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의 여행 징크스를 깨보겠다는 결심으로....주먹 불끈 쥐고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2020년 일본 여행 취소에서부터, 영덕 대게 여행 취소를 거쳐, 폭설이 예고된 속초 여행까지 취소한다면 앞으론 정말 북클럽 여행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할 거라는 위기감에...ㅋ....다들 힘을 내었지요. 역시 세상에서 젤 무서운 건 코로나였고, 우리는 날씨 따위에는 지지않는 용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속초로 향하는 길은 좋았습니다. 날이 흐리고 비가 살짝 흩뿌렸지만 드라이브하기 어려운 날씨는 아니었지요. 첫번째 목적지인 "외옹치항 바다향기로"에 내렸을 때 우리는 산처럼 거대한 파도를 맞닥뜨리고 다들 입을 떡 벌렸지요. 집채만한 파도...라는 표현은 많이 들었지만 거대한 바다가 전속력으로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동해바다의 기세는 정말 놀라웠어요. 방파제 앞 1열 주차한 자동차 위로 파도가 거침없이 내리꽂혀 바닷물로 세차하는 차들을 보며 우리는 얼른 뒤로 차를 뺐는데요.
아쉽게도 "바다향기로" 산책로를 위험하다가 차단하는 바람에 그 길을 걷지는 못했지만 다음엔 꼭 다시 와서 이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산골짝에서 온 촌사람들은 바다 구경에 넋을 놓고 환호를 했네요.
차를 달려 이번엔 <바다정원> 카페로 갑니다.
제 속초여행의 필수 코스가 되어버린 이곳에서 바다를 보며 따끈한 차에 몸을 녹이고....속초중앙시장으로 갔어요.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저녁 먹거리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벌써 어둑해져가네요. 그때만해도 눈대신 비였는데 숙소가 바닷가가 아니라 설악산 아래여서 그런지 숙소 가까이 오자 눈송이가 커지고 길에는 벌써 눈이 쌓이기 시작했어요. 길은 어둡고 오늘의 기사 두 분 중 이수진 님은 그래도 앞서 간 덕분에 숙소로 무사히 갔는데 불과 10분 차이로 길에는 눈이 쌓이고....김기사님 승용차는 낮은 언덕길을 올라가지 못하고 주춤주춤 몇 번을 미끄러집니다. 머뭇거리는 사이 폭설은 계속 내리고, 도로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숙소를 불과 900미터 남겨두고 우리는 빠른 결단으로 보험사에 견인을 요청합니다.
대한민국 보험회사의 탁월한 시스템으로 핸드폰 위치추적을 마친 후, 20분 가량 걸려 우리가 있는 곳에 견인차가 왔습니다. 견인차를 기다리는 사이 속초 택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우리 곁을 쌩하니 지나가고, 사륜구동 차들도 아주 스무스하게 우리 곁을 지나가는데...그동안 차 좋다고 자랑하며 다니던 우리 그랜저만 왜때문에 고요히 눈밭에 서있는 거냐고요.....그러거나 말거나, 우리가 오늘밤 차를 버리고 900미터 눈길을 헤치고 걸어가야 될 지도 모르는데, 자동차 안에서 10인분 회를 네 명이 다 먹으며 밤을 샐지도 모르겠는데, 배짱 좋으신 김은혜 선생님과 신이현 샘은 "좋은 음악 좀 틀어봐라" 하시고 저는 "예..예..."하며 음악다방 DJ의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견인차가 와서 처음엔 네 명을 다 못태워가니 어쩌니 하더니 곧 우리 네 명을 그대로 태운 채 아주 부드럽게 언덕을 넘어 목표지점 하이디하우스에 안착을 시켜줍니다. 야홋! 다음날 저는 해피콜 서비스에 모두 다 별 다섯개 만점처리를 해주며 현대해상에 찐한 감사를 표현했네요. 무사고 모범 운전자, 오랜만에 보험료 낸 보람을 톡톡히 느꼈습니다.
그렇게 하이디하우스에 도착하니 선발대 식구들이 버선발(은 아니겠지만)로 마중나와 무사 귀환을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파티는 시작되었습니다.
하이디하우스는 속초 맛집 뷔페로 변신을 하고 속초중앙시장에서 공수해온 강원도의 맛, 모듬회와 오징어순대와 새우튀김과 떡볶이와 만석닭강정....눈오는 날의 잊지못할 에피소드가 더해져 더욱 즐거운 시간이었지요.
