처를 차게 해주어야만 했다. 리치박사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사이에 캡틴 강은 총을 들고 나갔다. 캡틴 강은 어부의 딸을 물고 간 표범의 발자국을 추적했으나 얼마 안가서 실패했다.
표범은 강가의 갈대밭 속에서 물고 간 아이를 먹어치운 다음 얕은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놈은 계속 물이 얕은 강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놈이 자기의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습성으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예사 표범은 아니었다. 발자국으로 봐서 그리 크지 않은 표범이었으나 표범의 포악성은 체구의 크기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교활성에 달려 있는 법이었다.
놈은 아주 교활하고 잔인한 인간 사냥꾼인 것 같았다. 보크족의 노인은 그 표범은 새끼를 세 배나 낳은 늙은 암컷이라고 말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에 대여섯 명의 보크 족이 희생되었다고 말했다. 캡틴 강은 전날 물뱀과 싸웠던 표범이 바로 그 표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표범은 체구가 작은 암컷 같았다. 캡틴 강은 그때 그 표범을 쏘아죽이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그 표범을 죽이려면 죽일 수도 있었으나 함부로 살생을 하기 싫어 내버려두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그 표범뿐만 아니라 니제르강의 맹수들은 이상한 습성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강가에서 살았다. 본래 표범은 물을 싫어하는 짐승이었으나 그곳의 표범은 낮에는 강가에 있는 갈대밭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강가를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했다. 보크 족들이 그러하듯 그곳의 초식동물이나 육식동물들도 모두 니제르강에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표범은 어디에 있을까. 발자국 추적이 안 된다고 해서 길고 긴 니제르강의 강변 구석구석을 수색하는 따위의 짓은 어리석었다. 표범이란 몇 포기의 풀만 있어도 교묘하게 몸을 숨길 줄 아는 은신술의 명수였다.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다가는 표범의 밥이 될 게 뻔했다. 캡틴 강은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날이 어두워지자 보트를 타고 상류로 올라가 엔진을 끄고 배 밑바닥에 엎드려 머리만 들어 올려 강변을 살폈다.
엔진이 꺼진 배는 완만한 물 흐름에 따라 하류 쪽으로 밀려 내려갔다. 강가 쪽으로 튀어나온 바위에 걸리기도 하고 갈대밭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으나 캡틴 강은 배가 자연스럽게 떠내려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강변 여기저기에서는 보크 족 어렵가족들이 피워놓은 불빛이 보였다. 부지런한 그들은 밤중에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낭만을 즐길 줄 아는 부족들이었다. 강가의 바위틈에 젊은 남녀들이 다정하게 포옹하고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다. 가족들의 눈을 피해 비밀장소에서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캡틴 강이 탄 보트가 바로 그들의 앞을 지나가자 몸을 꼭 붙이고 있던 그들은 후다닥 떨어졌다. 희미한 달빛에서 보기는 했으나 여자는 칸탄의 딸인 것 같았다. 칸탄의 딸은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와 오빠와 함께 행동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틈을 타서 이웃 총각과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캡틴 강은 혼자서 웃었다. 캡틴 강은 그렇게 밤의 니제르강을 순찰했으나 그날 밤에는 표범을 발견하지 못했다. 표범을 사냥하지는 못했으나 순찰은 그 나름대로의 의의는 있었다.
다음날 새벽, 캡틴 강이 천막으로 돌아갔을 때 부상당한 어부의 처가 고기를 낚으러 집을 나서고 있었다. 딸이 죽고 남편이 중상을 입고 있었는데도 생업인 낚시질을 해야만 했다. 그곳에서 머물고 있던 보크 족 어부들은3-4일 후에 부상당한 부부만을 남겨놓고 모두 떠났다. 그들은 그동안에 잡은 고기들을 모두 말려 커다란 망태에 담고 있었는데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대로 괜찮은 편이라는 말이었다.
