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탁현규의 조선 미술관, 조선 문화절정기 풍속화 이야기

[시냇가에나무]

나는 이런 의문이 있었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고 내 생각이 아닌 글을 과연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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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온 풍속화들이 상상이 아닌 직접 보았거나 있었던 사실을 그렸다는 것을 알면서 어느 정도는 의문점이 해결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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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사진으로 그때 모습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사진이 없던 조선시대의 모습은 풍속화의 그림으로 알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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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규의 조선 미술과 궁궐 밖 이야기에는 중국 영향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리의 모습인 진경산수화와 진경풍속화의 선구자인 사대부 출신 겸재 정선과 그의 제자 조영석이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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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중인 출신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이 풍속화를 이어가는데 김홍도는 평민 풍속의 종결자이고 신윤복은 양반 풍속의 끝판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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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안 사실은 신윤복의 아버지가 영조와 정조 임금의 어진을 그린 일급 화가 신한평이었기에 신윤복의 뛰어난 재능에도 상피제로 도화서에 근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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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규의 조선미술관 궁궐 밖 이야기에는 7명의 화가와 다음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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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 현이도
김득신: 밀희투전
신한평: 자모육아
김희겸: 야주취월
정선: 사문탈사, 어초문답
김홍도: 포의풍류, 귀인응렵, 마상청앵, 기부우신
신윤복: 임하투호, 납량만흥, 기방무사, 홍루대주, 표목봉욕, 이부탐춘, 니승영기, 노상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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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이도(賢已圖-어질현, 이미이 그림도), 조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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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다섯이 나무 그늘에 자리를 펴고 장기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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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3명은 집에서 쓰는 모자를 쓰고 있으니 근처에서 왔고, 오른쪽 두 명은 갓을 쓰고 있는 걸로 보아 멀리서 왔으며, 서있는 댕기머리 선비는 지나다 흥미진진한 장기판을 구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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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방관을 쓴 선비 옆에 상이 있고 그 위에 바둑판과 쌍륙판이 놓여 있는 걸로 보아 이 선비가 오늘 친구들 모임의 주최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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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갓을 쓴 선비가 "장이야!"를 외치며 얼굴에는 기쁨이 흐르고 왼손으로 갓끈을 만지며 여유를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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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는 일격을 당한 상대는 왼손으로 자리를 짚고 오른손으로 장기 알을 만지작거리며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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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탕건을 쓴 선비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벌리고 묘수에 감탄하는 표정이고, 오른쪽 갓 쓰고 부채 잡은 수염 없는 선비 역시 흥미진진한 대국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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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포의풍류(布衣風流-베포, 옷의, 바람풍, 흐를류),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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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홀로 앉아 비파를 타고 있는 선비는 김홍도 자신으로 젊은 시절 김홍도는 방 안에 앉아 생황을 불었었고 나이 든 지금은 비파를 연주하면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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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김홍도는 다루지 못한 악기가 없을 정도로 그림에만 천재가 아니라 음악에도 천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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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 생황을 불던 젊은 시절에는 방 안에 파초 잎과 지필묵, 족자와 술동이 있었는데, 위 그림에는 표주박, 도자기, 향로, 칼과 책이 덧붙었다. 조선 선비 방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벌여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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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홍도는 선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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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인은 양반과 평민 사이에 위치한 전문 직업 계층을 부르는 말이고 선비는 양반 계급을 넓게 부르는 말이다. 즉 중인은 선비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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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홍도 시절 중인들의 신분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이에 김홍도처럼 지방관까지 오르는 경우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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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중인들도 양반들과 같은 선비 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홍도가 아닌가 한다.

