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1 호텔 - 장감독방
민규와 태섭이 양쪽 손에 컵 라면을 들고 들어온다
장감독과 촬영감독이 반갑게 맞는다
촬영감독 아니, 이런 좋은 게 있었어?
민규 하하, 이거 드시고 느끼한 속 확 푸시라구요
이거 제 비상식량인데 특별히 드리는 겁니다
장감독 고맙네, 고마워. 아까 소리지른 보람이 있었구만
넷이서 맛있게 컵 라면을 먹는다
촬영감독 카아, 정말 맛있네, 이 국물~
여기다 쐬주 한 잔만 착 곁들이면 금상첨활텐데 말야
민규 쐬주는 없고 맥주라도 드릴까요?
촬영감독 이 사람아, 같이 먹을게 따로 있지
라면국물과 맥주가 어떻게 친구가 되겠어?
민규 하, 뭐 어때요, 저는 위스키에다 김치도 먹었는데.....
촬영감독 그래, 자네 혼자 많이 먹게
장감독 근데 경은인 아직 안 돌아왔나?
태섭 그런 것 같아요
장감독 어이, 조감독, 경은이 방에 전화 좀 해봐
민규 들어오면 이쪽부터 들르겠죠
#2 라인강 선착장
배에서 내리는 두 사람
경은 자아, 이젠 밥도 먹고 배도 탔으니 어디로 가죠?
마리 너무 늦지 않았어요?
경은 괜찮아요,
내일 아침부터 촬영이니까 그 안에 만 가면 되요, (시계를 본다)
시간이 진짜 빨리 간다. 그쵸?
마리 (고개를 끄덕인다)
경은 와아. 독일 사람들은 진짜 잠도 일찍 자나보네
어떻게 문을 연 가게가 없냐?
시내로 나가 볼래요?
마리 거기도 마찬가지에요
여긴 술집이랑 식당 빼곤 거의 다 8시안에 문닫아버려요
술집도 그렇게 늦게 까진 안 하는 것 같구......
작은 도시로 갈수록 더 일찍 닫는데요...
경은 와아. 그럼 도대체 얘네들은 어디서 논대요?
마리 집에서 놀죠, 가족들과 함께....
경은 그럼 어쩌지?
난 마리씨랑 좀 더 있고 싶은데.....
마리 (잠시 생각하다가) 그럼.... 우리 집에 갈래요?
언니랑 형부는 스키 타러 갔고
조카들도 캠프 가고 아무도 없는데......
경은 (표정이 밝아지며) 정말? 에이, 진작 말하지
빨리 가요, 빨리 (마리의 손을 잡아끈다)
#3 정소영의 방
마리가 소영의 얼굴에 팩을 발라주고 있다.
소영 아이, 뭐야, 경은 선배, 아직도 안 오구,.....
언니, 선배 방에 전화한번 또 해봐
미라 말하지 말고 가만있어, 주름살 생겨
소영 전화한번 해봐
미라 좀 전에 전화한지 3분도 안 지났어
소영 3분 안에 들어왔을지도 모르잖아 (미라를 밀어내며)
하기 싫음 비켜, 내가 할게
(수화기를 들고 방 번호를 누른다 ==== 수화기를 신경질적으로 내려놓는
다.)
#4 초희의 저택 - 거실
경은이 쇼파에 앉아있고 마리가 와인과 잔을 가져온다
경은이 와인의 코르크마개를 따고 마리와 자신의 잔에 따르고 건배한다.
경은 정말 좋네요, 여기
마리 (씁슬하게 웃으며) 그렇죠? 그럼 뭘 해요. 내 집도 아닌데....
경은 나중에 이보다 더 좋은 집 사면되지
마리 어떻게요?
경은 언니도 해내셨잖아요, 마리라고 못 할거 있어요?
마리 난 우리언니처럼 못해요, 강하고 똑똑하고 영리하고.....
근데 언니가 가지지 못한 게 하나 있긴 해요
경은 그게 뭔데요?
마리 남편이요
경은 남편 있잖아요
마리 (고개를 흔들며) 좋은 남편이요
경은 형부가 안 좋아요?
마리 (말할지 말지 잠시 생각) 저한테 자꾸 추근거려요
경은 (깜짝 놀라며) 네에? 아니 그런 나쁜 놈이.....
마리 그날, 술 취했던 날도 집에 혼자 있는데 자꾸 추근 대는 거예요
그래서 정강이를 걷어차고 도망 나와 버렸어요
경은 잘 했어요
마리 언닌 왜 그런 남자와 함께 사는지 모르겠어요
사업도 거의 언니가 꾸려나가고
중요한 결정도 언니가 하는 것 같던데......
난 정말 싫어 (소름끼치듯 몸을 오싹한다.)
경은 마리의 등을 다독거리며 다정히 웃는다.
경은 어두워서 안 보이는데 저 창밖엔 뭐가 있어요?
마리 알아 맞춰 보세요
경은 정원?
마리 (일어나 창 쪽으로 가서 벽에 붙은 스위치를 켠다)
통 유리창 저편으로 밤바람에 출렁거리는 수영장이 보인다
경은 (감탄한다) 와아
마리 나가 볼래요?
#5 수영장
경은 수영 잘 해요?
마리 저 섬 마을 출신 이예요
어렸을 때 놀이터가 물이었어요
경은 그래요 ? 나랑 시합 할래요?
마리 지금요?
경은 (고개를 끄덕인다)
마리 수영복도 없이?
경은 (장난스럽게) 뭐 어때요? (마리를 데리고 함께 물 속에 뛰어든다)
마리 까악!
경은 자, 나 따라 와봐요 (수영한다)
마리 (경은을 따라 잡으려 악착같이 헤엄쳐나간다)
경은이 갑자기 멈추고 일어선다
마리도 경은을 붙잡고 따라 일어선다.
마리 잡았다
마리가 물 밖으로 나와 경은을 붙잡은 순간 경은이 마리를 안고 열렬히 키스한다.
#6 초희의 저택 - 거실
목욕가운으로 갈아입은 경은이 머리를 털고 있다
마리가 들어온다.
마리 옷은 탈수해서 건조기에 넣었으니까 금방 마를 거예요
경은 엣취 - 엣취 - (콧물을 훌쩍이며 몸을 턴다)
마리 감기 걸렸나보다
잠깐만 요
#7 주방
소주잔처럼 작은 컵을 꺼내어 술병들이 있는 쪽으로 가서 럼을 찾아 컵에 따른다
#8 초희의 저택 - 거실
마리 이거 한잔 마셔보세요
언니가 감기 기운 있을 때 한잔씩 마시는 건데 다음날 좋아지더라구요
경은 (잔을 받아 마시고 무척 독한 듯 괴로워한다.)
