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 전언 절명시(絶命詩), 죽음을 통해 삶을 조명하다＞ 고영화(高永和)

[아이크]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 전언 절명시(絶命詩), 죽음을 통해 삶을 조명하다> 고영화(高永和)

 세상을 뜨기 전에, 또는 목숨을 끊기 전에 마지막으로 지은 시(詩)를 절명시(絶命詩)라고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임종의 순간이 다가올 때 삶의 끝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을 남긴 경우다. 비슷한 의미의 말로는 절필시(絶筆詩), 임명시(臨命詩), 임형시(臨刑詩), 사세시(辭世詩), 필명시(畢命詩), 자만시(自挽詩) 등이 있다. 절명시는 다른 어떤 문학 작품보다 죽음에 근접해 있다. 해가 뜨면 결국 지듯, 죽음을 예기해서도, 타인의 죽음을 목격해서도 아닌 자신의 죽음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기록인 셈이다. 왕조시대 선조들께서 질병이나 고령으로, 또는 스스로 순절(殉節)하거나, 정치적 종교적인 박해 등의 이유로 도저히 죽음을 돌이킬 수 없을 때, 아직은 살아있는 우리에게 전하는 마지막 전언(傳言)이 바로 절명시다.

 이에 죽음을 늘 의식하라는 현인들의 충고는 사람들을 절망에 빠지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진짜 바라는 삶의 진정한 우선순위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그런고로 내가 사는 이유나,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에 대한 빠른 답을 구할 수 있고, 눈 깜짝할 사이에 현명해진다. 또한 오랜 삶의 경험을 축약한 자만시(自挽詩)에서 사색과 성찰의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생각 없이 무심하게 습관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게다가 죽음을 떠올린 순간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삶의 의미와 본질을 만날 수 있다.

 한편 절명시나 자만시는 자신이 가진 유무형의 재산과 가업 등의 법적 도덕적 의사표시를 하는 유언과는 그 결이 완전 다르다. 자만시는 죽음의 과정과 그 이후를 언어를 통해 체험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지면을 통해서는 종교적인 색체가 강한 고승(高僧)의 임종게(臨終偈) 등은 제외하고, 일반 유자(儒者)들의 절명시나 자만시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특히 자만시(自挽詩)는 절명시와는 다르게 나의 죽음을 미리 내다보며 지은 글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언제 맞을지 모를 죽음을 예비하며,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애도하는 실제 불가능한 상황을 전제로 한 경우이다. 그런고로 자만시는 미리미리 나의 죽음에 대해 통찰하다보니 이야기하기를 꺼리던 나의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 매우 용감하고 진정성 있는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자만시를 적고 난 후 몇 개월 만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10년 이상 더 살다가 죽는 경우도 가끔 있다. 반면 절명시는 보다 죽음과 더 지근(至近)한 거리에 있다. 회생(回生)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절명시는 자만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작시의 비율이 적다. 가상의 죽음과 현실의 죽음이라는 차이에 기인한다. 그리고 자만시(自挽詩)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의식은 미완의 삶과 미련의 심정을 통해 죽음을 달관하는 자세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에 나의 죽음만 유별나지 않다는 생각이 죽음을 초연하게 만든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나의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덧붙여 이러한 글을 논하는 이유는, 죽음에 대한 사색이 곧 삶에 대한 사색이자 내 안의 숭고함을 되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옛 선조들은 어둠 속에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빛을 찾아내 죽음으로부터 살아 돌아왔고, 슬픔이 저미어오는 때도 있었지만 끝내 음울함 속에서 죽어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면서 쓴 절명시와 자만시 속에는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삶의 성찰이 많이 들어 있다. 인간에게 죽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운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옛날 공자께서는 “새가 죽으려 할 때는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그의 말이 착하다.(鳥之將死其鳴也哀 人之將死其言也善)”고 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본성으로 돌아가 선한 말을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마지막 말은 예사롭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밖에 없다.