부상당한 어부도 경과가 좋아 일어나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젊고 튼튼한 몸이었기에 그렇게 빨리 치유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도 다음날에는 그곳을 떠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리치박사와 캡틴 강도 이사 준비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캡틴 강은 잠이 오지 않았다. 뭔가 찜찜했다. 그는 그동안 매일 밤 보트를 타고 니제르 강을 순찰했으나 표범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표범이 다른 곳으로 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날 밤에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표범이 아직 그곳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캡틴 강은 총을 들고 천막에서 나와 보크 족 부부들이 살고 있는 거적집 쪽으로 걸어갔다. 표범에 조심하라는 경고를 해줄 생각이었다. 그때 캡틴 강은 거적집 뒤로 사라지는 동물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어둠 속이었으나 긴 꼬리가 보였다. 식인표범이었다. 표범은 거적집 안을 살피고 있다가 캡틴 강이 오는 것을 보고 거적집 뒤쪽으로 숨어버렸다. 캡틴 강은 거적집 뒤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위치를 옮겼다.
집 뒤쪽에는 땔감이 쌓여 있었는데 표범은 그 뒤에 엎드려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주위는 황량한 들판이었으며 표범이 땔감 뒤에서 나오면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밤이기는 했으나 하늘에는 커다란 달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사격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캡틴 강은 서둘지 않았다. 그는 총을 받쳐 들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60m의 거리가 40m로 그리고 다시 30m로 줄어들자 표범이 긴장에 못 이겨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더 가까이 오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고 거적집 안에서 어부의 아내가 나왔다. 그녀는 식칼을 들고 있었는데 그런 걸로 뭘 하자는 것일까. 방정맞은 여인이었다. "들어가, 빨리 들어가. 표범이 있어." 캡틴 강이 그렇게 소리치자 그 여인은 표범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들어가라니까. 빨리 들어가지 못해." 캡틴 강이 노호했다. 여인은 그제야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표범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표범은 캡틴 강의 심리적인 동요를 이용했다.
표범은 땔감 뒤에서 뛰어나왔다. 캡틴 강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여인을 보고 있던 순간에 벌써 표범은 캡틴 강의 바로 앞까지 달려와 있었다. 표범이란 정말 놀라운 동물이었다. 그놈이 적과 싸울 때는 놀랄 만큼 영리했다. 그놈이 캡틴 강에게 바로 덤벼든 것은 위장술이었다. 그놈은 덤벼드는 척 했을 뿐이었다. 표범은 캡틴 강의 바로 앞에서 몸을 돌렸다. 공중으로 도약하면서 갑자기 방향을 꺾어 옆으로 도망갔다.
그 순간, 캡틴 강의 총탄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표범은 캡틴 강의 옆으로 빠져나가 그대로 강 쪽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캡틴 강은 돌아섰다. 그의 총은 좌우 2연신 라이플이었으므로 아직 총탄이 하나 남아 있었으나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표범의 엉덩이와 꼬리뿐이었다. 캡틴 강은 그래도 발포를 했다. 엉덩이를 보고 쏴봐야 치명상을 입힐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밖에 방법이 없었다. 총탄은 명중된 것 같았다. 표범이 뒹굴었다.
표범은 그러나 이내 일어나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캡틴 강은 달려갔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표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니제르강만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다. 캡틴 강은 자기의 실수를 인정했다. 사냥을 방해한 보크 족 여인의 경솔한 행동을 원망하기보다 그 여인의 신변안전에 신경을 쓴 나머지 신속하게 총을 발사하지 못했던 자기의 실수를 통감했다.
리치박사는 캡틴 강을 위로했다. 그의 말대로 표범은 내버려두어도 죽을는지도 몰랐다. 현장에 남아있는 핏자국으로 봐서 그놈은 허벅지에 총탄을 맞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표범은 뒷다리를 쓰지 못해 사냥을 못할 것이고 사냥을 못하면 굶어죽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캡틴 강은 그 표범을 살려둘 수가 없었다. 사냥꾼에게는 자기가 상처를 입힌 맹수를 끝까지 추적하여 마무리를 할 의무가 있었다.
