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에 관한 연구
서론:
1.신유의 중요성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신유가 중요하지 않다고 과소평가하지만 그렇지 않다.
1) 신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에 3대 사역 중의 하나였다
①하나님은 가는 곳마다 하늘나라 복음을 선포하셨고(preaching)
②말씀을 가르치셨으며(Teaching)
③병든 지를 고치셨다 고치셨다. (healing) (마9:35)
로버트 파라시 (Robert Faricy)는 치유의 기사가 사대복음서 가운데 20%나 나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위의 3가지가 균형 있게 강조되어야 한다.
2) 신유는 교회의 양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신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 모여들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무엇 때문에 모였는가? 바로 병 고침 받기 위해서 모였다.
집마다 병자가 없는 가정이 누가 있는가?
예수님은 병을 고치려고 모인 무리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했다.
오늘날에도 신유 역사하는 교회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으며 교회가 크게 성장하며 구원의 큰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3)신유는 교회가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 성장을 가져오는데도 크게 유익하다.
육신이 병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병 고침 받은 성도는 육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서 뜨거운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신유 체험을 하고 나면 관념적인 신앙이 체험적인 신앙으로 바뀌게 된다.
※목사는 단과병원의 원장이 아니라 종합병원의 원장이다.
2.신유에 대한 용어의 정의
정신과 육체의 병을 치료하는데 대개 3가지의 방법이 있다.
①의학의 힘으로 치료하는 방법
②심리적 상담을 통하여 치료하는 방법
③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있다.
-신유란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신적인 병과 육체적인 병을 치료하는 것을 신유라고 한다.
※신유란 히브리어로 (라파=꿰매 고치다. 원기 왕성케 하다)는 뜻이다.
헬라어로는( 이아시스=온전케 하다)는 말이다.
①
②
③
①②③④
신유의 이론적인 근거:
1. 심리학적인 근거:
현대 심리학적 이해의 차원에서 볼 때 영은 잠재의식으로 보고, 마음은 의식으로 불 수 있다.
그렇다면 믿음의 치유는 영적 치유이기 때문에 잠재의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므로 신유는 심리학적 근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영적 활동을 통하여 내부의 세계인 잠재의식(영)과 의식(마음)에 자극을 줄 수 있다.
내부 세계가 기도나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생명력 있는 자극을 받았을 때 몸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인간의 내부 세계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건강할 때 외부 세계도(육신) 건강하다.
그러므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무릇 지킬만하나 그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잠4:23)
현대 심리학자들은 정신과 육체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여"정신 신체 반응"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정신과 신체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 영역에 손을 댈 것이며 그리하여 신앙 치유법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 치유법도 일종의 과학 즉 영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학은 영적 과학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유목회는 외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의학과 신유:
의학은 사탄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세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며
모든 의학은 사실 자연의 세계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의학은 자연법칙에서 발견한 육신 건강과 치유에 관한 진리인데.
자연법칙은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학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의학과 신유는 병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모두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써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이
건강하기를 원하시사 !이들을! 인간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치료에 대한 ①신앙적인 광신과 ②의학적인 광신은 둘 다 문제가 있다.
※예수님도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눅5:31)
"자주 나는 병으로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딤전5:23)
"이사야가 가로대 무화가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그 좀처에 놓으니 나으니라"(왕하 20:7)
역사적인 근거:
1) 구약시대: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자기 자신이 치유자이심을 밝혔다.
출15:26에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했다.
신32:29에서는"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님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고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많은 치유의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의 부인과 하녀를 치유하셨고
(창20:17) 광야에서 뱀에게 물린 자를 치유하셨으며 (민 21:6-9) 미리암을 고치셨고, 과부의 아들을 고치셨고
(왕상17:17-20)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치유하셨다.
2) 예수님의 지상 사역시대:
치유는 예수님의 삼대 사역 중의 하나였다. 예수님은 성과 촌을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며,
모든 병든 자를 고치셨다. (마9:35) 신유는 사대복음서에서 20%나 기록되어있고, 누가복음에는 33%를 차지하고 있다.
구약시대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병을 치료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성자 하나님이 이를 담당하셨다.
3) 사도시대:
치유역사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사도들이 병든 자를 치유하는 목회를 계속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요 거지였던 사람을 고쳤고(행3:6) 바울 자신은 소경이 되었다가 기도를 받고 눈을 떴으며(행 9:18)
그 후에 바울은 많은 병자를 고쳤다. 물론 여기에서 고친다는 것은 사람이 고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고쳐주시는 것이다.
이렇듯 치유 목회는 사도들의 목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것은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는 하나의 신호였다.
4) 고대 교부시대:
기독교 치유의 사건을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기간이 바로 1~3세기이다. 이 기간의 !교회!는 실로 기적으로 엮어진 것이다.
이 기간에 신유에 대해서 강조하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저스틴 마터(100-165A.D) -이레니우스(100-203 리용의 감독) - 터툴리안(155-230 A.D 위대한 저술가)
-오저겐(185-254A.D 기독교 서적 집필자) 암브로스(밀란의감독) -요한 크리소스톰(콘스탄티노플 감독)
※치유의 역사가 그토록 자주 일어났으며 그 근거를 신학적으로나 철할 적으로 찾아보려고 했는데 그러다가
점점 하향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신앙이 식으며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신유 목회의 감소 현상은 주의 명령이 철회되었다는 말도 아니며, 사도들이 죽을 때 함께 없어진 것도 아니며,
다만 세속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함으로 교회 안에서 믿음이 상실되고 약해졌기 때문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병자를 고치라는 주님의 명령이
철회되지 않은 이상, 교회가 치유 목회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교회는 주님의 명령을 소홀히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치유 목회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육신 적으로 이미 그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않은 고대 교부 시대에도 역시 교회 안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고대 교부 시대에도 역시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 계셨다.
5) 로마가톨릭 교회시대:
소위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중세에서 교회는 삶의 중심지였다, 그 당시는 가톨릭교회가 서구세계를 지배하였다. 암흑기라고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계속하셨다. !당시에까지 계속되었던 하나님의 사역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치유의 사역이었다.
영국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베테는 '영국교회사'라는 그의 책에서 치유와 기적에 관해서 자주 언급했으며,
앗시스의 성 프란시스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치유 목회가 한사람이다.
6)종교개혁시대:
종교개혁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셨다. 다른 시대에 비해서 개혁자들에 의한 강조가 덜 된 것뿐이지 결코 없어진 것은 아니라.
루터는 초기엔 치유의 역사를 부인했다. 그러다가 자기 기도를 통하여 치유의 체험을 함으로써 비로소 치유의 기적을 인정하게 되었다.
루터의 친구였던 멜랑흐톤이 여행 중에 병으로 쓰러졌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루터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루터는 친구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멜랑흐톤은 곧 치유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루터는 가끔 치유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다. 칼빈은 영혼의 구원을 강조했고,
치유를 포함한 기적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오는 치유의 힘을 믿었다.