○ 한편 절명시 내용은 보통 자신의 정치적 야망 또는 지향하는 이념이 좌절이나 실패로 돌아가 불우하게 삶을 마칠 경우, 시의 내용은 대부분 국가나 군주에 대한 안위를 걱정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기묘사화 때 사사된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는 “임금을 아비처럼 사랑하고 나라를 집안처럼 걱정했네. 밝은 해가 내려다보니 내 마음을 환히 알고 있으리.(辭世之絶句 愛君如愛父 憂國如憂家 白日臨下土 昭昭照丹衷)”라고 읊조렸다. 

○ 조선 중종 때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던 눌재(訥齋) 박상(朴祥 1474~1530)은 이렇게 덤덤하게 자신의 묘비명을 쓰고 있다. “재주도 없고 덕도 없는 보통 사람에 불과하고, 살아선 벼슬이 없고 죽어서는 명예가 없는 보통 넋에 불과하다. 시름도 즐거움도 사라지고, 헐뜯음도 칭송도 그친 지금 그저 흙덩이에 불과하구나.” 초탈의 경지가 느껴지는 글이다.

○ 조선후기 문인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곤 다음과 같은 <내가 죽어서(自挽)>라는 시를 읊었다. “한평생 시름 속에 살아오느라 밝은 달을 봐도 부족했었지. 이제부터는 만년토록 마주 볼 테니 무덤가는 이 길도 나쁘지 않겠군.” 세상도 죽음도 탓하지 않는 마지막 말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리고 천상병 시인은 <귀천(歸天)>이라는 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썼다. 우리 역시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면 죽음을 통한 마지막 성장도 마지막 성찰도 가능하지 않을는지.

○ 고로 이로부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왕조시대 선비들은 자신의 죽음마저도 뛰어넘어 자신을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내공(內工)을 지녔다는 점이다. 절명의 순간에 보이는 이러한 안심입명(安心立命)의 태도는 죽음의 가공할 만한 폭력을 무화시키는 듯하다. 세상의 시선이든 죽음이든 훗날의 평가든 상관없이 눈감는 날까지 난 나의 삶을 살겠다는 자기다짐의 명세는 아니었나 생각된다.

◉ 누군가 “세상일은 석자 거문고와 같고 생애는 한 잔의 술과 같네(世事琴三尺 生涯酒一盃)” 라고 읊었듯이, 내 60년을 살아보니 인생은 “취한 듯 살다가 꿈꾸듯 죽는다.”라는 말이 진리인 듯하다. 죽는 그 순간까지 늘 꿈과 희망을 가지고, 견디고 몰입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비몽사몽간에 세상을 버리는 것이 인생(人生)이라 할 것이다. 그런고로 덧붙여, “죽음은 허무한 소멸이 아니며, 온전한 자유를 얻는 길이고,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 이제부터는 절명시나 자만시 등에 관한 한시(漢詩)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먼저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1664~1732)의 ｢식산집(息山集)｣에 수록되어 있는 그의 절명시(絶命詩) <순명의 자세로 맞는 죽음>을 살펴보기로 하자. 저자는 조선후기 남인 사림의 최고 학자인 동시에 시·서·화로 일관된 삶을 살았던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예술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성리학을 기반한 사유방식을 기초로 하여 시문(詩文)을 표현하였고 그 시대의 학문과 사상을 확립했던 경북 상주(尙州)의 유명한 인물이다.
 이 시 속에는 한 개인의 임종과, 절명시가 지어지는 정황을 상세히 보여준다. 식산(息山)이 이승에서 마지막 절명시와 당부의 말을, 상주목 출신 그의 제자 운음(芸陰) 노계원(盧啓元 1695～1740)이 가장(家狀)의 형태로 기록하였고 이에 식산의 시문집에 남겨놓았다.

○ 이러한 이만부의 절명시는 임자년(1732년) 12월 17일 밤에 가족 그리고 지인들과 이승에서 나누는 마지막 장면을 인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자손들에게는 ‘신중함으로 본분을 지켜 함부로 사람들과 사귀지 말 것’을 당부한 유언을 비롯해, 제자들에게도 여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임종에 이르자 아녀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이승에서의 마지막 말 대신 한 편의 7언절구 절명시를 읊었다.