마리 옷 마르면 내가 깨울게요
(담요를 덮어주며) 괴로우면 한숨 자요
경은 그럴까요? 그럼 조금만 눈감고 있을게요 (쇼파에 눕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경은이 바로 잠이 든다.
마리 (카펫 위에 앉아서 잠든 경은의 얼굴을 조심스레 만져본다
눈이랑, 코랑, 볼이랑, 입술 차례차례 그리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9 초희의 저택 앞(아침)
장감독 일행이 모두 서 있다
트럭에서는 촬영장비들을 내리느라 한 참이다
민규 (초조한 기색) 어쩌죠, 감독님
그때 한번 다 같이 와봐서
혹시 여기서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했는데......
장감독 (담배를 피워 물고) 흠-, 경은이 그렇게 지각없는 친구 아니니까
곧 올 걸세, 지가 여기서 가면 어디로 갔겠나.
자아, 들어가세,
명수가 벨을 누른다
#10 초희의 저택 - 거실
경은과 마리가 어젯밤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잠들어 있다.
초인종소리에 눈을 뜬 마리
사태를 짐작하고 깜짝 놀란다.
마리 (허둥지둥 당황하며) 어머, 어떡해, 어떡해
경은 (게슴츠레 눈을 뜨더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마리 지금 밖에 일행 분 들 도착 한 거 같아요
빨리 일어나요
경은 지금 몇 시예요? (시계를 본다)
윽, 어찌 이런 일이....
아, 마리, 내 옷
마리 (부리나케 세탁실로 달려간다)
#11 초희의 저택 앞
명수 집에 아무도 없을리가 없는데....... 이상하네
태섭 자고 있나보죠, 계속 눌러봐요
민규 집이 커서 문여는데도 오래 걸리나?
#12 초희의 저택 - 거실
마리 (경은에게 옷을 던져준다)
경은 (황급히 옷을 갈아입는다)
초인종은 계속 울려댄다. 마리가 허둥지둥 대다가 얼떨결에 키를 눌러버린다
마리 (거의 울 듯) 어떡해, 열렸어요
경은 (당황스럽다) 지금 열어버리면 어떡해요, 뒷문, 뒷문
마리 수영장 옆으로 난 나무들 따라서 쭉 가면 작은 문 하나 있어요
그거 안에서 열면 열려요
어머, 온다, 온다, 빨리 나가요, 빨리
(어떨결에 경은을 수영장으로 통하는 출입문으로 밀어 버린다)
장감독 일행이 들어온다, 그때 쇼파 위에 경은의 남방이 있는걸 보고 잽싸게 쇼파
방석 밑으로 숨긴다
민규 안녕하세요, 아무도 안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마리 죄, 죄송합니다. 지하에 있느라고 벨소릴 못 들었어요,
들어오세요
경은 (수영장 옆 숲에 숨어서 바지를 꿰어 입다가
일행들이 거실로 들어서자 놀라서 넘어져 버린다)
미라 저, 신발은 여기 그냥 둬도 되죠?
마리 네? 아, 네, (경은의 신발이 생각난다 - 갑자기 놀란 토끼눈)
신발!
미라 (놀라며) 네?
마리 아, 아니예요, 어서 들어가세요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서 경은의 신발을 몰래 넣는다)
모두들 쇼파에 앉아있다
마리가 비닐봉지를 들고 슬그머니 수영장 출입문 쪽으로 간다
민규 어디 가세요?
마리 (깜짝 놀라며) 네? 아~ 저기, 쓰, 쓰레기 버리러.......
하하
쓰레기통이 밖에 있어서요
#13 수영장
마리 (경은이 나무사이에 숨어있고 마리가 얼른 신발봉지를 던져 주고 간다)
#14 초희의 저택 - 거실
마리 저어, 차 한잔씩 드릴까요?
장감독 아닙니다. 우리가 앞으로 계속 신세 질 건데
손님대접 하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지냅시다
자, 우선 조명 설치할 자리 정하고
소영씬 경은씨 올 때까지 우선 씬 48부터 리허설 들어 갈 준비해요
자, 빨리 움직이자구
(순간 잽싸게 나무사이로 숨어서 뛰어가는 경은을 보고 만다 -
스텝들이 움직이려고 일어서려 하자 갑자기 큰소리로 박수를 치면서)
자, 자, 주목, 주목, 여길 봐요, 주목
(바깥 수영장 쪽을 보지 못하게 시선을 끈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 한마디 없이 장감독을 보고 있다. 경은이 무사히 뒷
문을 빠져나가는 것까지 보고 나서 안도하며 일행들을 바라본다,
모두들 뭔가 지시를 기다리는 표정
소영 (불러놓고 왜 아무 말 안 해? 하는 말투)
저희 주목했는데요, 더 해야돼요?
장감독 아, 저기, 음, 그러니까........
우리에게 차를 대접한다고 하셨는데
거절하는 것 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마리를 보며) 자, 차 한잔 주시겠습니까?
마리 (영문을 모르고) 네에, 그러죠,
미라 제가 도와줄게요 (함께 부엌으로 간다)
#15 부엌
마리가 차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는 미라
미라 집이 참 좋아요, 여기.... 따님.... 이세요?
마리 아뇨, 언니 집이에요
미라 네에. 좋겠다, 부자언니 있어서
마리 (웃으며) 네, 좋아요
두 여자가 함께 웃는다
#16 초희의 저택 - 거실
마리와 미라가 일행들에게 차를 건넨다
그때 쇼파 방석 아래로 삐죽이 나와있는 옷을 보고 깜짝 놀라 당황하는 마리를
장감독이 본다.
장감독 저, 이 댁 지하에 가면 볼거리가 많다던데 거기 구경 좀 해도 될까요?
마리 네, 그러세요, 제가 안내할게요
장감독 아, 됐습니다. 우리끼리 둘러볼게요
뭐 훔쳐갈 것 있나, 하하하.
마리 (따라 웃는다)
장감독 다들 내려가 볼까?
소영 (볼 멘 소리로)감독님, 이거 마시구 가요
장감독 빨리 따라와 봐, 지하에 볼링장도 있고 Bar도 있대
소영 (호들갑스럽게) 어머! 볼링장이 집에 있다구요?
(잽싸게 일어서서 나온다)
모두들 지하로 가자 마리가 얼른 경은의 옷을 꺼낸다
초인종이 울린다.
경은이 들어오자 듣고 있던 남방을 얼른 건넨다
경은 (헐떡거리며 웃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무슨 놈의 집이 후문에서 앞문 찾아오는데도 이렇게 멀어요?
다 있죠?
마리 지금 지하 내려갔어요, 감기는요?
경은 어? 내가 언제 감기 걸렸었나?