7)현대 시대:
오늘날 치유 목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병자의 치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계속하여 신유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다. 오늘날에도 오럴 로비츠, 윌리암 콜드웰, 존델, 므리스셀루로스, 티엠 오스본 등을 통하여
신유의 큰 역사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예나 지금이나 치유 목회는 역사적 근거를 하고 있다고 확신 할 수 있다.
4.성서적인 근거:
성경을 보면 성부 하나님께서도 구약시대에 치료하셨고, (출 15:26, 시103:1-3) 성자 하나님도 치료하셨으며(눅7:20-22) 성령 하나님께서도 치료하셨다.
(행10:38, 고전12:9) 뿐만 아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영적인 사람들도 치유의 기적을 일으켰는데 예컨대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람들이다.
베드로는 주로 이스라엘 내에서 치유의 기적을 행했고 (행3:6-7) 바울은 이스라엘 밖에서 행했다(행14:8-10) 그러므로 신유역사는 성서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병 고치는 은사는 초대교회 이후 정말로 사라졌는가?:
신우의 은사는 지금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약속 말씀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 고치는 역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도래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1. 성경 말씀이 그것을 약속하고 있다.
모든 신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날에도 신유의 역사가 가능함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①약5:14-15"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고 그들을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이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 말쯤은 예수님의 아우였던 야고보가 모든 교회에서 보내는 공회 서신으로 사도시대 초기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말기에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세대만을 위하여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세대를 위하여 기록하였으며 세상 끝에 사는 우리들을 위하여 기록한 말씀이다.
②막16:17-18"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끊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박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낳으리라 하시느라" 위 약속의 말씀을 영원히 변함없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요3:16의 말씀이 지금도 살아있는 약속의 말씀이듯이 약5:14-15 막16:17-18 역시 지금도 살아있는 약속의 말씀이다.
그 외도 많은 곳에 신유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2. 병을 치료하는 성부 하나님의 뜻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말세에나 같다.
출15:26에"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화와니라"고 했는데 성부 하나님 스스로가 치료자라고 선포하신 말씀은 변경된 적이 없다. 하나님은 지금도 치료자이시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도일하신 치료의 주님이시다.
히13:8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땅에 계실 때 가는 곳마다 병든 자를 치료하셨는데 지금도 치료의 주님은 변함이 없다.
4.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하여 역사했던 성령님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떠나지 아니하고 주님이 하셨던 일을 계속하고 계신다.
사도 시대에 치료의 역사를 일으켰던 성령님은 변질한 적이 없다. 지금도 같은 성령님이 교회 중에 계셔서 역사 하고 있다.
성령님은 다락방에 임한 이후 한 번도 떠나가신 적이 없다.
5. 오늘날도 신유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치료하시는 주님을 믿고 있는 자에게는 놀라운 신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신유 체험은 취소할 수 없는 분명한 믿음의 실상이다.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믿음으로 신유의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위의 사실들을 살펴볼 때 신유는 초대교회 이후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이다.
질병 의원인:
1. 죄로 말미암아 온다. (약 5:15)
"믿음의 기도하는 병든 자를 구원하게 해 주께서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사람들은 병이 들면 외부에 나타난 그 병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고쳐 보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질병의 뿌리를 날카로운 말씀의 검으로 쪼개어 밝히 보여주고 있다.
질병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공의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에 대한 상당한 응보를 내려야 합니다.
질병은 바로 죄에 대한 응보입니다. (왕하5:27 게하시 문둥병)
신28:20-22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상한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
라고 말씀한 것을 보면 질병은 죄로 말미암아 온 것을 알 수 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전에는 질병이 없었다. 죄를 범한 이후에 질병과 죽음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깊이 뉘우치고 회개할 때 치료의 역사가 나타남이라.
2. 마귀로 말미암아 질병이 발생한다.
하나님은 병을 주지 않습니다. 죄를 범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게 되어 마귀의 손에 붙인 바 되어 !귀신들에 의해서 열매로서! 신유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즉 신앙적인 치유의 힘이 영혼 속에 주어지면 그 힘은 곧 마음속에 전달되며 그리하여 육체의 치유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유는 심리학적인 근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의학적인 근거:
1900~1950년대에 의사들은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려고 힘쓴 결과 그들은 병균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병균이 바로 질병의 근원이라서 생각했다.
그러나 1950년대를 넘어서면서 의사들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의사들이 병이 심한 환자로부터 어떤 병균도 발견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환자를 신경성 병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인간의 가장 내부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 영혼에 관심을 두고 여기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위험한 요인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영과 혼과 몸으로 엮인 복합적인 존재이다. 의학자들도 질병의 근원을 찾는 데 있어서 눈에 보이는 병균이나 심리적 정신적 차원까지만 취급할 것이 아니라
영의 문제에까지 관심을 두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병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적인 영역에 손을 대지 않으면 질병의 근원적인 면에서 올바르게 다루기가 힘들다.
※언젠가는 의학자들도 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영적인 !결합되여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마음속에 좋지 못한 감정을 품으면 그의 육체도 좋지 않게 되는 것이다.
※좋지 않은 감정을 품으면 몸속에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서 결국 병을 유발하는 것이다.
알렉시스 카렐은 유명한 외과 의사로서 노벨상까지 받은 사람인데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시기나 미움이나 공포 등의 정신상태가 습관화 될 때 신체 기관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병이 날 가능성이 크다. 도덕적인 고통은 건강에 지장을 준다.
걱정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사업가는 젊은 시절에 죽기 쉽다. 생각은 신체 장애를 일으킬 수가 있는 것이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은 육체 속에 그가 두려워하는 질병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성경 욥3:25에 보면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라고 했다.
욥은 암창이 생기기 전에 그 병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했는데 바로 그가 두려워 하는 병이 그의 몸에 발생한 것이다.
※바울은 한 인간 속에 3가지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영(푸누마)과 혼(푸시케) 과 몸(쏘마) 인데 (살전5:23) 이 3가지 요소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의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영적인 영역은 신앙 치유의 출발점이며 혼(정신)의 영역은 심리적인 영역인데 여기에 심리적인 힘이 작용한다. 그러고 모의 영역은 신앙의 치유의
나쁜 감정은 심리적인 요인이며, 자연법칙을 깨트리는 것은 물리적인 요인이다.
1) 영적인 요인들(죄)
오스분(T.L osborn)은 말하기를 교인들 중 75%가 병들어 있다고 했다. 그 이유를 죄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병들어 누워있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러나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사탄이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 사이에 생긴 틈에 끼어들어서 질병을 유발한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에 그들을 지키고 있던 하나님의 손길이
더 이상 그들을 지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호 손길이 떠나가면 사탄이 틈타서 병을 유발하는 것이다.
2) 심리적요인들(나쁜감정들)
질병이 육체 속에 들어오는 두 번째의 통로(심리적)요인이다. 나쁜 감정들, 즉 질투, 공포, 쓴 감정, 염려, 분노, 후회, 용서 못하는 마음,
자기중심 등의 감정은 질병이 몸속에 들어오도록 하는 요인이 된다.