부상당한 맹수, 특히 표범은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다. 자기를 쏜 사냥꾼이 아니더라도 사람만 보면 덮쳐들었다. 캡틴 강은 그 표범을 기어이 잡기로 결심했다. 리치박사는 그날 아침 보크 족 부부와 함께 그곳을 떠났지만 캡틴 강은 그곳에 홀로 남았다. 캡틴 강은 표범을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대개의 경우 부상당한 표범은 사냥꾼이 추적해 오는 것을 알면 반격을 하는 법이었는데 그 늙은 암컷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표범은 도망만 다녔다.
낮에는 갈대밭 사이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멀리 도망갔다. 사냥이 장기전이 될 것 같았다. 캡틴 강은 그 표범을 총으로 잡을 것이 아니라 집념과 끈기로 잡아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려운 사냥이었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고된 사냥이었다. 캡틴 강은 20여 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사냥을 해봤지만 그건 모두 밀림이나 초원이었다. 그곳처럼 반사막지대에서 사냥을 한 경험이 없었다. 그곳은 모래뿐인 사막이었는데 그곳에는 뙤약볕을 피할 나무그늘 하나 없었다. 앉아서 쉴 풀밭도 없었다.
추적 이틀 만에 캡틴 강은 지쳤다. 노출된 피부는 화상을 입은 것처럼 쓰렸고 팔다리는 막대기처럼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먹을 것도 떨어졌다. 캡틴 강은 상당한 양의 건빵과 육포를 준비했지만 그것들은 추적 이틀 만에 다 떨어졌다. 사태는 아주 어렵게 되어갔다. 만약 그곳에 니제르 강이 없었더라면 캡틴 강은 쓰러졌거나 철수를 했을 것이었다. 캡틴 강은 뙤약볕에서 몸 안의 열이 조절되지 않으면 강물 속에 들어가 몸을 식혔다. 그리고 강에서 고기를 잡거나 게나 조개 등을 잡아 굶주린 배를 채웠다.
캡틴 강은 그렇게 고행을 하면서도 한 가지 가능성을 보고 장기전에 견디고 있었다. 캡틴 강이 기대를 걸고 있는 건 자기의 총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고생하고 있는 것처럼 표범도 고생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표범은 뙤약볕에 타죽거나 굶어 죽을지도 몰랐다. 사실 표범은 굶주리고 있었다. 표범이 강변의 모래밭에서 게나 지렁이들을 파먹은 흔적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로 표범의 배가 찰 수는 없었다. 그리고 표범의 상처는 악화되고 있었다. 적도의 더위에 상처는 화농되어 표범은 뒷발 하나를 아예 쓰지 못하고 있었다.
사흘이 되어도 캡틴 강이 돌아오지 않자 리치박사가 찾아 나섰다. 그는 캡틴 강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는 당장 표범사냥을 포기하고 함께 가자고 말했으나 캡틴 강은 듣지 않았다. 캡틴 강은 표범이 머지않아 잡힐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의 말은 이번에는 옳았다. 캡틴 강은 추적 닷새 만에 강 상류 쪽에서 떠내려 오는 표범을 발견했다. 표범은 아직 살아 있었으나 헤엄을 치지 못했다.
그 아름다운 몸은 걸fp처럼 더러웠고 뒷다리 하나는 이미 시커멓게 부패되어 있었으며 배가 볼록하게 부풀어져 있었다. 굶주림과 몸의 열 때문에 마구 물을 마셨기 때문이었다. 니제르강이 그 잔인한 살육자에게 벌을 내린 것일까. 표범사냥이 끝났으므로 리치박사와 캡틴 강의 보크 족 생활실태조사는 계획된 일정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유랑하는 보크 족 어렵 민들을 따라 니제르 강 상류로 올라갔다.
