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레인 실기 사수생
이순화
중장비학원 개강일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었다. 날도 춥고, 연말이라 마음이 방방 뜬 상태인데 아침 일찍 나가려니 걱정스러웠다. 보온병과 전기방석 등 살림살이들을 한가득 짊어지고 ‘눈이 오면 학원에 어떻게 가지?’ 걱정을 하면서 출발하려던 버스에 간신히 올라탔다. 첫발을 내디딜 때의 두려움과 불안, 설렘, 등의 복합적인 감정 때문에 나도 모르게 허리가 꼿꼿이 세워졌다. 버스 창문 넘어 에는 소방차 정비로 소방차의 휘황찬란한 사이렌 불빛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에게 환영한다고 말하는 건가?’
나는 든든한 축하를 받으며 학원 정문을 들어섰다.
실기 강사 선생님은 취업난의 고조로 포크레인 자격시험을 보는 인구가 몇 만 명에 이른다는 정보와 함께 쉽지 않을 실기시험이 될 것을 예고했다.
포크레인 실기는 1차 주행실기 2차 작업실기가 있는데 주행은 S코스를 출발선에서 도착선까지 전진해서 S자를 벗어나지 않고 후진으로 출발선에 정차하는 것이고 2차 작업은 양쪽 조정레버로 투붐과(팔) 버켓(바가지)부분을 상승,하강,스윙,덤프 등의 작동을 자연스럽게 숙련하여 시험장 라인 안에 있는 흙을 버켓에 담아 장애물을 넘겨 반대편으로 4번을 옮기고 나라시로 마무리하는 것 까지를 말한다.
양 사이드 미러로는 포크레인 뒤 쪽이 보이지 않아 포크레인의 상황을 알기 위해 내 상체 반쪽은 차 밖으로 내밀어져 있는 상태였고 내가 포크레인 의자에 반 쪽 엉덩이를 대고 레버를 조작하는 모습은 마치 호기심 많은 아이가 육중한 보행기에 한 쪽 엉덩이 걸치고 주위를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나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빠트리고도 그런 줄도 모르고 엉뚱하게 움직이는 포크레인한테 정신을 팔며 혼자 놀라고 당황했다.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지켜보던 동기생들은 하늘을 나는 기러기 무리가 모양을 변형하며 주행하듯이 내가 포크레인 붐을 ‘회~액’ 움직일 때 마다 한데 뭉쳐 있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포크레인 기술을 익히는 방법은 많이 타보는 일밖에 없는데 학원생 수가 많아 한 사람당 탈 수 있는 시간은 단 10분밖에 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내 뒤 순번 동기가 작업하는 동작을 눈으로 따라가며 작업순서를 외우고 동기생들이 자기가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작업하는 영상을 찍었다. 우리는 서로의 부드럽지 않은 연속 동작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실력을 다져 나갔다.
두 달의 기나긴 연습 기간을 마치고 나의 포크레인 작동기술을 검증할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 학원은 실기 시험장이 있는 학원이 아니어서 시험장이 설치된 다른 중장비 학원으로 가서 실기시험을 봐야 했다.
실기 시험장이 있는 학원에서 연습을 한 학생들이 더 합격률이 높은 것은 뻔 한 일이었다. 재미있게 공부를 하긴 했지만, 정보도 없이 실기 시험장 설치가 안 된 학원을 선택한 것을 조금 후회했다. 우리 학원 학생들은 실기시험 하루 전날 실기 시험장소인 익산 중장비 학원에서 강습을 받기 위해 일곱명씩 조를 짜고 강습비도 마련했다.
다행히 동기생들의 의지에 익산에 있는 중장비 학원 원장님도 우리에게 힘을 보내며 밤 열 시를 훌쩍 넘긴 시간까지 강습을 진행 하셨다.
급기야 남편의 전화로 나의 조용하던 핸드폰은 혼자 신나게 춤을 추었다.
“아직 안 끝났어?”
“지금 어디야?”
“집에 안 와?” 하며 걱정하는 남편의 전화가 쇄도했다.
포크레인 앞바퀴를 어떤 방향으로 대느냐에 따라 포크레인이 출발지점에 반듯이 놓일건지 S자 트렉을 벗어날 건지 짐작할 수 있다. S자 주행 때 곡선으로 꺽이는 부분에 정확히 정지해서 핸들을 오른쪽으로 두 번 감고 왼쪽으로 천천히 풀면서 후진하는 공식은 아는데 핸들을 감아야 하는 지점을 정확히 알지 못해서 그 지점의 길을 돌로 몰래 긁어 표시를 해놓고 동기생들보다 먼저 집에 갔다. 아침에 남편이 사준 우황청심환을 먹고 실기 시험장에 도착했다. 약에 의지했음에도 실기 시험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의 심장은 전기 충격을 맞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마구 떨렸다.
시험장에 있는 포크레인은 조금의 방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궁둥이를 자꾸 실선 밖으로 내밀어 작업도 못 해보고 탈락하는 수험생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 시험보는 모습만 보고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더니 금방 내 차례가 되었다. 포크레인에 올라가 연습한 순서대로 안전벨트를 매고, 브레이크 해제와 전진기어 작동과 함께 출발신호를 보냈다. 포크레인 차 안에 올라가기 전부터 나는 정신을 붙잡지 못했다. 그런대로 전진은 잘 했는데 정지해서 핸들을 감아야 하는 자리를 빗나가서 핸들을 돌렸다.