잠17:22"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벼를 마르게 하느니라"
우리가 마음속에 나쁜 감정들을 가지고 있을 때에 그런 나쁜 감정은 신경조직에 영향을 주고 신경조직은 몸의 세포에 병적인 자극을 주게 된다.
그리하여 세포가 약해진 틈을 타서 병균이 들어온 병이 성장하게 된다.
예를 들면, 마음속에 걱정을 품고 있으면 그것이 신경조직에 나쁜 영향을 주고 위장에 연결된 신경조직은 위장 세포를 약한 상태로 만들고, 위장 세포가 약화하면
위의 소화 기능이 약화한다. 그리하여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되어 위장병에 걸리게 된다.
3)육체적요인(자연법칙을 꺠드림)
하나님은 자연과 자연법칙을 창조하셨다. 사람의 몸속에 자연법칙이 존재한다. 사람의 몸은 대단히 논리적이며, 과학적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우리의 몸속에 작용하고 있는 잔연 법칙을 깨 드리면 우리 몸을 만드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셈이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픔이다.
질병을 통한 아픔이 !몸이 아픈 것이다. 우리가 우리 몸속에 작용하고 있는 자연법칙을 깨 드리면 병균이 몸속에 들어와서 병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과로할 땐 육체가 피로하게 된다. 이 피로는 우리로 하여금 쉬어야 한다는 신호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과로하게 되면 자동으로 열이 오르는 등 병에 걸리고 만다. 너무 많이 먹으면 위장병에 걸린다.
경우에 몸의 온도를 보호하지 못하면 감기 들리고 만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육체를 보존하시기 위해서 만드신 자연법칙을 깨트리면 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 그림을 통하여 질병의 통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의사들은 병균을 발견하여 그것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치유목회자들은 영적인 능력을 통하여 병마를 추방하려고 노력한다.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죄를 제거하며 나쁜 감정은 마치 우리의 영이 우리의 혀와 성대를 통하여 말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지적인 존재들이다.
예수님께서 질병을 꾸짖었을 때에 질병이 떠나갈 수 있었던 것은 질병의 영이 그 사람 속에 있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눅4:39)
예수님께서 각 생병 자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어 기도하실 때에 그들이 나음을 얻었는데 그와 동시에 귀신들이 그들 환자에게서 나왔다는 누가의 기록이다.
환자들에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소리를 지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환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안수받는 순간 그들은 소리를 질렀고 그와 동시에
그들 속에 있었던 귀신들이 나가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질병의 근원은 사탄이 파송한 귀신들이라는 사실이다.
※귀신이 의식의 세계에 침투하면 사람이 거칠어지고 잠재의식의 세계에 침투하면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병이 낫지 않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질병의 근원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다. 질병을 사탄의 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질병을 그치시기를 원하신다.
3) 질병의 통로
질병의 신체적인 원인은 사탄이다.
그렇다면 질병의 통로는 무엇인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질병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와서 사람을 아프게 하는가.
질병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오는 데는 3가지의 통로가 있다.①죄②나쁜 감정③자연법칙 깨트리는 것이다. 죄는 영적인 요인이고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
질병 그 자체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살아서 움직이고 그 세력을 확장해가서 결국은 육체의 생명까지 죽이고 파괴시킨다.
그러면 질병은 어디에서 그의 생명을 공급받고 있는가? 질병의 뿌리는 무엇인가?
눈에 나타난 질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가 그 생명을 유지하며 공급하고 있다.
질병의 생명은 마귀의 영이 공급하며 마귀의 영이 떠나가 버리면 질병은 분해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람들의 육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은 우리 몸속에 우리의 영이 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의 영이
우리의 몸을 떠나게 되면 그 육체가 아무리 강건하고 튼튼한 것 일지라도 곧 활동을 중지하고 썩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귀의 영이 떠나가 버리면 질병은 죽고 마는 것인 데다.
질병의 생명 공급체는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막9:25"벙어리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라는 말씀을 볼 때 질병은 귀신이 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귀는 본래 타락한 천사장이었고 귀신들은 천사장을 따르던 천사중에서 천사장이 타락할 때에
같이 타락한 자들이다, 계12:7-9 성경에 보면 귀신들이 말하는 광경이 나온다. 그들은 그들이 점령한 사람의 기능을 이용하여 말은 한다.
4) 바울의 육체의 가시:
어떤 사람은 바울의"육체의 가시"를 안질, 심지어 간질이라고 까지 했다. 그러나 육체의 가시가 질병이라는 표현은 성경에 단 한 번도 나와 있지 않다.
이 말이 성경에 쓰여진것은 특수한 비유로 아주 정확하게 사용되었다. 민33:55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만일 그 땅거민들 너희 앞에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둔 자가 너희의 눈엣가시와 너희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여기에서 가시는 이스라엘의 적으로 사용된 표현이다. 바울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대로 "육체의 가시"라는 성서적 표현 방법을 자기에게도 적용했던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적들(사람들)을 가시로 표현했듯이 바울은 복음의 적들, 즉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을 박해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은 가시라고 표현한 것이다.
5) 기적의 시대에 대하여 잘못된 견해:
오늘날 치유의 역사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가르치는 내용은 기적의 시대는 지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오늘날(모든 기적)과
치유의 역사는 한 건도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기적적인 치유에 대한 모든 간증과 보도는 전부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만약 오늘날 어떤 기적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기적의 시대가 지나간 것이 아니란 것을 인증하는 것이다.
요14: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라고
말씀했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심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지상에 사실 때보다도 더 많은 기적이 일어날 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결코 자신이 하늘나라로 가기 때문에 이젠 기적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그러므로 기적의 시대는 지나가지 않았다.
2. 환경:
어떤 때엔 환자가 처해있는 환경이 좇지 않기 때문에 그 환자에게 치유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①내적 환경:
때때로 환자는 자기의 내부 세계 안에 질병을 조장시키는 환경(걱정, 근심, 불평, 미움, 시기 등)을 만든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질병을 조장시키는
환경 속으로 몰아넣는 사람들은 질병과 아주 가까워져서 질병과 관계를 떼는 일 즉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②외적 환경:
환자 자신이 치유에 대하여 비수용적인 태도나 대적하는 태도를 보이는 분위기 속에 있을 때 치유가 방해받는다.
신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면 그 환경은 질병을 생산하는 분위기로 바뀐다.
③죄:
죄는 치유의 방해물이다. 죄가 있는 장소에는 악령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들은 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죄의식은 치유의 방해물이다.
④무엇인가의 결핍:
어떤 사람이 치유의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편에서 무엇인가 부족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1) 믿음의 부족
믿음의 부족은 치유의 결정적인 방해물이라. 예수님 자신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땐 병을 고칠 수 없었던 것이라, 병자가 예수님에게 오면
예수님은 그 병자의 믿음을 확인하셨다. 그리고 병자가 나으면 그에게"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했다 마13:5-8
믿음이 부족하면 치유의 능력을 수용할 수 없다.
