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날의 사건은 채 하루가 되기도 전에 전서구를 타고 천하 각지에 전해졌다. 도마가 천왕성의 정벌을 선언했다. 적무강이 홀로 천왕성의 마도육문 중 하나인 낭혈문을 궤멸시켰다.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천하가 들끓기 시작했다. 십자성의 천라지망에 결국 목숨을 잃었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그 가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나 중원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는 천왕성을 호나 막아섰다는 사실은 커다란 충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온통 북쪽으로 쏠렸다. 비록 사천성에서도 십자성과 천왕성의 격돌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지루하기만 할 뿐, 아 직 그 어느 쪽도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전 쟁이 끝나기는커녕 사천 전체로 전화가 번져 가는 판국이었는데 산 서성에서 적무강이 천왕성의 마도육문 중 하나를 홀로 궤멸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광분을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삼백 년 전의 무신 마광도를 능가할 유일한 무인이다." "천왕성을 상대한 후 그의 목표는 십자성이다." 사람들은 열변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이제가지 한 번도 그를 보 지 못한 무인에서부터 강호 명숙에 이르기까지 그에 대해 말하기 시 작했다. 그리고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 자루의 도로 천하 혼란을 잠재울 자이다." 그것은 어쩌면 예언과도 같았다. 그러나 천하의 무인들은 누구나 이 거짓말 같은 예언에 열광을 했다. 그리고 얼마후 무림은 또 하나의 커다란 소식을 듣게 된다. 구대문파가 힘을 합쳐 정도련(正道聯)을 발족시켰다. 그리고 남궁 세가가 오대세가에서 탈퇴해 그들과 함께한다. 이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지자(智者)들은 드디어 무림이 격변기에 들어섰다고 단언했다. 이제까지 십자성과 천왕성으로만 양분되던 무 림이 드디어 삼분된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력 판도가 이루어졌다 는 것을 뜻했다. 이제까지 몰락한 것으로만 알려졌던 남궁세가에서는 정도련에 지 지를 보내며 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이 한 번 의 발표에 남궁세가의 지지도가 단숨에 올라갔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서문아의 소식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아직 십자성에 맞 설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을 더 이상 자극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수뇌부들의 결정 때문이었다. 도마의 일인대전(一人大戰)과 더불어 폭풍처럼 천하를 강타한 정 도련의 발족. 천하에 거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정도련은 안휘성 태호(太湖)에 들어서기로 했다. 이미 남궁세가에 서는 발 빠르게 움직여 태호에 부지를 확보해 두었고, 착공에 들어간 상태였다. 구파에서는 사람들을 파견해 임시로 막사를 짓고 공사를 감독했다. 비록 십자성만큼 크고 웅장하게 지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구파 의 총력이 결집된 곳이니만큼 자연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구파의 속가에서는 이 대규모의 공사에 엄청난 지원을 하고 나섰 다. 그동안 십자성의 위세에 밀려 많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그 들은 사문의 우산이 클수록 좋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때문에 정도련의 발족을 누구보다 환영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구파 속가의 지원에 남궁세가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남궁세가 혼자만의 힘으로 진행하기에는 힘에 부쳤는데, 그들의 지원을 받음 으로써 오히려 자금이 여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쿵쾅! 쿵쾅! 곳곳에서 기둥을 세우고 돌을 쌓아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부들 이 활기에 차 움직이고 있었다. 남궁성은 공사가 진행되는 거대한 공터를 보자 감회가 새로웠다. '드디어 시작된다 이 말이지. 남궁세가의 비상이......' 지난 세월 가문의 몰락과 함께 수많은 수모를 당해야 했다. 자신 은 견딜 수 있었지만 그의 아버지나 세가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수모를 당할 때는 그 자신이 죽고만 싶었다. 그러나 이제 정도 련이 정식으로 발족되면 그 누구도 남궁세가를 우습게 볼 수 없으리 라. 남궁성은 희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이제 그 누구도 남궁세가의 비상을 막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그 렇게 만들 것이다. 그는 그렇게 다짐했다. 문득 그의 눈에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형수님.' 홀로 북쪽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 그녀는 서문아가 분명했다. 서문아는 고고한 모습으로 서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녀의 몸에 선 범접지 못할 위엄이 풍기고 있었다. 그때 남궁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 녀석들!' 서문아는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적무강을 생각했다. 