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순 시조의 시대성과 시조사적 위치
이지엽(한국시조시학회 회장)
구름재 박병순(朴炳淳) 선생은 1917년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에서 출생하셔서 2008년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삼환아파트에서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진안공립보통학교 졸업(1933)하고 대구 사범학교 심상과 졸업(1939)하고 전북대학교 문리대학 국문과를 졸업(1954)하고 동 대학원에서 「현대시조의 한 고찰」로 문학석사 학위 받았다. 전주사범부속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전주중, 전주 남중교사, 전주고, 남원농고, 진안 농고, 임실고 교사를 역임(1939 - 1978)했고 전주대학교, 명지대학교, 중앙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에서 시조창작론, 고전세미나, 시조가사론 등을 강의(1965 - 1991)하셨다. 1938년《동광신문》에 시 「생명이 끊이기 전에」등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1952년에서 1960년까지 시조 최초 전문지 《신조》를 5집까지 발간함으로써 본격적인 시조활동을 시작하여 1956년『낙수첩』(항도출판사), 1971년 별빛처럼』(금강출판사), 1973년『문을 바르기 전에』(세운출판사), 1977년 『새눈 새맘으로 세상을 보자』(동화출판사), 1977년『구름재 시조선집』(대광문화사), 1981년 『가을이 짙어가면』(새글사), 1986년『진달래, 낙조처럼』(청한문화사), 1991년『해돋이 해넘이의 노래』(뿌리), 1993년『구름재 시조전집』(가꿈), 1997년 『행복한 날』(세원), 2003년『먼길 바라기』(토우문원) 등 적지 않는 시조집을 발간하셨다. 50여 년 동안 선생은 11권의 시조집을 발간하고 2권의 시조선집을 발간하면서 1,100여 편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작품을 창작하였다. 한국시조작가협회 이사(1964~1970년), 노산문학회 운영이사(1979~1996년), 가람문학상 운영위원을 거쳐 1991년에 결국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으로서 시조문학의 수장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생애는 모두 우리 시조문학의 발전과 전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조는 나의 하늘이요, 나의 종교요, 시조는 나의 생명이자 생활인 바, 나의 하늘을 겨레의 하늘로, 나의 종교를 겨레의 종교로, 나의 생명과 생활을 겨레의 생명과 생활로 널리 펴고 높이 끌어올리자는 것이 나와 나의 동지들의 필생의 사명이며, 천명임을 깨닫고 그렇게 살아 온 까닭에 이에 와서 새삼스레 오랜 긴긴 세월 우리 민족의 심혈과 우리 겨레의 숨결 어린 우리 시조와 죽어도 결별할 수 없다는 것이 절대적인 이유다.
이 선언에는 시대와 더불어 체험화 되고 신념화된 확고한 민족의식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구름재 박병순 선생의 작품 세계를 우리 시조문학사 전체를 통하여 다시 재평가해야 되는 이유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과연 어느 누가 이만한 뜨거운 정열로 시조를 논의하였던가. 수장을 맡고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분화가 된 시조단을 그가 자진하여 접고 하나로 통합한 것 또한 이러한 뜨거움의 결과에서 연유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선험적인 정신으로 우리 시조문학사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선생에 대한 연구는 1999년부터 시작되어 석사, 박사 학위 논문 각 1편과 학술논문(한국연구재단 등재지) 몇 편이 있을 뿐이다. 작품은 물론 정신사를 포함하여, 시대사에 이르기까지 보다 포괄적인 연구와 다양한 접점의 연구방법들로 선생에 대한 연구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선생에 대한 작품을 일별하면서 우선 문제 제기가 가능한 몇 가지를 여기 제기해보고자 한다.
여기는 산악 고원 분지 산밭〔山田〕일구고 다락논 갈아,
머루랑 다래랑 우름 더덕 송이 먹으며 살아 왔으니.
-「속금산 금줄 매고」 둘째 수 초장과 종장
상전 월포 일대 쏘가 되고 좁은 땅 좁아지고 사람 줄고,
-「속금산 금줄 매고」셋째 수 초장
물결이 바위를 모래알로 가시듯 세월도 정을 앗는 걸까?
-「농번기」 셋째 수 종장
뒤돌아보고 보며 가물가물 사라져간 흰 한 점∼
-「병이 짙어지면」 여섯 수 종장
고달픔 외로움 피맺힘으로 얽힌 험준한 운명의 능선,
-「아쉬움」 초장
창이 이렇게 좋은 줄을 어제사 비로소 깨달았소.