2) 영적 동기의 부족:
쌘포드는 말하기를 적절한 영적 동기가 없으면 치유에 지장이 생긴다 했다. 환자가 영적인 동기를 갖지 않는 한 치유는 불가능하다.
환자가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아들이고 기도를 드림으로써 영적인 감동 받고 성령이 그의 영을 지배함으로써 영적 동기가 마련되어야만 치유가 발생할 수 있다.
그저"한번 고쳐보려면 고쳐보라" 하는 식으로 기도해주는 사람에 대하여 환자 자신이 피동적인 태도를 보이면 치유의 능력이 공급되지 않는다.
3) 수용성의 부족:
환자 자신이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 그 사람은 수용성이 부족하기 마련이라. 그럴 때 그의 마음과 육체 속으로 치유의 능력이 흘러 들어가기가 힘이 든다.
예수님 자신도 고향에 가서 환자를 치유하실 때 고향 사람들의 자존심이 치유를 방해하며 많은 환자를 고치지 못하셨다. 막6:4-5
예수님 고향에서 많은 사람이 병 고침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마음속에 수용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의 말씀의 결핍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별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해서든지 즉시 병이 낫는지만을 생각했다.
그들의 모든 관심을 진리자체에 있진 앓고 그들의 몸에 필요한 이적에만 있다, 완본은 말하기를"여러 해 동안 병이 완전히"
5) 기도의 능력
교회는 주의 종들에게 기도해야 하는 곳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 가기 전에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때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함께 모일 때 우리는 병자에게, 괴롬 받는 자에게, 모든 종류의 결핍자에게 성서러운 일은 베풀 수 있으며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당신은 반드시 적의 힘의 강함을 평가한 우수한 힘과 예수 그리스도의 힘과 성령의 능력으로 적들과 만날 준비하기 위해서 기도를 준비해야 합니다.
현대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그리고 보디 좋은 기계문명이나 새로운 조직도, 신기하고 기발한 방법도 아니고 성령이 쓰실 수 있는 사람→기도에 능한 사람
기도의 사람을 필요로 한다. 성령은 방법을 통해서 흘러나오지 않고 사람을 통해서 역사한다. 그는 기계문명 위에 임하지 않고 사람들 위에 임한다.
성령은 계획에 부어지지 않고 사람에 기도의 사람에게 부어진다. 설교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기도는 설교자의 가장 큰 무기이다.
참된 설교는 골방에서 이뤄진다, 그 사람- 하나님의
병자를 위한 안수기도와 그 횟수:
병자를 위해서 안수 시도는 몇 번을 해야 하는가?
치유에도 단계가 있다. 한꺼번에 완전히 치유되는 것보다 시간이 감에 따라 점차 나아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①고통 멈춤- 치유 시작
②부작용 제거
③완전한 치유가 안 된 상태에서 병을 안정시킴
④완전 치료
예수님도 반복해서 안수한 적 있다
막8:23-25 맹인에게~~~
①처음엔 희미하게 보임
②나중엔 완전히 보임
※신유집회시 앙케트 조사※
①완전히 나았다(25%).
②나아가고 있다(50%)
③아무 일도 없었다(25%)
이것은 치유를 위한 단 한 번의 기도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치유의 기도는 종종 점진적이다. 그것은 시간을 요구한다.
※치유의 사역에 있어서 문제 집중의 한가지는 기도를 통해 병이 나아가는 사람에게
"이제 당신은 완전히 나았음을 믿어야 합니다. 다시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에게 대한 당신의 마음의 결핍되었다는 것이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완전히 나았다는 하나님의 계시나 의사의 진단이 있을 때까지 계속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8:7-8 렘29:12-13
방언의 기도와 신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는 새로운 언어를 갖게 한다. 방언 기도를 영으로 드리는 기도는 완전한 건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계속 좋은 건강을 갖기 위해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방언으로 기도할 때 나는 내가 원하는 목표하는 것을 직통으로 하나님에게 아뢰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방언을 통역하는 것은 내가 알아들을 수가 있는 우리말로 그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내 마음에 직접 알려준 것이 됩니다.
방언 기도의 능력은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언어 중추신경이 전신경을 진행하기 때문에 영과 같이 방언 기도를 하게 되면 영의 말에 전신경이 지배받기 때문에 치료의 역사가 더 빨리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많이 말한 것을 감사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통역하여 깨달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나에게 완전한 건강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또한 성령으로 기도하며 내 마음으로 통역하는 것은 나의 마음을 새롭게 해줍니다.
능력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십시오. 선언하고 보게 하십시오. 바울은"이 복음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밝혀지고 모든 사람으로 사용 가능케 하십시오.
말씀을 믿고 당신의 환경에 적응시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사탄의 능력과 만날 때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권능이 승리를 거둡니다. 그자와 질병은 사탄의 능력의 말로입니다.
당신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여금 사탄의 능력에 대항케 하십시오. 그러면 죄, 질병과 같은 사탄의 능력은 물러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 10:19 "내가 너희에게 뱀(우리로 죄 짓게 하는 사탄의 능력)과 전갈(우리로 병들게 하는 사탄의 능력)을 밝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한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때로는 하나님의 권능이 임재해 있음으로써 특별히 병 고침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는데도 예배 중에 병이 낫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영으로 임하여계시면 하나님의 권능도 이와 같아 말씀과 영 가운데 예배 중에 병이 낫곤 합니다.
@말씀과 영 가운데 주와 동거하십시오, 그러면 말씀과 영의 능력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에는 능력도 동시에 따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하게 되자 주님의 능력이 임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선포할 때 주님의 능력이 임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그의 말씀과 성령 가운데 계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치료받는데 필요한 능력은 생각보다 당신과 가까이 있습니다.
한번 치료의 경험을 얻게 되면 영감을 얻게 되고 믿음이 담대해져서 병자를 치료하는데 강력한 자가 됩니다.
설교자의 입술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 있습니다.
롬10:8"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다음 하나님의 약속에도 귀를 기울이십시오.
렘:5:14"그들이 이 말을 하였던 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그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Ex) 김익두 목사는 집회할 때마다 회개와 능력이 나타났다. 강단에 올라갈 때마다 회개의 역사가 나타났다.
그가 철저하게 회개했기 때문에 회개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다. 회개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날수록 능력이 강하게 나타난다.
권능:
행1: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변호사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다.
"내가 너희에게 이를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주의 종은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므로 사역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유의 권능으로 글 증거를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이 시대는 능력 있는 전도자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좀처럼 주님 앞에 머무르셔서 그들의 영적 경험을 진보시키려 하지 않거나 아예 그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은혜받은 성도 가운데 99.9%가 단지 방언을 하고 성령의 선물을 받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성령의 선물이 아닌 성령의 권능입니다.
행1:8"성령이 임하면→권능을 받고→증인"이 된다고 했다.