월하취생(月下吹笙-달월, 아래하, 불취, 생황생),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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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귀인응렵(貴人鷹獵-귀할귀, 사람인, 매응, 사냥렵),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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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주인공은 김홍도 자신으로 30년 도화서에서 일하다 정조가 48세 때 지금의 충북 괴산군 연풍면인 연풍현감으로 보내주어 그때 매사냥하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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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왼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오른손에는 매 한 마리를 올려놓은 채 말안장 위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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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은 말 옆에 따라오는 동물을 보는데 이 동물이 사냥개가 아닌 암 사슴이다. 천하의 김홍도의 실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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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장식을 달아 꾸민 말 궁둥이에 토끼건 꿩이건 사냥감이 보이지 않으니 선비는 지금 막 사냥에 나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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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이 사슴의 다리를 가리고 사슴 다리가 말 다리를 가렸으니 다 그리면 재미없다는 법칙을 어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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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도 나무 한 그루 빼고는 모두 비워놓았고 뒷배경도 산이건 나무건 일체 그리지 않아 감상자는 오롯이 말 탄 선비에게 집중할 수 있다.

호귀응렵(豪貴鷹獵-호걸호, 귀할귀, 매응, 사냥할렵)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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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문탈사(寺門脫蓑-절사, 문문, 벗을탈, 도롱이사), 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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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탈사의 뜻은 '절 문에서 도롱이를 벗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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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 그림은 정선이 66세 때 그렸고 아래는 14년 후인 80세에 그린 그림으로 모습은 율곡 선생이 소를 타고 눈오는 절을 찾아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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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그림을 비교해 보면 위의 채찍 잡은 아이를 붓짐 진 아이로 바꾸어 놓았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율곡이 탄 소가 66세 때는 중국 물소였는데 80세 때 그림에서는 조선 황소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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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학교에서 배울 때 정선하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畫)의 선구자인데 이렇듯 풍속화에서도 중국의 모습이 아닌 우리 조선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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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상청앵(馬上聽鶯-말마, 위상, 들을청, 꾀고리앵),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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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선비는 김홍도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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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손에 부채를 든 것으로 봐서 여름인 듯하지만 버드나무 잎이 무성하지 않은 걸로 봐서 늦봄이며, 강둑을 걷는데 뒤에 아무것도 없는 걸로 봐서 어느 아침에 안개 자욱한 강둑을 말 타고 아이와 걷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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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그냥 앞만 보고 걷는 장면이라면 이 그림은 평범한 그림이 되었을 텐데 말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춰 세우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버드나무를 바라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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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잎들을 헤치고 보니 가지 위에 주황색 꾀꼬리 한 마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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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꼬리는 늘 한 쌍으로 다니는데 두 번째 꾀꼬리는 오른쪽 잘린 둥치 위로 대가리만 빼꼼히 내놓고 첫 번째 꾀꼬리와 호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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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꼬리가 울면 여름이 온다는 여름의 전령사 한 쌍이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니 오늘 선비는 눈 호강, 귀 호강을 제대로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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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시(題畵詩-글제제, 그림화, 시시)의 내용은 뻐꾸기를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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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가인화저황천설(佳人花底簧千舌-아름다울가, 사람인, 꽃화, 밑저, 혀황, 일천천, 혀설)
아리따운 사람이 꽃 밑에서 천 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하고→꾀꼬리 소리를 천 가지 생황 소리에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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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운사준전감일쌍(韻士樽前柑一䉶-운치운, 선비사, 술통준, 앞전, 감자나무감, 한일, 둘쌍)
시인의 술동이 앞에 황금귤 한 쌍이 놓인 듯하다→꾀꼬리 생김새를 귤 한 쌍에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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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역난금준양류애(歷亂金준楊柳崖-지낼력, 어지러울난, 쇠금, 준, 버들양, 버들류, 낭떨어지애)
어지러운 금북이 버드나무 언덕 누비니→꾀꼬리의 움직임을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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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야연화우직춘강(惹烟和雨織江-이끌야, 연기연, 화할화, 비우, 짤직, 봄춘, 큰내강)