이거봐요, 멀쩡!
(씩 웃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17 지하실 - 볼링
소영이 볼링장이랑 바랑 온 지하를 누비면서 호들갑을 떨고 다닌다
소영 어머, 어머, 이건 진짜 볼링장이야, 진짜
세상에--
미라 그럼 가짜 볼링장도 있어?
소영 언니, 이 라인 하나 까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알아?
근데 라인이 다섯 개나 되구
감독님, 저랑 쉬는 시간에 여기서 한 게임 해요
#18 초희의 전택 - 거실
스텝들은 조명설치에 한창이고 화난 듯 창가에 혼자 서있는 장감독에게 경은이
다가간다
경은 죄송합니다. 앞으론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장감독 자네 연애하나?
경은 네?
장감독 그리고 미안해할 필요 없네, 우리보다 먼저 여기 와 있었더구만
(웃음을 참는 표정 - 근엄함)
경은 네?
장감독 (어깨를 치며) 걱정 말게,
뒷문으로 쥐새끼처럼 도망가는 모습 나만 봤으니까
경은 (민망해서 온 얼굴을 찌푸린다.)
#19 초희의 저택 - 거실
영화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검정 양복을 입은 경은과 귀부인처럼 차린 소영의 연기장면
소영 (차가운 말투로) 그래서,
지금 저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경은 저는 부인의 변호삽니다. 저를 믿으세요
부인은 저에게 조금의 거짓이 있어선 안됩니다.
마음을 열고 모든 걸 털어 놓아보세요
그래야 제가 도와드릴 수가 있습니다
소영 (눈동자가 흔들린다)
저는 아니예요, 저는 죽이지 않았어요
저는 다만, 다만.....
그가 죽기를 바랬을 뿐 이예요, 그 사람이.....(흐느끼면서)
그 사람이...... (흐느끼면서 경은의 품에 쓰러진다)
경은 (소영을 안고 등을 다독이며 울음을 달랜다)
장감독 컷!
좋아, 소영씨, 아주 좋았어
소영 감사합니다.
장감독 자, 식사하고 와서 다시 시작하지
민규 서울 같으면 배달시키면 될 텐데, 이건 뭘 먹을 때마다 고역이군
명수 인원수가 많은데다 지금 바로 가서 주문해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 제가 중국식당으로 예약해놓았는데요
태섭 잘 하셨어요, 자 다들 밥 먹으러 갑시다
모두다 채비를 하고 일어서 나간다
경은 저.... 감독님, 전 어제 과음을 해서 밥 생각이 없는데요
드시고 오세요.
장감독 응? 그래? (피식 웃으며) 그러지 그럼, 다녀오겠네
소영 (거실 한 쪽에 서있는 마리를 발견하고 의아한 듯 경은도 한번 본다)
그럼, 저도 여기 있을래요
다음 씬 안 되는 거 선배랑 연습도 좀 하구요
미라언니, 올 때 햄버거 하나만 사다 줘
미라 그래, 알았어
모두 나가자 소영이 다가와서 자연스럽게 경은의 팔짱을 낀다
경은 (난감한 표정)
마리 저어, 식사는 어떻게.,.....
경은 아, 식사 하셔야죠, 어서 가서 들어요
소영 네. 우린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일보세요
마리 (어쩔 수 없다는 듯) 네에, 그럼 (목례하고 주방으로 간다)
#20 주방
냄비에 물을 부어서 가스에 올리고 불을 켠다
수납장에서 라면을 꺼낸다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거실로 나간다
#21 초희의 저택 - 거실
경은과 소영이 시나리오를 읽으며 대사 연습중이다
유난히 경은에게 착 달라붙어 있는 소영
마리 저어, 라면하고 밥이 조금 있는데 괜찮다면 같이 드실래요?
경은 (반가운 듯이) 좋죠 (일어서려 한다)
소영 (경은을 붙잡아 다시 앉힌다) 됐어요,
우린 신경 쓰지 말고 드시라니까요
(경은에게) 선배,
미라언니가 먹을 거 사 올 테니까 우선 대사 연습 좀 하게요
경은 (일어서면서) 대사연습이고 뭐고 배가 등에 달라붙었습니다.
아가씨.
마리를 따라 주방으로 간다
소영 (씩씩 대며) 잠깐만요
나도 먹을래. 같이 가요 (얼른 쫒아가서 경은의 팔짱을 낀다)
#22 주방
라면에 밥을 말아서 맛있게 먹고있는 경은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는 마리
그런 마리를 의심쩍을 얼굴로 쳐다보는 소영
마리가 자신의 라면을 경은에게 덜어준다
소영 (눈을 흘기며) (N) 어쭈구리, 요것 봐라
마리 그렇게 맛있어요?
경은 아, 꿀맛 이예요
라면이 이렇게 맛있는 줄 (노래하듯) 예전에 미쳐 몰랐어요
마리 (웃음)
소영 선배, 둘이 원래 아는 사이 예요?
경은 왜?
소영 아니, 그냥 웬지 친하게 보여서
경은 하하, 원래 알던 사이가 아니라 이제부터 알아가야 할 사이지
소영 (표정이 바뀌며) 그게 무슨 뜻이야? 둘이 사귀기라도 한다는 거야?
경은 (진지하게)응, 소영아
사실은 나 이 사람하고 사귀고 있어
소영 (놀라움) 언제부터?
경은 어제부터
소영 (코웃음) 챠아, 선배, 장난쳐요, 지금?
어제부터 사귀기 시작했다면 사귄 지 하루도 아직 안됐는데
무슨 십 년 사귄 사람처럼 얘길 해요
그건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
이제 시작하려는 건데
경은 소영아, 하루를 사귀었건 10년을 사귀었건
중요한 건 오히려 사귀기 전의 마음 인 거야
여자랑 남자 둘이 만나서 서로 보자마자 우리 사귀자 그러니?
두 사람이 서로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기까지의
그 전 과정이 더 소중한 거 아닐까?
소영 (눈물을 글썽이며) 그럼, 나는 뭐예요?
난 우리도 사귀는 건 줄 알았는데.....
그래요, 선배 말처럼 우리 사귀자 , 말로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
우리가 사귀고 있는 거라 생각했어요
내 생일날 선물도 사주고 집에도 데려다 주고 영화도 보여주고
우리 자주 만났잖아요
그게 사귀는 게 아닌가요?
난 인정 못해요
선배랑 저 여자 사이 인정 못해.....
(거실로 뛰쳐나가 버린다)
경은 소영아. (마리를 본다) 신경 쓰지 말아요
저 녀석 데뷔하기 전부터 나를 워낙 따랐거든요
#23 초희의 저택 - 거실(밤)
조명기구를 챙기고 모두 철수하는 분위기
장감독 (소영에게) 오늘은 소영이가 후반에 많이 가라앉았어
자기 감정조절을 잘하는 배우가 진짜 배우란 거
명심하고 내일은 회복해서 나오도록 해
소영 ..........
