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4일 목요일. 아홉 시가 되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가자들에게 자료집과 명찰, 기념품 등을 나누어준다. 이번 행사는 경상북도에서 주최하지만, 포항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방 언론인 경북일보에서 주관한다. 낯이 익은 김우수 기자가 큰 카메라를 들고 행사 사진을 찍고 있다. 그 외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는 얼굴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전국 단위나 도 단위 교과 활동에 뜸했던 터라 좀 어색하기는 하다. 사립 중학교에 근무하면서부터 전공 모임에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자료집을 받고 찾아보니 나는 7조에 속했다. 울산과 경기에서 온 분들 사이에 경북 사람으로 유일하게 끼였다.
아홉 시 반. 경상북도 독도수호대책팀 우정하 사무관이 인사를 한다. 일년 중 독도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은 30여일 정도인데, 이번에는 입도하게 될 것이라는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넨다. 이후 사회와 진행은 경북일보 박상필 기자가 맡았다. 목소리가 시원~ 시원하고 밝은 모습이라 첫 인상이 경쾌하다. 울릉도행은 언제나 장담하지 못한다. 기껏 인사 해놓고 배가 뜨지 않아 다시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배를 타고 포항을 벗어나야 떠난다는 기분이 날 것이다. 배를 탔다고 모두 울릉도까지 가는 건 아니다. 지난 4월 말, 울산 장생포에서는 고래 관광배가 첫 출항하기로 되어 있었고 문학 행사도 열렸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시인은 풍랑 때문에 고래 구경은 못하고 배 위에서 놀다 왔다고 한다.
배표를 받고 줄을 서서 ‘썬플라워’ 호에 오른다. 배에다가 웃는 해바라기를 그려 놓았다. 왜 요즘 배이름을 외래어로만 짓는지... 포항에서 울릉도로 가는 배편은 대아고속해운이 독점 운행한다. 대아고속해운은 포항을 기반으로 한 회사로 묵호-울릉도, 울릉도-독도, 부산-일본 대마도 사이에도 정기 항로를 개설하고 있다.
이번 행사 주관사인 경북일보와 같은 계열사이고, 숙소로 잡힌 울릉도 대아리조트도 그렇다. 대아 그룹은 중국 항로까지 진출하여 진천 항운을 통해 인천-천진 여행도 가능하다. 포항에 오래 산 사람들은 대아 그룹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룹 창업주 아들이 계열사를 움직이는데, 예전 대마도 여행할 때 같은 배를 탄 적이 있다. 승선권 일등석 마-15, 가격은 30,150원으로 찍혀 있다. 50% 정도 할인된 가격이다. 개인으로 여행할 때도 이런 가격이면 좋겠다.
우리 배 옆에 정박해 있는 독도페리가 보인다. 독도 페리는 한동안 포항-울릉 사이를 운행했다가 적자로 폐업한 상태다. 제한적이나마 울릉 여행이 복수 경쟁 체제였는데, 다시 독점으로 돌아가 아쉽게 되었다. 기업은 독점하고 싶지만, 소비자는 독과점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된다.
울릉도 천부에 계신 할아버지에게 보낼 과일 상자를 들고 움직이려니 몹시 힘이 들었다. 포항 여객터미널에는 공항처럼 짐을 싣고 끌고 가는 수레가 있다. 그걸 보지 못하고 그냥 들고 가느라 고생을 했다. 천부 할아버지는 첫 여행 때 만난 분으로 이후 흥해 우리 집에도 오신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 연세가 많아서 거동이 불편하시다. 과일이 귀한 울릉도에 토마토와 참외를 챙겨서 보내드리려고 한다. 도동에서 천부까지 가는 시내버스에 실어 보내면 천부에서 받기로 했다. 시간이 되면 천부에 다녀올 생각이다. 울릉도가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하고, 할아버지 근황도 궁금하지만, 단체 일정에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포항과 울릉 사이를 복수 운행하던 썬플라워호 내부는 답답하다. 밀폐형으로 되어 있어 갑판에 나가지 못하고 그냥 선내에서 앉아 있어야 한다. 밀폐된 배는 선상 여행의 묘미를 훨씬 떨어지게 한다. 요즘 우리 나라 대부분 기차나 버스가 창문을 열 수 없는 밀폐형으로 바뀌어 운치가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다.