수백만 명의 은사 체험을 한 사람이 있으나 성령의 옷을 입어 권능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러므로 세상의 절반이 아직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성령 충만할 때는 명령해야지 기도하면 효과가 없다. !공중앞에서 큰소리로 해야 한다. 여리고 성도 먼저 무너진다고 말했다.
바울은 죽은 유두고를 보고 먼저 이 아이에게 생명이 있다고 말했다. 성령 충만하면 말을 해야 한다.
환상, 꿈을 보여주면 말을 해야 한다. 성령님이 아무리 역사하려 해도 믿음의 말을 선포하지 않으면 기도도, 신유역사도, 창조의 역사도 안 일어난다.
믿음의 말을 해야 신유 역사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종류의 말을 사용해야 하는가?
ⓐ환자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마을 사용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소개하고 그뜻을 !사명해준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면
누구든지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 받고 영생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을 설명 해주 것,
그다음에 환자에게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따라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도록 기도를 인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되면 !자연인의 영역에서 영적인 사람의 영역으로 자신의 위치가 바뀌게 되며, 영적인 위치에 있으면 영적인 상태가 몸속에도
나타나는데, 그 열매가 바로 치유이다.
ⓑ환자의 감정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말씀을 사용해야 한다.
환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가 가능하다는 치유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
치유가 가능하다는 감정, 즉 치유의 확신을 둬야 한다. 이런 감정을 주기 위해서 우리는 막9:23과 같은 성구를 인용할 수 있다.
"할 수가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모든 질병을 치유하시기 원하시며, 또 치유 하실 수 있다는 것을 환자에게 알고 느끼게 한다,
시 103:3과 같은 말을 인용하면 대단히 효과가 크다 "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여기에서 "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는 주절을
잘 깨우쳐주어야 한다. 지금 환자가 가지고 있는 바로 그 병도 하나님의 치료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그 환자의 육체적인 문제 즉 병 자체를 치유 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병을 십자가에서 짊어지고 가셨다는 것을 깨우쳐준다고 마8:17 그리고 환자에게 당신이 인도하는 치유의 기도를 따라 하도록 부탁한다.
그리하면 치유의 능력이 그의 영혼 속에 흘러넘쳐 정신의 세계와 육체의 세계를 지배하게 되고 그리하면 차차 세포 속에 들어있는 병균이 적응을 못 하고 시들어 버리거나
떠나가게 되어 그 환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를 위해서 필요한 또 한 가지 종류의 말이 있다. 그것은 명령하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만나는 환자들에 명령하셨다.
권능이 나타나는 단계:
이 단계를 올라가야 하고 4단계 권능이 나타남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멈추어 버림 3단계 방언하고 은산 체험함
2단계 성령 임한 단계
1단계 은혜 사모하는 단계
우리는 축복의 단계(은혜·은사 체험)에서 권능의 세계로 도약해야 합니다.
방언하고 성령과 교통하는 시쁨의 단계를 뛰어넘어 권능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은사 체험자 중 소수의 사람만이 권능의 세계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은혜는 받았으나 마귀를 쳐부수는데 필요한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은 병든 자를 치유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약속했습니다. 막16:17-18 인간은 자연 과학에서(의학, 우주기술, 컴퓨터과학)
도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면에도 도약해야 합니다. 교회는 원래 권능을 바탕으로
태어났습니다. 타오르는 불꽃, 방언, 기적, 권능이 있었습니다.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던 것은 예수님이 행한 기적을 보고 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치유의 장소로 이용되기를 원한 계십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치유센터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형제의 당신이란 존재 모두를 하나님께 완전히 바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만일 설교단에 올라선 모든 목사가 그가 항상 전파하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증거를 만들어낸 영적인 잠재력이 있다면 벌써 세상을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적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지만, 기적의 시대란 끝이 없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있을 뿐이요, 기적의 하나님이 있을 뿐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행적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죽었지만, 성령은 죽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옛날 사도들과 똑같은 과업인 복음 전파의 사면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기적을 행하는 방법에 따라 표적이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것과 같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직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이 생명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우리는 제자들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마28:18"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막16:20"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제자들은 그들이 복음을 들고 나갈 때 예수님이 보여준 예시와 방법을 따랐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준 권력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힘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적과 대항하여 싸워 적을 쳐부술 필요한 도구 무기, 힘과 권세를 주어서 보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그의 일을 행하여 할 우리에게 마귀를 대적하러 보내실 때 권능과 힘을 주어서 보내신 것입니다.
마28:18"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10:1"예수님께서 그 열두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사 권능을 주시니라“
마10:8"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병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
요20:21"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권세를 위임했고(마28:18)→제자들에게→오늘날은 주의 종들에게 권세를 주었다. 베드로는 위임된 그 권세를 사용하여 앉은뱅이를 일으켰다. 행3:6
"내게 있는 것으로"=위임된 권세
"네게 주노니"=사용함
요14: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 감이니라“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예수님 당시와 같은 능력과 기적이 나타날 수 있다
딤후3:5"경건의 요향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과 가까이 교체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목자들이 하나님의 치료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겔34:4"…. 너희가 그런 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메어 주지 아니하며---“
여러분이 예수님과 그의 능력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어놓는 정도에 따라 주님의 능력은 당신 손에서 당신을 위해 역사하심이라. 영혼의 구원과 육체의 치료는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모든 귀신은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눅9:1
이러한 능력과 권세가 자기의 것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 능력을 주셨는데도"오 주여, 지금 능력을 주소서"라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Ex) 어떤 병자가"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를 낳음을 얻었나니" 벧전:2:24 구절을 만 번 읽는 중에 병 고침을 받았다. 전 신경이 낳았다는 보고를 받고서 치료가 급속히 된 것이다. 우리의 모든 언어를 하나님의 말씀에 맡겨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 중추신경을 습관적으로 마귀에게 맡길 때가 많다."나는 안된다." "죽겠다"등 그러니 행동이 그렇게 되고 삶이 그렇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나는 건강하다고" 선포하게 하여라
치료자가 환자에게 믿음의 말을 선포해야 한다.
예수님은 환자에게 믿음의 말을 하여 병을 고쳤다.
4 복음서에 나오는 41건의 치유역사 가운데 18건은 예수님의 말에 의해서 고쳤다.
문둥병자에게 "깨끗하게 될지어다" (마8:2-3)
앉은뱅이게 "일어서라"(요5:8)
장님에게 "보라"(눅7:32-35)
귀머거리에게 "들으라."(막7:32-35)
귀신에게 "나가라"(마9:32-35)
파도에게 "잔잔하라"(막4:39)
죽은 자에게 "나사로야 나오너라"(요11:43)
예수님은 단호하게 병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셨고
말씀을 선포하실 때마다 치료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성령 충만할 때는 우리도 병자를 향하여 명령 해야 합니다.