안개와 비 섞여 봄 강을 짜낸다→꾀꼬리가 봄 강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을 금북이 옷감을 짜내는 것이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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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밀희투전(密戱投錢-빽빽할밀, 희롱할휘, 던질투, 돈전), 김득신(정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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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모인 노름꾼 네 명은 모두 집에서 편하게 쓰는 모자인 탕건을 썼는데 투전 놀이판의 유니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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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쓴 이가 패 하나를 내놓은 순간 긴장감이 감돌며, 맨 왼쪽 인물은 다음이 자기 차례인지 패를 고르고 있고, 패를 고르는 사람 오른쪽 인물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놓았고, 맨 오른쪽 인물은 두 손으로 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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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같은 자리에 앉았지만 각자 다른 마음속을 각자 다른 손짓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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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돈을 따야 하는 도박판 상황, 도박은 협업이 아닌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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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 인물 허리춤에 달린 돈주머니가 그림 속 핵심 소품으로 이 주머니를 가득 채우느냐 몽땅 비우느냐가 오늘 도박의 종결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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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놀이 장면에서 빠질 수 없는 담뱃대가 이 그림에는 없는데 투전은 두 손을 다 사용하는 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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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다리소반에 도박판에 필요한 술상이 올라 있고, 그 아래 큰 그릇은 요강이고 작은 그릇은 침 뱉는 그릇인 타구(唾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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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명은 양반일까 중인일까? 양반은 아닌듯하고 아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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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경아전을 서리(胥吏), 지방 외아전을 향리(鄕吏)라고 불렀는데 이들 아전들은 봉급이 없었기 때문에 양반들보다 도박판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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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게임 이론에서, 참가자가 제각기 선택하는 행동이 무엇이든지 각 참가자의 이득과 손실의 총합이 제로가 되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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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임하투호(林下投壺-수풀림, 아래하, 던질투, 병호),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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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 오른 소맷자락을 걷어 올리며 투호 살을 던지려는 선비와 이를 뒤에서 쳐다보는 두 선비도 수염 없는 젊은이들인데 뒤 두 선비는 투호 살을 던지는 선비를 수행하는 하급 관리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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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보이는 선비는 살을 들고 있다가 하나씩 건네주고 얼굴이 보이는 선비는 손에 상급자의 갓을 들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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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에 살 두 개를 잡고 오른손에 한 개를 잡고 기녀는 웃고 있는 반면, 살을 던지는 선비의 얼굴은 눈고리가 언짢은 얼굴인 것으로 봐서 이번 판의 승자는 기녀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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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 옆 수염이 난 선비는 뒷짐지고 담뱃대를 입으로만 물고 있는 묘기를 발휘하고 있는데 아무리 담뱃대가 속이 비고 가늘어도 손으로 안 잡고 입으로만 버티고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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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납량만흥(納凉漫㒷-들일납, 서늘할량, 질펀할만, 흥흥),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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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선비들이 산속 바위 그늘 너른 터에 돗자리를 깔고 춤추는 기녀와 선비가 섰으며 악공들이 앉았고 선비와 기녀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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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약간 내민듯한 기녀의 춤사위는 나풀거리는 치맛자락에서 일어나고 선비의 춤사위는 너른 도포 소맷자락에서 휘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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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의 눈빛은 악공들에게 감사의 인사는 보내는데 기녀의 눈빛을 받는 이는 아무도 없고, 유일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해금 주자의 얼굴은 찡그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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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날 권세가 자제들이 산속으로 불러냈는데 나이들이 어린 데다가 한량기만 가득한 단정치 못한 선비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니 악공들이 화가 난 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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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선비는 수염이 지긋한 반면 앉아서 담뱃대를 물고 갓끈을 풀고 있는 후줄근한 선비 둘은 수염 없는 젊은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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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기방무사(妓房無事-기생기, 방방, 없을무, 일사),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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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의 자줏빛 꽃신이 디딤돌을 밟고 섬돌 위에 오르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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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으로 쌓은 섬돌 위에서 신을 벗고 마루로 올라가면 되는데 왼발을 디딤돌 위에서 떼기가 망설여지는 이유는 방문 안 상황이 심상찮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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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건을 머리에 얹은 남자가 기녀를 언짢은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눈꼬리는 치켜올라갔고 입술은 뿔난 듯 다물었으며 얼굴은 혈색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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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한 올 없는 젊은이가 글공부는 내팽개치고 기방에 살면서 주색잡기에 골몰하니 젊은 나이에 몸이 