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김성한
나는 노래하는 것이 취미다. 취미는 나를 새롭게 만드는 청량제다.
일하며 집중하기는 쉽지 않지만, 취미활동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는 종종 있다. 어쩌다 무대에 설 때부터 노래하는 5분 동안은 아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무아지경이 되어 마치 딴 세상에 갔다 온 듯하다. 가사를 잊지 않으려, 박자와 음정을 놓치지 않으려 애 써다 보면 노래하는 5분 동안은 거의 혼수상태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실전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강사님은 늘 강조한다. 한 달에 한 곡 정도 정장 차림으로 노래해야 한다. 내 차례가 되어 무대에 서면 이윽고 반주가 나온다. 들어가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잘 올라탔다 싶으면 비로소 노래에 몰입할 수 있다. 잠시 후 박수 소리가 들리면 '아~ 무사히 끝났구나' 안도 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정신이 들고 뒤돌아 보면, 정말 아무 기억도 안 난다. 한 달 동안 한적한 곳이나 차 안에서 연습을 하며 박자도 맞추어 보고, 가사도 점검해 본다. 살면서 이렇게 집중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회원들 앞에서 발표하고, 스스로 생각해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싶으면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고 매사에 자신감도 붙는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발표한 노래를 혼자 흥얼대다 보면, 비로소 내가 나임을 느낄 수 있고 정신이 맑다. 세상 그 무엇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수필 한 편? 까짓 거. 금방 쓸 수 있을 것 같다.
같이 취미 활동하는 사람 중에 나이 드신 분도 많다. 음정 박자는 어느 정도 맞추는 데 가사를 자주 잊어버린다. 이분들도 가사를 좀 쉽게 다루어 보려고 온 힘을 다해 노력한다. 노래하는 날 일찍 오셔셔, 아주 큰 현수막을 무대 뒤에 걸어 놓거나,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한테 맞추어온 현수막 한쪽씩 노래 끝날 때까지, 팽팽하게 잡고 있으라며 신신당부한다. 현수막이 쭈글쭈글해져 가사가 안 보이면 애써 만든 현수막이 말짱 도루묵이 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동영상은 정장 차림으로 노래하는 모습만 비춰주므로, 노래하는 사람이 무대 뒤에서 벌이는 작당은 시청자들은 모른다. 현수막을 보면서 노래 진도가 잘 나가고 있는데, 잡고 있는 두 사람이 살짝만 움직여도 균형이 깨져 글씨가 겹치고 잘 안 보인다. 글씨가 보였다 안 보였다하면 잡고 있는 두 사람은 눈치 못 채지만, 한 참이나 떨어진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은 목을 쭉 빼고 알아보려 안간 힘을 쓴다. 그분 표정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이 조마조마하여 내가 땀을 다 흘릴 정도다. 잘 끝나면 노래하신 분이 그날 저녁을 사는 데, 가사가 안 보여 어벙벙 댄 날에는 현수막 잡은 두 사람은 살아남지 못한다.
남 실수하는 것 보고 위안 삼을 일이 아니다. 내 실수에 얽힌 에피소드도 부지기수로 많다.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그날은 꼬리 달린 양복까지 빌려 입고 폼 잡고 시작했지만 노래하다가 2절에서 가사를 까먹고 1절을 해버렸다, 그보다 더 까무러칠 노릇은, 음정이 비슷한, 음정이 정말로 너무나 비슷한 노래여서 아예 엉뚱한 다른 노래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저 뒤에서 나를 위해 박자 지휘하며 애써 주시는 총무님 얼굴이 하얘지는 것을 보고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날 일이 생각나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른다. 요즘은 도 닦는 기분으로 가사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나에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박자와 가사를 자주 놓친다는 것이다. 박자 맞추기가 더 어려웠는데, 요즘은 가사 외우기가 더 어렵다. 강사는 나를 가르치기 어렵다고 불만이 많다. 자꾸 박자와 가사를 놓치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발표할 때 보면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실수하는 사람들도 많더구먼.... 그분들 보면 괜히 우리 편 같다는 생각이 들고 덜 쓸쓸하다. 가사, 박자, 음정 모두 한꺼번에 잘 맞추는 분은 드물다. 잘 해야겠다는 조바심 때문에 자꾸 실수하는 것 같다.
며칠 전, 식탁 위에 있는 화분에 물 주기 위해 화분을 개수대로 옮기다가 깨뜨렸다. 아내의 빈정댐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바로 날아온다.
“아니! 지금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요?"
”화분 물도 하나 제대로 못 주고 깨뜨리면서 뭔 수필을 쓴다고 난리를 치십니까, 난리를“
"정신이 그렇게 허리멍텅한데 글이 쓰지나요."
깨진 화분 청소를 도와주고, 나는 식탁 위의 종이 조각들을 주섬주섬 주워 내 방으로 들어갔다.
집안 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데 도와주지 않고 식탁에 앉아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분명히 내가 딴 생각했다. 맞다. 그런데 아내는 어떻게 내가 딴 생각했는지 알았을까? 도사인가? 노래할 때 가사 까먹고, 음정이 헷갈려 다른 노래로 흘러갈 때도 내가 딴 생각했을까? 안 했는데.... 한 달을 연습했는데! 그 순간 딴 노래로 왜 흘러갔지? 돌아올 때 차 안에서 편안하게 불러보면 안 헷갈리고 잘하는데.... 참 환장할 노릇이다.
취미 활동은 내 생활의 바로미터다.. 노래할 때 5분 동안은 지구가 거꾸로 돌아도 모를 정도로 집중해서 몰입하는 데, 생활 속 작은 일에는 왜 안 되는 거야. 왜 책을 읽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짧은 수필 한 편 쓰면서도 짜임새 있게 구성해 내지 못하고 단락이나 문장을 자꾸 엉뚱한 데 갖다 붙이는 것일까?
무엇이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버릇, 사소하다고 여겨 무시하는 버릇 하나가 나를 좀먹고 있는 것 같다. 노래할 때는 노래에, 화분 옮길 때는 화분에, 글 쓸 때는 글에만 신경 쓰자.
뭘 할 때는 하는 데 신경 쓰고 집중하자. 옷 입을 때는 옷 입는 데 쓰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