리치박사는 다음날 칸탄 일가를 찾아 상류로 올라가다가 한 무리의 어부들이 니제르강의 어느 지류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고기잡이는 여러 사람들이 합동으로 하는 대규모의 어렵이었으며 30여 명의 어부들이 협력을 하고 있었다. 리치박사는 그들이 고기를 잡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보크족의 어부들은 높이가 3m 너비가 7m쯤 되는 대나무 망을 갖고 있었는데 그 대나무 망들이 그곳에서 적절하게 쓰이고 있었다.
대나무 망이래야 원주민들이 코렐이라고 부르는 잡풀의 섬유를 꼬아 만든 망을 두 개의 대나무 사이에 연결시킨 것이었는데 리치박사는 그 용도를 모르고 있었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있는 샛강은 너비가30m 깊이가2m나 되는 제법 큰 강이었는데 예부터 고기가 많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보크 족 어부들은 그 강의 고기를 그물로 몽땅 잡기로 했다.
어부들의 첫 작업은 샛강의 중간부분 강가 모래바닥을 파내는 일이었다. 그들은 거기에 직경이7m 깊이가30Cm쯤 되는 얕은 웅덩이를 파놓고 물을 끌어넣었다. 그들은 그곳에 샛강에 사는 고기를 몰아넣을 작전이었다. 보크 족 어부들은 샛강이 본류로 들어오는 어귀와 그곳에서500m쯤 떨어져 있는 상류의 어느 지점을 그물로 막았다. 너비가7m쯤 되는 대나무 그물들을 빈틈없게 한 줄로 세워버린 것이었다.
리치박사는 이미 보크 족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고기를 잘 잡는 부족이라고 칭찬했고 사실이 그랬다. 그들은 모두 열 개의 대나무 그물로 고기들을 몰고 있었는데 그냥 모는 것이 아니었다. 강물 깊이가3m나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배를 타고 대나무 그물을 조작하고 있었으나 큰 고기는 한 마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대나무로 강바닥을 쿡쿡 찌르면서 몰고 있었다. 고기가 그물들 사이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쫓아버리면서 천천히 몰고 있었다.
그들은 큰 고기가 빠져나가려고 그물을 밀거나 치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으며 그럴 때 몰이꾼이 물속에 들어가 창으로 고기를 찔렀다. 강의 상 하류를 막고 고기를 가운데로 몰고 있던 어부들은 상류 측과 하류 측의 사이가100m에서30m로 압축되자 일제히 배에서 뛰어내렸다. 그들은 헤엄을 치면서 고함을 질렀다. 고기를 놀라게 하며 강가에 미리 만들어놓은 웅덩이 안으로 몰아넣으려는 작전이었다.
상하 양측의 거리가10m로 줄어들자 고기잡이는 고비에 달했다. 거리가5m가 되자 양측 그물 사이는 물 반 고기 반이 되었고 일부 고기들은 웅덩이 안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니제르강의 고기들은 다양했다. 그 강에는 나일강이나 콩고강처럼 대형고기는 없었으나 그 종류가 다양했고 고기의 수도 많았다. 가장 많은 종류는 역시 메기 종류였는데 1m가 넘는 종류에서부터 손가락 크기의 작은 종류도 있었다.
미꾸라지 같이 생긴 손가락만한 고기가 메기 종류라는 것은 몸길이만큼이나 길고 당당한 수염으로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많은 종류는 지느러미가 많은 고기들과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고기들이었고 붕어나 피라미같이 생긴 고기들도 있었다. 그리고 복처럼 배가 볼록한 고기도 있었고 장어와 자라도 있었다. 어부들은 고기잡이를 마무리하기 시작했고 고기들이 웅덩이로 몰려 들어갔다.