“아이! 내가 시험 쳐주고 싶네 진짜”
“늦었어 늦었어 핸들 빨리 감어”
포크레인 창문 밖을 보니 여기저기서 훈수하느라 요란법석이 된 상황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시험 감독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꾸 시끄럽게 하면 퇴장 시킬겁니다”
나는 트렉선을 맞추느라 왔다리갔다리 1분 넘게 시간을 소요했다. 포크레인 궁딩이는 이미 손 쓸 수 없이 트랙 바깥 선에 맞닿고 있었다. 감독관과 학원 동기생들의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호로라기 소리가 들리더니 시간초과와 뒷바퀴 실선 이탈이 돼 있었다. 멘탈이 나간 머리가 손과 발을 방치한 사이 멋대로 움직인 책임은 고스란히 내게 다가왔다.
같이 탈락한 동료 수험생들도 자기가 탈락했을 때 보다 더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내가 혼자 여자다 보니 자기들보다 일찍 합격하길 바랐던 모양이었다.
첫 시험부터 합격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익산에서 군산에 올 때까지 그 누구도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포크레인 일을 업으로 해 왔던 동기생도 사이좋게 떨어지고 우리 학원에서 시험에 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남편도 첫 시험에 합격하면 건 넘어서 기술을 익히는데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며 되지도 않는 말을 지어내 힘 빠진 나를 위로했다. 우리는 망연자실 했지만 다음 시험을 위해 실기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실기는 익산학원 원장님이 조언해 준 대로 판피린을 20분 전에 먹고 실기를 보았다.
약효는 빨랐다. 감기약이다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만사가 다 귀찮고, 내 차례가 됐는데도 잠이 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느긋해져서 그런지 주행선을 맞춰 출발지점으로 차분하게 들어와 나도 놀랐다. 잠결에 ‘이대로 시험에 붙으면 판피린 제약회사한테 고맙다고 사연이라도 보내야 하나 내심 기대를 하자마자 2차 작업 실기에서 바켓이 작업장 줄을 건들어 탈락하고 말았다.
시험을 볼 때마다 내는 접수비와 이십 만원이 넘는 수강비를 말없이 대준 남편에게 오늘 합격하면 맛있는 거 쏜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집을 나섰는데 남편 얼굴을 볼 면목이 없고 겸연쩍은 마음이 앞서 울고 싶었다.
‘시험인데 똘망똥망 긴장감이 좀 있어야지 잠이 올 만큼 안정이 되면 쓰나.’
세 번째 실기 접수를 하고 인터넷으로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를 주문했다. 같은 곳을 세 번째 가니 아주 여유가 묻어났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에너지 음료를 마시는데 안마시던 고함량 카페인이 갑자기 몸 안으로 들어와서 그런지 안압이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눈이 너무 똘망 해지는 거 아닌가 싶더니 손이 떨리고 있었다. 실기 시험 몇 번 더 치다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판사판 심정으로 마음을 내려놓으려 노력했지만 시험 횟수가 많아질수록 낯익어야 할 경험은 부담감으로 다가와 멘탈을 흔들며 잦은 실수를 만들어 냈다. 이번에는 작업도 못 해보고 1차 주행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동안 아무 말 없이 지켜보며 응원하던 남편도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도대체 몇 번째 시험을 보고 있는 거야?”
“다음 시험에도 떨어지면 혼낼 거야.”
남편의 실망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고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몇 달 사이 일을 구해 시험을 포기하는 사람도 나오고 이런저런 사정에 같이 시험 보러 다니던 동기들의 수도 줄어들었다.
네 번째 시험을 보러 시험장에 갔다. 자주 보니 정이 들었는지 화장실 가는 길에 만난 감독관과도 놀려온 사람처럼 반갑게 인사를 했다.
“다음에는 시험장 말고 다른 곳에서 봅시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감독관이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다.’
‘시험에 떨어져서 계속 얼굴을 보는 일이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할 텐데.’ 이번에 또 떨어지면 미련 없이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시험장으로 향했다
상대평가라 1차, 2차 모두 통과했다고 다 합격하는 건 아니지만 왠지 합격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시험 볼 때 마다 김칫국을 먼저 들이키고 “합격하면 뭐 살 줄 거냐, 맛있는 거 먹자,” 보상을 요구하던 말도, 안하고 기가 죽어있었다.
가격은 생각하지도 않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포크레인에 소질이 있으면 포크래인 사줄 거야?” 남편에게 조르기도 했다. 친정 농사일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직업으로 삼으면 여자 월급으로는 충분할 것 같아 일석이조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남편은 그동안 남자들을 제치고 단번에 합격해서 포크레인을 사야하는 일이 생기면 어쩌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허파에 바람이 쏙 빠진 내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듯 보였다.
나는 포크레인 자격증을 받고 기본적인 포크레인 작업을 배우기 위해 스페아 기사님을 소개 받았다.
기사님은 일이 들어오는 대로 작업을 알려주겠다고 말씀하셨다. 허허벌판의 논 한 가운데에서 논두렁길을 넓히고 나라시와 자갈을 까는 작업이 잡혔다. 나는 일을 하다 소변을 보고 오는데 한나절이 걸렸다.
‘간이 화장실을 들고 다녀야’ 하나 생각했다.
‘준비물도 많네.’
그 후 인터넷 쇼핑몰에서 일어나서 소변을 보는 소변 통을 샀지만 써보지는 못했다.
남편과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포크레인이 도로를 지나치거나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남편은 말한다.
“저기 네 차 간다.”
첫댓글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언제 합격하시나 긴장감이 돌고 궁금해졌습니다.
글로 이어 주셔서 합격이 반갑네요~^^
배울때는 국비로 배웠는데 실기시험 비용이 백만원이 넘게 들은 것 같아요. 언능 회수 해야 할텐데 불러주는 데게 없네요.ㅎㅎ
글을 참 맛깔스럽게 쓰시는군요. 열정을 응원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