장감독 정 소영, 알겠나?
소영 네. (대답을 던지고 휙 돌아서 나가버린다)
미라가 걱정스러운 듯 소영을 따라 나간다
민규 그럼, 다들 나가시죠
모두 마리에게 한마디 씩 인사하고 나간다
경은 (마리에게 전화하겠다는 시늉을 해 보인다)
마리 (끄덕끄덕)
#24 호텔 - 장감독 방
장감독과 민규, 경은이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다.
민규 경은씨 알고 보니 꾼 이네. 바람 꾼(강조)
장감독 그렇게 된 거로구먼
이 사람아, 내가 아침에 자넬 거기서 보고 얼마나 놀란 줄 알아?
민규 (애석한 표정 - 놀리듯이) 아깝다. 아까워
경은씨가 도둑고양이처럼 숨어 가는 그 모습을
나도 꼭 봤어야 했는데 하하하.
경은 (머리 긁적 - 민망) 창피하니까 소문내지 마십시오
장감독 아무튼 자네 일은 앞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소영이가 문제군
오늘 보니까 많이 안 좋던데
일단 영화를 위해선 그 얘 마음 너무 상하지 않게 자네가 마음 좀
써주면 좋겠네
경은 네 , 명심하겠습니다
#25 소영의 방
이불을 머리끝까지 둘러쓰고 침대에 누워있는 소영
미라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다가간다
미라 소영아
소영 ............
미라 좀 일어나 봐,
너 저녁도 굶고........
룸 써비스로 뭐라도 시켜줄까?
괜찮겠어?
소영 (벌떡 일어나 앉는다)
미라 (깜짝 놀란다) 아휴, 깜짝이야
소영 언니
미라 응?
소영 그냥 한 순간 바람이겠지?
미라 그게 무슨 소리야? 바람이라니?
소영 경은 선배, 그냥 외국 나와서 한 순간 바람피우는 거겠지?
미라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람이란 말은 그런데 사용하는 게 아니지
그가 네 남자였을 때, 지금의 상황을 바람이라 하는 거야
소영 그래에, 내 남자였어, 언니
선밴, 항상 나만 바라봤어, 나도 선배만 바라봤구
함께 있을 때 항상 좋았구
단 한번도 내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
이거 봐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들어 보이며)
이것도 생일 선물로 선배가 사 준거야, 이거 말고도 또 있어
언니 같으면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이런 거 사주겠어?
아니지?
미라 (차분하게) 소영아
네가 경은씨한테 받은 모든 것들,
그거 다 네가 원해서 네가 졸라서 사준 거 아냐?
소영 .........
미라 그렇잖아
소영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사주지,
일이 만원도 아닌걸 여자가 조른 다고 그냥 사줘?
미라 물론, 경은씨도 널 사랑한다고 생각해
소영 (생기가 돌며) 그렇지?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지?
미라 (단호히) 하지만, 사랑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잖니
내가 그 동안 봐 온 바론 너에 대한 경은씨의 사랑은
이성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
경은씬 널 동생처럼 예뻐하고 아끼는 거야,
너, 그걸 잘 못 받아들이면 안돼
소영 (눈을 부릅뜨면서) 언니, 지금 불 난데 부채질해?
좋아, 그래 좋아, 언니 말대로 그랬다고 쳐
하지만 사랑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도 잘못이야
나, 절대로 경은 선배 포기 못해
여기서 며칠동안 잘해보라지
그 여자는 서울에 없어
서울로 돌아가면 그 딴 여자 생각 까맣게 잊어버리게 할거야
내가 꼭 그렇게 할거야
미라 (안타까운 눈빛으로 낮게) 참, 병이다, 병
소영 (신경질적으로 버럭 소릴 지른다) 언-니-이-
#26 경은의 방
전화를 걸고 있다
경은 나예요
마리 (E) 아직 안 자요?
경은 보고 싶어서 잠이 안 오네
마리 (E) 피곤 할텐데 일찍 자요
경은 나, 안보고 싶어요?
마리 (E)......
경은 응?
마리 (E) 보고 싶어요
경은 (벌떡 일어나며) 나 지금 그리로 갈까요?
말만해요, 당장 달려갈테니
나, 가도 돼요?
마리 (E) 너무 늦었어요, 거리도 멀구
경은 사랑으로 거리는 얼마든지 뛰어 넘을 수 있는 거예요
나, 지금 갑니다
마리 (E) 경은씨
경은 안되겠어요, 나
목소리만 듣는 걸론 안되겠어요
지금 갈게, 감독님께 말하고 지금 갈 테니 기다려요
(전화를 끊는다)
#28 마리의 방
경은의 팔을 베고 누워있는 마리
경은이 마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경은 언니, 언제 와요?
마리 내일
경은 그럼 내일은 함께 못 있겠네
마리 ......
경은 한국엔 언제 와요?
마리 학교 마치려면 1년 정도 남았어요
경은 일년 동안 어쩌지? 보고 싶어서,
마리 전화할게요, 편지도 하구.........
경은 날마다?
마리 응, 날마다
경은 아니다 내가 할게요
내가 날마다 전화할게....
종이랑 펜 줘봐요
마리 (누운 체 손을 뻗쳐서 침대머리맡의 메모지와 펜을 준다)
경은 (마리의 가슴에 종이를 놓고) 불러봐요, 전화번호
마리 (어색한 듯 바로 앉으려 한다) 내가 적을게요
경은 괜찮아요, 빨리 불러봐요
마리 49, 이건 독일국가 번호예요, 0331, 이건 쾰른 지역 번호구 *********
경은 (따라 적는다) 잠깐만
(다른 종이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는다)
자, 혹시 모르니까 이건 내 번호
잊어 먹지 말아요
마리 네 (종이들을 받아서 침대머리맡에 놓는다)
경은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풀어서 마리의 목에 걸어준다)
서울 같았으면 내가 하던 거 말고 더 예쁘고 좋은 거 사줬을 텐데......
나중에 더 좋은 거 사 줄 테니 우선 이거라도 하고 있어요.
마리 (목걸이를 만지며) 난 이게 더 좋아요
경은씨 의 온기가 느껴져요, 이 목걸이..........
(눈물을 글썽인다.) 나, 참 행복해요
이렇게 행복했던 적 없었던 것 같아요, 나
경은 (마리를 안으며) 앞으론 내가 더 행복하게 해줄게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게 해줄게요
#29 초희의 저택 - 거실(낮)
초희와 장감독 일행들이 있다
장감독 스키여행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초희 네, 덕분예요
내일이 마지막 촬영이라죠?