1) 절명시[絶命詩] / 이만부(李萬敷 1664~1732)
此月常來守我窻 저 달이 항상 와서 내 창을 지켜주고
有時淸影廢油缸 때때로 맑은 그림자가 등불을 덮어 주었지
若逢月往諸公案 행여 달이 여러분들 책상을 비추거든
知我心如此月光 내 마음 달빛인 줄을 알아 반겨 주시게

 그리고 다음날 18일 아침에 방청소를 깨끗이 하고 상과 요를 잘 정돈하라 하고는 잠시 후 세상을 버렸다. 절명시(絶命詩)는 보통 자신의 죽음이 가장 임박했을 때 쓰기 때문에 이것을 쓴 후 소생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몸과 정신이 극도로 쇠약해져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절명시의 운(韻)자가 틀린 것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제자들에게 “절명시의 운자(韻字)를 틀림없이 고쳐 써서 여러 곳에 널리 보내거라”면서 교정을 청하는 과정은 엄숙하기 그지없다. 참고로 그의 마지막 염려대로 ‘江’(窻, 缸)과 ‘陽’(光) 2가지 운자(韻字)를 사용하였으나, 다행히 노래의 높낮이와 음운(압운자)의 발음이 비슷해 통운(通韻)할 수 있으므로 전혀 거칠게 없다.

● 다음 ‘微’ 운(韻)의 오언절구(五言絶句) <절명시(絶命詩)>는 임진왜란 때 경북 안동의 의병장이었던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 1555~1593)의 작품이다. 1592년 6월11일 경북 안동 예안에서 일으킨 의병은, 김해(金垓)가 대장으로 한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이었다. 다음 해인 1593년 6월까지 서울에서 철수하여 남하하는 왜적들을 섬멸하여 백성들의 원한을 갚고자 대구, 선산, 인동, 상주, 양산 등지의 왜적들을 끝까지 추적하였으며, 왜군이 경주로 내려오자 김해 대장은 부대를 경주로 옮겨 이광휘 부대와 연합작전으로 경상좌도의 모든 의병부대를 총 지휘하여 왜군을 크게 물리쳤다고 한다. 이렇게 왜군을 남쪽 끝까지 토벌하던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은 6월 19일에 김해 대장이 경주 진중에서 갑자기 순국하면서 귀향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나이는 향년 39세였는데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 김해(金垓) 대장이 죽으면서 남긴 절명시(絶命詩)는 읽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2) 절명시[絶命詩] / 김해(金垓 1555~1593) 
百年存社計 백 년 사직을 구할 계획으로
六月着戎衣 6월에 갑옷을 입었다네.
爲國身先死 나라 근심에 몸은 헛되이 죽지만
思親魂獨歸 어버이 못 잊어 혼만 돌아가네.

 그는 사직을 보존하려는 그 일념으로 한 여름에도 군복을 벗지 않았으니 언제든 적을 맞아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몸이야 나라를 위해 바친다지만 혼은 어버이에게서 찾아오겠다 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은 아쉽지 않지만 부모에 대한 그 정은 쉽게 떨칠 수 없었다. 

● 다음은 조선후기 문신 두기(杜機) 최성대(崔成大 1691~1762)가 임종 때 적은 ‘豪’ 운(韻)의 칠언율시 <절필시(絶筆詩)>이다. 한 시대의 빼어난 시인답게 좌절과 불운의 한 평생을 한 편의 시로 표현하고 떠났다. 이 세상에 온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고 돛단배로 큰 바다 풍랑을 헤쳐 가듯이 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정성껏 빚어놓은 능력을 써볼 때도 없이 사장 시킨 인생이었다. 내 고향은 선계로, 선인들이 왜 그렇게 사느냐며 어서 오라 손짓 한다. 이제 떠나고 나면 세상과는 영영 인연을 잇고 싶지 않다. 누군들 되돌아보면 회한이 남지 않는 인생이 없겠는가마는 그래도 너무 처연하다.