-「창」 첫 수 초장
이 작품들이 시조의 한 장에서 갖는 4음보의 전통적인 음보 개념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볼 때 이를 파격으로 볼 것인가. 선생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선생은 시조 창작법에 대하여 “엄밀히 말하면 틀에서 벗어나거나 정서에 바탕 한 시의 알맹이(내용)를 지니지 못한 말의 나열은 유희는 될지 몰라도 물론 시조는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틀(잣수, 음수, 부분)을 중시한 나머지 ‘쇠뿔을 고치려다 소를 잡거나 나무를 잡으려다 숲을 놓치고 마는’격으로서(전체, 내용, 정신)을 죽일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창작 방법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보릿가을에 모내기야 뽕따기야 가쁜 숨을 몰아 허리를
못 펴는 한 고비에서도,
앵도 보리밥에 상추쌈을 싸며 쑥국새 소리를 듣는 오붓한
행복도 있어 살아간다는 두메산골 사람들의,
곱디 곤 티 없는 마음씨가 더욱 좋아 저도 따라 산단다.
-「농번기」초반부
이 작품은 사설시조로 볼 수 있는 바 「농번기」가 가지고 있는 형식에 대한 실험성과 선각성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사설시조의 미학적 측면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초장, 중장에 이어 종장까지 음보가 늘어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초장과 증장에서 실현되고 있는 엮음의 미학은 과연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넌 성숙해서 좋구나
늙음이 없어 더욱 좋구나.
반공에 치솟아
우쭐대는 너를 보면,
땅을 다지고 서서
하늘로 뻗는 네 기상!
오가는 사람에
희망을 주는 그늘에 서면,
외롬은 금방 사라지고
도로 어려지누나.
위로 솟으면 숲을 이루고
옆으로 뻗으면 그늘을 짓는,
그 밋밋한 몸매에
시원스런 차림으로
까마득 향수를 잊고
날로 꿈을 푸르누나.
-「포플러」전반부
우물가 감나무에 더런 감이 발갛게 익어 가고,
아직도 뜨락엔 장미가 볼 붉히고,
푸르른 하늘에 흰구름 한 점 두웅 한가롭다.
허전했던 가슴에 기쁨이 와 철렁여도,
슬픔은 슬픔대로 물거품처럼 떠오르고,
낮달이 종이배 되어 이 안을 안고 간다.
차츰 가을은 짙어 가는데 가을에 깊이 젖지 못함은,
이 고동 설레임 아닌 불안과 초조에 떪이런가?
언제나 마음의 고요를 얻어 여유론 세월 누릴꼬.
철따라 제비 떼 떼지어 남으로 가면,
기러기 목을 뽑아 날아들 오련만,
내 속에 자리한 욕망이란 샌 가도 오도 못하나!
-「가을이 짙어가면」전문
나무 울타리를 무성히 뒤덮는 파아란 잎 사이로,
노랗게 드러난 네 얼굴에는 드메서 왔다는,
순이의 순직한 얼굴이 또한 그속에 있어 좋구나.
날개 달린 놈이면 잉잉거리며 진득한 향(香)을 듣고 누구나 오라.
내 입술 그리 고울 건 없어도 어서들 오라.
이 가슴 속에다 깊숙이 묻어 문질러 주마.
마음은 수줍어도 젊음은 푸르러,
이들이들 타는 해는 오오 나의 숨결,
숨죽어 아물기 전에 어서들 빨리 오라.
장미처럼 눈부시진 못하여도 사나움 없고,
백합처럼 말쑥하진 못하여도 가냘픔 없고,
부둑진 삶은 하늘을 우러러 구김없이 피었노라.
-「호박꽃은 부른다」전문
선생이 그린 많은 작품이 자연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단순한 평면적인 자연을 그리지 않았다. 생명성을 가진 본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신비성이나 존재성이 위협을 받아 생태적인 성향을 띄기도 한다. 그런데 더 나아가 여성성과 만나 에코페미니즘적인 속성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둑진 삶” 혹은 “진득한 향(香)”의 여성성은 분명 “날개 달린 놈”들의 “잉잉거”림 따위야 다 순식간에 잠재울 수 있는 거대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런 관점으로 보는 것은 구름재 선생만의 시적 특성을 살피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황희영이 지적했듯 ‘구름재’라는 아호가 지니는 ”맑고 높은 외로움“의 의미처럼 ‘구름’이라는 자유로운 존재이면서 언제나 외로운 존재로서 선생은 초월자의 고독한 성자였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여러 관점들을 종합해보면 선생은 분명 현대시조의 격동기를 헤쳐 오면서 시대정신을 시조라는 그릇 안에 잘 녹여내면서 시조의 형식과 내용을 아우르는 현대시조의 개척자이자 선각자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박영우(전라고 7회) 경기대 문예창작과 교수. 구름재 박병순 선생님의 자제. 어제 우연케 통화하였음.
그 친구가 메일로 보내준 선생님관련 자료임. 올해가 탄생 100주년.
대산문화재단에서 탄생 100주년 기념, 구름재 시를 낭송하는 자리를 마련한다함.
지난해 진안군 등 여러 기관 단체의 지원으로 구름재 박병순선생님 생가를 복원했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