상할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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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가리개인 발이 반쯤 쳐있고 오동나무 잎이 무성한 걸로 보아 여름인데 왜 솜 이불을 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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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 이불이 펴져 있는 이유는 이불 뒤 놀란 눈빛과 몸짓으로 상체를 앞으로 숙인 여인으로 충분히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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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은 아직 머리를 올리지 않은 앳된 기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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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손바닥을 쫙 펴며 놀라는 손짓인 것은 아마도 들키면 안 될 것을 들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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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왼쪽 기녀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한 걸로도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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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남자의 눈빛은 놀란 어린 기녀의 눈빛과는 달리 당황한 기색은 전혀 없고 흥이 깨진 것에 화가 난 듯하니 이 남자는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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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홍루대주(紅樓待酒-붉을홍, 다락루, 기다릴대, 술주),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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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 기녀와 세 남자가 앉아 있는데 이들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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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의 신발은 들여 놓았고 섬돌에는 신발이 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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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방 안쪽으로 향해있고 하나는 밖을 향해 가지런히 놓인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은 이제 막 도착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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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 옆 남자는 맨 상투에 분홍 저고리 차림이며, 가운데 더 어려 보이는 남자와 닮았으며 오른쪽 남자는 수염이 있는 것으로 봐서 나이가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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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이야기는 오늘 둘째인 맨상투 남자가 푸른 치마 기녀의 기둥서방으로 형과 동생에게 기녀를 소개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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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서먹서먹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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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먹한 기운은 술상이 들어와야 풀릴 것이니 그전에 담배로 서먹함을 다소 덜어내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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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술은 팔자걸음의 여인이 왼손에 들려있고 오른손에는 벌거숭이 아이 손을 잡고 있는데 잘 보면 여자 아이고 이들 관계는 할머니와 손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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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형과 동생은 기녀와 조카를 보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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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자모육아(慈母育兒-사랑자, 어미모, 기를육, 아이아), 신한평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이 그린 그림으로 오른쪽 우는 아이가 둘째 신윤복, 젖 먹는 아이가 남동생, 오른쪽 여자아이가 첫째 신윤복의 누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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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품에 안긴 갓난아이가 젓을 빨면서 오른손으로는 젖꼭지를 만지고 있고 엄마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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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둘째는 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겨 서러워 우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어 시위의 울음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되찾을까 하는데 희망은 바로 산산조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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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둘째는 더욱 목 놓아 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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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울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끝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듯 왼쪽 눈으르는 어머니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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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왼쪽의 첫째는 체념의 기운이 눈에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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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태어나 셋째가 태어나면서 이제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첫째도 지금의 둘째처럼 서럽게 울었던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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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첫째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리개에 의지하여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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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재 신한평은 혜원 신윤복의 부친으로 이들 부자는 모두 화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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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인 계층은 거의 직업이 세습되었는데 아버지가 역관이면 아들도 역관이고 아버지가 의관이면 아들도 의관이 되었고, 이러한 중인들은 전문직이었고 전문가 집단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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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평은 영조와 정조 임금의 어진을 그리는 데 참여한 일급 화가였는데 조선시대 관료가 벼슬에서 물러나는 나이인 70이 넘어서도 도화원에서 그림을 그렸고 이 상황이 아들 