3) 절필[絶筆] 임종 시 적은 간결한 문구(臨終時口號) / 최성대(崔成大 1691~1762)
誤出風塵百不遭 풍진 세상 잘못 나와 모든 일이 꼬인 탓에
孤檣常怕惡波濤 언제나 외로운 배 거센 파도 겁을 냈네.
鍊成丹鼎何曾試 영단(靈丹)을 만들었어도 시험해 볼 길 없었고
斲掘靑萍竟自韜 청평검(靑苹劒, 보검) 얻었지만 끝내 숨겨 두었다네.
海上應須三島侶 동해 바다 삼신산(三神山)엔 벗들이 기다릴 텐데
人間今落九牛毛 인간 세상 속절없이 하찮은 존재로 떨어졌네.
飄然此去空明界 지금 훌쩍 여기 떠나 선계(仙界)로 들어가면
銀闕浮雲萬丈高 은대궐에 뜬구름은 만 길이나 쌓였으리.

 이 시는 대단히 침울하다.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 불행이더니 세상살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고장(孤檣)은 자신의 처지를, 파도(波濤)는 세상의 시련을 말한다. 영단(靈丹)과 청평검(靑苹劒)은 현세의 좌절을 의미하고, 삼신산(三神山), 은대궐(銀闕)은 모두 죽음의 다른 이름이다. 선계가 죽음의 공간으로 환치되면서 죽음의 두려움이 상쇄되는 효과를 가져 온다. 현세에 대한 좌절이나 불행이 강할수록 죽음으로의 견인은 속도를 빨리한다. 미지(未知)의 명계(冥界, 저승)는 기지(旣知)의 현세보다 유혹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수명의 장단과 상관없이 절명의 순간에 찾아오는 미련과 회한의 감정은 당연하다. 부귀와 공명을 누릴수록 삶의 집착은 강하게 보이기도 하고, 불우할수록 삶의 무게는 가벼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삶에 대한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다. 이승에 남은 지인과 자식에게는 당부와 부탁을, 저승에 있을 조상과 부모에게는 미안함과 사죄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 다음 ‘支’ 운(韻)의 오언율시 <절명시(絶命詩)>는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정관재(靜觀齋) 이단상(李端相 1628～1669)이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에 읊은 작품이다.(易簀前三日所吟) 전반부 1~4구는 병세가 악화되어 더 이상 소생할 희망을 버리고 순명하는 자세를 보인다. 후반부 5,6구는 성명(誠明)은『중용』에 나오는 구절을 통해 개인적인 수양도 이루지 못하여 백성에게 은택을 미치지 못한 사실을 적시했다. 결국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는 회한의 고백이다. 그리고 후반부 7,8구는 달을 통해 무상함을 증폭시켰다. 정관재(靜觀齋)는 이단상이 1666년 39세 때에 양주(楊州)의 영지동(靈芝洞)에 지은 집이다. 사람은 떠나도 이 달은 남아 못물을 비추고 있을 것이다. 7~8구는 짧은 인생과 유장한 자연물의 대비를 통해 허무함이 더 도드라지지만 반면 자신이 죽은 뒤에도 자신의 평소 뜻이 달빛처럼 남아 있으리라는 다짐도 함께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4) <절명시(絶命詩)> 이단상(李端相 1628～1669)
此疾遽如此 이 병이 갑작스레 이처럼 됐으니 
斯人而至斯 이 사람이 여기에 이르게 됐네. 
死生都是命 죽고 삶은 모두가 운명이노니 
來去復奚悲 오고 갊 다시 어찌 슬퍼하리까. 
未就誠明業 진실로 성명(誠明)의 업 못 이루었으니 
空違致澤期 부질없이 백성에 은택 입힐 기약 저버리었네.
千年芝洞月 천년 되도록 지동(芝洞)의 달은, 
虛照靜觀池 정관재(靜觀齋)의 연못을 공연히 비추리라.

● 다음 소개하는 절명시는 조국이 망하자 순절(殉節)을 결심하고 지은 두어 편의 작품을 살펴보겠다. 이는 나라의 큰 환란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자신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자결을 선택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은 대체로 목을 매는 방법을 택했지만, 배를 가르거나 물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단식으로 굶어죽기도 했으며 더러는 독약을 마시기도 했다. 1911년 한일합방에 반대하며 자결한 황현의 절명시를 대표로 뽑을 수 있다. 