그때였다. 리치박사의 지시를 받은 캡틴 강이 총을 쏘았다. 난데없는 총소리에 어부들은 깜짝 놀랐으나 캡틴 강이 뭣을 겨냥하고 쏠지를 알게 되자 안심했다. 전기메기였다. 전기메기는60Cm나 되었으며 몸에 기분 나쁜 검은 점무늬가 있었다. 놈은 아마존 강의 전기장어 다음 가는 강력한 전기를 방류했으며 500볼트나 되는 그 전기에 감전되면 사람이 즉사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 캡틴 강이 그 놈을 쏘아죽이지 않았다면 보크 족 어부들이 위험했다. 캡틴 강은 또한 웅덩이 안으로 들어온 두 마리의 물뱀들도 총으로 쏘아 죽였다. 무서운 독을 가진 독사들이었다. 그때 그 고기잡이는 풍어로 끝났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만큼 많이 잡은 일은 없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1주일 동안 머물며 고기를 잡기로 했다.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는 더 많은 보크 족 가족들이 몰려왔다.
칸탄 부부 가족도 그곳에 왔다. 그곳에는 많은 가족들이 몰려들어 자그마한 마을이 형성되었다. 니제르강에는 자그마한 어촌이 하나 생겼으나 거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사람들 간의 영토다툼이었다. 사람들 간에 영토분규가 생긴데 는 니제르강과 그 유역의 지형이 관련되어 있었다. 니제르 강은 서쪽 대서양 가까이에 수원(水源)이 있었는데 그 물줄기는 동북쪽으로 흘러가 사하라 사막 남쪽지역에서 크게 남서쪽으로 돌아 다시 대서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니제르강의 흐름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 북쪽은 메마른 사하라 사막이었다. 보크 족이 임시 어촌을 만들어놓은 지역은 바로 그 북단이었다. 니제르 강을 유랑하는 보크 족들에게는 그 지역을 차지하려는 욕심은 없었으나 고기를 잡기 위해 몇 주 또는 몇 달쯤은 머물 수 있었다. 그게 그 일대 반사막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는 부족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보크 족이 남의 영토를 침범했다는 주장이었다. 사하라 사막의 유목 족들도 강 유역을 점령하여 상주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강가의 잡초지를 찾아 소 면양 염소 떼를 몰면서 유랑하는 부족들이었으나 그 일대 지역은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충돌이 생겼다. 보크 족에게 그 충돌은 위험스러웠다. 2년 전에도 유목 족들은 보크 족 임시마을을 습격했다.
그들은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에 기습을 했다. 30여 명의 유목족들이 검은 헝겊으로 복면을 하고 말을 타고 쳐들어왔다. 100여 명의 보크 족들은 이렇다 할 대항도 하지 못했다. 유목 족들은 창이나 칼을 들고 반항하던 보크 족 장정 대여섯 명을 죽인 다음 여자들을 집단으로 강간했다. 열서너 명의 여자들이 강간을 당했는데 그중에는 열세 살 된 소녀도 있었고 임산부도 있었다.
유목 족들은 그런 잔인한 짓을 한 다음 보크 족들이 그동안 잡아놓은 고기들을 몽땅 강탈해갔다. 그게 그들의 주목적인 것 같았다. 잘 말려진 고기들은 그대로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보크 족들은 그 사실을 그곳을 식민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인 관리들에게 알렸으나 그들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원주민들끼리의 싸움이니 자기들은 개입하기 싫다는 태도였다.
그 사건은 결국 흐지부지 되었는데 보크 족들은 그때의 악몽을 잊지 않고 있었다. 특히 노인들과 여자들은 불안한 눈으로 북쪽 사하라 사막을 보고 있었다. 보크 족들은 그 해 30명 정도의 장정들로 수비대를 구성하여 마을 주위를 감시하고 있었으나 그들이 마을을 지킬지 의문이었다. 그들은 낡은 총 한 자루를 갖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유목 족들은 말을 타고 있었고 많은 총을 갖고 있었다. 유목 족들은 총을 잘 다루는 부족들이었다.