장감독 네, 여기서의 분량은 마지막입니다
초희 내일도 늦게 까지 촬영하시죠?
장감독 예에, 새벽에나 끝날 것 같습니다.
초희 그럼, 내일 저녁식사 준비 할 테니 함께 하시죠
송별회 겸해서 작별인사도 그 때 하기로 하구요
새벽에 일어나서 인사 할 순 없잖아요?
장감독 아,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스탭들도 많아서
초희 간단히 준비할게요
사양하지 마세요
장감독 정 그러신다면.......
예, 감사히 응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동생 분이 안 보이시네요
초희 아, 마리요? (무심하게)
학교 갔겠죠, 자, 그럼 일하세요
(이층에 대고) 사샤, 아직 멀었어요?
사샤 (계단을 내려와 거실로 들어온다)
나 여기 있소, 자, 갑시다 부인
(익살스럽게 초희의 허리에 손을 감는다)
경은이 적대시한 눈빛으로 사샤를 훔쳐본다
#30 마리의 학교 - 휴게실
마리와 레나테, 가비, 마리안네 등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다
유일한 남학생 요그가 들어온다
요그 (담배연기에 숨이 막힌다는 듯 너스레를 떨며 여자처럼)
코스메티커린 (피부관리사) 에게 담배는 좋지 않아요,
마담, 마드모아젤
고객들에게 항상 향기로운 냄새를 맡게 해야죠
가비 (요그의 말투를 흉내내서)
그래서 아로마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요, 무슈
모두다 까르르 웃는다
요그 (마리를 보며) 어머, 마리, 못 보던 목걸이네
마리 (목걸이를 만지며 뽐내듯이) 남자친구가 준거야,
요그 남자친구? 어머어, 남자친구 생겼어, 마리?
(코믹한 표정으로 울 듯이) 그럼 난 어떡하고, 마리?
마리 (한국말로) 웬일이니? 네 취향은 남자 아냐?
요그 (째려보며) 마리, 지금 뭐랬어? 독일어로 말해
마리 네가 내 마음을 안 받아줬잖아, 내가 여자라서........
좀 전보다 더 크게 모두 웃는다
가비 그새 취향이 바뀌었어, 요그?
요그 (가비의 말을 무시하고) 어떤 사람이야? 독일사람? 한국사람?
마리 한국인이야, 물론 남자구
요구 잘 생겼어?
마리 그러엄,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영화배우야
가비 영화배우?
요그 어머, 어머, 마리, 언제 인사 시켜줄거야?
언제 한번 학교로 데려와 봐
마리 안돼
요그 왜?
마리 네가 보면 반 할 테니까
너한테 빼앗기면 어떡해?
(치를 떨면서 한국말로) 절대 안되지
요그 (사납게) 마리! 못됐어, 한국말 쓰지 말래니까
마리 (능청스럽게) 절대 안된다구요
(시계를 보더니 일부러 큰소리로 호들갑스럽게)
어머, 수업 시작하겠다, 빨리 들어가자
(벌떡 일어나 레나테 손을 끌고 나가버린다)
요그와 가비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31 쾰른역 (저녁 무렵)
레나테와 마리가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레나테 마리, 정말 애인 생겼니?
마리 (행복한 미소) 네.
레나테 많이 사랑하나보구나?
마리 (고개를 끄덕인다)
레나테 유학생이야?
마리 아니, 진짜 영화배우예요
여기로 영화촬영차 왔는데 언니가 집을 빌려줬어요
레나테 (걱정스러운 듯) 그래? 그럼 다시 한국으로 가버리겠네?
마리 네에, 내일 모레 떠나요
레나테 괜찮겠어?
마리 .......
레나테 그래, 한번 가슴에 넣어버린 사람은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쉽게 꺼내질 수 없는 거니까.........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마리 (레나테의 볼에 키스하며)
고마워요, 레나테, 나 행복해요
지하철이 들어온다
레나테 (마리의 볼에 키스하며)
내일 보자, 내 아기
지하철에 오르는 레나테에게 손을 흔드는 마리,
#32 백화점
쥬얼리 용품점에서 목걸이를 고르고 있는 마리
종업원이 친절하게 이것저것 보여주고 있다
마리 이걸로 할게요
이거 주세요
종업원이 목걸이를 포장해서 마리에게 준다.
#33 초희의 저택 - 거실
거실로 들어서는 마리
키스 씬 촬영이 한창이다
소영이 마리를 보자 더 열렬히 키스한다
민망해서 얼른 이층으로 올라가 버리는 마리
#34 마리의방
쫒기듯 방문을 닫고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혼자서 겸연쩍은 듯 픽 웃는 마리
가방에서 목걸이상자를 꺼내어 화장대로 가서 그 위에 올려 둔다.
상자를 어루만지며 조용히 웃는다. 행복하게........
#35 초희의 저택 - 거실
스탭 들이 조명기구들을 거둬들이고 있다.
경은이 사람들 눈치를 살피다가 잽싸게 2층으로 올라간다.
소영이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질투심에 불타서 흘겨본다.
#36 마리의 방
노크소리에 일어나 방문을 연다
경은이 얼른 들어와 마리를 안는다.
마리 이제 끝났어요?
경은 자고 있었어?
마리 좀 누워있었어요
경은 왜 오늘은 한번도 안 내려왔어?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네
으음, 내 사랑(아기에게 하듯 볼을 비빈다)
마리 방해 될까봐
참, 잠깐만요 (조그만 상자를 내민다)
경은 뭐야?
마리 목걸이 하나 샀어요
경은씨 목 썰렁할 것 같아서
경은 (상자를 열어본다) 예쁘다
(목걸이를 꺼내들고) 고마워, 자, 직접 걸어주세요, 부인!
마리 (쑥스럽게 웃으며 목걸이를 걸어준다)
(고리를 채운 손을 그대로 경은의 목에 두르고 품에 안긴다.)
경은 (마리의 등을 토닥거려 준다.) 나 오늘 여기 있을까?
마리 .........
경은 우리 오늘 잠자지 말고 밤새 얘기하자
나 모레새벽에 촬영 끝내고 오전 비행기 타야해, 괜찮지?
마리 (고개를 끄덕인다)
#37 거실
민규 소영씨, 뭐해? 빨리 안 나오구
피곤해 죽겠어, 얼른 가서 자자
마리 경은 선배 아직 안 내려왔어요
민규 안 내려오다니 경은씨가 언제 어디 올라갔나?
미라 (눈을 찡긋하며 2층을 가리킨다)
민규 아아
오늘이 마지막이잖아
모레 새벽에나 촬영 끝나면 바로 떠날텐데
오늘만 좀 봐줘라, 소영씨!