○ 조선말기의 시인⋅문장가이자 유교적 지식인이었던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은 담론(談論)을 잘 하고 기절(奇節)을 좋아하였으며 세상에 할 일이 없음을 알고 가정으로 돌아와 시문(詩文)에 뜻을 두고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여 평일에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융희(隆熙) 4년(1910년) 8월 3일 합방령(合邦令)이 군아(郡衙)에서부터 여리(閭里)까지 반포되자, 그는 그날 밤 아편을 복용하여 그 다음날 운명하였다. 대표작이 다음 <절명시> 4수(首)이다.

5) 절명시 4수[絶命詩 四首] / 황현(黃玹 1855~1910)
亂離滾到白頭年 난리 속에 어느덧 백발의 나이 되었구나 
幾合捐生却未然 몇 번이고 죽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네 
今日眞成無可奈 오늘 참으로 어쩌지 못할 상황 되니 
輝輝風燭照蒼天 바람 앞 촛불만 밝게 하늘을 비추네 

妖氛晻翳帝星移 요기가 자욱하여 황제의 별 옮겨 가니 
九闕沉沉晝漏遲 침침한 궁궐에는 낮이 더디 흐르네 
詔勅從今無復有 조칙은 앞으로 더 이상 없으리니 
琳琅一紙淚千絲 종이 한 장 채우는 데 천 줄기 눈물이라 

鳥獸哀鳴海岳嚬 금수도 슬피 울고 산하도 찡그리니 
槿花世界已沉淪 무궁화 세상은 이미 망해 버렸다네 
秋燈掩卷懷千古 가을 등불 아래서 책 덮고 회고해 보니 
難作人間識字人 인간 세상 식자 노릇 참으로 어렵구나 

曾無支厦半椽功 짧은 서까래만큼도 지탱한 공 없었으니 
只是成仁不是忠 살신성인 그뿐이지 충성은 아니라네 
止竟僅能追尹穀 결국 겨우 윤곡이나 따르고 마는 것을 
當時愧不躡陳東 부끄럽네, 왜 그때 진동처럼 못했던고 
[주1] 요기(妖氣)가 자욱하다 : 매국노들의 발호로 대한제국의 운명이 다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요기는 소인배 또는 매국노를 가리키고, 황제의 별은 자미원(紫微垣)에 속하는 별로, 황제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명(明)나라 남지(藍智)가 〈마애비(磨崖碑)〉라는 시를 지어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피해 몽진(蒙塵)하는 상황을 읊으면서, “이때 요상한 기운이 당나라 기업(基業)에 침범하여, 황제의 별이 한낮에 서남쪽으로 옮겨 갔네.(是時妖孼侵唐基 帝星白日西南移)”라고 하였다.
[주2] 짧은 서까래 : 쓰러져 가는 나라를 위해 조그만 힘도 보태지 못한 것을 가리킨다.
[주3] 살신성인 그뿐이지 : 국난을 당해 자결함으로써 지식인으로서의 도리는 다하였지만, 나라에 도움이 되는 충성을 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지사와 인인은 살기 위하여 인을 해친 경우는 없고, 목숨을 버려 인을 이룬 경우는 있다.(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殺身以成仁)” 하였다.
[주4] 윤곡(尹穀) : 송(宋)나라 담주(潭州) 장사(長沙) 사람으로, 평소 강직하고 염정(廉正)한 것으로 명성이 있었다. 몽고(蒙古) 군대가 쳐들어와서 담성(潭城)을 포위하였을 때 막료로서 성을 방어하는 데 참여하였는데,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처자(妻子)에게 뒤따라 죽을 것을 명한 뒤, 집에 불을 지르고 그 속에 단정히 앉아 자결하였다.
[주5] 진동(陳東)처럼 못했던고 :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진동처럼 간신배들을 몰아낼 것을 극언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는 뜻이다. 진동은 중국 북송(北宋) 흠종(欽宗) 연간의 태학생(太學生)으로, 자는 소양(少陽)이다. 당시 채경(蔡京) 등 6인이 사마광(司馬光) 등 구법당(舊法黨)을 철저하게 몰아내고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다시 시행하는 등 전횡을 일삼자, 육적(六賊)으로 지목하여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 또 금(金)나라 군대가 침입해 왔을 때 대항을 주장했던 이강(李綱)이 파직되자, 태학생들을 이끌고 상소를 올려 그의 복직을 청하기도 하였다.