그들은 예부터 침략을 하거나 침략을 당한 경험이 많았다. 보크 족들이 그곳에 임시 마을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프랑스인 관리 세 사람이 트럭을 타고 나타났다. 그들은 그런 곳에 마을을 세우는 짓은 위법이라고 경고하면서 빨리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리치박사 일행에게는 사막의 유목족들이 쳐들어올 위험이 있으니 자기들과 함께 가지고 제의했다.
아프리카에 있는 식민지에 파견된 프랑스 관리들은 게으르기로 이름났고 밤낮 술만 마신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들도 역시 그런 것 같았다. 그들은 이런 더위를 견디려면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술병을 돌리고 있었다. "유목족들이 쳐들어올 위험이 있다면 왜 사전에 방비를 하지 않지요? 당신네들은 그런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보고 이런 뙤약볕 속에 머물고 있으라는 말입니까. 백인들은 이런 곳에서는 견디지 못합니다. 여러 말 마시고 우리와 함께 갑시다." 리치박사가 그 제의를 단호하게 거부하자 프랑스인들은 어깨를 들먹거리면서 가버렸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리치박사와 캡틴 강은 그곳에 간이천막을 쳤다. 보크 족 수비대와 함께 행동할 생각이었다.
보크 족 추장은 캡틴 강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비대만 강 북쪽에 남겨두고 어부들은 모두 강 남쪽으로 옮기게 했다. 사막의 유목 족이란 본래 수전(水戰)에 약하기 때문에 그들이 쳐들어오면 물속으로 유인하여 싸울 작전이었다. 캡틴 강은 또한 매일 아침 마을 주변을 순시했다. 보크 족 수비대장은 유목족들이 쳐들어오는 시기는 밤이며 날이 밝으면 그들은 쳐들어오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아침 순시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캡틴 강에게는 딴 생각이 있었다.
캡틴 강은 보크 족들이 마을을 만든 지 1주일쯤 되던 어느 날 아침 사막 모래바닥에 난 발자국들을 발견했다.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보크 족 수비대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에서 50m쯤 떨어진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염탐을 하러 온 유목 족들이었다. 그들은 모래바닥에 엎드려 오래도록 염탐을 하고 있었다. 캡틴 강은 그 발자국을 추적했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구릉이 있었고 그 구릉 위에 한 무리의 기마병들이 있었다. 총 수가 30여 명쯤 되는 부대였다.
그 부대들은 일단 물러났으나 그들이 침략을 포기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다만 이쪽의 경비가 단단하다는 것을 알고 일단 돌아갔을 뿐이었다. 보크 족들도 수비를 강화했다. 모래포대를 만들어 바리케이드를 치고 참호를 파기도 했다. 캡틴 강은 그 후에도 매일 아침 순찰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마을이 생긴 지 열흘쯤 되던 어느 날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갖고 있던 망원경에 유목족들이 잡힌 것이었다.
먼 거리였기에 유목 족들은 희미하게 보였으나 분명 그건 신기루가 아니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있었으며 50명이 넘을 것 같았다. 그들은 거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쳐들어올 것 같았다. 캡틴 강은 즉시 그곳에서 80Km나 떨어진 곳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인 관리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도록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보크 족들에게 대비를 시켰다.
보크 족들은 그날 어렵을 중단하고 부녀자들을 멀리 피난시켰고 남자들은 배를 타고 상류 쪽에서 대기했다. 유목족들이 강을 건너오면 상류 쪽에서 물 흐름을 타고 내려오면서 반격을 할 작전이었다. 유목 족들은 사막에서는 용감하게 전투를 했으나 수전에서는 약했다. 그 반면 보크 족들은 니제르강가에서 사는 어민들이었기에 수전에는 강했다. 그들이 물속에서 싸우게 되면 그 결과는 뻔했다.
