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성령의 열매에 대한 말씀으로 함께 고민하고 우리가 나누려고 합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가운데 그리고 성도들 가운데 항상 있어야 될 것,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을 언급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그중에 최고가 사랑이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가운데 성도들 가운데 꼭 있어야 될 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인데 그중에 제 일이 사랑이라 그랬어요.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성령의 열매 중에 사랑을 가장 앞에 배치했어요.
이게 어떤 의미냐 하면 성령의 열매 가운데 사랑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믿음과 소망 사랑 중에도 사랑이 가장 큰 역할을 하지만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성령의 열매들 중에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 이 모든 열매들 중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랑이 빠지면 과일의 단맛이 없거나 아니면 음식에 조미료가 없거나 이런 의미인 거예요. 되게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언급하면서 사랑을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가장 제일이라고 했고 또 사랑을 가장 먼저 언급했던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보다 더 크고 더 강한 것 더 고전적인 것이 사랑이라는 거예요. 사랑이 제일이라고 했을 때 이 제일이라는 단어가 그런 의미예요. 훨씬 더 강하고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고전적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러니까 사랑이 믿음 소망과 함께 더불어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거예요. 믿음에서 사랑이 빠지면 또 성령의 열매에서 사랑이 빠지면 절대 안 된다는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인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이후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열매들을 좀 어려운 단어인데 전제하고 그리고 포괄하는 역할을 해요. 사랑이 전제가 된다는 거예요. 사랑이 있어야 희락도 있고 사랑이 있어야 화평도 있고 사랑이 있어야 오래 참음도 전제를 하고 포괄적이라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다 품는 거라는 의미인 거예요. 사랑이 이 모든 것들을 연합되게 하고 하나 되게 하고 효율적이게 하고 효과적이게 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있어야 나머지 열매들이 의미가 있게 되고요. 사랑이 있어야 나머지 열매가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다른 열매가 시작이 되고 사랑이 있어야 다른 열매가 무르 익을 수 있다는 겁니다.
성령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성령의 역사가 시작이 된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보혜사인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어요. 예수님도 보혜사지만 성령 또한 보혜사예요. 하나님이 대신 보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대신 보내신 분이시고,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과 아들이 대신 보내신 영이 성령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된 영이 성령인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의 본질은 사랑인 거죠. 능력 파워, 권세 권위 나타남에 있어서 그런 의미가 부여될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성령의 역사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의 첫 번째 열매를 사랑이라고 언급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과 사랑은 분리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나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 분리가 되지 않는 거라는 거예요. 사랑을 뺀 하나님의 하나님을 빼고자 하나님을 설명할 수도 없고, 사랑을 빼고 하나님과 관계된 그 어떤 역사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은 사랑을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어요. 로마서 13장 10절에 보면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그러니까 사랑은 시작하게 하는 성품이고요. 그리고 완성하게 하는 성품이에요. 그래서 나무에 나무를 심고 그리고 구름을 주는 것이 열매를 거두는 시작점이라고 한다면 이제 마지막에 열매를 다 익어서 따에 딸 때도 동일하게 사랑이 그 열매를 완수시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작하게 하는 성품도 사랑이고 그 성품을 완성하게 하는 것도 사랑이라는 거예요. 사랑이 없으면 농익일 수 없고 풍성할 수도 없다는 거예요. 교회의 사랑에 빠지면 교회의 사역이 농후하거나 풍성해질수 없는 거예요. 성도와 성도 사이로 사랑에 빠지면 관계가 무르익거나 그 관계를 통해서 건강한 열매를 맺을 수 없어요. 그래서 사랑은 모든 면에 있어서 전제이자 또 포괄하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율법 율법은 사랑에 의해서 완성이 돼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의해서 율법이 완성이 된 거잖아요. 율법은 사랑에 의해서 완성이 됐기 때문에 결국 사랑이 없으면 율법도 온전하게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율법은 규제하거나 통제하는 것처럼 외형으로 보이지만 율법의 본질은 사랑이에요. 그래서 사랑이 있어야 율법을 완성하는 거죠. 우리 율법을 통제하고 규제하고 억압하는 것 이렇게 받아들이잖아요. 뭐 말라 말라 말라 이렇게 하니까. 그러나 실제로 율법은 규제나 통제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 율법을 완성하는 데는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 옛날로 말로 하면 제사를 드리는 것 사랑이 없으면 제사가 완성이 되지 않아요.
행위로는 결코 제사가 완성이 되지 않아요. 사랑이 있어야만 제사가 완성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율법의 완성도 결국 사랑이라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 성령의 사람 우리가 성령 충만하다고 할 때 우리는 보통 방언을 하고 뭐 이렇게 막 열심을 내고 이런 개념으로 받아들이잖아요.