신윤복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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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도 가운데 친인척들이 같은 관청에서 근무하지 못하는 법을 서로 피하다는 뜻을 가진 상피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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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신윤복은 아버지 신한평이 관직에서 물러나지 않은 한 도화서에서 근무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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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아들 신윤복이 아버지 신한평보다 그림 솜씨가 좋았다는 사실을 아래 두 초상화만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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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표모봉욕(漂母逢辱-뜰표, 어머모, 만날봉, 욕욕),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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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두(蓋頭)는 과부들이 외출할 때 쓰던 복식이니 빨래하는 여인은 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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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안 젊은 스님이 승건과 장삼을 내팽개치고 덤비려는 순간, 시어머니인 노파가 방망이를 휘두르며 오른손으로 목덜미를 낚아채려는데 힘에서 어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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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스님의 시선은 온통 여인에게 가 있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지 나름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지만 욕망이 양심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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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보고 있던 여인은 힐난하듯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자신에게 덤벼든다면 결코 당하고만 있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기운이 얼굴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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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젊은 스님의 앳된 얼굴로 보아 아직 비구계를 받지 않은 사미승이며, 아래 그림 단오풍정에서 계곡 나무 뒤에서 기녀들이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던 그 녀석 중에 하나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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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부탐춘(嫠婦探春-과부리, 아내부, 찾을탐, 봄춘),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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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여인들 마음이 흔들리는 봄날, 바깥출입을 못 하는 소복 입은 사대부 30대 과부가 몸종과 죽어가는 소나무 둥치에 앉아 신세한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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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담장 개구멍으로 들어온 개가 과부의 개와 짝짓기 들어가니 과부의 눈빛은 반쯤 풀어져 게슴츠레하게 되고 남자의 경험이 없는 몸종은 과부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온통 짝짓기에 관심이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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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개들 위에 참새 한 쌍도 짝짓기 중이고 매화나무 가지에도 참새 두 마리가 짝을 지었는데 과부와 몸종만이 짝이 없는 외로움의 극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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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그림 인물들은 항상 눈빛 교환으로 대화를 나누지만, 여기에는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숨죽인 두 여인 사이에 적막을 깨는 것은 솔잎 앞에서 짹짹거리며 나는 참새 세 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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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문종심사(聞鐘尋寺-들을문, 쇠북종, 찾을심, 절사),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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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을 드리러 가는 세 명이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집안에 우환이 있어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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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앞에는 미리 연락받고 마중 나온 스님이 허리를 굽혀 합장하며 맞이하는 것으로 봐서 이 절의 큰 시주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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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과 스님 사이에는 절을 찾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하나씩 놓은 돌이 무덤을 이루었고 길 끝에는 홍살문이 반쯤 드러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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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이유는 세 가지 중에 하나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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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아기를 점지해달라고 산신기도. 둘째, 집에 병자가 있어 병을 낫게 해달라고 칠성기도. 셋째 남편이 계속 과거시험에 떨어져 관세음보살에게 과거급제 기도를 드리러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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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어초문답(漁樵問答 고기잡을어, 땔나무초, 물을문, 대답할답), 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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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는 머리숱이 다 빠져 상투가 해체되었고 나무꾼은 그래도 아직 상투가 틀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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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 옆에는 머리털 보호를 위해 커다란 햇빛 가리개 모자가 있고 왼쪽에는 잡은 물고기 망태와 앞에는 기다란 낚싯대가 있으며 나무꾼 뒤에는 하루 종일 모은 나무 한짐 지게를 막대기로 받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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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나 일본은 지게를 사용하지 않기에 이 둘의 옷차림은 비롯 중국식이라 해도 분명 조선의 어부와 나무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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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복식을 중국풍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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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밀은 화제를 읽으면 '어부와 나무꾼이 묻고 답하다' 뜻이다. 