"나사렛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서 걸으라."(행3:6)
그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조짐이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우리도 담대히 말해야 합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여러분도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셨고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말씀을 말 할 수 있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책임을 완수 할 수 있는 권세를 주지 않고 난 그에게 책임을 맡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의 모든 곳에서 그 자신을 위하여 증인을 만들어낼 책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권세를 예수님이 이 땅에 있을 때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었고 현재는 그의 제자로서의 우리에게 권세를 주었습니다.
요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창1:@에 보면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빛이 있으라."고 말을 했을 때 그때 빛이 있게 되는 창조의 역사가 일어났다.
분명 언어를 말해야 한다. 예수님도 믿음의 최고의 표현으로써 언제나 믿음의 말을 했지
빌은 적은 없었다. 제자들도 빌어서 병 고친 자 없다. 모두 명령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간절히 기도 했지만 일선에 나와서 사역 할 때는 입으로 명령했다. 즉 믿음의 말을 했다. 강단에서 환자를 보고 믿음의 분명한 말을 하자, 믿음으로 분명히 선포해야 한다.
사람은 바로 골방에서 이뤄진다. 그의 생명과 그의 가장 깊은 확신들은 그와 하나님과의 숨은 교회에서 태어난다. 짐이 되고 찢어지지는 듯한 영의 번민, 그의 가장 무겁고 가장 포근한 설교는 홀로 하나님과 있을 때 얻게 된다. 기도는 사람을 만든다. 기도는 설교자를 만든다.
기도는 목사를 만든다. 그의 생활고 사역의 때와 같이 기도가 큰 능력이 되지 못하는 모든 설교자는 하나님의 사역에 무능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이 세상에 옮기는 일을 약화하는 요인이 된다.
기도로 치유 받았다가 다시 재발하는 경우: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기도를 통하여 치료와 건강을 얻는 반면에 이 중 많은 사람들이 일단 얻은 건강을 계속 유지하지 못하고 예전 상태로 돌아가거나 혹은 더 나쁜 건강 상태에 이르기도 하는데 이런 결과를 보고 적잖은 사람들이 혼란을 일으킵니다.
Ex) 어떤 사람은 부흥회나 병 고침의 은사가 충만한 집회에 참석해 있는 동안은 기분이나 건강 상태가 아주 좋답니다. 그러나 부흥사가 마을 떠날 즈음에는 즉시"건강을 잃어버립니다" 정말 어떤 경우에는 치료의 효력이 단지 며칠만 유효하거나 겨우 하룻저녁만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가 기분에다 너무 큰 비중을 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분이 좋으면 치료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에는 우리의 치료함은 우리의 기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근거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보는 것으로 말미암지 않고 단순히 믿는 것입니다. 거짓 영들은 믿음과 기분의 상호관계를 바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이 사람을 종종 손쉬운 표적으로 삼아 이용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기분을 그의 공격 목표로 합니다.
그리하여 자칫 우리의 기분이 믿음의 투쟁을 위한 사탄과의 전쟁터가 됩니다.
Ex) 어떤 사람이 병이 들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는 병자들이 많은 고침 받는다는 부흥 성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병 고침을 받습니다. 고통스럽고 굳었던 몸을 새로운 변화를 받았습니다. 한편 쫓겨나간 귀신은 이제 다시 들어갈 사람 몸을 찾아 나섰습니다. 지금 이 악령은 들어가 살만한 마땅한 곳이 없어 주택문제로 고심합니다.
부흥회가 계속되자 더 많은 귀신이 쫓겨나와 집을 일은 악령의 수가 급증합니다.
한동안 찾아 헤맸으나 있을 곳을 찾지 못한 집 없는 귀신은 다시 처음부터 수색을 개시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쫓겨나온 그 사람들에게로 돌아가 봅니다. 이 사람이 아직 x를 그의 구주로 영접도 하지 않고 교회도 다니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이 귀신을 대단히 기뻐합니다. 이 사람은 영적 공백 상태에 처해 잇습니다. x께서 계셔야 할 곳이 텅 비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귀신을 자기처럼 집을 잃어버리고 헤매고 있는 일곱 무리의 귀신들을 불러서 자기가 살던 옛집에 다시 들어가 병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은혜로 치료받고 난 다음에 다시 병마가 들지 못하도록 말씀과 기도하며 말씀에 의존해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눅11:24-26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던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려 하고 와보니 그 집에 노쇠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신유와 믿음:
믿음은 병 고침 받는데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약5:15"!믿음위기될!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일으키시리라“
예수님께서도 병든 자를 고치실 때 대부분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고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허락한 모든 것은 믿음으로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도 믿음으로, 축복, 영생, 하나님 자녀 되는 권세도 믿음으로 받습니다.
병 고침도 믿음으로 받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느냐?
하나님은 모든 병을 고치시는 의사가 되시며 지금도 병을 고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출15:26) 병 고침을 받으려면 신약시대 예수님 당시에만 병 고침 받는 기적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 주님은 병을 고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Ex) 시계가 고장 나면 시계방에 가서 고치듯이 인간의 몸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정확하게 고치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다 동일하십니다.
치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나에게 주신 그것을 믿어라.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인간의 신뢰를 의미한다. 벧전2:24"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Ex) 어느 환자가 이 구절을 읽다가 나에게 준 말씀으로 믿음으로 일어나서 걷게 되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약속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준 보증수표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수표는 여러분 것이므로 그것을 가지고 은행에서 언제나 현찰로 바꿀 수 있는 것 같이 여러분은 기도로써 그 모든 약속들을 현실로 청구 할 수 있습니다. 신유에 대한 약속은 지금도 살아있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믿고 구한 것은 이미 받았다고 믿으십시오. 믿음이란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것을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행28:8
마8:3에 보면 예수님도 안수하여 문둥병자를 고치셨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아라.“
안수기도하는 사람이 안수기도를 할 때에, 그 사람 속에 축적되어 있던 치유의 힘이 환자의 몸속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영적인 힘에 물리적인 힘으로 전환되는 상태이다.
어떤 경우엔 손을 댄 곳이 시커멓게 멍이 든 현상도 일어나는데, 그것은 안수 자의 속에 있던 영적인 힘이 안수받는 사람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인데, 이 경우엔 즉석에서의 치유가 나타난다.
자신에게서 치유의 능력이 나가고 있음을 확실히 느끼며 또한 안수받은 환자 자신도 어떤 힘이 자기의 몸속에 흘러들어와 몸이 뜨거운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엔 치료의 열매가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병자를 강단 앞으로 나오게 해서 안수 기도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믿음의 말을 선포함으로 치료한다. (받은 권세를 사용하는 것 마9:5-8)
우리가 치유의 사역을 실천할 때 우리는 그 환자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주어야 한다.
4 복음에 나오는 41건의 치유역사 가운데서 18번은 말씀에 의해서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초자연적인 치유의 능력을 전달함에 있어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신다.
①환자 자신이 자신에게 건강에 관한 믿음의 말을 선포하게 한다.