자자, 어서 갑시다, 공주님 (미라에게 눈짓한다)
미라 그래, 소영아, 얼른 가자, 너두 피곤하잖아
소영 (신경질적으로 뿌리치며) 놔요, 내가 나갈 테니까....
소영이 나가고 민규와 미라가 둘이 마주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38 마리의 방
마리와 경은이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다.
경은 나 좀 불안하다
마리 뭐 가요?
경은 (마리를 보고 돌아누우며) 항상 조심해,
그 사람, 어제 보니까 눈빛이 안 좋아,
밤에 잘 때 문단속 잘하고 낮에 집에 있을 때도 문 꼭 잠그고 있어,
다른 식구들 오기 전에 혼자서 거실이나 지하실 같은데 가 있지 말고
마리 알았어요
경은 농담 아냐, 정말 조심해야해
마리 내가 더 잘 알아요
경은 자긴 이제 내 여자야
나를 알기 이전 보다 열 배는 더 조심해야해
마리 네에, 서방님
경은 (마리를 안으며) 그래, 그래, 착하지 우리각시
마리 (품에 안긴 채로) 경은씨 덕분에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이 달라졌어요
경은 어떻게?
마리 알아요?
독일의 하늘색?
경은 쟂빛?
마리 그래요, 경은씨 만나기 이전의 세상은 온통 내겐 쟂 빛이었어요,
이 집에선 아무도 나를 인간처럼 상대해주지 않고.....
음흉하고 소름 끼치는 형부란 사람,
차라리 남이었음 마음이나 아프지 않았을 얼음장같은 언니
내가 이 집안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에 없는 조카들.....
전에 한번은 내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작은 조카 디디가 들어
오더니 나보고 뭐랬는지 알아요?
할로, 부인, 오늘은 내방 치우지 말아요,
컴퓨터 부품 흩어지면 안되니까....(울먹이며)
내가 새로 온 청소분 줄 알았나봐요
디디 나야, 마리, 그랬더니 미안한 기색도 없이 아아, 마리?
쏘리! 하고 나가 버리는 거 있죠...... 근데 지금은요
지금은.......
세상이 온통 내가 좋아하는 하늘색 이예요
한국의 하늘색.........
이 지옥 같았던 집도 이젠 좋아질 것 같아요,
경은씨가 앉았던 자리
경은씨가 마셨던 컵
경은씨가 서 있었던 곳
경은씨가 만진 가구들.....
그런 것들 땜에........ 나......... 이 집도
이젠
하늘색으로 보여요......... 경은씨........ 자요?
(품에 묻혀있던 얼굴을 들고 경은을 보려하자 경은이 품에서 빠져나가
지 못하게 꼬옥 껴안는다)
경은 (가엾은 내 사랑,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39 주방
경은에게 먹일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마리
초희가 들어온다
초희 얘
마리 (깜짝 놀란다)
초희 왜 그렇게 놀래? 뭐 죄 지은 거 있니?
마리 아, 아뇨, 갑자기 들어오시니까........
왜요? 뭐 시킬거 있으세요?
초희 오늘 장감독 일행 분들 집에서 저녁대접하기로 했다.
김장로님이랑 한국 사람 몇 분 와서 도와 줄 거야
(돈을 식탁 위에 놓으며)
그 분들 12시까지 온다고 했으니까 그걸로 네가 그 안에 장 좀
봐와야겠다.
한국 사람들 식성 네가 더 잘 알테니 알아서 사와
마리 저어, 학교는.......
초희 지금 학교가 문제니?
남들도 와서 도와주는데 (쌀쌀맞게 말하고 나가버린다)
마리 (한숨을 쉬며 식탁 위의 돈을 집어든다)
#40 거실
마리가 외출준비를 하고 내려온다
민규 어? 마리씨 오늘 학교 안 갔네
마리 네에.
경은 어디가?
마리 네, 장보러 가요
장감독 저런, 우리 땜에 학교 못 가셨나 보네, 미안해서 어째
마리 괜찮아요, 오늘 하루 빠지는 건데요, 뭐
경은 시장이 멀어요?
마리 네, 조금
여긴 큰 장 볼 땐 시내외곽에 있는
대형 마켓으로 가야하거든요
미라 제가 같이 갈게요
마리 네?
소영 어머, 언니가 어딜 가, 내 화장은 어쩌구
미라 오늘은 안약 넣는 씬 도 없으니까 안 고쳐도 돼
지금도 이쁘기만 하다.
가요, 마리씨,
큰장가면 짐 많을 거 아녜요,
장감독 그래요, 미라씨가 같이 가주면 되겠네,
경은 고마워요, 미라씨,
미라 (시치미 떼면서) 경은씨가 왜 고마워요?
자, 갑시다, 마리씨
둘이서 밖으로 나간다
#41 대형 마켓
쇼핑수레를 밀며 물건을 사고 있다
미라 마리씨 나이 나보다 아래죠?
마리 글쎄요, 저........ 스물 넷 인 데요
미라 어머, 보기 보담 많이 먹었네요
그래도 내가 스물 일곱이니까 언니예요!
마리 (놀라며) 스물 일곱이나 드셨어요?
난 내 또래로 봤는데........
미라 어머, 그랬어요? 고마워라
좋았어, 기분이다
내가 언니라고 부르는 걸 허락하지
마리 네? (웃으며)
미라 그냥 편하게 대하라는 거예요
마리씨 표정 항상 굳어있더라
웃으니까 정말 예쁜데.......
마리 저어....
미라 네! 말해요
마리 그...... 메이크업 하시는거요, 코디랑...........
그런 거 하려면 어떻게 해야해요?
미라 왜요, 마리씨도 이일에 관심 있어요?
마리 네, 지금 코스메틱 학교에 다니는데
피부 쪽 공부는 별로 재미가 없어요
하고 싶지도 않구.......
메이크업 시간이 좋아요, 전.
그래서 그 쪽 길로 나가볼까 하고
미라 잘됐네,
그럼 한국 나오면 나한테 와요
나 이래 뵈도 서울에서 잘 나가는 분장사랍니다.
나랑 같이 일해도 되고 소개시켜 줄 수도 있어요
마리 (기쁜 듯) 정말 그래도 되요?
미라 당연하죠 이따 집에 가서 내가 명함 줄게요
근데 마리씬 영화분장사보다 영화배우 해야할 것 같은데?
마리 농담하지 마세요,
미라 어머, 진짜야,
그럼 영화배우 하라고 누가 꼬셔도 안 넘어가고 분장사하기다
마리 네
미라 자, 약속!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마리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미라가 다정하게 새끼손가락을 걸고 흔든다.