● 다음은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 고헌(固軒) 박상진(朴尙鎭 1884~1921)의 ‘眞’ 운의 6언절구와 ‘屋’ 운의 4언절구 <절명시(絶命詩)>로, 각각 죽음을 앞둔 절박한 심정을 격정적으로 쓴 작품이다. 그는 1915년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총사령관으로 취임하여 친일 부호 여러 명을 처단했다. 1918년 봄에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4년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 시는 1921년 8월 11일 대구 감옥에서 사형 당하기 하루 전과 사형 당일에 쓴 작품이다. 어머님의 장례는 아직 못 마쳤고 나라 잃은 임금의 복수도 못했으며 국권도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항일 투쟁을 계속하지 못하고 죽는 아쉬움을 진하게 드러내었다.

6) <절명시(絶命詩)> 박상진(朴尙鎭 1884~1921) 
難復生此世上 다시는 태어나기 힘든 이 세상, 
幸得爲男子身 다행스레 장부 몸 얻었지마는 
無一事成功去 이룬 일 하나 없이 저 세상 가려하니 
靑山嘲綠水嚬 푸른 산이 조롱하고 녹수가 비웃누나. 
母葬未成 어머님의 장례는 못 마쳤고, 
君讐未復 우리 임금 원수도 갚지 못했으며 
國土未復 나라의 땅도 찾지 못하였으니 
死何面目 그 무슨 면목으로 저승에 가나. 

● 다음 <절명시(絶命詩)>는 구한말 영양의 의병장 벽산(碧山) 김도현(金道鉉 1852～1914)의 작품이다. 한말의 항일 의병장으로, 영양․안동 지방의 의병을 모으는 등 의병 봉기를 촉구한 인물이다. 영양에 영흥학교를 세워 육영 사업에도 힘썼다. 그는 조상이 지어준 원래 이름인 도현(道鉉)을 일제치하에 쓰는 것이 부끄럽다며 도현(燾鉉)이라 바꿀 정도로 강직한 인물이었다. 1910년 국권이 상실되었을 때 이미 순국할 뜻을 갖고 있다가 부친의 장례를 마친 뒤 결행했다. 밖으로 나라를 잃었고 안으로는 부친을 잃었다. 부친의 죽음은 그의 결심을 더 굳건히 만들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국난(國難)에 한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하든 왜소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러나 순절이야말로 그러한 개인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저항의 표현임엔 틀림없다. 자결의 여러 방법 중 그가 택한 것은 차가운 물속으로 그대로 걸어 들어가 목숨을 끊는 도해순국(蹈海殉國)이었다. 역사나 이념이 한 개인의 삶을 무조건 속박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역사나 이념을 떠난 개인이란 더욱 위태로운 법이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다가 죽음의 순간에 전하는 마지막 목소리는 그래서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7) 절명시[絶命詩] / 김도현(金道鉉 1852～1914)
我生五百末 조선왕조 마지막에 태어나서는
赤血滿腔腸 붉은 피 온 간장에 가득 찼구나
中間十九歲 그 사이 19년 동안 헤매다 보니
鬚髮老秋霜 머리털 희어져 서릿발이 되었네.
國亡淚末己 나라 잃고 흘린 눈물 그대로인데
親沒痛更張 부모마저 가시니 슬픈 맘 더욱 섧네.
獨立故山碧 나 홀로 고향 산에 우뚝 서서는
百計無一方 아무리 생각해도 방도가 없네.
欲觀萬里海 저 멀리 바닷길 보고자 했더니
七日當復陽 7일이 양을 회복하는 동지이네.
白白千丈水 희디 흰 천 길 되는 저 물속이
足吾一身藏 내 한 몸 간직하기 꼭 알맞겠네.