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는 여수항에서 27km 떨어져 있어 배로 두 시간 남짓 걸려야 갈 수 있었다
지금은 낭도대교가 놓여서 낭도에서 20분이면 갈 수 있다.
사도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이 섬의 선주민이었던 공룡 덕분이다.
공룡발자국이 발견되면서 섬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자 사도는 조금씩 생기가 돌고 있다.
공룡이 뛰놀았다던 사도는 공룡 몸집에는 어울리지 않게 작고 아담하다
사도에는 일곱 개의 섬이 있다.
마을이 있는 '사도 본섬'과 '간댓섬'(중도), 시루같이 생긴 '시루섬'(증도), 긴 뱀처럼 생겼다는 '진댓섬'(장사도),
그리고 '나끝', 연못같이 생긴 '연목', 미꾸라지같이 작은 '추도'(鰍島)를 통틀어 사도라 부른다.
추도와 사도마을에만 사람이 살고 다른 섬에는 살지 않는다.
사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거대한 공룡 모형 두 마리가 반겨주었다.
백악기 후기(6800만년~6550만년 전)에 살았다는 티라노사우루스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몸길이 12m에 최대 9톤 가까이 가는 몸무게로 모든 동물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섬 주위에 모래가 많아 사도(沙島)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예전에는 사도에만 60가구가 넘게 살던 부자 섬이었다
1959년 추석 무렵, 사라호 태풍이 사도를 덮쳤을 때 사도는 직격탄을 맞았다.
주민들의 생명줄이자 희망이었던 30여 척의 배들이 모두 파괴되었다.
그뒤 사람들이 떠나버려서 지금은 더 이상 젊은이들이 살지 않는 곳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나끝은 선착장의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다
250년 묵은 네그루의 소나무가 나끝을 지키고 있었다
소나무 앞에는 사도 이장이 관리자로 돼있는 보호수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선착장에 도착해서 바라보는 처음 풍경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긴 방파제가 섬을 연결하고 해안가에는 작은 해변이 나타난다.
사도해변인데 자갈이 많이 보인다
방파제를 건설하고 나서부터 어디선가 돌들이 굴러와 모래사장을 덮어 버렸다고 한다.
사도에는 상시로 문을 여는 식당이 없어서 민박집에서만 식사가 가능하다.
포도나무민박집 밥상에는 미역국과 서대회, 따개비, 보말, 군소 무침 등이 올라왔다.
할머니 혼자서 준비하셨는데 어찌나 맛깔스런지 먹는 내내 행복하였다.
마을 안 골목에는 돌담들로 되어 있는데 바닥은 벽돌로 된 보도블록이다.
사도의 담장은 추도의 담장과 함께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집담도 돌을 쌓아 만들었지만, 집 옆 남새밭에도 돌담을 쌓아서 바람을 막고 있었다.
돌담 골목을 지나면 중도(간댓섬)로 가는 다리가 있는 해안에 닿는다
예전에는 바위에 선명하게 찍힌 진짜 공룡발자국 화석이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 중도로 들어가면 길이 끝나는 지점에 양면해수욕장이 있다.
양면이란 말 그대로 백사장을 중심으로 양쪽이 모두 해변이다
썰물 때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그야말로 최고의 자연 친화적인 해변인 셈이다.
조개껍질이 부서져 만들어진 모래사장이라 빛이 희고 곱다.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시루섬으로 건너가면 모래는 온데간데없고 커다란 바위들이 섬을 이룬다.
시루와 닮았다는 시루섬은 왕성한 화산 활동으로 형성됐다
장사도는 하루 두 번 물이 빠지면 건널 수 있지만 시루섬은 언제나 걸어갈 수 있다.
섬 입구에는 높이 10m, 길이 15m의 커다란 거북바위가 지키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와서 이 바위를 보고 거북선 제작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바위의 생김새만큼은 거북과 너무나 많이 닮아있다.
암반 위에서 눈을 들어보면 얼굴바위가 보인다.