#42 식당방
커다란 식탁에 사샤와 초희 그리고 장감독 일행들이 앉아있고 마리와 미라가 음
식을 나르고 있다.
초희 아가씨가 오늘 고생이 많네요
미라 어머, 아니예요
저보다 마리씨가 오늘 제일 고생했죠
음식을 혼자서 거의 다 하고
솜씨 좋은 동생 두셔서 좋으시겠어요
초희 (마지못해서) 그래, 너도 오늘 고생 많았다
사샤 (초희에게) 이제 그만 식사하지
초희 (미라에게) 이리 와서 앉으세요, 식사합시다.
미라 (마리의 손을 끌며) 마리씨, 얼른 앉읍시다
너무 배고파요
마리 (초희의 눈치를 보며) 저어, 전 나중에 먹을게요
미라 어머, 왜요? 먹을 때 같이 먹어야지
초희 (마리에게 눈치 한다)
소영 (얄밉게) 아이, 배고파라, 빨리 먹었으며 좋겠다.
경은 (벌떡 일어나 마리를 데려와서 옆에 앉힌다)
(화나는걸 참으며) 제가 여기 자리까지 잡아놨잖아요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민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하하하,
경은씨
여기가 식당입니까? 자리 잡아놓게?
그래도 분위기 썰렁
미라 아뇨, 오히려 도서관 분위긴 데요
그 말에 모두들 서로 눈치보다가 박장대소
경은 마리도 함께 웃는다.
#43 거실
조명기구를 거둬들이고 철수 작업 중
시무룩하게 서있는 경은에게 장감독이 다가간다
장감독 어이, 한시간 줄게
경은 네?
장감독 그 안에 이별가를 부르든, 사랑가를 부르든 정리하고 오라구
정확히 한시간이야 그때까지 안 오면 우리 먼저 비행기 타러가네
경은 (표정이 밝아지며) 감사합니다. 감독님, 감사합니다
장감독 (사람 좋게 웃으며 어깨를 툭 쳐준다)
#44 마리의 방
경은이 노크하고 들어온다
창에 기대어 서 있는 마리에게 다가가 안는다
경은 우리 이러고 한 시간동안만 있자
아무 얘기도 하지 말고 울지도 말고 한 시간 동안만.........
마리 (벌써 울고 있다)
경은 (눈물을 닦아주며) 왜 울어
우리가 뭐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전쟁 나가는 것도 아닌데....
일년동안 잘 참을 수 있지?
마리 (고개를 끄덕인다)
경은 일년이야, 딱 일년만 있다가 꼭 와야해?
마리 (고개를 끄덕인다)
--------------- 음악 --------------
#45 서울 경은의 아파트 입구
우편함에서 우편물들을 한 웅큼 빼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경은
#46 엘리베이터 안
많은 우편물 중 항공 봉투 하나를 발견하고 웃는 경은
#47 경은의 아파트
거실로 들어서자 다른 편지들을 내던지고 쇼파에 편히 앉아
편지를 열어서 읽는다.
(N)
안녕, 경은씨!
벌써 두 달이 다 되가네요,
우리 못 만난 지.........
서울은 지금 많이 덥지요?
여긴 햇빛이 나는 낮엔 조금 덥지만,
그래도 그늘에 오래 있으면 조금 쌀쌀하답니다
생각해보면
경은씨와 함께 했던 5월의 며칠동안이
마치 내가 좋은 꿈을 꾸었기라도 한 것처럼 아득해질 때가 있어요
그 아득함의 한 가닥 끝을 붙잡고 삽니다. 요즘은..........
닿고 싶어서........... 놓지 않으려고.........
사랑합니다...
- 마리 -
#48 영화시사회장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경은과 소영, 그리고 장감독
기자 (장감독에게) 아직 우리 나라에서 본격스릴러물이 크게 흥행에 성공 해
본적은 아직 없는 걸로 아는데요
오늘 시사회 끝나고 감은 어떠십니까?
장감독 글쎄요, 평가는 관객들께서 내려주시는 거니
저는 겸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겠습니다.
기자 민 경은씨는 어떠십니까?
경은 장감독님을 비롯해서 모든 출연진과 스텝들이 정말 열심히 한만큼 좋
은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기자 정소영양은 영화가 이번 처음이죠? 어때요? 소감이.
소영 존경하는 선배님들과 함께 이런 좋은 작품에서 연기하게 되어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반드시 좋은 결과 나오리라 생각해요
여러분, 우리영화 많이 보러오세요!
#49 인파속
인파를 헤치고 경은과 소영이 경호원들에 쌓여 극장을 빠져나간다
#50 기획사 사무실
경은과 소영이 들어온다
소영 다녀왔습니다
김실장 수고했어, 어서들 와요
직원 (콤퓨터 앞에서) 여기들 좀 보세요
시사회 평이 벌써 올라온 게 있어요
우와! 아주 좋은데요
[한국판 스릴러의 미래와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 코러스, 장진수 감독- 그는 한국
이 낳은 히치콕 이었다....]
김실장 음, 예상은 했었지만 이건 대박 예감이 드는데? 응? 하하하
우리 소영이도 이젠 완전히 뜨겠어
직원 실장님, 오늘 뭐 파티라도 벌여야 하는 거 아녜요?
김실장 좋아, 오늘은 내 사비로 쏜다
직원 2 오우, 실장님 멋쟁이!
모두다 즐거워한다
경은 저, 그런데 어쩌죠? 전 가볼 데가 있어서요?
소영 어머, 안돼요
선배 안 가시면 나도 안 갈래요
김실장 그래, 주인공들이 빠지면 아무의미도 없지
방송 스케줄 같은 거 아니면 같이 가자구
경은 (난처한 표정으로 수긍한다)
#51 독일 - 초희의 저택 - 초희의 방(낮)
초희의 호화로운 화장대 앞에 앉아
도도한 표정으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마리
마리 (거울에 대고 도도한 표정으로) 안녕하세요, 마리예요
나는 윤마리 예요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신디.....입니다, (침묵)
(처음엔 어색하게 웃다가 점점 정말 밝은 얼굴이 되어간다)
안녕하세요, 마리입니다............ 민경은씨를 사랑하는 마리입니다.
(한참을 행복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가 갑자기 자기 처지를 인식하고 -
언니 방 화장대에 앉아있다는 - 씁쓸하게 웃으며 그 방을 나온다.)