그러나 리치박사나 캡틴 강은 유목 족들과 싸워 그들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유목 족들은 적이 아니었다. 리치박사는 될 수 있으면 유목 족들에게 경고하여 약탈행위를 사전에 막으려고 했다. 리치박사는 프랑스인 관리들이 그 일을 해주기를 원했으나 게으른 그들이 그렇게 빨리 출동해 줄 것 같지 않았다.
리치박사는 유목 족들을 직접 만나 설득시키려고 했으나 캡틴 강이 반대했다. 유목 족들은 성미가 급하고 고집이 센 부족들이었다. 더구나 남의 부족을 침범해 약탈을 하려는 그 부족은 위험스러운 집단이었다. 캡틴 강은 유목 족들과 접촉하는 일은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말했으며 리치박사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는 캡틴 강을 믿고 있었다. 그는 용감할 뿐만 아니라 침착한 사람이었으며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실 캡틴 강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그는 보크 족 장정 두 사람을 데리고 사막으로 나갔다. 그는 어느 구릉 밑에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서 잠복하고 있었다.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는 사막에서 잠복을 하는 짓은 고역이었으나 그들은 그 고역을 잘 참아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 그들은 모래를 밟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유목 족 염탐꾼들이었다. 그들은 보크 족들의 동태를 염탐할 생각으로 강 쪽으로 가고 있었다. 강가에는 모닥불이 타고 있었으나 그건 모두 위장이었다.
세 명의 염탐꾼들은 조심스럽게 엎드려 모닥불 쪽으로 기어가고 있었으나 바로 등 뒤에 캡틴 강과 보크 족 전사들이 숨어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캡틴 강은 그들이 도망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 캡틴 강은 5m의 거리를 두고 염탐꾼의 등 뒤에서 서 있었다. "손을 들어." 캡틴 강은 스와힐리 말로 짧게 말했다. 세 명의 염탐꾼 중 한 명이 돌아서면서 총을 들어 올렸으나 발사할 기회가 없었다. 캡틴 강이 총신으로 강하게 어깨를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그 염탐꾼은 쓰러지고 다른 두 명은 손을 들어올렸다
리치박사는 그 포로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는 스와힐리 말로 그들을 신문했으나 그들은 그저 죽이라고 악만 쓰고 있었다. 유목 족이란 자기들이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큰 수치로 생각하는 부족들이었으며 그들은 이미 죽기를 각오한 것 같았다. 리치박사는 그들에게 답변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부드럽게 유목족들이 어렵 족들을 약탈하려는 짓은 나쁜 짓이며 그런 짓을 하면 살인강도로 몰려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설교했다.
리치박사가 포로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는 동안에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유목 족 침략부대가 강 쪽으로 오고 있다는 정보가 날아들었다. 유목 족 침략부대는 염탐꾼이 돌아오지 않자 그들이 모두 보크 족들에게 살해된 것으로 알고 복수를 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한 것 같았다. 니제르강 연안에는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니제르강을 서로 차지하려는 부족들 간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다.
침략꾼들이 아주 가까이까지 쳐들어왔다. 말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고 총소리도 들렸다. 위협발포였다. 상황이 그렇게 되었는데 프랑스인 관리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빨리 출동했다면 현지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인데도 그들은 꾸물거리고 있었다. 듣던 대로 식민지에 파견된 프랑스인 관리들은 게으른 친구들이었다. 리치박사는 프랑스 본국 정부에 그 사실을 알려 그들을 인책시키기로 결심했다.
리치박사는 더 이상 프랑스인 관리들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박사는 포로들을 석방시켰다. 그는 포로들에게 부대에 돌아가서 침략을 하면 무서운 반격을 받을 거라고 전하라고 말했다. 그 무렵 침략군들은 이미 강가에까지 쳐들어와 있었다. 총탄이 날아오고 있었다. 캡틴 강이 응사를 하려고 했으나 리치박사가 만류했다. 포로들이 부대에 도착할 때까지 응전을 하지 말라는 지시였다.