도톰하게 솟은 이마와 오뚝 솟은 코, 굳게 다문 입술이 정말 사람의 옆모습과 흡사하다.
마치 왜적으로부터 국토를 사수하겠다는 의지로 바다를 응시하는 장군의 모습 같다
혹자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님을 기다리는 망부석 같다 하기도 한다.
시루섬에는 신생대 초(약 1억 5천만 년 전)로 추정되는 화석층이 해변을 따라 늘어서 있다.
전남 지방에서 최초로 발견된 화석층이 기암괴석들과 어울려 비경을 이룬다.
세명의 여인들이 거대한 바위를 밀어버리려 힘을 쓰고 있다. ㅎㅎ
조용하여라,
저 가슴
꽃 그림자는 물속에 내렸다
누구도 캐내지 않는 바위처럼
두 손을
한가운데에
모으고
누구든 외로워라,
매양
사랑을 묵상하는
저 섬은.....................................................................................문태준 <섬> 전문
여인들이 시루섬을 독차지하고 앉았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나랏일을 근심하여 앉아 있었다는 장군바위다.
남해안이라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설화가 많이 담겨있는듯 하다.
수억년 세월이 담겨있는 거대한 바위도 여인 앞에서는 주눅이 든다
비록 한 세기도 안 되는 여인의 삶이지만 큰 바위도 밀어올릴 수 있다
그러므로 여인은 세상을 다스리는 남성을 지배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여인의 수정궁 안에서 명멸하였다.
공룡들의 발자국이 퇴적층 위에 선명하다.
이곳이 공룡의 놀이터이다.
예전 이곳은 진땅, 앞쪽 바다는 거대한 호수였다고 추정된다.
호수로 향하던 공룡이 진흙에 발자국을 남겼는데 이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
차라리, 해변에 앉아
모래알의 숫자를 헤아리는 게 더 쉽겠다
많은 모래가 모여야 백사장이 되지만
내 그리움은 반만 담아도
바다가 된다...............................................................................윤보영 <모래와 바다> 전문
시루섬 최고의 걸작품은 약 30m 길이의 용미암(龍尾岩)이다
용암이 바다로 흘러가다 급히 식으면서 생성된 암맥인데, 용꼬리 모양새다.
색깔도 기막히게도 청룡색이다.
질감은 더 생생하다.
까칠하고 단단한 게 마치 철갑 두른 용의 비늘 같다.
이곳 사람들은 용미암의 머리가 제주도의 용두암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시루섬은 파도가 세기로도 유명하다.
세상을 삼킬 기세로 고깔 모양의 가마섬에서 몰려온 파도가 갯바위를 유린한다.
때론 공룡의 울부짖음 같기도 하고 때론 화산의 폭발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거센 파도를 이겨내고 우뚝 서있는 바위의 기(氣)를 받고 있는 중이다.
얼굴바위 앞에는 크고 작은 바위 두개가 서있다
이곳 사람들은 감자바위라고 부른다
금방이라도 바닷속으로 굴러 들어갈 것 같이 위태위태하다.
1954년 개교한 여산초등학교 사도분교..
1996년 폐교된 뒤, 지금은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 수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람하게 자란 향나무의 기세를 보면 학교의 역사가 느껴진다.
다시 낭도로 나가기 위해서 사도관광센터 앞으로 나왔다
건물은 제법 큰 규모로 지어졌지만 방치되어 있었다.
양쪽에 거대한 크기로 서 있는 티라노사우루스 모형이 을씨년스러웠다.
오후 2시 40분에 낭도로 가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백야도, 제도, 개도, 하화도를 거쳐서 오는 여객선이다.
일명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자연 현상이 일어나는 정월 대보름때 다시 와보리라.
첫댓글 섬이지만 결코 외롭지 않을것 같은 섬입니다
하루에 두번 일년에 두번 열리는 길이 있거든요
어느날 갑자기 울적해질때 가서 사나흘 노닐다 오면 좋을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