미국의 저명한 뇌 신경 의사가 뇌수술 결과 언어 중추신경이 모든 신경을 다 지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약3:1-6에 보면 "말은 능히 온몸도 굴레 씌위리라"라고 했다.
그러므로 인간을 변화시킬려면 인간의 언어부터 변경해야 한다. 병을 고치려면 먼저 환자 자신의 언어를 바꾸어 주어야 한다. "내가 병이 낫는다"라고 자꾸 해야 다른 신경이 지배받아 그런 태도로 개발된다.
Ex) 예를 들면 감기가 올 때 "나는 감기 들렸다"라고 언어 중추신경이 말하고 나면 전신경이 전화를 걸어서"여보시오 총본부에서 감기가 오겠다고 하니 감기 맞이할 준비를 하시오“
이때 전신경이 감기 맞을 준비를 한다는 것입니다. 중추신경이 명령했으니 환영할 준비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언어를 하나님의 말씀에 걸어야 한다. 성령님의 지배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언어 중추신경을 하나님의 말씀에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긍정적이요 창조적이기 때문입니다. 언어 중추신경을 하나님의 말씀에 맡기어 놓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말하며 내가 구한 것을 느끼거나 보기 전에 벌써 받은 줄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만 기초를 두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이성과 하나님의 말씀과 투쟁 마당이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가 병 낫기를 기도하지만 어떤 데는 응답에 속히 오지 않습니다. 여전히 괴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다고" 선언합니다. 반대로 이성은 선언하여 말하기를"<여전히 아프지 않으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이성의 소리를 던져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는 때는 바로 이때입니다.
내 감각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잠 4:20-22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이것을 내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을 얻는 자에게는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라" 그 말씀하고 있습니다.
②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을 행동에 옮깁니다.
약2:26"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마음속에 믿고 있는 믿음을 행동에 옮길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Ex) 혹 붙이고 낫 없다고 간증한 사람
신유 집회 및 병자 안수 적용원리:
모든 성령의 역사는 영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신유 역사가 나타나는데도 영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1. 설교하는 방법:
①설교 내용이 신유에 관한 말씀을 전할 것(롬10:17)
②설교를 강력하게 할 것 설교가 클라이맥스에 올라갔을 때, 성령에 사로잡혔을 때 높은 음성으로 강력하게 설교할 때 능력이 나타난다. 성령의 능력 없이 설교하는 것이 문제다. 진리는 능력이다.
③눈물을 머금고 청중에게 설교하라
④설교하면서 중요하고 단순한 말을 반복하며 또는 따라서 하게 할 것
⑤능력의 집회는 유도어를 너무 많이 사용하면 능력이 약화한다. 그러므로 유도어를 사용 말고 강력하게 할 것.
2. 안수하는 방법:
①통성 기도시켜놓고 아픈 부분에 환자 자신이 손을 대게 하고 안수 할 것
②그 자리에서 환자 일어나게 하고 아픈 부분에 손을 대게 한 뒤 강단에서 전체적으로 안수한다.
③사람이 적을 때는 강단으로 나오게 하여 안수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로고스와 레에마(능력이 임한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헬라어에서 보면 2개의 단어가 있다.
①로고스: 창세기-계시록까지의 과거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로고스이다.
로고슨 또한 말하여진 것, 쓰여있는 말 이상의 것으로서, 말씀 그 자신, 살아계신 말씀,
그리스도 즉 로고스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로고스:The said word of GOD(과거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
② 레에마: 하나님의 특정한 언어를 특정한 사람에게 특정한 시간에 말하는 것이 레에마다.
로고스가 과거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레에마는 현재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레에마이다.
레에마:The saying word of GOD(현재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
레에마란 로고스의 확대된 뜻으로써 하나님에게서 나온 말씀을 뜻합니다. 레에마는 하나님의 정신을 담고 있으며 말씀 된 거, 또는 기록 된 말씀을 뜻합니다.
레에마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 행동이란 뜻하고 있습니다. 레에마는 로고스 자체에 의지하여 오게 됩니다. 레아마안에 하나님의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았을 때,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당신에게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말씀이 전하여 졌을 때, 믿음 때문에
수고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레에마)과 함께 이미 와있습니다.
롬10:17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 말씀뿐만 아니라 말씀까지도 담겨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로고스가 변하여 레에마가 되어야 능력의 역사 치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로고스의 말씀이 나에게 부딪쳐와서 감화 감동을 줄 때는 로고스가 레에마로 변한 것입니다.
※로고스의 말씀 레에마로 변하려면:
①설교자가 성령 충만해야 한다.
②기도 많이 해야 한다.
③성령님과의 교제를 끊치 말아야 한다.
※요한복음 5장의 베데스다 연못도 그 물이 동할 때만 들어가야 병이 낫고 기적이 일어났다.
그 물이 동하지 않을 때는 들어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도 성령이
감화 감동하여 로고스의 말씀이 레에마로 변한 말씀을 가지고 설교할 때 역사가 일어난다.
※내가 교인들에게 로고스를 먹이고 있지 않으냐?
레에마를 받아서 교인들에게 먹여야 한다. 강단에 설 때마다 레에마를 받아서 전하면
모든 성도가 은혜받고 감동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로고스를 먹이면 성경 지식만 늘어나고 생명이 없다. 그의 지식적으로는 깨 닫을지 몰라도 그의 영혼에는 양식이 되지 못하며 축복이 되지 못한다.
※내가 하는 일에 레에마를 받고 하느냐?
목사는 로고스가 아니고 레에마를 먹어야 하며, 성도들에게 레에마를 먹여야 한다. 레에마를 받도록 말씀 보며 묵상하며 기도하라. 일단 레에마를 받으면 시행하자.
하나님의 믿음(겨자씨만 한 믿음) 가져야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롬10:17)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믿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2가지 형태입니다. !그가 문이되야하므로 사람 보는 사!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되셔진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믿음을 갖게 됩니다.
살아계신 말씀은 그 영원함으로 인하여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항상 현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단순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다 너무 해석을 많이 붙여서 찢어놓고 갈라놓아서 말씀 속에 있는 살아 있는 능력이 상실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현재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과거에 주신 말씀으로만 생각지 맙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 그 자신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살아계신 말씀은 현재의 장면에 기초를 둘 것입니다.
요11장에 죽은 나사로 살린 얘기가 나오는데 나사로가 죽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오셨을 때 마르다가 말하기를"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나사로는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하자
예수님은"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마르다는 과거에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병을 고칠 수 있었을 것이요 미래에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리라는 것을 말고 있으나 예수님은 현재의 살아있는 말씀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현재입니다. 그의 말씀도 현재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현재입니다. 과고도 미래도 없는 영원하신 분입니다. 예수님도 현재입니다.
그래서 계1:8"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고 말씀하시면서 현재의 주님을 가장 강조하면서
먼저 입증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환경 공격해 감정을 통해)하는 것입니다.