오전 10시 배는 서서히 움직여 부두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오른쪽으로 포항제철이 보인다.
날씨가 흐리고 오전이라 가시거리도 그다지 길지 않다. 포스코(POSCO)라고 부르면 꼭 외국 회사처럼 들린다. 하긴 외국인 지분이 70%에 달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포항은 포스코를 빼놓고 생존조차 어려운 도시다.
방파제 넘어 잘 보이지 않지만 처참하게 무너져 버린 송도 해수욕장이 보인다. 70년대만 하더라도 전국에서 해수욕객이 들끓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황량한 폐허만 남아 있고 모래는 대부분 유실되어 상전벽해를 실감케 한다. 모래 유실 원인을 둘러싸고 논란을 겪은 뒤 포스코는 2004년 송도상가피해보상대책위원회에 피해보상금 117억 8천만 원을 주기로 합의하였다. 사실 포스코는 2007년에는 3조 6천억 원, 2008년도에 4조 4천억 원이라는 순이익을 남겼다. 매출은 30조원을 넘는다. 온 국민이 이용하는 해수욕장을 폐허로 만들도 보상금으로 합의한 117억이라는 숫자가 참 초라하게 보인다.
유실된 송도 해수욕장 모래를 복원하기 위한 개발 공사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물론 이때는 국비가 들어간다. 백사장 복원에 380억 원이나 들인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포항 지역은 풍부한 국비를 지원 받아 송도 해수욕장 복원뿐만 아니라 동빈내항 복원에 1170억 원, 해양공원 조성에 270억 원, 북부 해수욕장과 송도 해수욕장을 잇는 다리 건설에 1000억 원, 포항 구항구 정비 사업에 772억 원 등 나랏돈이 쏟아들어오고 있다. 물론 포항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 힘 때문은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다. 이상득 한나라당 국회의원 지역구가 포항시 남구이기에 그렇다고는 단정하지는 못한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 형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고 다른 지역보다 많은 돈을 배정할 리가 없다고 믿는다면 그렇다.
송도 솔밭 위에 고층 아파트가 우뚝 서 있다. 멀리서 봐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가까이 공단이 있어 환경이 좋지 않은 데다가, 송도 해수욕장 몰락으로 주변 지역은 슬럼으로 변해가는 상태라 쾌적한 주거지로는 맞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 수천 억이 투입되어 이 지역이 홍콩이나 상하이처럼 발전하게 된다면 저 아파트 역시 자리를 잘 잡았다고 보면 되겠다.
포항항을 벗어나면 그야 말로 망망대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잠을 청하거나 텔레비전을 본다. 길 떠나기 전에 사람들은 흥분한다. 그 흥분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가라앉으면 자신도 모르게 잠에 떨어진다.
눈을 떠보니 11시를 조금 넘기고 있다. 오늘의 기상 상태는 풍향은 서풍과 북서풍이 불고, 풍속은 초속 6-13미터, 파도의 높이는 0.5-2 미터 정도로 생각보다 배의 움직임이 조용하다. 조용히 자료집을 꺼내본다. 독도 관련 책을 두 권 챙겼지만, 일단 새롭게 받은 자료들을 꼼꼼히 읽어본다.
첫댓글 어떻게 이렇게 꼼꼼하게 글을 적으시지요? :) 우선은 저도 우리나라 배 이름은 예쁜 한글로 지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배 삯고 조금 저렴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야기가 이어질테지요? 시간날 때 부지런히 와서 읽어볼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