이어서 열린 "하이디 음악다방"...우리의 인생과 청춘의 사연을 담은 노래들이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고 썸을 타던 안기홍 신은영 두 남녀는 어떻게 해서 연애에 이르게 되었나, 고등학교 때 쫌 놀던 신명순은 깻잎머리하고 왜 기타줄을 튕기게 되었나, 올드보이들의 철지난 사연들에 이어 해맑은 청소년 안지우가 들려준 힙합 송에 분위기 전환도 멋지게 해보고요.
이날은 정말 하얀 밤이 계속되었습니다.
밤새 눈은 끊임없이 나리고....가난한 내가 사랑하던 나타샤도 없는데 설악의 눈은 잠들 줄을 모르네요....과연 내일 우리는 괴산으로 귀환할 수 있는가, 간혹 염려되어 내다본 창문 밖으로는 밤새 제설차가 끝도 없이 도로 위를 오가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정말로 홋카이도 설국에라도 와있는 것처럼 50센티 폭설이 쌓인 강원도의 겨울은 정말 대장관이었어요. 그간 괴산에서 눈이 오면 고립되었다 좋아했는데 아, 그동안 내가 본 건 눈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였구나....정말 설악산의 폭설은 상상 그 이상이었어요.
집으로 갈 수 있든 없든, 그런 염려 따윈 1도 없는 이 해맑은 사람들.....눈밭을 구르고 뒹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포크레인이 계속 왔다갔다하며 치워도 치워도 소용없는 눈덩이를 계속 밀어내는 사이, 자동차를 뒤덮은 눈을 걷어내고 우리는 열심히 체인을 감고 출발 준비를 합니다. 일회용 체인을 감느라 애쓰는 우리들을 보며 관리실 직원이 이 마당만 벗어나면 제설 말끔히 되어있다, 그딴 거 필요없다, 몇 번이나 말을 하지만 어젯밤 견인차에 끌려온 우리는 열심히 체인을 감아 봅니다. 숙소가 고속도로 IC 바로 옆에 위치해서 숙소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올라타자마자 일회용 체인은 다 풀려져나가고 우리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 봅니다. 도로가 너무 깨끗해서요....
눈은 계속해서 내렸지만 저만치 앞에 제설차가 우리를 선도하고 있으니 마음이 푸근합니다. 와...강원도 제설 시스템에 감탄하며 대한민국 재난 준비 시스템에 감탄하며, 역시 사전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시스템만 제대로 돌아가면 이태원 같은 사고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며 한 편 선진 대한민국에 감탄하고, 한 편 무능한 정치와 행정 인력들에 분노했습니다.
숙소를 나서기 전 마지막 사진을 남겨 봅니다.
청소년 안지우가 우리를 위해 열일을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숙소에 갖다놓은 비망록까지 대표로 멋지게 작성해준 북클럽 주니어 안지우....고맙다....
자....이제 우리의 여행 징크스는 깨졌고, 앞으로는 갈까 말까 할 때 무조건 고고고고고고고....를 외치기로 결의를 다지며 환상적인 겨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기에 약간의 두려움을 동반한 설렘이지만, 여행 중에는 이런저런 어려운 일들도 겪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지나고보면 그 모든 일이 그리움과 추억으로 남기에....우리는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게 되는 거겠죠?
아쉽게도 이번에 함께하지 못한 분들, 다음 여행엔 꼭 함께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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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모임은 2월 23일(목) 저녁 7:00
<이반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두 편을 모두 읽어오시면 좋습니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1-3챕터(97쪽까지) 읽어오고 안기홍 님이 여는 발제를 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는 <크로이체르 소나타> <하지 무라트> 등 토스토이 중단편들을 몇 회에 걸쳐 읽어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만일 단편선을 읽는다면 문학동네 책으로 읽으면 좋을 거 같네요.
이 책에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악마 등등 11편의 단편이 실려있어요. 이반일리치의 죽음도 있고요.
2023년, <서양미술사>를 공부하고 유럽 여행을 갈 수 있다면 완벽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만....
언젠가 Dreams come true......
못다한 일본 윤동주 여행의 꿈도 남아있고,
신이현 샘은 앙코르와트를 가자는 말씀도 하셨고....
가장 가까이는 곡성 미실란 여행도 생각해봅니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 열심히 읽고 또 자유롭게 다녀요!!!!!
첫댓글 함께 여행하는듯한 착각이 드는 후기를 읽으니 그 날 밤 갈까 말까 수없이 고민하던 시간이 떠오르고, 또 다시 부럽고.. 그렇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