안휘성에 온 이후 이렇게 북쪽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녀가 밖에 나올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를 쫓았다. 환골탈태 이후 온몸의 상처가 깨끗이 사라진 그녀의 모습은 눈이 부 실 정도로 아름다워서 이곳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모두 그녀를 선녀 라고 칭송했다. 그런 서문아의 등 뒤로 접근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서문아는 그들 의 기척을 이미 눈치 챘지만 모르는 척했다. "소저, 바람이 차가운데 어찌 이런 공사판에 나오셨소이까?" "하하하!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저희 형제들의 따뜻한 차라도 대 접을 해 드리겠습니다." 짐짓 호탕하게 웃는 두 남자의 웃음소리에 서문아의 사색은 방해 를 받고 말았다. 결국 그녀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금빛 비단으로 만든 화려한 복장을 한 남자들이 있었다. 하얀 얼 굴에 약간은 비만한 체형, 무공을 익힌 것 같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무인보다는 상인의 모습에 가까웠다. 서문아는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누구지요?" "하하! 저희는 산서성 금가장(金家莊)의 금씨 형제입니다. 제가 형 으로 금종윤이라 하고, 이 녀석이 제 동생인 금인수입니다. 비록 미 약한 허명이긴 하지만 산서성에서는 금가쌍웅(金家雙雄)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지나가다 소저의 자태가 하도 고아 한번 말이라도 붙여 볼 까 하고 왔습니다." 자신을 금종윤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넉살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 다. 서문아의 이마가 지푸려졌다. 금가장은 아직 한 번도 들어보지 못 한 곳이었다.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사색을 더 하고 싶군요. 당신들의 뜻은 잘 알았으나 받아 줄 수가 없군요. 그럼 이만 물러나 주길......" "소저, 사색을 방해한 건 죄송하나 우리에게 약간의 시간만 내줄 수는 없겠습니까? 내 평생 소저와 같이 고아한 미모를 가진 여인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렇소! 우리 역시 산서성에서는 그런대로 이름을 날리는 무인들 이오. 소저......" 서문아는 끈질기게 구애하는 금가쌍웅을 보며 잠시 어찌해야 될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미 답은 나와 있었 다. "이만 물러나요. 이건 경고예요." "어허! 소저, 어찌 그 고운 입에서 그리 매정한 말이 나오시오. 이 래봬도 우리 금가장은 백이십 년의 전통을 가진 곳으로 결코 소저가 후회......" "너 정말 죽고 싶냐?" "뭐?" 금종윤은 자신의 말에 끼어든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인상을 팍 구 기며 뒤돌아봤다. 딴에는 인상을 쓴다고 썼지만 나타난 남자를 보는 순간 그만 딱 풀리고 말았다. 그들의 뒤에 나타난 남자는 다름 아닌 남궁성이었다.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불량해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다. "하하! 남궁......형께서 여기엔 어쩐 일입니까?" 금인수의 얼굴에는 떨떠름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금가장이 산서성에서 제법 유명한 곳임은 분명했 으나 남궁세가에 비할 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무공으로 는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남궁성을 당할 수 없었다. 그들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금가장이 정도련에 많은 기부금을 냈기 때문 이지 결코 그들의 무공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남궁성이 불량한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지금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민 거야. 어디 건드 릴 사람이 없어서 형수님을 건드리려고 해. 너희들 이분이 누구의 여 자인 줄 알아? 앙!" "아니, 도대체 누구시기에 이러는 거요? 우리는 그냥 이 소저께서 워낙 아름다우셔서 그냥 말이나 나누려고 그러는 거요." "하하~! 그런 정보력으로 용케도 산서성에 있는 금가장이 망하지 않았군. 하하하~! 이거야 참......" 남궁성이 웃자 금가 형제의 눈빛이 변했다. 그들이 남궁성을 향해 사나운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금가장을 모욕하지 마시오. 우리를 모욕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참 을 수 있지만 우리 가문을 욕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소." "형수님은 도마의 연인이야." "뭐?" "산서성에서 천왕성을 홀로 막아선 도마가 저분의 연인이라구. 한 번 더 말해 줄까? 홀로 일인정벌을 하고 있는 적무강 형님이 바로 이분의 연인이시라고." "그런......?" 순간 금가 형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도마 적무강, 지금 무림에서 이보다 유명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십자성의 주력부대가 천왕성의 낭혈문에게 궤멸당하고, 다시 낭혈문 이 그에 의해 거의 궤멸되다시피 했다. 도저히 혼자서 한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일을 한 남자. 만약 그가 낭혈문의 진로를 막지 않았 다면 그들의 터전인 금가장도 멸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발길을 돌려 금가장을 방문한다면 금가장 따위는 채 한 시진이 가기도 전에 멸문을 당하고 말 것이다. 그들은 그제야 자신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들이 급히 서문아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잘못했습니다. 