#52 마리의 방
전화기 앞에 서있는 마리
시계가 3시를 막 넘어 선다
전화가 오지 않자 방을 나온다
#53 지하 세탁실
세탁기에 빨래감 들을 넣는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빨랫감들을 넣고 있는데 갑자기 사샤가 뒤에서 끌어 앉는다
마리 (깜짝 놀란다) 아악, 무, 무슨 짓이야
사샤 (비열하게 웃으며) 소리 질러도 소용없어, 여긴 우리 둘 뿐이야
마리 이, 이러지 마세요, 제발, 제발, 이러지 마요
사샤가 강제로 마리를 범하려 들고 마리는 발악을 하며 소리 지르고 한참 몸싸움
을 벌인다
마리가 세제통을 들고 사샤의 머리에 던지자 가루 비누가 온통 머리에 하얗게 내
려앉는다.
사샤가 화가 나서 마리를 때린다.
사샤 요 쥐새끼 같은 년
너도 네 언니만큼 지독한 년이구나, 응?
지독한 몸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
처음엔 겁만 주던 사샤가 마리에게 몰리게되자 인정 사정없이 때린다
마리가 죽을힘을 다해 사샤의 급소를 차버리자 욕지거리를 하며 돌아간다
#54 지하세탁실
여기저기 빨래들과 세제가 난잡하게 헝클어진 가운데 마리도 마치 빨래처럼 만신
창이가 된 체 쓰러져 있다.
서서히 눈을 뜬다, 그러나 일어날 기력도 없는 듯 그대로 누운 체 눈물 흘린다.
서럽게 서럽게 운다
#55 술집
김실장 소영 경은 민규 미라가 모여있다.
김실장 저 말고 네 분은 촬영기간 내내 독일에 함께 계셔서 정도 많이 드셨겠어
요.
민규 (미라 보며) 네 들었죠. 미운정 고운정
미라 근데 왜 절 보고 말하세요?
민규 (크게 헛기침 한번 한다) 백미라씨
시간 있어요?
미라 네?
민규 시간 있냐고요
미라 (얼굴 붉히며) 저 시간 없어요
민규 그래요? 시간 있으면 술이나 한잔 따라달라고 하랬더니......
경은씨도 시간 없어?
왜 사람들이 술 잔 비었으면 빨리 빨리 좀 채워줘야지
경은 웃으며 민규 잔에 소주 따라주고 미라 어이가 없어서
입벌리고 어쩔 줄 몰라 한다.
#56 서울- 강남의 어느 나이트클럽 앞 (밤)
기획사 직원들과 경은, 소영이 있다.
소영 (약간 취한 듯 - 경은의 어깨에 매달려 있다)
진짜 2차 안 갈 거예요?
김실장 소영씨가 취했잖아, 우리 보물이 몸 망가지면 안되지
소영 에이, 실장님, 짠돌이야,
괜히 2차 안 갈려고 내 핑계 대는 거 봐
김실장 하하, 그래, 나 짠돌이야
짠돌이라 돈 아까워서 2차 못 가니까 어서 집에 갑시다
공주님 (경은에게 눈을 찡긋하며 빨리 차에 태우라는 시늉)
경은이 소영을 잡아끌어 차에 태운다
김실장 소영씨, 안녕
직원들 잘 가요, 소영씨.
경은 제가 바래다주고 들어갈테니 염려 마세요
김실장 그럼 조심해서가요
경은의 차가 출발한다
김실장 자아, 우린 어디 가서 한잔 더 하지
직원들 좋죠
#57 경은의 차안
소영이 경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소영 참 좋다, 선배랑 이렇게 둘만 있어본지가 얼마 만인지 몰라
(경은을 보며) 우리 어디 가서 한잔 더 마시면 안돼요?
경은 안돼. 너 지금도 좀 취했어
소영 음,.... 그럼.... 나 밥 먹어두 안돼요?
경은 배고프니?
소영 네에, 빈속에 술 마셔서 그런지 막 속이 쓰려요
경은 (생각하다가) 알았어 뭐 먹을래?
경은 (기다렸다는 듯) 꽃게탕
#58 포장마차
민규 미라 김실장 직원 두 명 소주잔 기울이고 있다
미라 (꿀꺽 한 잔 마시고 김실장에게) 자, 한 잔 받으세요
김실장 잔 들이댄다
민규 원 여자가 술만 마시고 살았나
무슨 술을 그렇게 잘 마셔요?
직원 조감독님 같은 분도 그런 거 따지세요?
난 이 쪽 계통 일하시는 분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 개방적인
알았는데
미라 그러게요
민규 아 그거야 나하고 상관없는 여자일 때죠
나랑 상관없는 여자일수록 술 잘 마셔야 좋고, 잘 놀아야 좋고
미라 그게 바로 도둑심보죠
어머, 그러고 보니 내가 술을 잘 마시든 말든 무슨 상관 이예요?
나한테 관심 있으세요?
민규 (당황) 무슨 소리
이거 내가 취했나?
술 취하니까 모든 여자가 내 여자로 보이네
김실장 취중진담
이거 아무래도 조감독님이 백미라씨한테 관심 있는 거 같은데
미라 (관심 없다는 듯) 아휴 참, 미인은 알아 봐 가지구
민규 (포장마차 아주머니한테) 아줌마, 여기 거울 없어요?
아줌마 아휴, 포장마차에 무슨 거울이 있어요
미라 거울은 갑자기 왜요? (가방에서 거울 꺼낸다)
자요, 여기
민규 거울이랑 가지고 다니네
근데 왜 몰랐을까?
미라 뭘요?
민규 (미라 얼굴에 거울 들이대며) 자, 봐요, 봐
거울 보고도 미인이란 말이 나오나
미라 어머, 어머, 기가 막혀
(거울 보며 능청스럽게) 어머나아 미인이네
민규 가짢다는 듯 흘겨보고 일행들 웃는다
#59 신사동 꽃게탕 집
식탁 위에서 꽃게탕이 맛있게 끓고 있다
경은은 자주 시계를 본다
소영 선배
경은 (시계 보다가) 응?
소영 어디 약속 있어요?
경은 이 밤에 무슨 약속
소영 그럼, 왜 자꾸 시계를 봐요
경은 아, 그냥, 너 너무 늦게 들어가는 게 아닌가 해서
소영 난 괜찮아, 아까 집에 전화했잖아요
(꽃게탕을 작은 그릇에 떠서 경은에게 준다)
진짜 맛있겠다, 자, 선배!
경은 고맙다 너도 많이 먹어
소영 어머? 선배, 남자가 매너 없다, 정말
내건 선배가 떠 줘야죠
경은 아, 그러냐? 미안하다
(탕을 떠다 소영 에게 준다) 자, 맛있게 먹어라
소영 감사합니다. 선배두요, (의미심장한 눈으로 경은을 본다)
첫댓글 님의 대본은 여중고생이 그렇게도 좋아한다던 할리퀸의 로맨스소설과 느낌이 흡사하군요. 음... 모랄까.. ^^ 할리퀸 소설 쓰시면 잘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