침략군들이 포로들의 말을 듣고 침략을 중지할 것인가? 리치박사는 거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었다. 침략군들이 돌격해 오고 있었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함성이 들렸고 총탄이 마구 날아오고 있었다. 니제르강의 북쪽 연안에 있던 리치박사 일행과 보크 족 전사들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갔다. 강남 쪽에는 보크 족 전사들이 적을 요격하려고 기다리고 있었고 강 상류에는 주력부대가 배를 타고 대기하고 있었다.
침략군들이 강을 건너오면 물속에서 싸울 작전이었다. 리치박사 일행이 강의 남쪽 대안에 도착했을 때 침략군들은 벌써 북쪽 대안까지 쳐들어왔다. 그들은 여세를 몰아 강에 뛰어들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총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었다. 폭풍우 직전에 있는 고요였다. 금방이라도 무서운 폭풍우로 변할 것 같았다.
북쪽 대안의 침묵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감돌고 있던 살기가 풀어졌다. 침략군들은 석방포로들의 말을 듣고 철수한 것 같았다. 그러나 보크 족들은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다음날 아침 두 대의 트럭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경계를 풀었다. 트럭에는 열서너 명의 프랑스군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앞좌석에 타고 있던 관리들이 크게 걱정을 하듯 말했다.
"모두들 무사합니까? 다행입니다. 우리들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한 유목 족들의 약탈행위는 없을 겁니다. 안심하십시오." 그들은 출동이 왜 늦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리치박사도 묻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그 이유를 본국 정부에 해명해야 될 것이었다. 아무튼 평화가 찾아왔다. 보크 족들의 어렵이 다시 계속되었는데 그날 오후 어느 어부의 낚싯줄에 거대한 자라 한 마리가 걸려들었다. 무게가 100Kg이 넘는 늙은 자라였다.
그러자 추장을 비롯한 마을 장로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사로잡힌 자라를 조사하더니 중대한 판단을 내렸다. 그 자라는 니제르강을 다스리는 수신(水神)이 타는 말의 화신이라는 말이었다. 보크 족 어부들은 자라에게 공손히 절을 했다. 그리고 자라의 입을 벌려 고기를 서너 마리 먹였다. 보크 족 어부들은 자라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여 놓고도 수신의 부하에게 고기를 바쳤다고 말했다. 물론 자라는 정중하게 방면되었다.
그날 밤 보크 족 임시 마을에 경사가 났다. 해산예정일보다 10여일이나 지나도록 신음을 하고 있던 임산부 한 사람이 아주 쉽게 옥동자를 분만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일은 낮에 석방했던 자라가 해 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그 자라의 보은으로 앞으로 고기가 많이 잡힐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경사는 그 다음날에 또 일어났다. 이번에는 결혼이었다. 결혼을 한 신부는 칸탄의 딸이었고 신랑은 이웃 청년이었다. 신부는 열여섯 살, 신랑은 스무 살이었다.
캡틴 강은 전번에 그들이 강가 바위틈에서 포옹하고 있는 것을 봤는데 그들은 그 후에도 그런 밀회를 하다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사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칸탄은 아버지와 떨어져 할머니와 오빠와 함께 어렵을 하던 딸이 갑자기 이웃 청년을 데리고 찾아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신랑 신부의 집안은 사이가 별로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보크 족들의 결혼식은 극히 간소했다. 평소의 식사 때보다 많은 고기가 얹힌 쌀밥이 잔칫상에 나왔을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기나 가재 등을 선물로 갖고 와 새로 맺어진 남녀를 축복해 주었다. 따뜻한 인정이 넘치는 결혼식이었으며 문명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결혼의 원형이 거기에 있었다. 서부 아프리카 니제르 강 유역에 사는 어렵민 보크 족들은 악착같이 살면서도 낭만과 인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