저희들이 눈이 없어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부디......" "부디 적 대협이 노기를 일으키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제발..." 그들의 행동은 필사적이었다. 단지 예뻐서, 친해지고 싶어서 수작을 부린 것뿐인데 하필 그녀가 도마의 연인이라니, 그들은 정말 울고 싶었다. 남궁성이 거칠게 말했다. "더 큰일 나기 전에 어서 꺼지라구. 만약 형수님 주위에서 너희들 의 모습이 한 번 더 띄면 그땐 정말로 형님에게 말할 테니까." "고, 고맙소, 남궁 형. 죄송합니다, 소저.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저흰 이만......" 금가 형제가 고개를 굽실굽실하며 서둘러 물러났다. 꽁지가 빠져라 부리나케 달려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남궁성과 서문아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저런 정보망으로도 여태 살아남았다는 것이 정말 용하네요. 쯧 쯧!" "그들을 탓할 필요는 없겠지요. 산서성에 있었다면 중원의 정보에 어두운 것이 당연할 테니까요." "하여간 형수님은 마음도 넓으십니다. 저 같으면 일단 주먹부터 날리고 봤을 겁니다. 형수님의 실력이라면 저딴 자식들 한주먹 감도 안 될 텐데." 서문아는 약간 과장되게 행동하는 남궁성을 보며 살포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위로하려 일부러 크게 행동하는 그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세상이 형님의 일로 시끄럽군요." "그렇겠지요. 그분은 폭풍 같은 분이니까요. 아마 앞으로도 그분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워질 겁니다." "그렇지요. 형님이 벌어 주는 소중한 시간을 쓰는 겁니다, 우리 는......" "그래요!" 두 사람은 한동안 북쪽 하늘을 바라봤다. 생전 처음 보는 기화요초가 가득한 화원에 노인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조그만 가위를 들고 꽃의 여기저기를 손보고 있었다. "허허~! 잘 자랐구나. 지난 한 해 공들인 보람이 있었어."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꽃망울이 더욱 화사하게 피 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는 한참을 쭈그려서 꽃과 풀들을 손보다 허리를 두드리며 자리 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두워진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벌서 시간이 이리 되었는가? 요즘 꽃에 정신이 파려 시간이 어찌 가는지도 모르는구나."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노인의 눈빛이 변했다. "무슨 일이냐? 내 분명히 화원에 있는 동안은 출입을 금하라 했을 텐데." 그러자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워낙 급한 일이라서....." "무슨 일이냐?" "선발대로 보낸 낭혈문이 거의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제야 노인이 허공에 손짓을 했다. 그러자 검은 그림자가 스르륵 나타나며 노인의 앞에 부복했다. "자세히 말해 보거라." "산서성으로 우회해 중원으로 진격해 가던 낭혈문이 단 한 사람으 로 인해 막혔다는 소식입니다. 낭혈문주 좌천기는 치명상을 입고 후 송 도중 숨을 거뒀답니다." "좌천기는 제법 뛰어난 아이인데 단 한 명에 의해서 목숨을 잃고 낭혈문마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가 누구냐? 좌천기를 그렇게 만든 아이가?" "적무강이라 합니다. 중원에는 도마라는 별호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마라......" 노인이 꾸부정하던 허리를 폈다. 그러자 이제까지 느낄 수 없었던 절대적인 기도가 그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기 시작했다. "십자성도 아닌 일개인이 낭혈문을 그리 만들었다니 이것 정말 재 밌구나." "그는 저희 측에 전쟁을 선포하고 홀로 북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무래도 낭혈문이 걸어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것 같습니다. 이 상태로 간다면 밀종문과 혈화문이 그와 부딪치게 됩니다." "허허~! 일이 재밌게 되었구나." 노인이 진정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대로 놔두어라." "그대로 말씀이십니까?" "재밌지 않는냐? 요즘 세상에 그런 독불장군이 있다니. 그가 정말 로 강한 자라면 밀종문과 혈화문을 깨고 이곳까지 올 것이닐. 그게 아니라면 두 문파에 의해 산산이 찢기고 말겠지. 그 어느 쪽이라 해 도 크게 상관없다." "존명! 그리 전하겠습니다." 스르륵! 다시 남자가 허공중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노인이 자신이 가꾼 화원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한동안 적적하지 않겠구나. 오직 십자성주만이 나의 적수라 고 생각했었거늘, 이제 너희들은 필요 없구나." 노인이 등을 돌려 화원 밖으로 걸어 나갔다. 스스스! 순간 노인이 지나간 자리의 꽃들이 검은색으로 물들어 가며 죽어 갔다. 그리고 검은색은 마치 먹물이 번져 가듯 그렇게 화원 전체로 퍼져 나갔다. |
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다녀갑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천인혈(天刃血) 제5권 15"와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기쁨이 가득하고 행복이 넘치는 즐거운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즐독!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즐감하고 갑니다.
오늘 도 행복과 동행 하는 기분 좋은 토요일 되시고 건승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