실은 성령 충만은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의 충만인 거예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교회에 대한 사랑이 곧 성령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새롭게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넘어서 성령이 통치하는 시대를 만드셨어요. 그러니까 성령의 통치의 중심에 사랑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이 사랑을 통해서 교회를 통치하고 성령이 사랑을 통해서 성도들을 통치하는 거죠.
통치는 채찍이와 매 매가 아니라 사랑이 성령의 통치의 핵심인 것입니다. 성령을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의 영이에요. 사랑을 시작하게 하는 영, 사랑을 완성하게 하는 영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의미인 거잖아요. 결국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의미와도 같은 의미인 거예요. 그래서 성령과 사랑은 뗄 수가 없다. 그래서 성경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사랑이 거예요.
방언 예언 이게 아니라 사랑이 성령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예요. 그래서 성령의 사람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성령의 열매가 맺어진 사람이라고 했을 때 그 중심에 있어야 될 것은 사랑인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사랑이 좀 더 농익어져야 되겠죠. 교회에 대한 사랑 그러니까 믿음이 성숙한다는 것은 뭔가를 더 많이 믿는다는 개념도 없잖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더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인 거예요.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는 의미인 거예요.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됐다는 건 방어 두 개 언어로 하던 걸 3개로 하고 3개로 하던 걸 4개 언어로 하는 이런 의미가 아니에요. 내가 성령 인사가 하나다가 성령 인사가 두 개다. 이게 성령의 사람의 본질은 아니에요. 성령의 사람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사랑을 언급했어요. 출발하게 하는 것이고 성품이고 완성하게 하는 성품인 거예요.
여러분의 믿음을 뭐가 완성할까요? 열정이 아니오. 사랑이 여러분의 믿음을 완성하는 거예요. 교회의 규모가 교회를 완성하는 걸까요? 아니요. 교회가 사랑이 교회를 완성하는 거예요. 인생의 완성도 마찬가지 우리 인생의 완성도 결국 사랑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마무리 지을 쯤에 우리가 사랑이 없다면 좀 의심해 봐야 되는 내 믿음의 여정인 거죠.
성령의 마지막 신앙의 마지막이 사랑인데 출발도 사랑이고 마지막도 사랑이에요. 마지막에 사랑이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없다는 것은 내 신앙의 여정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된다는 의무이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느냐 이런 물음에 여러분이 답만 알 수 있으면 여러분은 성령의 사람인 거예요.
우리 교회가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저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목사도 여러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사랑스러운 존재가 저도 그런 존재가 되는 여러분도 저에게 저를 그렇게 여겨지는 순간과 시간들이 와야 정상이라는 거예요.
믿음은요. 제가 제 삶이 제 목회가 여러분이 이걸 품지 못할 수도 있어요. 목사님 왜 저렇게 말을 하지 왜 저렇게 행동을 하지라고 하지만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고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고 또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전에 품지 못한 사람들을 품고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을 사랑하고 하지 못했던 사역들을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극도로 싫어했던 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곧 그 사람이 성령의 사람이라는 특징이고 그것에 의해서 우리의 믿음이 완성되어져 갑니다. 앞에 오래 참음, 자비 양성 충성 다 중요해요. 이 모든 걸 깨는 게 사랑이라는 거 충성해도 사랑이 없으면 왜곡이 되고요. 빛나가요. 참는 것도 사랑이 없으면 건강하게 못 참아요. 분노하면서 참고 그리고 화내면서 참고 상대방을 저주하며 참아요. 그래서 모든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 반드시 깨어져 있어야 돼요.
마침 우리가 꼬치에 이렇게 꽂을 때 보면 여기 채소 넣고 고기 넣고 채소는 무어 넣고 이렇게 넣잖아요. 꼭 고기가 이렇게 들어가 들어가야 될 필수물품이 고기라면 사랑은 꼬치에서 고기와 같은 거예요.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 그게 빠지면 맛이 없고 역할을 못하고 그렇게 되는 게 사랑인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나는 이전에 갖지 못했던 사랑이 내게 있는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 오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사랑받으려고 오는 거죠. 왔다가 목사인 저에게 그런 사랑이 없으면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성도들에도 마찬가지겠죠.
여러분 다들 물론 우리가 만나보면 별거 아닌 거 알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기대하고 교회를 와요. 교회 가면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공동체보다는 사랑이 좀 많겠지라고 와요. 근데 우리가 이 사랑을 가지지 못하면 그래서 결국 교회 사역도 교회 공동체도 완성되지 않는 거예요.
이 모든 걸 완성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과 저 안에 어떤 사랑이 좀 늘어나기를 풍성해지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