이는 북송대 유학자였던 소웅이 지은 책 어초문대(漁樵問對)에서 유래하는데 이들은 철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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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은 중국풍을 조선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아 진경풍속화(眞景風俗畵)의 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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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야주취월(夜舟醉月-밤야, 배주, 취할취, 달월), 김희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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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그물질한 어부가 달이 떠오른 저녁에야 일을 마치고 갈대밭에 배를 대고 집에서 싸온 주먹밥과 마른안주, 술 한 병으로 허기를 달래고 갈증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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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의 배를 내놓은 편안한 자세로 보아 술병은 모두 비어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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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새벽같이 그물질하려면 적당히 피로가 풀릴 정도로만 술을 마셨을 것이며, 이것이 평생 그물질로 살아온 어부가 지켜야 할 관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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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갈대숲에서 저녁을 먹는 어부는 오늘도 둥근 달과 함게 마셨기에 외롭지 않았고 저녁 바람에 같대밭은 흔들리고 갈대 가지 끝에 걸린 달은 환한데 물 위에는 잔잔한 물결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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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어부는 달과 하나가 되는 몰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렀고 달과 내가 하나가 되었기에 욕심은 사라져 기쁨만 가득한 무아지경(無我之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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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기우부신(騎牛負薪 말탈기, 소우, 질부, 섶나무신).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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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아이가 나무를 한짐을 지게에 지고 고삐는 없으나 코뚜레가 있는 황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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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소를 타고서도 지게를 지고 있는 것은 이렇게 하면 소가 덜 무거워할 것이라는 아이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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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고개를 돌려 물에서 헤엄치는 물새들을 쳐다보는 장면에서 그림의 주제가 노동이 주는 고단함에서 노동 중간에 맛보는 여유로움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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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이 그림에서 조선 아이가 조선 지게를 지고 소를 타고 조선의 여울에서 조선의 오리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머리에서 발끝까지 조선 아닌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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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노중상봉(路中相逢-길로, 가운데중, 서로상, 만날봉),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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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평민 부부가 장에 오가는 길에 노상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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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봐도 오른쪽 부인이 더 미인인데 담배를 문 남자가 자랑스럽게 자기 자기 부인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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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부인이 모자를 벗을 것을 봐서 오른쪽 남자와는 구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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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미모 경쟁으로 오른쪽 여인의 눈길은 왼쪽 여인에게 가있고, 왼쪽 여인의 눈길은 자기 부인의 미모를 자랑하는 남성이 못마땅한듯 쏘아보고 있으며, 왼쪽 남자의 눈길은 오른쪽 여인에 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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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니승영기(尼僧迎妓중니, 중승, 맞이할영, 기녀기),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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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연둣빛 순으로 봐서 봄인데 불공을 드리러 온 기녀와 몸종을 절세미인 비구니 스님이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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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기녀의 눈빛으로 보아 이들은 구면이며, 스님이 천민인 기녀에게 공손히 절하는 것으로 보아 큰 시주자일 것이며 몸종의 손에 공양물이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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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자기가 모시던 임금이 승하하면 후궁들은 스님이 되어 도성 바깥 절에 머물렀으니 이 절은 한양 주변 후궁 비구니들의 절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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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노상탁발(路上托鉢-길노, 위상, 맡길탁, 바리떼발),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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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바위가 있는 산길에서 스님 무리 4명과 기녀 5명이 마주쳤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선비는 신윤복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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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은 왼쪽부터 목탁 꽹과리 북을 치며 탁발 공연을 하고 있고 오른쪽 모자 쓴 스님이 권선문(勸善文)을 내밀며 돈을 달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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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녀 무리에서 가장 나이 많은 기생이 돈을 꺼내고 있는데 다른 기녀들의 눈을 보면 모두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르테미스]

대단한 리뷰 입니다. 마치 제가 읽은 것 같아요. 자세한 설명으로 더 이해가 잘 가게 하셔서 넘 감사드립니다

[시냇가에나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avid]

한참을 빠져서 읽고 보았습니다. 귀한 그림과 해설 그리고 느낌까지 나무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추천 꾸욱

[시냇가에나무]

더 많이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