(말씀 뺏어 설교 귀 막고 기도만 중요하게)
①사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하나님 자체)을 공격하려다가 루시퍼는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②말씀이 육신이 되고 불 공격→죽임③이제 사탄은 기록되셔진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죽은 말씀이라고,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을 믿었지만 그대로 안 이루어졌다고 공격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기록된 생명력이 없는 지식적인 말씀으로만 남아있도록 공격합니다. 말씀을 읽지도 못하도록, 듣지 못하도록, 기도하지 못하도록 공격합니다.
※말씀의 밭이 우리의 마음 밭이 옥토 밭이 되지 못하고 돌짝 밭(감정 신앙 문제 만나면 넘어지고) 길가 밭, 가시넝쿨 밭이 되도록 공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그대를 이뤄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암송할수록 우리의 적 마귀와의 싸움에서 당신은 더 강한 성령의 불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위대한!거리를 아는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말씀의 지식은 당신에게 능력 있고 승리하는 삶을 지속시켜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안에 "기적의 삶을 위한 기적의 원리"를 장치해 두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우리는 그 사람과 거스름으로써 상호 간에 가지고 있었던 긴장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을 수가 있다. 미움은 질병을 유발하지만 용서는 건강의 근원이 된다.
@사랑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이라고 선언하셨다. 예수님의 가슴속엔 늘 사랑이 있었다. 사랑은 생명체로서 생명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바로 이 힘이 우리 몸속에 들어오는 질병을 치유해준다.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병든 적이 없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예수님께서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에서 나오는 생명력이 그의 몸을 적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건강한 삶을 살아가려면 남을 용서해주는 것은 물론 더욱 적극적으로 남을 사랑함으로써 우리의 육체 속에 생명력이 흘러넘치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사탄에 대하여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사탄을 대적하려고 하셨다.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우리가 마귀를 대적할 때 그는 우리에게서 도망간다, 우리가 주안에서 가지고 있는 힘은 거대한 힘이다, 우리가 사탄의 영 안에서 생활할 때 우리의 영과 마음과 육신이 병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가 마귀를 대적할 때 마귀는 물러가고 우리는 성령의 치유의 능력 안에 있게 된다.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의 치유 능력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다. 건강은 하나님의 뜻이며 또한 감사도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건강을 얻을 수가 있다.
경외: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우리가 건강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력을 많이 공급받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연세는 짧아지느니라"잠10:27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려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4:2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것을 물론 우리 몸속에 하나님의 치료 빛이 나타나서 병을 치료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순종: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그는 우리를 악령의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질병의 침투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에게 복종하지 않을 때,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의 삶을 살아갈 때에는 하나님의 보호 손길이 우리에게 멀어지려 그 대신에 질병을 유발하는 영이 우리의 마음속에 침투하여 몸속에 병을 일으키게 한다. 출15:26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건강을 지켜주시던 손을 철수하신다. 그리하면 자연히 병마는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괸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신28:15-22
을 없애고 자연법칙을 어기고자 하는 마음(욕심 등)은 제거해야 한다.
아래 그림에서 의사들은 A나 B의 관점에서 병의 치유를 시도하고, 믿음을 통한 치유를 시도하는 상황은 C,D,E,F, G 과정에서 치유한다. 의사들의 치료와 신앙 치유는 이와 같아 상반되는 관계가 아니고 공존하며 보완적인 관계로 인간치유의 역할은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죄
G F E D C B A
사탄→죄, 타락→악령 귀신→나쁜 감정→신경조직→병균→질병
자연법칙을 깨뜨림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은 우리의 건강에 대하여 그의 뜻을 성경 말씀 속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요3서2절"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주하노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병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건강한 데 있다.
만약 병을 고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의사를 찾아가는 것도 죄를 짓는 결과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는데 의사와 모의를 하기 위해 가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따라서 모든 의사가 간호사는 범법자가 되고 모든 병원은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은 사탄이며 온전케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 많으시고 하나님의 성품 자체가 병자를 치료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시103:3에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말씀했는데 주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해짐같이 그는 또한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유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병을 고치신다고 했는데 왜 낫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있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은 명확하다. 주님께서 모든 좌약을 사하셨으니 십자가의 구속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유해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병을 고치시기를 원하시지만, 사람들이 어떤 방해요인에서든지 하나님의 치유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낫지 못하는 병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제 1뜻은 육체의 완전한 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병을 앓게 된 경우엔 그 병을 통하여 영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제2의 뜻이다.
신유역사를 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
1. 잘못된 개념:
스티븐 힐은 치유에 장대가 되는 몇 가지의 그릇된 개념을 지적하고 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많은 사람이 병을 고침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들의 병을 앓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잘못된 개념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병들었을 때 영광을 받으시는가?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병들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신다고 한다.
만약에 인간이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면 우리는 병자를 치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치료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많이 받으신 셈이 된다.
병든 고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고 병을 치료함으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예수님도 친히 병자들을 고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것이다.
요11:4에 "예수님꼐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여기서"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라고 한 것은 병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이 아니다. 그 병을 치료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랬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심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
(2)고난
사람들의 자주 잘못 해석하는 성경중의 하나가 벧전 5:10 이다
" 모든은혜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벧전5:10) 여기에서 고난을 질병에 국한시켜 질병의 고난 을 통하여 우리를 온전히 하신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고난은 질병을 의미 하는것이 아니라 박해를 말한다.
(3) 만약 당신의 뜻이라면: 어떤 사람들은 병자를 위해 기도할때 "만약 당신의 뜻이라면" 이란 하나님의 뜻이라면 고쳐 달라고 기도하는 일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인도에 대한 불확신에서 오는 현상이다. 또는 하나님 뜻에 대한 지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나님은 이미 성경에서 우리의 모든병을 고치시기를 원하신다고 선포하셨다 (시 103:3) 주님은 환자를 위해 기도하실 때 " 만약 당신의 뜻이어든 이 환자를 낫게하여 주옵소서" 라는 식으로 기도하신 적이 한번도 없으셨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죄사함 받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모든 병자가 병치유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시103:3)(2)고난
사람들의 자주 잘못 해석하는 성경중의 하나가 벧전 5:10 이다
" 모든은혜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벧전5:10) 여기에서 고난을 질병에 국한시켜 질병의 고난 을 통하여 우리를 온전히 하신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고난은 질병을 의미 하는것이 아니라 박해를 말한다.
(3) 만약 당신의 뜻이라면: 어떤 사람들은 병자를 위해 기도할때 "만약 당신의 뜻이라면" 이란 하나님의 뜻이라면 고쳐 달라고 기도하는 일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인도에 대한 불확신에서 오는 현상이다. 또는 하나님 뜻에 대한 지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나님은 이미 성경에서 우리의 모든병을 고치시기를 원하신다고 선포하셨다 (시 103:3) 주님은 환자를 위해 기도하실 때 " 만약 당신의 뜻이어든 이 환자를 낫게하여 주옵소서" 라는 식으로 기도하신 적이 한번도 없으셨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죄사함 받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모든 병자가 병치유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시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